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쪽지가 전해주는 삶의 이야기들

 


over/1840*1520*120cm/종이,펜

쪽지
나는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다. 너에게도 하고 싶은 말이 많다. 그러나 비밀스런 말들이 많다.
입을 꾹 다물고 아무런 종이에 마구 쓴다. 예쁜 종이에 쓰면 누군가가 읽어 볼 것 같다.
그 어떤 누구라도 허용하고 싶지 않다. 가슴 설레는 사연들을 몰래 몰래 적어 얼른 접어버려야지.

풀어서 읽고 싶은 충동이 생길까? 바쁜 현대인들이 남의 얘기 따위에 관심을 가질까?

쪽지 작업을 하면 깊은 상념에 잠길 때가 많다. 기계를 쓰고 힘을 쓰는 작업이 아니라서 그런지 수 많은 잡념에 빠져들 때가 많다. 노동을 즐기는 ‘나’라고 생각했는데 가벼운 접기 운동에 행복해 하는 나를 발견한다.

언제 어디서든 가능하다. 작업을 하는 중에 예술과 생활의 경계를 생각해본다. 예술을 위한 예술을 하겠노라 다짐했었는데…. 어느새 생활에 베어 드는 작업, 작업에 생활이 묻어난다. (작가 노트)

작가로부터 날아온 수많은 편지들
어느 날 작가로부터 아주 사적이면서도 직설화법으로 가득 찬 편지를 받았다. 그것도 수천 수만 통이 넘는 편지다. 짐작해보건 데 그 편지에는 작가의 일상이 담겨 있음에 틀림없어 보인다. 그 형식도 단문의 쪽지부터 구구절절한 편지까지 다양하다.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고 작품을 바라보면 그림 같기도 하고 시점을 조금씩 달리해 보면 입체적으로 보이는 것이 앗상블라쥬(assemblage,오브제들의 결합)가 떠오른다. 호기심에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마어마한 분량의 편지들로 가득 채워져 있음에 놀라게 된다. 그것도 하나하나씩 아주 정교하고 꼼꼼하게 접어 행여 내용이 세어 나올세라 꽁꽁 묶어놓기까지 했다.

보면 볼수록 호기심이 발동한다. 쪽지들을 하나씩 풀어 그 내용을 몰래 훔쳐보고 싶어진다. 애초에 작가가 의도해 놓은 덫에 걸려들었다는 느낌이 든다. 작가의 모든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정작 그 누구도 쪽지의 내용을 볼 수 없도록 꽁꽁 접어버렸기 때문이다. 자신에 대해 한없이 표현하고 주목 받고 싶지만 한편으로는 나를 숨긴채 타인의 은밀한 일상들을 엿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비꼬는 것은 아닐까?

영혼을 향한 목소리
짐작이 가는가? 미술가로서, 여성, 엄마, 아내로서 작가는 참 할 말이 많았을 것이다. 언어라는 수단을 이용하여 부드러워 보이지만 때론 독설을 퍼부어대기도 하고 때로는 처절하지만 담담하게 끊임없이 삶의 이야기들을 토해냈을 것이다. 세상을 향해 또 자신의 내면을 향해 끊임없이 편지를 쓰고 쪽지를 접는 과정을 거쳐 작가는 자신의 복잡한 영혼의 실타래를 조금씩 풀어나가고 치유되는 과정을 겪었으리라.

그렇게 완성되어 캔버스 위에 집결된 쪽지들은 마침내 더 이상 하나의 개체(쪽지)가 아닌 형태로 자리잡게 된다. 마침내 수많은 메시지들은 사라져 버린다. 하나의 밀도 있는 형태는 더 큰 목소리로 세상을 향해 목소리를 높여나갈 준비를 할 것이다.



over and/2320*880*140cm/비닐,펜



over and over/1840*1520*120cm/광목



쪽지/테라코타



쪽지/석고



작가 장지영



갤러리 정미소

일상적인 기억의 그림자, 온 몸 세포를 자극하는 심장 소리, 타자와의 균열, 자폐 되는 나. 소통의 부재를 감지하며 과민반응 환자처럼 한 보따리 거적이고 접고 또 거적이고 접는다. 살아 움직이며 끊임없는 생채기의 흔적들을 치유하고 위무하면서 정직하게 토해낸다.
나의 소통 게이트를 찾아 치유된 맑은 가슴을 펴고 기지개를 펼 때까지…. 오늘도 꿈을 꾼다. (작가 노트)

* 'over and over-장지영展'은 혜화동 갤러리 정미소에서 9월9일까지 계속됩니다.

[김수진] 컬럼리스트, 예술과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