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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폭력과 혁명

작년인가 '우리 모두를 위한 비폭력 교과서'라는 책을 읽어보았다.

정말 훌륭한 책이다. 꽤나 배울 점이 많았다. 여러 사람에게 권할 만하다.

주된 요지는 비폭력주의를 실천하자면 많은 어려움과 희생이 뒤따르지만 '폭력에 대항해서 폭력으로 승리했다고 해도, 결국 같은 폭력에 의해 멸망한다. 비폭력주의야 말로 진정한 승리를 가져다 준다.' 혹은 '권력을 탈취하는 것이 승리가 아니며, 사회의 존재 양태의 비폭력화가 더욱 중요하고, 운동의 방법은 비폭력이어야 한다.'로 보인다.

우리 모두를 위한 비폭력 교과서


허나 몇 가지 의아한 부분이 있었다.


물론 사회주의가 아닌 비폭력주의를 기반으로 했기에 어찌보면 비폭력주의자로서는 당연한 말일 수도 있지만 레닌이나 체 게바라마저도 '폭력에 의한 혁명 지도자로서의 영웅이므로 시대에 따라 평가가 바뀔 수 있다'나 '테러를 당하는 쪽의 정치적, 경제적 침략과 같은 폭력이 선행되어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볼 필요는 있지만 '인민의 해방'이라든가 '혁명'을 위한 테러 역시 폭력행위일 수밖에 없고 테러에 의한 폭력은 새로운 폭력을 불러 일으키며 끊임없이 되풀이 된다. 그러나 테러를 통해서는 결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등이 그것이다.

 

일견 많은 진실을 내포한 말 같기도 하지만 사회주의 혁명을 염두에 놓고 보자면 넋 놓고 고개를 끄덕일 수만도 없는 문제다.

 

왜냐하면 자본주의 자체가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 노동자를 착취하고 서로 경쟁시키는 (자본가는 링을 만들어 놓고 느긋하게 퍼져 앉아 대단한 자부심과 맥주캔을 양 손에들고 그 경쟁을 여유있게 구경하는) 지극히 구조적인 폭력적 체제이고 일반적으로 군대라는 폭력적인 조직과도 결합해 더 많은 이윤을 생산해 내는, 한마디로 폭력과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인데 그런 폭력적인 체제를 끝장낼 수 있는 유일한 해결방법은 오직 혁명밖에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비폭력주의자의 입장에서야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도 일단 비폭력주의가 점점 전파되어 가기 시작하면 지배계급의 마음까지 흔들어 결국 정치적 억압이나 문화적 소외, 실업, 빈곤 등의 구조적 폭력이 해결될거라 낙관적으로 예측할 수 있겠지만 비폭력주의가 먹힐 가능성이 보이는 한계점은 너그럽게 봐줘도 중간계급까지이다.

 

그렇다면 폭력적이지 않은 혁명을 하면 되지 않느냐는 의문을 가질 수 있는데 물론 그런 혁명 방법이 존재한다면 당연히 그게 최선일 것이다.

허나 갖은 상상력을 동원해봐도 명확하게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


우리 노동자가 가진 가장 큰 무기는 그들은 소수이고 우리는 대다수라는 점이다.

우리의 혁명은 다수가 소수를 힘으로 누르고 이루어 내는 것이라는 그림은 아주 쉽게 그려진다.

그런데 문제는 대다수 노동자가 자신에 대해 일종의 편견을 갖고 있고 영원히 이길 수 없을거라는 무력감에 시달리고 있다는데 있다.


일단 혁명이 시작되면 노동자 자신의 숨겨진 능력을 발견하고 능력에 대한 확신이 생기리라 보지만 폭력적인 자본주의 체제가 노동자 자신에 대한 자신감을 제도권 교육이나 언론을 통해 철저히 거세시켜 버리기에 노동계급의 혁명의 전망이 안개 속에 묻혀 버리는 것이다.


노동자가 노동계급에 대한 자부심과 승리할 것이라는 자신감을 가지고 한 사람 열외없이 단결한다면 고작 한줌밖에 안되는 자본가 계급 쯤이야 단숨에 엎고 노동자의 나라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요체는 노동계급의 대오각성이다. 혁명이 폭력적으로 진행될지 아니면 손쉽게 마무리될 지는 얼마나 많은 비율의 노동자가 혁명이라는 축제에 참가하는가에 달려 있다.

노동자 세상을 원한다면 단결하고 투쟁해야 한다. 투쟁하지 않는 노동자에게 미래란 없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비폭력주의자의 점잖은 타이름 쯤은 혁명이라는 과제를 앞에 두고 잠시 무시해도 좋지 않을까? 이렇게 말하는 나도 어느 쪽이 진리에 가까운지 아직까지는 단정짓지 못하고 있다.

 


엔엘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노동자 대중정당에서 최근에 당명을 바꾼 이념정당으로 관심을 돌리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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