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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보기와 세상 살기 - D- WAR

심형래 아저씨의 영화 D-War가 '드디어' 한국에서 개봉했다.
 
심형래, 사실 나는 그를 아주 가까이서 본 적이 있다. 1984년의 일이었다. 나는 개봉동성당의 꼬마복사였다. 어쩌다가 중고등부 미사에 복사를 서게 됐는데 그 미사에 심형래 아저씨가 나왔다. 아마 영구시리즈가 나오기 전이었을 것이다. (확실치 않다)
신부님께서는 심형래 아저씨가 고려대학교를 졸업하셨고 훌륭한 연예인으로, 종교인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소개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모든 복사들이 그렇듯, 나는 신부님 옆에 꼭 붙어 서서 코 앞에 있는 심형래 아저씨를 - 꽤 못생긴 얼굴을 - 바라보았었다. 나는 그때 분명 그를 동경하고 좋아했었다. 코미디언으로서 말이다.
 
세월이 23년이 흘렀다. 사실 그 중간에 '용가리'라는 영화로 '신 지식인 1호'라는 공익광고로 그의 얼굴을 심심치않게 보았으니 인터넷 상에 화려하게 다시 나타난 그의 모습이 썩 낯설거나, 놀랍거나 하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심형래라는 이름을 제목으로 달고 끊임 없이 흘러 나오는 영화 '디 워'에 대한, 토씨만 다른 복사-재복사 기사들에 대해서는 꽤나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좀 이상했다. '보도자료'라는 것의 속성과 일부 기자들의 기사작성 행태 - 한 네티즌은 이를 두고 '기사는 발가락으로 십 분 만에 조낸 쓰는 거다'라고 말했다. - 에 대해 알고 있으면서도 동일한 내용을 담고 있는 기사들이 복사, 재복사 되어 무한정 배포, 재배포 되는 모습을 보며 혹시 내가 알던 훌륭한 연예인이자 종교인인 심형래 아저씨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던 것이다. 
 
그러다 영화를 보았다.
 
아, 이것은! 1984년도에 만난 심형래가 아닌가 하는 느낌이었다. 번쩍! 정수리에 우레를 얻어 맞고는 과거로 회귀한 듯한 느낌이었다. 정말 친숙했다. 나의 성장과 함께 회를 거듭해 온,  맞춤법이 틀린 영화 - 우뢰매('우레매'가 맞다)의 장면들이 2007년의 '디 워'에서 되풀이 되는 것이 아닌가. 
브라퀴 대장이 칼을 들고 한 번 베면 100미터 앞에 있는 사람들이 쾅 하고 다 터져 죽는다든지, 이쪽에서 포를 쾅 쏘면 저쪽에 있는 사람들이 '아으!'하며  날아간다든지 (전설의 고향 스턴트- 배운 사람들은 이를 '특촬물 촬영'이라고 하던데, 특촬물이 뭘 줄인 말인지 잘 모르겠다.) 하는 모습들 말이다.
 
게다가 '대한민국의 자랑'이라는 CG는 실사와 계속 어긋나서 도대체가 이야기에 집중을 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물론 뒷배경이 실사가 아니라 CG로 만들었을 경우 (용과 이무기의 결투) 같은 것은 매우 자연스러웠다. 박수 쳐 줄만 했다. 하지만 이건 컴퓨터 게임이 아니라 영화 아닌가, 영화. 
 
내내 지적되었던 스토리라인은 그야말로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개연성을 완전히 상실한 이야기는 내내 물음표를 끌고다니다가 영화가 끝날 때까지 마침표를 찍지 못했다. 혹시 감독은 '선한 이무기가 이겼으니 됐다.'고 생각하는 걸까. 이거야 말로 우레매의 전형적인 엔딩이 아닌가. 권선징악.
 
영화를 보고 나오며 나는 사실 뿌듯했다. 내 좋은 친구, 동료들에게 일인당 약 7000원씩의 피같은 돈을 절약하게 해 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심야 할인을 받은 영화비 5000원으로 내 말에 동조할 20여명(아닐 지도 모르지만)의 사람들의 돈 14만원을 절약하게 해 줄 수 있다니! 나는 정말 몸바쳐 친구들에게 좋은 일을 한 셈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다음 날 출근을 해서 사람들에게 영화평을 들려주자, 그이들은 반신반의 하거나 발끈 하는 것이었다. 그들이 그토록 반발했던 이유는 전날 저녁에 본 영화평들과 관객들의 반응을 실은 기사들 때문이었다.
 
나는 집으로 돌아와 인터넷을 검색해 보았다. '관객들은 따뜻했다.' 혹은 '관객들 기립박수' 따위의 제목이 포털에 도배돼 있었다. 역시 나는 영화를 보기 전의 궁금증과 의아함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어째 이건 좀 이상하지 않은가. 어째서 이 수준의 영화에 사람들이 기립박수를 친 단 말인가.
 
얼마 전 퀴어 영화로 독립영화감독상을 받은 이송희일 감독은 이에 대해  "이 영화가 참 거시기하다는 평론의 글마다 주렁주렁 매달려 악다구니를 쓰는 애국애족의 벌거숭이 꼬마들을 지켜보는 건 정말 한 여름의 공포다” 라고 말했다. 나는 이 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이 나라 사람들은 참 많은 것들을 민족주의 혹은 국가주의와 연결시켜 반응한다. 영화도 우리나라 영화, 축구도 우리나라 축구, 옷도 컴퓨터도 메이드인 코리아라는 자랑스러운 마음 말이다. 그리고는, 그 포장지에 스스로를 현혹시켜 속아넘어간다.
 
심감독의 노림수 (혹은 배급, 홍보회사의 노림수)가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결국 대중은 무지하며, 선동에 의해 여론을 만들고 그 집단적인 여론은 개인의 판단을 마비시킬 수 있다는 생각이 있었던 게 아닐까. 그리하여 자신의 영화에 아리랑을 넣고 추접스럽게도 '나 영화 만드는 데 조낸 힘들었어.'라는 문구를 써 넣은 후에 사람들에게 영화와 관련 없는 감상을 강요했던 게 아닐까. (우리 모두 아는 얘기 아닌가. 이 세상의 모든 창작자들은 고통을 통해, 도전을 통해 창작하고 그 결과물로 평가 받는다. 하지만 대부분의 정직한 창작자들은 자신 몫의 고통을 관객에게 떠넘기지 않는다. 심지어 고등학교 연극반 아이들도 연극을 마치고 무대에 서서 '우린 조낸 힘들었어요.'라고 말하지 않는다. 박수 받았으면 고마워하고 야유를 받으면 마음 아파하며 입술을 깨물 뿐이다.) 어쩌면 사람들이 보고 싶었던 건 영화 '디 워'가 아니라 스크린이 암전 될 때마다, 애국애족하고 국가와 민족을 사랑하는 자랑스러운 대한국인 심형래 (혹은 자기 자신)가 아니었을까.
 
이런 식의 사회현상이 나는 씁쓸하다. 붉은 옷을 입고 시청에 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사회, 대형 서점에서 일주일 만 자신이 출판한 책을 사재기 하면 반년 동안 베스트 셀러로 자리매김 하는 사회, 영 거시기한 영화 한 편을 만들어 놓고 애국애족, 민족, 국가, 아아 대한민국으로 읍소하고 여론 몰이를 하면, '어 그래 너 힘들었다. 아이고 300억이나 쓴 우리나라 영화로구나, 이 영화에 대해 토를 다는 놈 모두 죽어라.' 소리지르는, 우리 천박한 사회, 넥타이 맨 맨발의 세상을 보는 것이 아프다.  
 
나는 묻고 싶다. 디 워가 좀 망하면 어떤가. '고통 속에서' 창작되는 수많은 영화들이 완성도 되지 못하고 퍼져버리는 게 충무로의 현실, 아니 전 세계 영화판의 현실이다.  심감독에게 열정이 남아 있다면 소설도 좀 읽으시고, 카메라 앵글도 좀 더 공부하시고, 영구아트무비의 CG만으로 불가능한 부분은 다른 도움도 좀 받으면서 다시 찍으면 될 일이다.
 
마치 디 워가 망하면 우리나라의 영화판이 다 망해버리는 것처럼 쓰는 거짓말 기사들(삼성전자 반도체공장에 전기가 나가서 500억의 손실이 날테고 장기화 되면 몇 조원의 손실이 생길거라는 J일보의 1면 헤드라인(그래서 어쩌라고?!) - 삼성이 망하면 나라가 망한다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한 거짓말들- 과 너무나 판박이인) 이 '메이드인 코리아' 액정 화면에서 번쩍거리며 내 눈을 찌른다.
 
참, 오줌 마려운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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