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납덩어리 빛깔의 안도

어제, 일요일 FTA 반대 집회에 참가했다.

세종로 왕복 8차선? 10차선? 하여간 너른 길을 경찰과 대치한 채 점거하고 연설을 듣고 구호를 외쳤다.

지난번 집회때 기자들 때린 것 때문에 한방 먹은 경찰은 이날 무대응으로 일관했고,  덕분에 집회대오는 세종로를 점거했고, 광화문 사거리의 모든  방향은 닭장차로 막혀 교통이 전면 통제되었다.

집회 막바지, 종로 경찰서장은 손수 해산 명령을 하는 수고를 해줬고, 무대차에서는 중간쯤 연설을 했구나 하고 생각하는 순간 '인사드리겠습니다~'라며 인사를 하는 연사의 연설을 포함한 여러 연설들이 계속되고, 시커먼 전의경들 및 지휘관들은 칙-칙- 거리는 무전기에 귀를 기울이며 거기서 나오는 명령에 응할 준비태세를 하고 있었다. 나는 몇몇 친구들과 경찰과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서 있었다.

내가 여기서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은 집회 막바지의 몇십분간의 나의 심리에 관해서이다.

7~8분 간격으로 종로경찰서장의 1차 해산명령 2차 해산명령(센스쟁이 종로경찰서장은 두번째 해산명령을 하면서 '마지막 해산명령'이라며 한번을 꿀떡 챙겨 잡쉈다) 3차 해산명령, 4차 해산명령이 시꺼럽게 귀를 성가시게 했다. 같은 시간 연설은 계속되고 있었다. 또 같은 시간 나의 마음속에는,

"빨리 집회를 마쳐서 충돌 없이 끝났으면 좋겠다. 경찰이 방패 날리며 침탈 안했으면 좋겠는데...해산 명령도 벌써 네차례나 했는데, 저 놈들이 계속 말만 하지는 않을텐데..." VS  "도로를 계속 점거하고 있어야 저 놈들이 더 답답할텐데..그래야 FTA에 반대하는 힘을 놈들에게 보여줄 수 있을 텐데.. 그리고, 저  경찰의 폭력성이 드러날텐데.."

곧이어 집회 사회자가 승리를 다짐하며 집회를 마칠 것을 선언했고, 칙-칙- 거리고 있는 무전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나는 안도했다. 경찰들도 피곤한 일과를 마치고 복귀해서 쉰다는 생각 때문인지 웃음이 번졌다.

나는 함께 참여한 친구들과 근처 식당에 가서 저녁을 먹고 담배를 피며 농담을 하고 웃다가 집에 왔다. 그날, 다행이 집회에서 폭력은 없었고 평화로왔으며, 경찰도 웃었고, 나도 안도했다. 하지만, 나의 그 안도의 빛깔은 내 안의 두려움을 한번 더 확인시킨 회색의 무거운 납덩어리의 빛깔이었다.

일요일 서울 도심의 교통이 몇시간 정체되었고, FTA협상은 지금까지처럼 계속 진행될 것이다.
이렇게 안도의 순간들을 보내며, 우리의 회색빛 미래의 색깔을 바꿀 수 있을까?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