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황한 내 자궁의 변론

2007/05/02 05:05 女름

자궁(子宮)은 남아가 사는 곳이다. 여성의 질을 뜻하는 버자이너(vagina)는 남성의 성기를 상징하는 칼이 머무는 칼집을 뜻한다. 질의 한자인 '질(膣)' 역시, 방(室)이라는 글자를 포함하고 있다.

 

- 정희진 <페미니즘의 도전> p.75

 

자궁은 '민족' '가정'의 것이지 여성의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여자아이를 임신했을 경우 낙태를 공공연하게 하기도 하고 자식을 몇이나 낳을 지를 부부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 혹은 집안에서 공공연히 얘기하는 것을 보면 입증이 좀 되는 거 같다.

 

환상사지통이라는 것이 있다. 전쟁에서 팔이나 다리를 절단한 군인이 팔 다리가 없는 데도 통증을 느끼는 현상이다. 전쟁 상황이 아니더라도 나타난다. 근데 여성이 자궁이나 유방을 절제했을 때는 환상사지통이 없다.

 

- 정희진씨가 강연 중에 일부 내용

 

학교로 돌아와 정희진 씨의 강연 중에서 환상사지통에 관한 부분을 친구에게 해주었다. 친구 왈 "자궁이 있다는 것을 평소 느낄 수 없기 때문에 환상사지통이 일어날 수 없는 거 아니야?" "생리할 때 느끼지. 생리통 있잖아" "생리와 생리통은 질로 하는 거 아니니?"

 

성폭력 상담원 교육 수업 중에 자궁이나 보지에 손을 대고 명상을 했다. 명상이후에 자신의 성기에 하고 싶은 말과 드는 생각을 그림으로 그리고 소감을 발표했다. 이런 저런 얘기가 많이 나왔다.

 

그 중에서 "자궁에게 너무 미안하다"라는 분이 계셨다. 자궁의 (근본적인? 본래?)역할은 아이를 낳는 것인데 그 역할을 못하게 해서 너무 미안하다는 것이었다.  이후에 자궁과 아이(출산)에 관해서 말을 해주신 분이 몇 분 더 계셨다.

 

자궁의 역할에 대해서 생각하게 됐다. 아이를 낳지 않는 자궁은 의미가 없을까? 역할을 못하는 것일까? 그 안에 아이가 들어가 자리를 차지하지 않고 있을 때의 자궁은 그저 빈껍데기일 뿐인가? 자궁이 여성들에게 어떤 의미(존재)일까?

 

명상을 하고 그림을 그린 날은 화요일이었다. 정희진씨 강연을 들은 날은 수요일이었다. 그리고 금요일에 생리를 시작했다. 생리 첫 날부터 생리통이 극심했다. 자궁이 말하는 기분이다.

 

자궁은 끊임없이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 자궁이 작동하고 있는 여성이라면 생리라는 것을 시작한다. 자궁 안에 피를 모아 점막을 형성하고 수정란이 착상하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점막은 떨어져 나와 생리를 하게 된다. 이 과정이 단순히 임신으로 귀결되어야만 하는 과정이며 임신이라는 목표 획득을 일생동안 단 한 번도 이루지 못한다면 자궁이 제대로 된 본래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 것이라 할 수 있나?

 

그렇다면 평생 동안 난소에서 나오는 난자는 몇 개일까? 그 난자 하나하나가 다 정자와 만나서 결합을 할 수는 없다. 그럼 그렇게 결합 못하는 난자를 머라 해야 할까.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죽은 것이라 해야 하나. 여성들에게 가슴이 있다. 출산을 하고 나서도 모유를 주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가슴이 필요가 없나. 제 역할을 못하는 것인가. 난자도 가슴(유방)도 자궁도 그저 있는 것이 아닐까. (결합하여 이루어 질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은 상태가 정상이 아닐까)  

 

자궁에 관해서 인터넷에서 검색을 해보았다. 이런 저런 글들을 보다가 발견한 내용은 자궁이나 유방을 적출한 여성들이 허전함(공허함, 상실감)을 느낀다는 것이었다. 이건 또 먼가.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아이를 낳지 않을 거라는 여성의 이야기를 들은 어떤 사람(남성)이 "그럼 자궁을 아예 들어내 버리지 머하러 가지고 있나? 생리 안해도 되고  얼마나 편해." 그리고 실제로 임신 계획이 전혀 없으니 생리도 너무 귀찮은 일이라 하며 자궁을 적출해 버리고 싶다는 여성들의 이야기.

 

하지만 자궁적출을 선뜻 하지도 못하고 할 필요도 없는 이유는 자궁은 단순히 피를 고이게 했다가 빠져나가게 하고 아이가 10달 동안 머무르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궁은 여성의 정체성 그 자체라는 생각이 든다. 사회가 여성의 정체성을 자궁 안으로만 가두어 두니 불임여성이나 자궁을 적출해낸 여성 또 완경에 이르게 되는 여성들이 느끼는 심각한 상실감(소외감)은 더 극심하고 그 외의 여성들도 자신의 여성 정체성을 자궁에서 찾고 있는 것이 아닐까.

 

자궁이 아이를 그 안에 품고 있을 수 있는 시간은 10달. 세 명의 아이를 낳을 경우 30달. 여섯 명의 아이를 낳을 경우 60달. 여성의 인생 60년이라면 720달 중에 60달 1/12. 자궁이 아이의 집의 역할. 사람들이 말하는 궁극적 자궁의 역할을 성취하고 있는 시간은 여성의 인생의 시간에 태어난 죽을 때까지 자궁의 시간의 일부분일 뿐이다.

 

배란이 일어나고 자궁에서 수정란을 맞을 준비를 갖추는 몸(많은 여성들이 가지고 있는 생물학적 구조는)은 임신이 가능하고 임신을 할 수도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지 임신을 해야만 한다고 누가 강요할 수 있을까.

 

지금도 내 몸에서 자궁이 피를 내보내고 있다. 벽이 허물어지고 나면 또 벽을 조금씩 조금씩 쌓아간다. 어쪄면 그게 그저 자궁의 일일지도 모른다. 수정란이 착상해 10달 동안 머무르는 기간이 자궁으로서는 특이하고 생소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일상적인 그 활동이 없다면 사람들이 성취하고 싶어 열망난 그 일(임신)이 일어날 수가 없다. 그런데 어찌 이리도 무심하게 경시할 수가 있나. 그저 역할을 다하고 이는 이를 어찌 이리도 몰라 볼 수가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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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02 05:05 2007/05/02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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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69Hz  2007/05/06 10: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정말 잘 읽었습니다~^^
    피자매연대에 이글을 퍼가도 괜찮을까요?'ㅡ')//
    '달리'(달거리의 준말^^ 피자매연대 소식지랍니다.) 3호에 월경권에 대해서 글을 쓰려고 해서요~.
    피자매에서도 이 글을 같이 읽고 공유하면 어떨까 생각이 들어서요^^
  2. 녀름  2007/05/06 16: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네. 퍼가셔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