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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1/08
    제주 이야기1(1)
    단-1-1

제주 이야기1

제주섬에 오려면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다.

용담동에 위치한 제주공항을 통하거나,  건입동에 위치한 제주항여객선터미널을 거쳐야 한다.

아니면 몰래 뗏목타고 밤중에 오던가....

 

그 중 대부분은 짧게는 완도에서 3시간,  길게는 부산에서 12시간 가량 배를 타고 오는 수고로움 덜려고 비행기를 타고 온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제주국제공항 활주로에서 바람을 타고 번지는 섬의 향기와 모습을 처음 접하게 된다.

 

제주국제공항,  과거 정뜨르 비행장이라고 불리었던 이곳은 태평양전쟁 말기에 일본 육군이 '결7호작전'이라는 군사작전으로 제주를 일본본토 사수 최후의 보루로 삼기위해 대대적인 군사기지 건설의 일환으로 만든 비행장이다. 

 

제주섬안에는 제주읍의 정뜨르비행장과 함께 대정읍의 알뜨르비행장, 조천읍의 교래리비행장이 있었는데,  알뜨르비행장의 경우 중일전쟁 당시 세계최초의 도양(바다를 건너)폭격이 이루어진 곳으로 세계의 관심거리가 되었다. 46년 경에는 AP통신이 제주를 동양의 지블로터로 미국전략기지화 할거라는 보도로 국내를 들끓게 한적이 있다.

 

정뜨르비행장은 42년부터 공사가 시작돼 44년에 완공되었는데, 당시 제주섬사람들이 노역에 대대적으로 동원되는 고통을 겪기도 했다.  제주섬에는 관동군 등 일본군 정예병력 6-7만명이 주둔했었는데 만약 45년 8월에 태평양전쟁이 끝나지 않았다면, 제주섬과 섬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오끼나와의 비극... 상상하기도 싫다.

 

일본이 패망하고, 일본군이 떠난 정뜨르비행장은 4.3당시 제주섬사람들의 집단학살터가 된다.

1949년 2차 군법회의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249명과 한국전쟁 발발직후인 1950년 8월 예비검속으로 잡혀온 500여명 등 800여명의 섬사람들이 미군정과 대한민국 군경에 의해 집단 학살돼 매장되었다.

 

무고하게 학살되고 매장된 사실을 알면서도 섬사람들은 반세기동안 침묵을 강요당한채 시신조차 수습할 수 없었고, 수습되지 못한 시신과 영혼들은 활주로 밑에서 하루에도 수십차례식 육중한 동체의 굉음과 진동아래 통한의 세월을 견뎌야 했다.

 

지난해와 올해 남북활주로 보수기간동안 유해 발굴이 허가돼 발굴이 진행되었고, 현재도 시신을 수습중에 있다.  발굴된 시신들은 시차를 둔 학살과정을 통해 겹겹이 쌓인채로 발견되었으나, 대부분이 파편화되고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부분유해로 발굴되었다.

이는 1973년과 82년 활주로 확장공사와 군수비축자재구덩이 축조과정에서 관계당국의 묵인하에 유해가 상당부분 훼손된 것이다.

 

이국적풍경을 제일 먼저 느끼는 제주국제공항... 그 안에 섬사람들의 통한의 역사가 그대로 담겨있다.

그래서 '하와이'가 아니다.

 

'하와이 니가 가라.....' 

 

오늘은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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