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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간만

블로그 만들어는 놓고 통 들어와 보지 못했다.

그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고 그 일들을 다 기록에 남기고 싶은 마음은 꿀떡 같았지만, 글쓰는 것이 익숙하지 않고 매일 겁나게 많이 놀리는 - 마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1번을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치는 것과 같은 - 컴퓨터 자판을 조금 생기는 여유공간에서 조차 보고 싶지 않아 저 멀리 바라만 보고 있었다. 

추석이 지난 뒤에도 끝나지 않고 더 치열해져만 가는 이랜드 투쟁, 매주 주말마다 잡히는 집회에 가야된다는 의무감에 축축 늘어지는 몸과 마음에 허덕이기를 계속하다가 결국 이번주에도 퍼져 가지 못했다.

하루종일 이리저리 뒹굴고 배고프면 밥먹고 TV보고 인터넷 편지 확인하고, 게임하다가 문득 드는 생각, 블로그가 생각났다.

"그래! 블로그에 들어가야지. 그래! 오랜만에 글이라도 하나 남겨야지!"

 

이제는 가을로 접어드는 것 같다. 아침저녁 공기가 쌀쌀하다.

몇주째 감기기운이 온 몸을 감싼다.

이 느낌! 알싸한 가을 공기가 콧구멍 속으로 들어올때면 꼬낏꼬낏 접어두었던 '역맛살'이 서서히 일어난다. 문득 창문밖으로 고개를 쑥 내밀면 실크로드 마지막 도시 '카슈카르'의 새벽 아침 공기와 거리, 위구르족 사람들이 나타난다. 늦은 퇴근시간, 오늘 하루도 제대로 뭐하나 하지 못하고 신경질만 부렸다는 생각에 답답해지는 가슴을 쓸어안고 집앞으로 들어서면 보이는 초승달과 샛별이 티벳에서 네팔가는 국경 마지막 마을 '팅그리'에서 본 주먹만한 샛별과 틈하나 보이지 않던 은하수-그야말로 우유길 그 자체이다-의 수많은 별들이 보인다. 잦은 비가 올때면 인도와 파키스탄 국경지역인 뻔잡주의 암릿차르에서 처음 맞았던 인도의 비가 생각난다. 끙! 이일을 우얄꼬! 새록새록 생각나는 여행! 다 때려치우고 떠나?

 

또하나! 이 가을에 생각나는 것이 있다. 김남주시인의 '이 가을에 나는' 이라는 시가 생각난다. 그것도 김남주 시인의 육성으로 읊은 시가...

 

이 가을에 나는

 

이 가을에 나는 푸른 옷의 수인이다.

오라에 묶여 손목에 사슬이 묶여

또다른 감옥으로 압송되어 가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이번에는

전주옥일까 대구옥일까 아니면 대전옥일까

 

나를 태운 압송차가 낯익은 거리 산과 강을 끼고

들판 가운데를 달린다

 

아 내리고 싶다 여기서 차에서 내려

따가운 햇살 등에 받으며 저 만큼에서

고추를 따고 있는 어머니의 밭으로 가고 싶다

아 내리고 싶다 여기서 차에서 내려

숫돌에 낮을 갈아 벼를 베는 아버지의 논으로 가고싶다

아 내리고 싶다 나도 여기서 차에서 내려

아이들이 염소에게 뿔싸움을 시키고 있는

저 방죽가로 가고 싶다

가서 나도 그들과 함께 일하고 놀고 싶다

이 허리 이 손목에서 사슬 풀고 오라 풀고

발목이 시도록 들길을 걷고 싶다

 

가다가 숨이 차면 아픈 다리 쉬었다 가고

가다가 목이 마르면 샘물에 갈증을 적시고

가다가 가다가 배라도 고프면

하늘로 웃자란 하얀 무를 뽑아 먹고

날 저물어 지치면 귀소의 새를 따라

나도 집으로 가고 싶다

나의 집으로

 

그러나 나를 태운 압송 차는 멈춰 주지를 않는다

강을 건너 내를 끼고 땅거미가 내린 산기슭을 달린다

강 건너 마을에는 저녁밥을 짓고 있는가

연기가 하얗게 피어오르고

 

이 가을에 나는 푸른 옷의 수인이다

이 가을에 나는

이 가을에 나는

푸른 옷의 수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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