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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방과 쪽방을 연결시켜주는 다리, 쪽방신문

 

쪽방과 쪽방을 연결시켜주는 다리, 쪽방신문
 
  모든 것이 비싼 이 도시에서 적은 돈으로 살아 갈 수 있는 집이 여기였기에 쪽방촌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많았던 짐들도 정리하고 가지고 있던 물건들도 정리해야 이 작은 방에 제 몸 하나를 누일 수 있는 자리라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많은 짐들은 가지고 들어올 수 없는 방이지만 많은 사연들을 가지고 다들 이 자그만 쪽방으로 들어옵니다. 쉬웠던 삶은 하나도 없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역시 여기 쪽방촌에서도 삶은 쉽지 않지만 다들 살아가고 있습니다. 
 
쪽방 촌(村)
  작은 방, 그 옆에 또 하나의 작은 방, 이 작은 방들이 하나하나 모여 쪽방촌이 만들어 집니다. 쪽방들이 만들어 내는 ‘촌(村)’, 이것이 쪽방촌입니다. 촌은 도시와 떨어져 사는 ‘시골’이나 여러 집들이 모여 사는 ‘마을’을 의미합니다. 서울이라는 거대하고 화려한 도시의 한가운데 있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낡고 허럼 해 보이는  이곳. 쪽방촌은 시골 같고 마을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웃집 소소한 얘기, 작은 다툼까지도 너무나 시시콜콜하게 아는 시골처럼 너무나 가까이에 서로의 방을 맞대고 있어 어떤 때는 불편하기도 하지만 서로의 기침소리까지, 푸념소리까지 느낄 수 있는 곳이 쪽방촌입니다. 또한 마을처럼 동네어귀에는 어르신들이 앉아 담소를 나누며 김치 한 조각까지 나눠 먹을 수 있는 ‘정(情)’도 이 안에 있습니다. 시골이 도시가 되면서 온갖 개발로 고층빌딩에 묻혀 버리고 잊혀진 것들이 오히려 도심 한가운데 여기 쪽방촌에는 아직 살아있다는 생각이듭니다.    
 
쪽방 촌(寸)이 되었으면
  쪽방에 문을 잠그고 누워 버리면 고립되고 혼자인 나를 느낍니다. 하지만 방문 하나만 열면 다시 사람들의 거리가 되고 나의 이웃과 만나게 됩니다. 집을 나서기위한 좁은 길목에서, 세수를 하거나 쌀을 씻기 위해 들어선 공동세면장에서, 급한 맘에 간 공동화장실 앞에서, 우리는 이웃을 만나고 비슷한 처지를 공감하며 서로서로 친해져 갑니다. 이렇게 쪽방 하나 하나가 서로 서로 이웃이 되고 친해져 ‘삼촌’, ‘이모’라고 부르듯이 쪽방촌 사람들이 친족간의 거리를 나타내는 ‘촌(寸)’, 즉 ‘쪽방촌(寸)’이라고 부르는 관계가 되었으면 합니다.  
 
쪽방과 쪽방을 연결시켜주는 다리
  이렇게 쪽방 이웃들 간의 훈훈한 관계들을 만들고 도시 한가운데 족방촌에서 시골마을에서 느낄 수 있는 따뜻한 정을 만들어 나가기위한 고민들의 시작이 바로 ‘쪽방 신문’입니다. 쪽방 주민들이 살아가는 이야기, 필요한 다양한 정보와 고민들을 하나 하나 나누고 쪽방과 쪽방을 연결시켜주는 다리. 쪽방주민들이 자신의 이야기로 직접 만드는 신문. 이것이 쪽방신문입니다.    
쪽방과 쪽방을 연결시켜주는 다리, 쪽방신문
 
 
  모든 것이 비싼 이 도시에서 적은 돈으로 살아 갈 수 있는 집이 여기였기에 쪽방촌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많았던 짐들도 정리하고 가지고 있던 물건들도 정리해야 이 작은 방에 제 몸 하나를 누일 수 있는 자리라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많은 짐들은 가지고 들어올 수 없는 방이지만 많은 사연들을 가지고 다들 이 자그만 쪽방으로 들어옵니다. 쉬웠던 삶은 하나도 없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역시 여기 쪽방촌에서도 삶은 쉽지 않지만 다들 살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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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방 촌(村)
  작은 방, 그 옆에 또 하나의 작은 방, 이 작은 방들이 하나하나 모여 쪽방촌이 만들어 집니다. 쪽방들이 만들어 내는 ‘촌(村)’, 이것이 쪽방촌입니다. 촌은 도시와 떨어져 사는 ‘시골’이나 여러 집들이 모여 사는 ‘마을’을 의미합니다. 서울이라는 거대하고 화려한 도시의 한가운데 있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낡고 허럼 해 보이는  이곳. 쪽방촌은 시골 같고 마을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웃집 소소한 얘기, 작은 다툼까지도 너무나 시시콜콜하게 아는 시골처럼 너무나 가까이에 서로의 방을 맞대고 있어 어떤 때는 불편하기도 하지만 서로의 기침소리까지, 푸념소리까지 느낄 수 있는 곳이 쪽방촌입니다. 또한 마을처럼 동네어귀에는 어르신들이 앉아 담소를 나누며 김치 한 조각까지 나눠 먹을 수 있는 ‘정(情)’도 이 안에 있습니다. 시골이 도시가 되면서 온갖 개발로 고층빌딩에 묻혀 버리고 잊혀진 것들이 오히려 도심 한가운데 여기 쪽방촌에는 아직 살아있다는 생각이듭니다.    
 
쪽방 촌(寸)이 되었으면
  쪽방에 문을 잠그고 누워 버리면 고립되고 혼자인 나를 느낍니다. 하지만 방문 하나만 열면 다시 사람들의 거리가 되고 나의 이웃과 만나게 됩니다. 집을 나서기위한 좁은 길목에서, 세수를 하거나 쌀을 씻기 위해 들어선 공동세면장에서, 급한 맘에 간 공동화장실 앞에서, 우리는 이웃을 만나고 비슷한 처지를 공감하며 서로서로 친해져 갑니다. 이렇게 쪽방 하나 하나가 서로 서로 이웃이 되고 친해져 ‘삼촌’, ‘이모’라고 부르듯이 쪽방촌 사람들이 친족간의 거리를 나타내는 ‘촌(寸)’, 즉 ‘쪽방촌(寸)’이라고 부르는 관계가 되었으면 합니다.  
 
쪽방과 쪽방을 연결시켜주는 다리
  이렇게 쪽방 이웃들 간의 훈훈한 관계들을 만들고 도시 한가운데 족방촌에서 시골마을에서 느낄 수 있는 따뜻한 정을 만들어 나가기위한 고민들의 시작이 바로 ‘쪽방 신문’입니다. 쪽방 주민들이 살아가는 이야기, 필요한 다양한 정보와 고민들을 하나 하나 나누고 쪽방과 쪽방을 연결시켜주는 다리. 쪽방주민들이 자신의 이야기로 직접 만드는 신문. 이것이 쪽방신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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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전유죄’들의 연대

‘무전유죄’들의 연대

- 차별에 맞선 반빈곤 운동을 위한 조건 -

 

 

장난삼아 노숙인을 폭행하여 살해하다!

 

최근 노숙인 한명이 살해당한 사건이 보도되었다. 4월 초, 19살, 17살의 대학생, 고등학생 두 명이 지하철에서 돈을 구걸하던 정신지체 장애가 있는 한 노숙인의 돈을 빼앗고, 지하철 역 근처 인근야산에 끌고가 폭행해 숨지게 하였다. 이 노숙인은 갈비뼈 6개가 부러지고 온몸에 맞은 흔적이 남은 채로 숨져 있었는데, 피의자인 학생들은 스트레스를 풀기위해 장난삼아 폭행을 하여 숨지게 되었다고 진술하였다. "맨 처음에 장난으로 시작했다가 돌아보니까 돌이킬 수 없게 됐습니다." 너무나 황당하고 분노가 치밀었다. 죽음까지 이르게 한 이들의 폭행 동기는 장난 이였고,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였고 냄새가 났기 때문 이였다. 어떻게 이런 사건이 일어날 수 있을까?

 

IMF외환위기로, 원치 않은 가난으로, 사업이 망하거나 실직 당하거나 다양한 이유로 집이 아닌 거리로 나와 잠을 청할 수 밖에 없는 이들을 우리는 ‘노숙인’이라고 부른다. 노숙인이 된다는 것은 폭력과 인권침해에 노출되어 있는 거리에 몸을 누여야 하는 것이며 사람들의 불편한 시선들이 자신에게 향하고 있는 것을 구지 외면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매년 노숙인이 사회적 차별이나 질병 등으로 인해 거리에서 죽어가는 이들의 수만 해도 400명이다.

사회는 한 개인이 노숙까지 이르기 전에 복지나 경제적 지원을 통해 개인이 빈곤과 싸우는 것을 도와야 했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복지라는 것은 죽지 않을 정도의 매우 최소한의 지원으로 빈곤에서 벗어나기에는 턱없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빈곤층 인구에 비해 복지수혜자체도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이 속에서 개인은 빈곤에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하며 홀로 빈곤과 싸워가며 계속적인 좌절을 겪게되고 끝내 노숙의 상황에서 느끼는 절망감은 매우 크다.

 

빈곤은 사람들을 경제적으로만 곤란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회로부터 빈곤층을 고립, 배제 시킨다. 일단 빈곤의 상황에 놓이게 되면 주변의 시선도 곱지 않다. 그리고 노숙 생활까지 이르게 되면 경찰관들과 같은 국가공무원들 마저도 예비범죄자 혹은 더럽고 게으른 이들로 낙인이 찍혀 버리고 실제로 노숙인들의 인권침해도 공무원들에 의해 행해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결국 노숙인의 어이없는 죽음은 노숙인을 비-인간, 비-시민, 그리고 유령으로 여기고 있는 이 사회의 차별적 시선에게 혐의를 두지 않을 수 없다.

 



 

가난하지만 가난하다 말할 수 없다?

 

철거민이 이사하면 이사한 지역에 다시 개발이 들어와 다시 철거민으로 되는 사례를 자주 볼 수 있다. 그리고 노점상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평생을 노점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지만, 많은 노점상들이 평생을 노점상으로 남는 것이 비일비재하다. 이런 사례에서도 보여 주듯, 빈곤은 빈곤을 다시 재생산하고, 한번 빈곤 해 지면 빈곤에서 벗어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이 같은 빈곤의 강한 고리를 끊는 것, 한 개인이 빈곤을 극복하기위해서는 전체 사회의 적극적이고 끈질긴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더욱 들게 된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자신이 빈곤하든 그렇지 않든지 이 빈곤에 대해 완전히 사회적 책임을 무시하진 않겠지만 자신의 탓으로 돌리거나 자신의 노력여부의 문제로 돌리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다 보니 빈곤으로 인해 사회적 차별을 받거나 이 가난을 벗어 날수 없는 현실에 절망하며 자연스럽게 ‘가난이 죄다!’라는 말이 나오게 된다.

우리 사회는 IMF외환위기를 겪으며 빈곤을 사회구조적 문제로 돌리기도 하지만 여전히 빈곤의 원인을 개인에게서 찾고, 빈곤의 극복 또한 개인의 몫으로 돌리고 있어 빈곤하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부끄러운 일로 여전히 여겨지고 있다. 급기야 우리 사회는 빈곤을 한 개인의 게으름의 문제로 여기거나 빈곤한 이들에게 ‘도덕적 해이’라는 표현 까지 쓰기에 이르렀다.

 

가난한 사람들을 지칭하여 ‘빈민’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시민사회운동에서도 가난한 사람들이 자신의 권리를 내세울 때 자신을 '빈민'이라는 이름으로 정체성을 부여하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 몇 년 ‘빈민’운동으로 지칭되는 노점상, 노숙인, 철거민 단체의 당사자들과 만나서 얘기하다보면, ‘빈민’이라는 말에 많은 거부감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된다. 자신은 빈민이 아니라고 직접적으로 이야기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오히려 ‘서민’이라는 말로 혹은 ‘자신은 빈곤하지만 조금만 이 사회가 도와주면 빈곤에서 극복이 가능한 사람’, ‘사회적으로 정당한 요구를 하는 억울한 사람’ 등으로 지칭되기를 원 하는 이들도 있었다. 이들에게 ‘빈민’이라는 말이 사회적 낙인처럼 여겨졌던 것이다.

우리사회에서 빈곤은 부끄러운 것으로 되어있다. 내가 빈곤하다는 것을 입 밖에 내는 순간 현재 자신의 겪는 경제적 어려움 이상으로 사회적인 차별에 부딪칠 수 있다. 공적인 부분에서도 빈곤하다는 이유로 예비범죄자 취급하거나 제도적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재개발에 있어서 제도적으로 가옥주, 토지주의 소유권이 우선되다 보니 세입자들의 주거권은 철저히 무시되어 세입자들은 이사를 가거나 철거민이 되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빈곤, 저학력, 기술 없음, 실직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생존을 위해 노점을 선택하지만 지자체는 노점을 단지 불법으로만 여기고 단속, 척결의 대상으로 여긴다. 공적 부분에서의 차별 뿐 만 아니라 개인적인 인권침해와 폭력상황에의 노출, 차별대우, 노동시장 진입의 불이익 등 사회전반적인 측면에서 빈곤하다는 이유만으로 차별을 당하기 일쑤다. 이런 사회적 차별과 맞서기 위한 적극적인 반-빈곤운동들의 연대는 분명 절실하다.

 

 

빈곤이 빈곤을 차별하다?

 

하지만 사회적 차별에 맞선 저항을 위해 반-빈곤 운동에 있어 고려해야 할 매우 조심스런 얘기를 하나 더하고자 한다. 빈곤으로 인한 사회적 차별은 빈곤한 이들 서로 간에 갈등을 일으키고 서로를 차별하게 만들기도 한다는 것이다. 빈곤한 이들의 갈등은 한마디로 ‘누가 덜 빈곤 하느냐’는 것이다. 빈곤이라는 것이 사회적 차별로 이어지고 이에 대해 몸으로 체득한 개인들은 자신의 빈곤을 거부할 뿐만 아니라 자신보다 경제적으로 더 낮은 소득 이라고 여겨지는 이들과 자신을 분리시키고 이들보다 자신이 덜 빈곤하다는 것에 안도한다.

 

최근에 있었던 일이다. 과거 노숙경험이 있었지만 현재는 쪽방에 거주하고 계신 분이 자신과 노숙인을 철저히 분리시키며 노숙인들에 대해 불쾌 해 하거나 자신은 노숙인과 다르다는 것을 강조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쪽방은 대게 최후의 주거지로 불리는데 노숙의 전단계, 혹은 탈노숙을 위한 첫단계로서 역할을 하고 있으며 쪽방주민들은 노숙경험들을 가진 경우가 많다. 또한 철거민이 ‘우리는 집이 없는 노숙인들이 아니며 정당한 주거권욜 요구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자신의 정당성을 위해 더 경제적으로 열악한 이들을 비난하는 말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빈곤층이 다른 빈곤층과 자신을 분리시키고 차별하는 모습은 매우 당혹스러운 일이다.

더불어 빈곤층 내에 여성이나 장애인에 대한 차별을 접할 때 도 마찬가지로 당혹스럽다. 또한 이 사회는 차별받는 이들 간의 갈등을 더욱 부추긴다. 재개발 현장이나 노점상 단속 현장에서는 일자리 창출이나 철거민들이 노숙인, 장애인 등이 용역으로 고용되기도 한다. 이로 인해 노섬장과 철거민들은 더욱 빈곤에 놓인 노숙인, 장애인들과 생존권/주거권을 지키기 위해 싸워야 하는 형편에 놓이게 된다. 이처럼 빈곤계층이 자신을 다른 빈곤계층과 분리하고, 빈곤으로 인한 차별의 피해자가 다른 차별의 피해자에게 가해자 위치에 놓일 수 있다. 이런 차별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반빈곤 운동의 연대는 형식적인 사업결합에 그칠 위험이 있다.

 

 

 

 

 

빈곤, 다르지만 같은 빈곤을 만나다!

 

이 사회는 빈곤계층들에게 경제적 차별 뿐 만 아니라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차별 등을 행함으로 빈곤을 개인의 잘못, 개인의 부끄러운 문제로 만들고 있으며, 이런 차별의 메카니즘은 빈곤한 개인들 사이에서도 동일하게 작용하여 자신보다 빈곤하다고 여기는 이들을 차별하는 메카니즘으로 작동하고 있다.

이에 반-빈곤운동은 빈곤한 이들에 대한 억압하고 차별하는 사회적 요인들에 맞서야 할 뿐만 아니라, 사회적 차별을 그대로 답습하는 빈곤한 이들 간의 차별과도 맞서야 할 것이다. 반빈곤 운동은 빈곤계층의 절대빈곤의 문제, 생존의 문제가 시급하다보니 경제적 차별의 문제, 사회복지의 확충에 초점을 두고 대응해온 경향이 있다. 이는 현실적 필요에 의한 적절한 대응이었다고 보여 진다. 즉 빈곤층이 겪고 있는 다양한 사회적 차별의 문제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대응해오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빈곤운동의 진전을 위해서는 무수한 과제들이 산적하게 남아있다. 여전히 절대빈곤조차 해결 못하는 정부, 시혜적 관점에 그치고 있는 복지정책, 빈곤당사자들의 목소리의 미약함 등. 그래서 한국사회에서 빈곤은 여전히 차별의 이유가 되고 있어 이에 대한 저항들, 가난한 이들의 연대는 더욱 절실하다. 하지만 가난한 이들의 연대는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들의 연대를 모색하기 위해서는 빈곤의제와 다른 의제간의 만남과 충돌, 반빈곤운동 단위들 간의 소통 그리고 운동의 진전을 위한 갈등들이 더욱 필요할 것이다. 이런 연대 속에서 반빈곤 운동에서 아직 회자된 적조차 없는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여성노숙인의 문제라든지, 노점상들 중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여성, 장애인 노점상들의 문제라든지, 빈곤층 내에 성소수자 문제, 빈곤으로 인한 차별에 대한 개선 등의 문제 등을 접근할 수 있는 고리들을 마련 해 줄 것이다.

경제위기 상황 속에 빈곤의 심화는 이미 예고된 듯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빈곤하다는 이유로 우리를 차별하는 것과의 싸움을 준비해야 할 것 이다. 그리고 우리 내부에 있는 차별의 문제와도 더욱 강항 소통과 갈등으로 차별과 맞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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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0

 

장애인 차별철폐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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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e space

 

이 선을 넘지 마세요! 그곳은 차가운 공간

활활 타오르던 불길도 순식간에 식어버릴 뿐아니라

사람의 따스한 심장마저 얼어버리게 만드는 곳

 

ICE LINE

이 선을 넘지마세요

 

하지만 이 선 너머에 있는 그 차가운 공간을 다시

따뜻한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나는 이선을 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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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살 집도, 살만한 집도 없다!

서울. 살 집도, 살만한 집도 없다!

- 주거 빈곤의 현실과 과제 -

 

집 없는 서러움

집이 없다는 것은 단지 집이 없어서 생기는 불편함 뿐 만 아니라 개인의 삶 전체를 위기의상황, 빈곤으로 몰아가게 만든다. 역으로 빈곤의 상황은 집이 없음으로 여실하게 나타나기도 한다. 한국은 주택보급률이 100%가 넘어섰지만 자기 집으로 가진 사람은 절반(전체가구의 55.6%/2007년 통계) 밖에 않되 인구의 절반이 셋방살이 하고 있는 실정이다. 더욱이 서울시의 경우에는 자가 점유율이 44.6%로, 10가구 중 6가구는 셋방살이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기 집이 아닌 임대로 살아간다는 것이 가지는 서러움은 서민이면 누구나 겪는 어려움이 일지 모르겠다. 2년 마다 계약이 만료되어 방세를 올려주기를 독촉하는 집주인과 실랑이를 벌려보지 않은 세입자가 어디 있겠는가? 어느 정도 집이 안정되었다 싶으면 또다시 이삿짐을 싸야 하는 경우가 한 두 번이였겠는가? 집 수리 문제로 집주인과 싸워보지 않은 세입자가 어디 있겠는가? 그러다 지역에 개발이라도 된다 싶으면 또다시 싼 집으로 이사가야하는 형편에 놓이기도 한다. 자기 집을 소유하지 못해 가지는 서러움과 스트레스는 한국사회에서 ‘집’이라는 것이 재산권으로서만 인정되어지고 세입자들을 포함한 그 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살만한 집에 살 권리, 주거권으로 보장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주거빈곤이라고 하면 이처럼 주거의 권리가 박탈되어 있는 상황을 의미하며, 주거의 형태, 규모 등 집 외형과 관련된 측면과 더불어 점유의 안정성, 주거를 위해 필요한 기반시설의 미흡, 거주를 위한 필요한 복지에 있어서의 결핍을 의미하는 것이다.



화려한 서울; 서민을 위한 집은 없다.

서울이라고 하면, 높은 빌딩숲, 한강, 한국 최대의 도시, 한국산업 발전의 상징적인 도시 등 많은 화려한 수식들로 표현되어지곤 한다. 서울의 화려함에는 쉴새없이 이루어진 온갖 개발정책들과 그로인해 도시외곽으로 점점 밀려 날 수밖에 없는 그러나 서울을 터전으로 살아 갈 수밖에 없었던 대다수 민중들의 고통들이 숨겨져 있다. ‘서울로, 서울로’라는 구호처럼 사람들이 서울로 밀려들어오는 이유는 어쩌면 좀 더 나은 삶을 위해, 행복을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래서 서울은 더욱 화려해지고 발전했지만, 그 수혜는 대다수 사람에게 돌아가지 않았다. 높은 빌딩, 주상복합아파트들의 숲, 그 화려함의 그늘에 가려진 곳에서는 여전히 민중들의 힘든 삶과 노동이 존재하고 있다. 그 민중들의 삶의 장소들은 옥탑방으로, 지하로, 빌딩 숲 사이 판자촌으로 꼭꼭 숨겨 있기도 하고 역사 한 켠에 졸고 있는 노숙인처럼 아무도 보지 못한 척 억지로 눈을 감고 있는 그곳에서 살아가고 있다. 서울은 한국 근대 산업발전의 상징인양 얘기하지만 그 발전이 얼마나 기형적인가를 보여주는 상징이기도 하다.

희망과 절망이 겹쳐지는 공간_서울역에서

기차를 타고 서울역에 도착하면, 서울의 첫 풍경은 높은 빌딩 뿐 만 아니라 방 한칸 없어 거리에서 몸을 누여야 하는 노숙인들의 모습이다. 패스트푸드점, 고급레스토랑 옆에 누워있는 노숙인의 모습, 이를 무관심하게 지나치는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이 도시의 비정함을 느낄 수 있다. 노숙인들의 대부분 역세권 주변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그 주변으로 인력시장과 무료급식시설 등이 생겨난다. 특히 IMF이후 급증하였는데, 현재 노숙인들의 수는 10만명에 달하며 한해에 400명 가량이 거리에서 목숨을 잃고 있다. 하지만 이들을 위한 복지정책은 사실상의 시혜적이거나 격리적 차원인 경우가 전부이다. 노숙인 사망사건은 빈곤에 기인하는 질병과 사고 등으로 인해서 생기지만 결국은 노숙인에 대한 사회적 차별이 노숙인을 사회적으로 고립시키고 죽음으로까지 몰고가게 한다.

노숙인들은 거리에서, 지하도에서 박스집을 짓고 잠을 자거나 만화방, 찜질방, 노숙인쉼터, 고시원, 쪽방 등을 전전하며 살아가고 있다. 특히 거리 노숙의 경우, 거리의 소음과 먼지 속에서 잠들어야 하며 정신적·육체적 건강에도 매우 치명적이며 인권침해와 폭력에 노출되어있다.

 

하지만 서울시에는 노숙인들을 위한 정책은 전무하다. 서울시의 노숙인에 대한 기본입장은 도시환경미화적 차원이다. 서울시는 노숙인을 혐오대상, 청소대상으로 보고 노숙인 순찰대를 두거나, 노숙금지구역을 지정하고 노숙인 쉼터입소를 종용하고 있다. 서울시는 그들의 빈곤문제를 함께 싸우지는 못할망정 ‘맑고 쾌적한 거리를 만들기’위해 거리노숙인들을 거리에서 조차 쫓아내고 있다.

더욱 빈곤이 심화되고 있는 현실 속에서 안정적 주거 없이 거리에서 몸을 누여야 하는 노숙인들은 더욱 증가 될 수밖에 없다. 비자발적 거리노숙인의 증가라는 것은 정부의 복지에 대한 책임회피이며 정부가 빈곤하다는 이유로 이들을 비시민, 비국민으로 여기는 것이다. 이들에 대한 적절한 주거, 노동, 복지가 전무하다는 것은 결국 한국의 인권이 전무하다는 것과 다름 아니다.

 

서울역 건너편 동자동 쪽방촌을 아십니까?

서울역 길 건너편으로 가보자. 이 곳에는 동자동 쪽방촌이 자리 잡고 있다. 쪽방은 자기몸 하나 누울만한 작은 공간의 방, 공동 화장실과 세면장을 두고 보증금 없이 15-24만원의 월세를 내며 살아가는 무허가 숙박시설이다.

쪽방은 주거빈곤층의 마지막 잠자리로서, 노숙을 방지하는 그물이자 노숙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발판으로 기능하고 있다. 서울에만 4000여개 이상이 있는 것으로 파악되며, 매우 열악한 주거 공간이지만, 전세보증금을 마련 할 수 없는 사람들, 노숙을 경험했거나 빈곤의 벼랑에 내몰린 사람들이 마지막 선택하게 되는 공간이다. 쪽방은 나름의 공동체 문화가 형성되어 있고 대다수 주민들이 기초생활보장제도 수급자인 경우가 많아 한 달에 40여만원으로 모든 의식주를 해결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쪽방은 도심 내 노른자 땅에 위치해 있어 절대 다수가 개발 사업의 압력을 받고 있다. 서울의 경우, 2003년 10월 영등포 1동, 2006년 8월 영등포 2동의 260여 개 쪽방이 도시계획시설 사업으로 철거되었고, 2005년 남대문로5가동의 400개의 쪽방이 도시환경정비사업으로 철거되었다. 지난 해는 동자동 제4구역의 도시환경정비사업이 시행되고 있어 100여 호의 쪽방 및 고시원이 철거되었다. 이 때문에 아직 남아 있는 동자동 쪽방의 방세는 더 올라 갔다. 개발사업으로 인한 쪽방 철거는 서울에 국한되지 않고 전국적으로 일어나고 있으며 열악한 주거지만 이 쪽방마저 잃고 나면 이들은 다시 거리생활을 시작해야 하는 형편에 놓여 있다.

 

용산에서 개발이 되더니 사람이 죽었다.

개발이 사람을 잡았다. 개발이라 하면 너나할 것 없이 돈이 된다고 생각하고 뛰어들었다. 그래서 개발지역이면 언제나 어김없이 생기는 일들이 용산에서도 일어났고 이는 5명의 철거민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1월 20일 새벽, 1600여명의 경찰들이 용산4가에 배치되어 한 건물을 향해 건물사방에서 물대포를 연신 쏘아댔다. 그리고 다수의 경찰특공대를 실은 컨테이너가 건물위로 올려졌다. 대테러 진압작전을 방불케 하는 모습이었다.

그 건물 위에는 다수의 용산4가 철거민들이 세입자들에게 아무런 대책도 없이 진행되는 개발에 항의하며 생존의 권리를 외치고 있었다. 개발하면 많은 이들이 돈 되는 장사라고들 생각하고 있지만, 단지 개발이익은 집/건물주인, 땅주인, 건설업자들에게 해당되는 일일 뿐이다. 개발이 진행되면, 개발지역 원주민들의 다수를 차지하는 세입자들은 그동안 가꾸어 왔던 집, 생계터전, 동네들을 한순간에 잃고 떠나야 하는 신세가 되어 버린다.

이곳 용산도 여느 개발지역과 마찬가지였다. 용산4가 세입자(철거민)들은 개발로 부터 생계터전을 지키기 위해 마지막 선택으로 건물 위에 망루를 쌓아올렸다. 철거민들의 망루는 철거지역에서 철거민들이 용역깡패의 폭력에 최소한의 방어를 위해 건물 위에 쌓은 구조물이다. 한 순간에 개발에 의해 송두리째 뽑힌 자신의 삶을 법으로도 보장받을 수 없기에 이 땅의 세입자가 마지막으로 선택하게 되는 것이 자신을 고립시키고 망루를 쌓는 것 이였다. 망루를 쌓고 단 하루가 지났을 뿐인데, 생존권을 외치는 철거민들을 테러집단인양 건물아래에서는 1600여명의 경찰과 용역들이 물대포를 쏘았으며 경찰특공대에 의해 과잉폭력진압이 진행되었다. 그리고 경찰들의 진압과정에서 망루에 큰불이 났고 그 불로 인해 5명의 철거민과 경찰 1명이 목숨을 잃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다. 그리고 한 달이 훌쩍 지나버린 지금, 용산참사에 대해 정부와 검찰은 경찰에게는 무죄를, 살기위해 올라간 망루위에서 죽어서 내려 올 수 밖에 없었던 철거민들에게는 유죄를 선고하였다. 다수의 용산4가 철거민들은 함께 지내던 이웃이 공권력에 의해 싸늘한 시신이 되어버린 것에 슬픔이 가시지도 않았는데, 그 죽음의 범인을 경찰도, 용역깡패도 아닌 용산4가 주민들 자신에게 돌리고 있는 이 현실에 분노하고 있다.

 

망루에서 목숨을 잃은 철거민 고 이상림씨(72)는 망루가 세워진 건물 뒤쪽에서 결혼한 막내아들 내외와 함께 호프집을 운영하고 있었다. 늙은 두 부부가 그 장소에서 17년 동안 음식점을 하다가 막내아들이 결혼을 한 후, 없는 돈에 내부인테리어까지 새로 하여 호프집을 열었다. 한동안 장사도 잘 되었다고 한다. 지난해 동네에 개발하겠다는 현수막이 붙을 때만해도, 다들 개발이 된다고 하더라도 3-4년 동안은 별 문제 없다 하여, 안심하고 장사를 계속하였다. 하지만 용산은 너무나도 급하게 개발이 진행되었다. 현수막이 동네에 걸린 지 몇 개월 만에 용역들이 동네를 어슬렁거리고, 가게에 들어와 온갖 욕설과 장사자체를 못하게 막는가하면 폭력까지 행사하였다. 도저히 장사는 불가능 했지만 이 가게가 이 가족들의 전부였기에 떠날 수 없었다. 그래서 고 이상림씨와 막내아들은 함께 망루에 올라갔다. 그리고 아버지는 안타까운 주검으로 망루를 내려와야 했고 그 아들은 건물에서 떨어져 부상당했을 뿐 아니라 구속까지 되어있는 실정이다. 이들 유가족들은 분노로 하소연 한다. ‘정부와 경찰은 아무 죄가 없고 철거민 만 잘 못해서 불이 났다고 한다. 그럼 살려고 올라간 철거민들이 철거민을 죽인건가요, 그럼 아들이 아버지를 죽인건가요?’ 아직도 매일 저녁 용산과 청계광장 주변에서는 용산참사를 추모하는 촛불은 꺼지지 않고 있으며 주말마다 많은 사회운동단체들과 시민들은 철거민을 죽음에 이르게 한 공권력과 개발에 항의하는 집회가 연일 진행되고 있다.

 

그리고 뉴타운? 개발에 미친 사람들

최근 몇 년 동안 뉴타운이라는 말만하면 국회의원이 되었고 뉴타운 개발 사업을 서울시장 임기시절 진행하였던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대통령이 되었다. 뉴타운은 새마을운동처럼 낡은 집을 새집으로 바꿔놓았다. 특히 강북의 낙후된 건물들을 다 쓸어내고 ‘강북을 강남처럼’이라는 슬로건처럼 그곳에 고급스러운 주상복합아파트, 고층빌딩의 숲으로 만들고 있다. 현재 진행되는 서울지역의 뉴타운개발사업 만 26곳이다. 그리고 지난해 개발규제 완하로 서울시 개발정책은 더욱 가속화 되고 뉴타운 외에도 온갖 민영개발과 한강르네상스, 경제문화마케팅프로젝트 등 이름만 다를 뿐 조합과 개발시행사측에게 막대한 이득을 챙겨주는 개발이 서울시에서 진행되고 있다. 또한 지난해 이명박 대통령은 직접 15개의 뉴타운 지역을 추가지정 하겠다는 발표를 하였으며 최근 서울시는 뉴타운 개발을 가속화시키기 위해 엄청난 자금을 융자를 기본으로 하는 서울시 조례개정안를 통과시켰다. 말 그대로 서울시는 온톤 공사 중이며 개발에 미친 도시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뉴타운개발지역의 원주민 정착률은 20%도 채 되지 못한다. 즉 개발로 인해 그 지역에서 삶의 터전, 생계터전을 꾸려왔던 사람들이 쫓겨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뉴타운 개발지역의 다수를 차지하는 것은 세입자들이며 세입자-원주민들의 정착률은 아주 미미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전체 뉴타운 지구의 세입자 비율은 72.5%나 달함에도, 전체 건설주택 세대수의 17%만을 임대주택으로 공급되고 있으며 이 또한 임대료, 관리비가 비싸서 엄두를 못 내는 형편이다. 개발이 되고나면 더욱 비싼 집이, 비싼 상가들이 들어서기 때문에 대부분의 세입자들은 좀 더 싼 집, 싼 가게를 찾아 이삿짐을 싸야만 한다. 하지만 갈 곳은 없다. 근 몇 년까지 10만 여 명의 세입자가 뉴타운 개발로 이사를 가야한다. 이는 결국 전세대란을 초래하고 있으며 결국 뉴타운지역의 주변시세도 올라가 세입자들은 더욱 서울 외곽으로 밀려나가고 더욱 열악한 주거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이는 서울시민 물갈이 정책이며 서울을 부자만을 위한 도시로 만들겠다는 정책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강남... 그 그늘아래 숨겨진 비닐하우스촌

그리고 서울에는 부자들을 위한 동네, 강남이 있다. 온 국민이 강남 8학군에서 자녀교육을 시키기를 바라며 돈 점 벌었다 하면 모조리 강남으로 이사가고 싶어들 한다. 강남은 군더더기 없이 쭉 뻗어있는 높은 건물들이 숲을 이루고 수십억원 상당의 아파트들이 즐비해 있어 땅부자, 집부자들이 이웃을 이루고 살아가고 있다. 이명박 정권의 종부세 폐지와 같은 감세정책도 사실상 다수의 집, 건물을 소유한 강남 주민들을 위한 정책이 아닐 수 없다.

이곳 강남에서도 유명한 20억원의 상당의 타워펠리스는 온 국민이 다 아는 이름이다. 부촌의 상징인 이 타워펠리스 옆으로는 양재천이 흐르고 있고 그 그늘진 곳에는 아이러니 하게도 비닐하우스촌 하나가 있다. 이것이 포이동 266번지 비닐하우스 촌이다.

포이동266번지처럼, 최저주거기준에 미달하는 무허가 집단 주거지인 비닐하우스촌은 개발로 밀려난 사람들, 빈곤한 사람들이 빈 땅에 모여 살면서 형성되었다. 서울의 경우, 강남, 서초, 송파를 중심으로 2,30여개의 비닐하우스촌이 있으며 5000여 가구가 지금까지 평균 15년 정도를 매우 열악한 주거환경에서 살아왔다. 비닐하우스촌은 하수, 배수시설이 전무한곳이 많아 악취가 심하고 공동화장실을 사용하며 수도공급 또한 원활하지 못하다. 비닐하우스나 컨테이너, 낡은 슬레이트로 된 구조물에 살다보니 집안은 언제나 습기가 가득하고 공기가 탁하며 잦은 화재 사고가 발생하여 매우 위험한 주거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들에게 정부는 수천만 원에 달하는 토지변상금을 물리고 있어 가난해서 떠날 수 도 없을 뿐 아니라 떠나지도 못하는 형편에 놓여 있다. 비닐하우스촌은 주거개선의 문제가 매우 시급 하지만 이들 주민들에게 가장 큰 문제는 이곳에서 오랫동안 살아 왔지만 주소지로, 주민으로 인정조차 받지 못하는 현실에 있다. 그래서 이곳 주민들은 주소지 인정 소송을 통해 자신들의 권리찾기 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주거빈곤에 맞선 목소리를 모아냅시다

서울만 보더라도 주거 빈곤은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서민에게 집은 단지 잡지 못할 꿈처럼 보여 진다. 더욱이 최근 용산참사는 단지 용산지역 만의 특수한 사건이라기보다는 어느 지역에서나 개발이 진행되면 세입자들이 처할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에 더욱 남의 산 보듯 넘길 수 없다. 하지만 용산참사에 막무가내로 진행된 공권력의 과잉진압처럼 현 정부는 오로지 개발부양정책 만을 고수하고 있으며, 개발이익에 만 눈이 어두워 실질적 개발의 수혜를 입어야 할 원주민, 특히 세입자들이 쫓겨나는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 또한 적절한 주거와 주거조건은 인간다운 삶을 위해 필수적이지만, 정부는 이러한 주거빈곤의 문제를 단순 재개발의 문제로 해결하려 하거나 거주민들을 불법, 예비범죄자로 여기는 것이 현 실정이다.

심각한 주거빈곤의 고리를 끊는 것은 단순한 정책적 개선으로 이루어지기는 이미 불가능한 시점에 온 것 같다. 거대한 건설자본, 국가공권력이 하나 되어 더욱 열악한 주거로 서민들을 내 몰고 있다고 해도 과장되지 않은 시점이다. 주거빈곤의 현실을 극복하는 것은 가난하다는 이유로 열악한 주거환경에 살아가야 하는 쪽방 주민, 비닐하우스촌 주민, 개발에 밀려나는 주거/상가 세입자, 영세가옥주, 거리로 내몰린 사람들을 비롯한 이 땅의 민중들이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외치는 목소리를 외치고 일어서야 만이 가능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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