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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엘벡, <어느 섬의 가능성> 중에서

바로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그녀는 1년 예정으로, 어쩌면 영원히 미국으로 떠날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새로운 친구들을 사귈 것이고, 물론 새로운 <보이프렌드>도 만날 것이다. 물론 나는 버림을 받을 것이다. 그녀가 지금 함께 수다를 떨고 있는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나라고 해서 특별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내 내부에서 느끼는, 내가 파멸할 때 까지 집요하게 괴롭혀 댈 이 배타적인 애착의 감정은 그녀에겐 전혀 의미가 없었다. 어떠한 정당성도, 어떠한 존재이유도 없었다. 우리의 살은 별개의 것이었고, 우리는 똑같은 고통도, 똑같은 기쁨도 느낄 수 없었다. 우리는 명백히 분리된 존재들이었다. 이자벨은 쾌락을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에스더는 사랑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녀는 사랑에 빠지길 <원치 않았다>. 그녀는 그 배타적이고 의존적인 감정을 거부했다. 나는 선사시대의 괴물처럼 내 낭만적 짓거리, 애착, 속박들을 질질 끌며 그들 사이를 돌아다녔다. 그 세대의 모든 젊은 아가씨들과 마찬가지로 에스더에게 섹스는 특별한 감정적 구속을 내포하지 않는, 오로지 유혹과 에로티시즘만이 문제되는 재미있는 오락거리에 불과했다. 니체에게 동정이 그렇듯, 사랑은 분명 약자들이 강자들에게 죄책감을 심어 주기 위해 지어낸 허구에 지나지 않았다. 여자들은 약했다. 특히 출산할 때는. 그들에겐 살아남기 위해 강력한 남성의 보호가 필요했다. 그래서 그들은 사랑을 지어냈다. 하지만 이제 그들은 강해졌다. 독립적이고 자유로워졌다. 그들은 이제 더는 어떠한 구체적 정당성도 갖지 못하는 그 감정을 불어넣거나 느끼려 들지 않았다. 섹스를 순수한 유흥의 장으로 내몰기 위해 그것에서 모든 감정적 의미를 제거 하는데 있는, 오늘날 포르노 영화에 의해 완벽하게 표현되는 남성의 천년대계가 그 세대에 와서 마침내 완성되었다. 내가 느꼈던 것, 그 젊은이들은  그것을 느낄 수도, 심지어 그것을 이해할 수도 없었다. 그럴 수 있었다면, 우스꽝스럽고 약간은 부끄러운 뭔가를 대하듯, 옛 시대의 상흔을 대하듯 일종의 불편함을 느꼈을 것이다. 그들은 성공했다. 수십년에 걸친 분위기 조성과 노력을 통해 그들의 가슴에서 가장 낡은 인간의 감정중 하나를 제거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이제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 깨진 잔 조각들이 저절로 다시 붙을 수 없듯, 한번 파괴된 것은 다시 형성될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은 목표에 도달했다. 삶의 어느 순간에도 그들은 사랑을 경험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자유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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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mith - Please Please Please Let Me Get What I Want 

Good times for a change
See the luck I've had
Can make a good man turn bad
 
So please please please
Let me, let me, let me
Let me get what I want this time
 
Haven't had a dream in a long time
See the life I've had
Can make a good man bad
 
So for once in my life let me get what I want
Lord knows, it would be the first time
Lord knows, it would be the first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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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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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두들 아픈 다리 내놓고 장사하는 것. 저잣거리에 나와 내 흉터가 더 크지, 더 아프지 자랑하는 卑賤한 삶들. 거개의 블로그니 하는 것들에서 읽을 수 있는 속내가 그렇더라..는데 생각이 미치면서 나 역시 이젠 블로그를 접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제가 무슨 글을 썼는지 모른 체 지내는 터라 글을 모아둘 창고를 짓는다 생각하고 열었던 블로그가 그런 고통이랄 것도 없는 자기전시의 쇼윈도가 되었다. 온 몸이 벌개지도록 부끄럽다.
 
- 고통은 견디고 부인하고 감추기 위해 있지 않을까. 그런데 어찌된 세상인지 고해처럼, 심리상담가 앞에 놓인 카우치처럼, 당신 나 사랑하지, 사랑해 줘 응석부리는 무대가 되었다. 나 술먹고 게웠어, 나 망가졌어, 내가 불쌍해서 옷 살래 따위의 허접한 잡담을 늘어놓고 고통의 값어치조차 능멸하는 숱한 블로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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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진님의 블로그에서 허락도 없이 무단 발췌. 원문은 여기로.
 
 
 
위의 글을 읽고 나 또한 고민이 된다. 자신을 포장하는 각종이미지로 점철된 싸이월드. 읽었던 책, 봤던 영화들을 나열하며 자신의 문화적 취향을 드러내거나 알량한 지식을 뽐내기 위한 숫한 블로그들. 자신의 아픔을 과장해서 드러냄으로서, 나 아파, 그러니까 나 좀 사랑해줘, 애정을 구걸하는... 혹은, 현실에서 결코 충족되지 못할 자신의 정치적 올바름을 자랑하며, 결국 공허한 울림에 그치고 말 것들...
 
이 곳 또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지...이런 생각을 하면 부끄러움에 지금이라도 당장 블로그를 닫아버리고 싶어진다. 옛글들을 읽으며 드러나는 나의 얕음에 자책하기도 하고... 오늘은 지금까지 내가 블로그에 올린 글들을 하나하나 찬찬히 읽었다. 나의 찌질함. 애정구걸. 자위. 자기연민. 나르시시즘. 신세한탄. 알량한 지식들...등등 모두 다 이곳에 있었다.

 

블로그를 완전히 닫는 건 아니더라도, 글 중에서 몇 개만 지워버릴까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하지만 그게 무엇이든 간에, 이 모든 것들이 다 어느 시기의 나에 대한 기록이라는 생각에 그냥 맘편히 내버려 두기로 했다.
 
대신에 요즈음 내가 글을 쓰는 방식을 핑계로 위안을 삼고자 한다. 블로그에 다 올리지는 않더라도 요즈음 노트에 글적거리고 있는 글들은 어쩔 수 없이 휘갈겨 쓴 글들이 많다. 책상 앞에는 앉았는데 책 속의 글자도 잘 들어오지 않고, 뭔지 모를 딴 생각만 계속해서 맴돌 때. 기지개를 펴고 마음을 다잡고, 담배까지 한 대 피고 와서도 이 가슴 먹먹함이 풀리지 않을 때면 그냥 책을 덮고 노트를 펼친다. 볼펜을 들고 노트에 생각나는 대로 끄적거리다보면 진정이 좀 되는 듯싶다. 글도 종류마다 다른데, 의식적으로 써봐야지 하면서 마음을 다잡은 글은 몇 줄 나가지 못해서 손이 간지러워지기 시작하고, 결국 손아귀에 힘이 풀리고 만다. 억지로 더 쓰다가는 펜을 던져버리고 싶은 충동이 들 정도이다. 또 어떤 글들은 한번 삘이 꽂히면 몇 페이지를 정신없이 써나가서 나중에 가서는 손이 저려오기도 한다.

 

머릿속에 떠돌던 생각과 간절한 느낌들이 막상 펜을 타고 나오면, 글씨는 삐뚤빼뚤 엉망이고, 문장들은 서로 이어지지 못하고 여기저기 끊긴 채 흩뿌려져 있다. 어떤 단어가 적합할지 한참을 고르다가 결국은 찾아내지 못하고 비워놓은 빈칸들이 군데군데 밍숭맹숭하게 뻥뻥 뚫려있다. 결국 그렇게 정신없이 써내려간 글들을 다시 읽어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하지만. 그래, 이게 바로 뽀오스또 모오단적인, 데리다적인 글쓰기이지 하하, 하면서 웃어넘길 뿐 찢어버리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여전히 왜 ‘블로그’인가? 하는 의문은 남아있다. 처음 블로그를 시작하면서 나는 그것이 인정욕망이라는 것을 시인 했음에도, 여전히 풀리지 않는 부분이 남아있는 것은 사실이다.
 
 

 


사족1.UCC에 대해.
길거리에서 나를 스치는 많은 사람들이 걸어 다니는 단백질덩어리로만 느껴지던 그런 시절에, UCC가 나에게 약간의 안식이 되어주었다. 밤늦게 집으로 돌아와서는 그날의 UCC를 뒤적거리면서, 내가 오늘 지나쳤던 사람들도 어쩌면 각자의 집에 들어가서는 눈을 가린 채 한손으로만 큐빅을 사정없이 돌려서 맞춘다거나, 길에서 조차 만나지는 못하는 아이들은 자기 방구석에 틀어박혀서 기타로 캐논을 멋들어지게 연주하고 있다거나, 저 아저씨는 손바닥과 책받침만으로 드럼소리를 그럴듯하게 흉내 내고 있을지도 몰라, 하는 생각을 하면서. 다음날 집 밖을 나설 힘을 충전 하고는 했었다.

 

흔히 개그콘서트의 ‘마빡이’를 UCC시대의 새로운 개그 형식이라 예찬하기도 한다. SBS의 ‘스타킹’이라는 쇼프로그램에서는 UCC로도 방송에 진출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각종 포탈사이트나 청소년 미디어교육관련 기관에서 행해지고 있는 UCC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와 투자.

 

나는 이러한 것들이 다 지금 UCC를 망쳐놓았다고 생각한다. 일방적으로 생산되는 이미지를 수용하기만 했었던 기존의 방식에서 UCC는 스스로 이미지를 생산해냄으로써, 그들에게 말할 수 있는 권리와 목소리를 부여함으로 전복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지금 도처에 널린 UCC는 전부 자기 마빡을 때리고 있거나 천무스테파니의 봉 춤을 되지도 않게 따라한다. 요즘은 심형래를 응원하고 있다.
 
 
사족2. 블로그에 대해.
네이버메인에 ‘감성지수36.5’라는 칸이 생겼다. 꽤 흥미로운 제목들과 이미지에 혹, 하고 들어갔다가 헉, 하고 꺼버리기 일수다. 얼마 전부터 컬쳐블로그 어쩌구 하면서 다양한 컨텐츠들을 끌어들이려 애쓰더니, 이제는 블로그에서 ‘NAVER'로고까지 없애고, 아예 자기 블로그는 자기가 마음대로 디자인 할 수도 있단다 (네이버는 정녕 하나의 세계를 건설하려는 것일까). “나 이런 책도 읽었엉, 이런 영화도 봤지롱” 쓰나마나한 감상평들을 올려놓은 블로그들을 돌아다니다 보면, 부르디외의 탁월한 분석이 이곳에서도 점점 맞아들어가는 것 같다는 생각에 짜증이 밀려왔다.

 

그래, 비록 소비활동으로 촉발되는, 즉 자본에 의해 필요되고 이용되는 창의성과 자율성이라 할지라도, 그렇다고 해서 이것을 통제하고 막을 수는 없는 일이다. 언젠가는 네그리의 말처럼, 대중들의 자발성·자율성을 자본주의가 더 이상 통제하기 힘들어지는 상황이 도래할 것... 이라며 스스로를 달래보지만...흠흠.
 
  
사족2-1. 어쨌든 블로그가 일종의 구별짓기 행위라면, 네이버는 가장 낮은 수준. 이글루는 좀 더 교묘하고. 진보넷은 가장 심하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사족3. 싸이월드에 관해서.
흔히들 싸이월드가 얼짱각도를 하고 커피빈을 배경으로 책을 ‘들고’ 있는 사진 따위로 자신을 포장하는 기능을 하고 있다는 해석. 이것은 매우 순진할 뿐만 아니라 안일하기까지 하다.

“미디어자체가 곧 메시지”라는 맥루한의 말을 상기하자!
싸이월드에 회원가입을 하는 순간부터 우리는 이데올로기에 의해 주체로서 '호명’된다. 싸이월드에 의해 자신이 꾸며지는 시대는 이미 지나도 한참을 지났다. 이제는 반대로, 싸이에  올려지기 위해서 누군가를 만나고, 무엇을 먹고, 어떤 영화나 책을 보고, 어디를 간다는 것이 정해진다. 다시 말해, 싸이의 이미지들로 자기를 포장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싸이의 이미지가 되기 위해서 자신의 실제 생활양식을 바꾼다. 즉, 이미지가 자기를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가 자기로서 ‘실현’된다.

 

기표와 기의의 관계가 아무리 자의적이고 미끄러진다고 해도, (그 기호를 수용하는 입장에서는) 기표는 기의를 반영하게 되어있다. 그런데 여기서는 그 관계의 역전이 일어난다. 이제는 기의가 기표에 의해 '규정'된다.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그러나 소쉬르의 분석에 다시 주목하자. "기호의 의미를 결정하는 것은 실체(지시대상)가 아니라, 다른 기호들과의 관계(차이)다." 나는 남들과는 다르고 싶고, 특별하고 싶다. 이 '차이화에 대한 욕망'을 적절히 이용한 것이 바로 블로그이다. 위에서 잠깐 언급한 것처럼.]
 
이제 더 이상 근대적 주체를 생산해내기 위해 푸코의 '파놉티콘', 즉 가상 감시체를 설정하고, 감시의 시선을 자기의 시선으로 동일시하는 과정 또한 불필요하다. 이제는 서로가 서로를, 서로가 서로에 대해 감시하고, 통제하고, 조정한다. 그러므로 싸이월드에서 데카르트의 식상한 명제 ‘코기토’,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이렇게 수정되어야 할 것이다.
 
"나는 회원가입한다. 미니홈피가 생긴다.
나는 프로필을 올린다. 방문자수가 올라간다.
나는 사진을 올린다. 퍼간다.
나는 일촌 신청을 한다. 일촌평을 단다.
나는 홈피관리를 한다. 방명록을 쓴다.
나는 싸이질을 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사족4. 최근 '디워'로 촉발되어 심형래를 선봉으로 이송희일, 진중권 등을 희생양으로 삼은 이번 사태. 이 민족주의적 광기를 단순히 찌질이들의 단순한 뻘짓으로 -나아가서는 사이버공간에의 파시즘의 도래로까지-치부하고 "즐쳐드셈"하는 것은 옳지 않다. 물론 자신의 블로그에 그렇게 써놓은 진중권교수의 반응은 십분 공감하고 지지한다. 나는 이런 아해들은 즐을 좀 처먹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이 대세를 업고 평론가의 자질 운운하면서 젠척하는 인간들이 더 짜증난다.

 

하지만 이와는 별개로 인터넷에서 대한 분석은 필요하다. 사실 이런 식의 광기는 하루이틀일도 아니고, 계속 해서 다른 형태로 바뀌어가며 그 명맥을 유지해왔다는 것을 잘 알지 않는가. 이것을 단순히 찌찔이들! 이라며 무시하는 것은, 인터넷이란 공간을 일종의 매체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양태를 실체화하는 것이며, 이렇게 되면 인터넷이 가진 다른 가능성들을 스스로 사장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나는 자본주의에 관한 들뢰즈/가타리의 분석을 인터넷에서도 적용해보아야한다는 생각을 해본다. 즉, 인터넷을 자본주의 분열증적 요소로 분석하고 그 끊임없이 탈영토화하는 동시에 재영토화해야하는 매커니즘을 파헤칠 필요가 있다. 하지만 들뢰즈 공부를 제대로 해본 적이 없어서 그냥 생각만 해볼뿐이다. 하긴 내가 뭘 제대로 공부했겠냐만은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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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D. 샐린저 <호밀밭의 파수꾼>

 병원회진시간이 다 되어서 독서실에서 읽고 있던 책 -<호밀밭의 파수꾼>- 을 덮어두고, 병원으로 향했다. 침대에 누워 TV를 틀었는데 방금 전에 덮어 두고 왔던 바로 그 책이 나오는게 아닌가. 기막힌 타이밍에 뭔가 싶어 집중을 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홈쇼핑 광고였다. 민음사세계문학전집을 세트로 팔고 있었다. TV속에는 남·녀 진행자가 책들이 빽빽이 꽂힌 책꽂이를 사이에 두고 앉아있었고, 그 옆에는 김갑수 아저씨가 역시 책이 가득 쌓인 책상을 앞에 두고 앉아 있었다. 화장품이나 디지털 카메라 등이 놓여있을 자리에 책들-그것도 민음사세계문학전집-이 쌓여있는 모습이 생소하면서도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두 쇼호스트는 그 책꽂이에서 <호밀밭의 파수꾼>을 꺼내서, 책 표지에 그림이 하나도 없고, 책 뒷면도 텅비어있다는 점을 몇 번씩 강조해서 보여주더니, 작가와의 직접계약에 의해서 작가의 요구에 따라 그 의도를 최대한 살리기 위해서 이렇게 만든 것이라고 몇 번씩이나 강조해서 말했다. 옆에 있던 깁갑수 아저씨는 거기에 거들어서 제대로 된 번역이 중요하다면서 힘을 보탰다.


내가 읽고 있던 책은 전에 헌책방에서 3000원 주고 산 문예출판사에서 나온 것이었는데, 책표지에는 정체모를 한 소년의 그림이 그려져 있고-아마 소설 속 주인공인 ‘홀든’인 듯-   뒷 표지에는 책에 대한 설명이 거창하게 쓰여 있었다.

나는 그 방송을 보고 있으면서 일전에 민음사 블로그에서 세계문학전집을 주는 이벤트를 진행했을 때, 한번 받아보겠노라며 동생 아이디까지 동원해서 중학교방학숙제로 내준 독서감상문틱한 글을 쓰던 내가 떠올랐다.

 

홈쇼핑에서는 책 소개를 하면서 수능이 어쩌구 논술이 저쩌구 하는 말을 반복해서 하고 있었다. 자막에는 예의 그 ···9900으로 끝나는 가격표가 달려있었고, 각각의 책 표지에는 꺼풀이 하나씩 더 덧씌워져 있었는데,  ‘몇 년도 노벨문학상수상, SAT선정 추천도서, 몇 년도 서울대논술문제 기출’ 등등이 그 내용이었다. 삐까뻔쩍한 스튜디오의 조명을 받아 번들거리는 책표지와 어울리지 않게, 표지에 실린 흑백사진 속, 주름 잡힌 작가들의 얼굴들이 왠지 모르게 애처로워 보였다.

 

 

*

 

 

<호밀밭의 파수꾼>은 일전에 문고판으로 도서관에서 빌려 읽은 적이 있었다. 그리고 이 책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 중에 하나로 꼽힌다. 물론 이 소설보다 훌륭하고 위대한 책들은 많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책만큼 그 훌륭하고 위대한 책들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처음 이 책을 다 읽었을 때가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그전 날 ‘반지하’연구실에서 사람들과 새벽까지 술을 먹었었다. 꽤 늦은 시간에 하나둘 각자 배정된 방으로 들어가고 나와 J가 남아서 어떤 이야기를 했던 걸로 기억한다. 꽤 진지한 분위기였던 것 같은데 무슨 내용이었는지는 기억이 잘나지 않는다.

 

새벽 5시가 다되어 잠을 자기 위해 내가 들어갔던 방에는, ‘이쁜이’라는 고양이가 나은지 얼마 되지 않는 새끼들과 함께 지내고 있었다. 내가 방에 들어가 침대에 눕자 대여섯마리 정도의 새끼고양이들은 쪼로롬히 구석으로 숨어들어갔다. 이불에서는 고양이 오줌 냄새가 조금 나는 듯 했지만, 워낙 피곤했던 터라 별로 개의치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새끼 고양이 들이 어느새 내가 자고 있는 침대위에 올라와서 각자 내 몸을 이용해서 잠들어있었다. 어떤 녀석들은 당당히 배위에 올라가 있기도 하고, 어떤 녀석들은 내 허벅지를 베게삼아 곤히 잠들어있었다. 좀 일찍 깬 녀석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내 위를 활보하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몸을 움직였는데 몇 마리는 부스스 일어나 구석으로 도망갔지만 어떤 녀석은 꼼짝도 하지 않아서 - 특히 배위에 올라탄 녀석은 손으로 받쳐 들어 내려 주어야했다. 시계를 보니 꽤 이른 아침시간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여전히 잠들어있었다. 그렇게 술을 먹고 그 시간에 일어났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다. 더 이상한 건, 그런데도 너무나 상쾌한 아침이었다는 것이다. 베란다창문으로 한가득 아침햇살이 방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딱히 할 일도 없어 그 빛을 조명삼아 반쯤 읽다 덮어둔 책 <호밀밭의 파수꾼>을 꺼내들었다. 다른 사람들이 하나둘 깨기 시작할 무렵에 책을 다 읽었다. 책을 덮으면서 나는 뭔가 짠한 느낌을 받았었는데, 그 감상을 말로 설명하기는 어려웠다. 마치 그 아침 햇살이 내 살갗을 통과해서 내 안 깊숙한 어떤 곳까지 스며드는듯했다. 나는 어떻게든 지금 이 순간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으로 당시에  가지고 다니던 카메라를 꺼내 셔터를 몇 번 눌렀다. 내가 찍고 싶었던 것은 그 때의 그 빛이었는데 왜 새끼고양이들만 찍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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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고양이 한 마리 기르게 되면 ‘피비(소설 속 홀든의 여동생)’라고 이름 붙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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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쥬케이터, The Edukators>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어느 늦은 밤. 혼자 병실에 있게 되어 리모컨을 붙들고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던 중에 SBS에서 해주던 영화 가 눈에 걸렸다. <에주케이터>라는 약간은 엉성한 한글표기와 익숙한 한국성우의 목소리들. 꽤 재밌게 봤던 영화라 반갑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이런 영화를 TV에서 틀어준다는 사실이 아이러닉하게 우습기도하고(어찌됐던! 엄연히 이 영화는 혁명을 꿈꾸는 열혈청소년들에 관한 영화이기 때문에), 병원에 있으면서 고픈 것이 영화인터라, 웬만하면 참고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줄리아 옌체의 매력적인 입술에 위에 교묘히 덧씌워진 한국성우의 느끼한 목소리는 채널을 돌리게 만들었고 마침 EBS스페이스 공감에서는 이승열의 공연을 하고 있었다. 이승열의 아쉬운 공연이 끝나고 다시 채널을 돌려보았을 때, 영화는 어느덧 중반을 지나고 있었다.

 

이 영화의 줄거리는 대충 이렇다. (아래 줄거리는 네이버에서 퍼왔습니다. 주소는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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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의 시대는 지나갔다. 계급, 자본, 평등, 착취, 이런 말은 낡은 구호다. 집단보다 개인이, 부의 분배보다 부의 축적이 찬양받는 지금 <에쥬케이터>는 이제 와서 혁명을 말한다. 덜 떨어졌다 해도 좋다. 철없고 무모하다 해도 좋다. 세 주인공 얀(다니엘 브릴)과 줄(울리아 옌치), 피터(스티퍼 에르켁)는 자본주의 사회의 ‘교육자’로 나섰다. 아무것도 훔치지 않고 아무도 다치게 하지 않지만, 부자들의 집에 침입해 그들의 안온한 환경을 휘저어놓는 것이 목표다. ‘좋은 시절은 얼마 남지 않았다’ ‘너희들은 너무 돈이 많다’, 이런 경고를 써붙이는 것으로 만족하려 한다.


그러나 시대가 다르다. 2000년대의 <에쥬케이터>는 혁명 자체에서 끝나지 못한다. 실수로 고급차를 들이받아 감당할 수 없는 빚을 지게 된 줄은, 얀과 함께 차 소유주 하르덴베르그(버그하르트 클로즈너)의 저택에 침입해 ‘에쥬케이터’의 활극을 펼치지만 정작 그와 맞닥뜨리자 어찌할 바를 모른다. 피터까지 불러들여 하이덴베르그를 납치하면서 영화는 이들이 처한 거대한 아이러니를 하나씩 드러낸다. 배부른 돼지처럼 보였던 부르주아는 알고 보니 그들이 동경했던 68세대의 일원이었다. 가난한 자들을 등쳐 재산을 축적한 기성 세대에게도 회한이 있었다. 젊은이들의 구호는 열렬하지만 설익어 있다. 거기에 맞서는 하이덴베르그의 열변도 만만치 않다. 산장에 숨은 이들의 기묘한 동거가 계속되면서, 가난한 젊은이와 부유한 중년은 서로를 이해해가는 것처럼 보인다. 두 남자와 여자가 이룬 삼각관계도 평화롭게 정리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때, <에쥬케이터>는 다시 한번 사고를 뒤집는 결말을 마련한다. 그 위로 제프 버클리의 ‘할렐루야’가 간절하게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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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이들의 투쟁방식 -혹은 뻘짓거리- 이 과연 ‘운동’이라고 불릴만한 것인가 하는 문제는 논외로 치더라도)
많은 예술 안에서의 저항이 그렇듯이, 이 영화의 주인공들 또한 지극히 ‘반문화적’이다. 영화 속에 직접 드러나지는 않지만, 아마도 이들의 이론적 배경- 그리 두텁지는 않아 보인다-은 역시 기드보로나 보드리야르에 기대고 있을 것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행위가 이 세계에 ‘균열’을 가해줄 것이라고 ‘믿고’ 있다. (보드리야르에 의하면 이들은 혁명적일수도 있다. 그리고 이것이 보드리야르가 보수적이라고 비판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영화를 TV, 그것도 공중파에서 틀어주다니. 나는 반응이 궁금해서 다음날 네이버에서 영화를 검색해보았다. 이 방송이 나가고 난 뒤 이루어진 별점평가는 거의 10점 만점이다. “나, 이런 영화도 봤지롱” 자랑하기위해 블로그에 올린 쓰나마나한 영화평들은 하나같이 유쾌하고 재미있었다는 칭찬 일색이다. 하긴 별로 유명하지도 않은 독일영화를 끝까지 보고 인터넷에 들어와 감상평까지 쓸 정도면 재밌게 본 사람들이겠지만...
그런데. 이 영화가 재밌고 유쾌하다고? 정말?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이 영화가 너무너무 슬프다. 이 슬픔은, 대안 없는 시대에 살고 있는 이상주의적이기만한 아해들에 대한 듀나의 조롱 때문이기도 하고, 또 그 조롱의 대상이된 모습이 어느 시기의 내 모습과 자꾸만 오버랩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당시 나는 (좀 우울하기는 했었지만 그래도) 68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가진 꿈 많은 청년이었다.

 

 

잠시 그때 얘기를 해보자면. 그 즈음 나 또한 영화에 나오는 소년 소녀들처럼 자본주의 현실에 갑갑해하고 숨막혀했으며, 아는것과 가진것이 별로 없었으며, 그냥 막연히 혁명을 꿈꾸던 소년이었다. 김누리 교수의 독일문화수업에서 68에 대한 발표를 내가 맡았었는데, 지금도 그때 생각만 하면 얼굴이 붉어진다. 나는 잘 이해하지도 못한 68혁명에 관한 논문하나를 읽고 발췌해서 발표를 했었다. 더군다나 68혁명이 뭔지도 모르는 학생들 앞에서, 68혁명이 기존의 고전적인 맑스주의의 한계를 어떻게 전복하고자 했는지를 마르쿠제의 이론에 기대어 설명해놓은 그 논문을 부분발췌해서 버벅거리며 읽었을 때, 그 강의실의 분위기가 어떠했는지를, 나는 별로 말하고 싶지 않다. 어쨌든 수업이 끝나고 같이 발표준비를 한 창언형과 강의실을 나서면서 나는 어떤 이야기를 장황하게 했었는데 정리해보면 이렇다. 68혁명은 결과적으로 실패 했을 뿐만 아니라 지금은 반동적이기까지 하다. 물론 68은 혁명을 일으켰다. 그것은 자본주의를 기존의 일방적 폭력-통제방식에서 더 교묘하고 견고한 조정적 통제-억압방식으로 바꿈으로서 자본주의 혁명을 일으켰다. 는 식의 논지를 펼쳤었고, 옆에서 내 말을 듣고 있던 재원형은 씩, 웃으면서 나에게 책 한권을 추천해줬는데 그 책이 바로 미셸 우옐벡의 문제적 소설<소립자>였다.

 

 

다시 영화 얘기로 돌아가서. 이 영화가 나에게 슬펐던 다른 이유는 이 영화의 반동성에 그때의 나도 혹, 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들인 혁명소년소녀들과 보수주의자 부르주아 아저씨와의 대화에서, 나는 그 아저씨의 말에 얼마간 동조했었다. (이 부분은 아래에서 자세히 살펴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가 정말로 슬픈 이유는 좀 더 복잡하다. 그것은 이 영화가 지니고 있는 근본적인 패배주의 때문이다. 바로 위의 문장에서 언급된 대화에서 출발하자. 비인간적이고 보수적인 뚱뚱한 부르주아 아저씨가 실은 한때 68운동에서 한가닥 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무려 ‘루디 두치케’의 친구이면서 프리섹스주의자이다!) 영화는 서서히 화해모드를 조성하기 시작한다. 혁명청년들은 아저씨의 말에 서서히 동조하게 되고 아저씨 또한 그들을 인정함으로써 영화는 사상과 계급의 차이를 단지 ‘세대간의 차이’로 변질시키기 시작한다. (여기서 잠깐. 이 ‘변질’은 중요하다. ‘세대간의 차이’ 즉 시간적인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무마되게 된다. 그러나 이것이 물론 해결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언제든 새로운 세대들은 나타나기 마련이다. 청년들은 어른이 되고, 어린이는 자라서 청년이 된다. 갭은 남는다. 즉 이것은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계속해서 ‘지연’ 될 뿐이다. 그러나 이것이 문제이다. 이렇게 문제의 틀을 인식하는 순간 이것은 해결할 수도 없고, 해결할 필요도 없는 ‘자연현상’으로 탈정치화·탈역사화 되어 저기 저편으로 도망쳐버린다. 그런데 이것이 과연 시간적인 문제인가? 나는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영화는 그들이 납치했던 아저씨를 집으로 무사히 집으로 돌려보내주고 아저씨 또한 여주인공 줄의 빚을 탕감시켜줌으로써 화해의 국면을 맞이하는 듯하다. 만약 영화가 이렇게 결말을 맺었다면, 조금 과장해서. “네, 부르주아 아저씨 계속 국가 경제를 위해 힘써주세요.” “그래, 자네들 같은 사람들도 있어야 세상이 더 좋아지지. 나도 젊었을 때는 그랬었지. 역시 젊음이란 좋은 것이여”하면서 서로서로 얼싸안고 각자 열심히 하자 파이팅, 하는 식으로 결말을 맺었다면, 이 영화는 볼 것도 없이 개쓰레기 반동이데올로기영화라고 치부 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면 문제는 오히려 쉽다. 하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영화는 그렇게 쓰레기는 아니다. 오히려 더 교묘한 건지도.

 

 

여기서 반전. 서로간의 묘한 연대감을 확인하며 헤어짐으로써 이루어지는가 싶었던 그 화해는 결국 부르주아 아저씨가 그들을 잡기위해 그들이 살고 있는 집에 경찰특공대까지 보냄으로써 결별된다. 다행히 그들 또한 아저씨를 완전히 믿지 않았고, 그들이 떠난 빈집에 붙어있는 쪽지에 쓰여진 뭔가 굉장히 있어 보이는 말, “어떤 사람들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를 달랑 남긴 채 그들은 어느 호텔방의 침대 위에서 셋이 같이 늘어지게 낮잠을 자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영화초반에 남자주인공의 목표였던 유럽 전지역에 방영되는 TV수상기를 폭파하기 위해 길을 떠난다. 그들은 ‘일단은’ 타협하지 않는다. (여기서 ‘일단은’이란 말을 기억하자)

 

마지막 장면. 그들 셋은 TV수상기가 있는 섬으로 배를 타고 떠난다. 이 영화는 ‘끝이 보이지 않는 수평선’ 위에서 저 너머 어딘가를 향해 떠나는 그들의 멋진 배의 아름답고도 진취적인 뒷모습을 보여주면서 끝이 난다. 이 장면은 굉장히 상징적이고 고무적이다. 그런데 나는 별로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다시 살펴보자. ‘끝이 보이지 않는 수평선’. 이 말은 어떻게 보면 모순적인데, 수평선은 그 끝을 규정지을 수 없다는 의미에서 계속적인 듯하지만, 그냥 바라보았을 때 보이는 바다와 하늘이 이루는 선명한 대비의 일직선은 그 자체로 하나의 경계로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그 경계가 나에게는 그들이 결코 넘어설 수 없는 어떤 ‘벽’으로 보인 것은 왜일까?

 

 

하나 더. 이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배경으로 큰 위성접시의 모습이 보인다. 아마 이 위성접시가 그들이 폭파하고자 했던 TV수상기일 것이다. 그리고 엔딩크레딧이 다 올라가면 위성접시는 폭발하고 영화는 마치 TV화면이 팟, 하고 나가듯이 꺼진다. (그런데 알다시피 TV에서는 엔딩크레딧이 시작되자마자 바로 광고가 나와서 그 장면을 볼 수가 없다. 그런데 나는 영화가 끝나자마자 TV수상기가 무사하고 바로 광고가 이어져 나오는 상황이 더욱더 시사적이고 상징적이라고 생각한다. 영화관에서 이 영화를 본 어떤 이들 또한 영화가 끝나자마자 우후죽순으로 극장을 빠져나가 이 영화 재밌었지, 하는 식의 대화를 스타벅스커피 따위를 목구녕에 들이부으며 말할 것이다)  어쨌든 이 ‘폭발’이 전혀 통쾌하지 않고 패배주의적이고 허무주의적으로 보이는 것은 비단 나뿐일까?

 

 

이 영화는 젊다. 감독도 배우도. 젊은 감독의 재기발랄함과 매력적인 독일배우들의 향연만으로도 이 영화는 꿈틀꿈틀 요동치고 있고, 그래서 예쁘다. 그런데 바로 이 ‘예쁨’이 문제다. 조금 시야를 넓혀보자. 최근 몇 년 사이에 좁은 간격으로 개봉된 68과 관련된 영화들. 이 영화를 비롯해서 베르톨루치의 <몽상가들>, 이상일의 <식스티 나인>, <박치기>까지(물론 <박치기>는 나머지 영화들과는 맥락이 조금 다르다). (또 한편으로는 최근 몇 년 사이 한국에서 우후죽순으로 번역된, 68혁명을 낭만주의적으로 해석해놓은 책들 또한 연관이 있을 지도...어쨌든,) 이들 영화는 각각의 다른 위치에서 제각기 다른 정치색을 가지고 68을 바라보고 있지만, 공통점 한 가지가 있다.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모두 다 파릇파릇하고 매력적인 젊은 배우들이다. 이들 영화의 감독들은 직·간접적으로 68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있다(이들 중 68을 직접 겪은 사람은 베르톨루치뿐이다). 그 '향수'를 40년이 지난 '지금'에와서야 '그때'를 회상하며 '그때의 현재적시점'으로 다루고있다. 즉, 이들은 68을 일종의 ‘청춘영화’로서 다루고 있는 것이다. 이런 방식은 지금 언급되고 있는 <에쥬케이터>란 영화에서 한때 급진주의자였던 부르주아 아저씨가 “나도 한때는 그랬었지”하는 식의 ‘회상’에 다름 아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마냥 지금의 ‘그 세대들’에게 모든 짐과 책임을 씌우고서 잘못을 물을 수는 없다. 청년들은 어떤 식으로든 성장하고 그래서 어른이 되어야만 하기마련이다. 그들에게는 더 이상 머물 곳이 없었다. 짐모리슨에 관한 누군가의 글에서 이런 구절을 읽은 적이 있다. “그들 세대는 두 가지 갈림길 앞에 놓여있었다. 미쳐서 일찍 죽어 신화화되어 상품이 되는 길. 다른 하나는 그냥 조용히 타협하고 살아남는 길이다.” 이 두가지 갈림길은 '일단은' 타협하지 않은 이 영화의 주인공들 앞에도 놓여져있다.  

 

다시 돌아가서. 이 영화 초반부에 남자주인공이 캐릭터상품이 되어버린 체게바라 티셔츠를 바라보며 한탄을 하는 장면이 있다. 68혁명 때 체 게바라의 이름에서 따온 체!체!라는 구호는 그 당시 권력에게 위협적이었다. 권력은 더 이상 그들의 입을 막을 수 없음을 깨닫고, 다른 식으로 대처했다. 권력은 그 이미지들을 티셔츠나 뱃지 따위에 마구 찍어 복제하고 상품으로 팔아치움으로써 그 기호들을 널리 퍼뜨렸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이제 그 기호들은 원래 지녔던 불온성은 소멸된 채 마구 증식하기 시작했다. (내가 들은 최고의 농담: 체게바라평전을 읽은 한청년이 '불가능한 꿈'을 지방대를 나온 자신의 '대기업 입사'로 해석했다는 이야기) 결국 역설적으로! 68과 관련된 이 영화들 또한 그러한 작용을 하고 있다. 68의 이미지를 한때의 아름다웠던 청춘으로 복제함으로써 68이 가졌던 혁명성은 상실된다. 지금 남은 것은 온통 껍데기들뿐이다.

 

바로 이것이 내가 이들 68에 관한 영화와 책들을 반가우면서도 반길 수 없고, 재밌고 유쾌하게 보면서도 마냥 재밌고 유쾌할 수만은 없었던 이유이다.                 
 
다시, 이제 글의 마지막. <에쥬케이터>의 엔딩크레딧이 다 올라간 뒤의 마지막 폭발이 그들의 목표, 즉 체제의 붕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붕괴(혹은 자폭)로 받아들인 것은 나뿐일까? 이 영화는 영화 내·외적으로 그 세대의 붕괴를, 즉 어떤 저항의 종말을 몸소 실천해 증명해보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비단 나뿐일까. 그래서 이 영화의 "유쾌한" 결말이 나에게는 너무나 패배주의적이고 허무주의적으로 보이는 것은...그래서 암울하기까지 한것은...

 

 

이들의 뒷모습은, 또 이 폭발은, 그래도 유쾌하고 희망적인가?

 

 

나는 이 영화가 너무너무 슬프다.

  

 

 


사족1. 이 영화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영화초반 두남녀 주인공이 어떤 건물옥상에서 야경을 내려다보며 “지금쯤 혁명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하는 물음을 던지는 장면이다. 그러나 이 물음은 ‘아멜리에’가 파리 시내를 내려다보며 “지금쯤 오르가즘을 느끼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하는 물음보다 실효성도 없고 흥미롭지도 않다.

 

 

사족2. 병원을 나가면 68과 동시대 감독의 영화들을 찾아봐야겠다. 특히 고다르의.

 

 

사족3. 이글과도 연결될 수 있을 듯한. 얼마 전 <요코 이야기>에서도 폭발!되었고, <화려한 휴가>로 인해 진행되고 있는 논의들 - 역사를 예술에서 어떻게 재현·해석하는가에 관한 문제가 궁금하다. 물론 한일전쟁과 5.18은 68과는 매우 다른 맥락에 서있지만.  

 

 

사족4. 차라리 68을 ‘추억에 대한 회상’이 아닌 ‘트라우마’로서 해석해보는 건 어떨까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왜냐하면 ‘트라우마’는 어쩌면 반성과 성찰의 계기를 마련해줌으로써 현재적 시점으로 되살려 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불행히도 나는 아직까지 이런 영화 혹은 소설을 보지는 못했다. (우옐벡의 <소립자>에 나오는 브루노 역시 2차적 피해자이다) 혹시 아는 사람 있으면 추천해주기를 바란다. 물론 68의 역동적 에너지를 트라우마 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자칫 잘못하면 반동적으로 흐를 수도 있다. 생각건대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어떤 여성들’이 아닐까 싶다. 프리섹스의 피해자는 생물학적 임신주체였던 여성들이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락스타들에게 성적으로 착취당했던 ‘그루피’는 어떨까. 물론 이것 또한 그때 여성들의 2차적 착취가 될 수 있으므로 조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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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흠.

예의가 아닌줄은 알지만서도.

이 블로그에 들어오는 누군가들,

- 제가 어림짐작만 할 수 있을뿐이지만,

그럼에도. '당신들'과

-같이 읽고 싶어서.

허락없이 무단으로 서동진님의 블로그에서 글하나를 퍼왔습니다.

아래는 전문이지만, 아래 주소로 가져서 그곳에서 직접보는게 더 좋을 것 같습니다.

'몽상님에게, 갈대로부터'라는 글입니다.

 

저는 이 글을

이제 막 니체를 만나고자 하는 시점에서,

제 욕망들을, 그래도 인정하고자 마음먹던 시점에서,

제가 예술을 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어떤 예술을 지지하고 싶은 마음에서,

지아장커의 전작들을 4편이나 보았지만 그의 영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결정적으로 정작 <스틸라이프>는 보지 못한 상황에서.

한번쯤 개그맨이 되어볼까 고민도 했었던 시기에ㅋ.

이 글을 읽은 터라

지금은 너무너무 슬픕니다. 

 

서동진님의 블로그 주소입니다.

http://www.homopop.org



제가 조금 과했겠지요. 어쩌면 지금 우리가 기대를 품고 보는 거의 유일한 영화 감독이라고 할 지아장커였기에 - 사실 그를 제외한다면 우리는 누구에게서 영화에 관한 우리의 피곤한 연민을 지탱할 이유를 찾을 수 있겠습니까 - 그의 동요나 침체를 더욱 못견뎠겠지요. 지극히 개인적인 고백을 하자면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저는 제가 예술의 성쇠를 따라다니는 진드기라고 믿습니다. 저는 문학, 미술, 영화, 음악이 있다고 당연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그런 장르와 미적 형식으로서 나뉜 예술로서의 그것들에 대해서는 아무 관심이 없습니다. 저는 당대의 가장 잘 나가는 예술을 졸졸 따라 다녔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부끄러울 건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고삐리시절 시인이 되고 싶었고, 대학 초년 시절 소설가가 되고 싶었고, 대학원시절 록밴드의 기타리스트가 되고싶었으며, 그 뒤엔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습니다. 가장 잘나가는 예술이 세상에 말을 거는 재주를 가졌고 그래서 예술을 사랑할 온전한 이유를 찾을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게 갈보짓이라면 저는 갈보 할애비라도 하겠습니다. 그런데 저에게 지금 가장 슬픈 일은 그런 갈보짓을 할 상대조차 없다는 것입니다.


초기자본주의가 소설의 시대 혹은 문학의 시대였다면, 그리고 20세기 초 여명기의 자본주의가 미술의 세기였다면 저는 전후 자본주의의 세기는 영화 그리고 록큰롤 따위의 역사적 시대였다고 믿습니다. 그것은 바로 장르로서의 특성이 아니라 그것이 바로 시대와 공명하는 독특한 감성적인 능력을 획득하고 또한 발휘했다는 뜻에서입니다. 이를테면 저는 가라타니 고진이 말하는 문학의 종언을 지지합니다. 물론 문학은 죽지 않지요. 오락으로서 문학은 건재할 것입니다. 바로크 음악을 완벽하게 재연하는데 몰두한 음악가들이 있듯이 문학을 복제하는 문학가들은 있을 것입니다. 모든 역사적 양식을 혼합하고 재연하는 것으로서의 문학(이를테면 지난 10년간의 한국현대문학이 보여준 장르화되고 양식화된 글쓰기를 보면 잘 알 수 있겠지요. 번거롭게 말해 문학은 세상을 대하기보다는 문학 자신을 대하지요. 그래서 저는 신경숙, 김영하, 성석제같은 소설가들을 무척 싫어하고, 격하게 말하자면 혐오합니다)이 있다면 저는 문학은 간 것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저는 문학의 독자와 문학의 애호가들은 다른 것이라고 봅니다. 물론 미술에서 이런 풍경은 더욱 가관이지요. 저는 그래서 현대 미술을 가끔 증오합니다.

 

 

그런데 영화로 이야기를 옮기면 사정은 조금 달라집니다. 저는 여전히 영화가 “동시대”적인 예술이라고 믿었고 또한 지금도 아슬하게 믿고 있습니다. 제 공부와 머리가 짧아 잘 모르겠지만 어떤 학자의 말을 흉내 내자면 지금의 “감성적 체제”에 부응하는 것은 영화라고 믿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말할 수 있었지요. “문학이 맛이 갔다고 해서 뭐 그리 슬퍼할 일이냐, 또한 미술이 쫑났다는 것이 뭐 애석한 일인가. 새로운 감성적 체제와 대응하는 그리하여 현실과 상대하는 예술은 언제나 존재할 것이며, 따라서 현실을 체험하도록 조직하는 감성적 질서에 대적하는 새로운 예술은 언제나 발생할 것이다. 나는 지금 그것이 영화라고 믿으며, 나는 영화를 지지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기대를 저는 언젠가부터 저버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가끔 냉소적인 심정으로, “씨발, 지금 혁명적인 예술은 개그아냐? 지금 ‘사모님’ 개그나 ‘홈쇼핑’ 개그보다 더 현실을 삽시간에, 그러니까 찐하게 감성적으로 니가 사는 세상을 느끼게 해주는 예술이 있으면 나와보라 그래”라고 뇌기도 했답니다(이 대목에서 전 아주 알뜰한 아드로노의 팬이지요)

 

 

하지만 역시 영화에 대한 저의 기대는 접기가 제법 어려웠습니다. 우리가 “뉴 저먼 시네마” 이후에 사실 영화운동다운 영화운동을 가져본 적이 있던가요. 저는 미국 인디와 중국 5세대 이후의 영화운동을 영화 운동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문화연구”를 통해 영화의 본원적 자기동일성을 묻기보다는 문화적 정체성과 차이를 묻는 소위 내셔널 시네마니 하는 따위로 전락한 영화 이론에 대하여 폭소를 거두기 어렵습니다. 이를테면 장 뤽 고다르는 누벨 바그 감독이 아니라 프랑스 내셔널 시네마의 감독으로 지역화, 맥락화해야 할까요? 더 나아가 마르크스의 생각은 독일적 문화정체성을 반영하는 로컬 지식인의 아이디어라고 주장해야 옳은 건가요? 물론 그런 생각은 개좆이지요. 세상에 그런 코미디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이를테면 겉멋들었지만 영화는 세계의 진실을 주장하는 자격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던 왕년의 <키노>를 사랑하지만, 내셔널 시네마 따위를 이야기하고 세대, 문화적 정체성, 성별의 정체성 따위에 따라 나뉜 다양한 취향의 세계로서의 영화를 이야기하는 영화 아닌 영화를 두고 지지고 볶는 <씨네21>(물론 그보다 못한, 거의 영화의 위엄을 조롱하고 숫제 영화를 장례치르는 데 여념이 없는 싸구려 잡지들은 열외로 치고)을 딱하기 짝이 없게 생각합니다. 그런 너는 그러지 않았냐고 말한다면, 물론 정확히 보신 겁니다. 저는 그랬고, 그래서 90년대의 혹은 그래서 21세기의 표준적 이데올로기가 된 영화에 관한 저능한 주장을 거들었다는데 대한 자책감으로 영화에 관한 어떤 말도 자제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다시 지아장커로 돌아가지요. 저는 앞의 이야기에 비추어 그가 제일 나쁜 놈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영화가 세상에 관하여 무슨 말을 전하고 어떤 이데올로기를 만드는 능력이 있는가를 반성하며 나온 그 맹렬한, 이를테면 노도윅같은 영화평론가의 말을 빌면, 정치적 모더니즘을, 그 자는 그냥 맥없이 인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더욱 슬픈 것입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그는 영화를 통해 세상에 말을 건넬 수 있다고 믿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의 무능함을 바로 정치적 모더니즘의 상투적인 형식을 통해 감추려고 합니다. 갈수록 그는 더욱 노골적입니다. 그 시절의 모더니즘 영화를 통해 영화에게서 혁명적인 예술로서의 능력을 본 사람들에겐 지아장커의 영화는 여전히 매력적입니다. 그래서 그는 영화제에서 앞 다투어 모셔 갈 거의 유일한 거장입니다. 그러나 그가 무력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영화에 처량한 희망을 걸고 있는 저같은 이들이 많은 것이지요. 그래서 그 희망을 대신할 어떤 대역을 찾고자 그에게 온갖 축복을 퍼붓고 싶겠지요. 그러나 그것은 너무나 얄팍한 짓이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영화를 시체검시소에 운반하고 그것의 죽음을 확인하는 것, 그리고 다음의 혁명적 예술을 위해 웃음을 머금고 부고장을 들고 화장터를 나오는 것, 그런 게 필요한 것 아닐까, 저는 그렇게 생각하곤 합니다. 그러나 누구나 알고 있듯이 애도란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인가요.

 

 

그러면 넌 무엇에서 희망을 거느냐고 물을 수도 있겠군요. 그 대목에서 저는 요지경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혁명적인 예술을 완벽하게 대체하는 무엇이 예술이 하던 모든 일을 떠맡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자본주의를 통틀어 지금과 같은 시대가 있었나 싶기도 합니다. 저는 그것이 디자인 혹은 광고와 마케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역설적으로 디자인을 예술이 아니라고 역성을 들면서 예술의 아류라고 젠체하는 인간들을 정말 같찮게 여깁니다. 그 인간들은 예술이 무엇을 하는 것인지 모르는 삼류입니다. 디자인은 사실 일급의 예술입니다. 세상을 체험하는 감성적 질서를 조성하고 가공하는 능력-싱겁게 말해 과학적 지식, 도덕적 지혜, 미적 감성을 우리가 세상과 섞이는 세 가지 앎의 형태로 나눈 칸트같은 이의 구분을 따르자면 말입니다-을 예술에 관한 온전한 정의라고 받아들이자면, 디자인을 우리 시대의 예술이라고 인정하는데 주저하는 것은 정말 촌스럽고 좀스러우며 나아가 더러운 짓입니다.

 

 

일전 어느 디자인평론가와 이야기를 나누며 좋은 디자인을 살리고 나쁜 디자인을 죽여야 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저는 그의 디자인 “계”에 대하 애착을 존중합니다. 그러나 저의 결론은 물론 “디자인” 자체가 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진보적인 모더니즘 디자인이 보여주었던 놀라운 힘을 생각하며 디자인이 세상을 체험하고 조망하는 가능성을 보존해야 한다는 생각은 일리 있습니다. 그러나 디자인은 그 힘을 지금까지 예술이 가져왔던 자명한 능력, 즉 예술은 언제나 세상을 적대적인 방식으로 보아 왔다는 그 능력에 반하여 사용합니다. 그래서 디자인은 예술의 힘을 이용하여 근대적 예술 자체를 죽입니다. 그래서 저는 디자인을 제일 증오합니다. 그래서 저는 디자인이 죽어야 예술이 산다고까지 생각합니다. 저는 좋은 디자인, 착한 디자인이라고 그 디자인 평론가가 말한 말을 농담이라고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그러면 저는 아니면 몽상님도 영화와 디자인 사이에서 헤매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거의 아무 것도 듣고 보고 느끼지 않으려고 하는 제게는 사실 헤맬 것도 없습니다. 미어터질 듯한 제 싸구려 빌라 집에 친구가 가져다 준 자전거 한 대가 지금 놓여있습니다. 자전거 매니아인 제 매제가 온갖 재주와 돈을 들여 조립하고 장만하 무슨 값 비싸고 귀한 자전거라고 합니다. 그가 선물한 그 자전거를 제게 주었습니다. 역시 자전거 광인 제 친구는 그걸 들고 제가 지금 살고 있는 나라로 갈수가 없어, 제게 그걸 처분하는 셈치고, 아쉽고 배 아픈 심정으로, 그걸 제게 준 것입니다. 물론 그건 제게 그냥 평범한 자건거입니다. 외려 비싸고 귀한 것이기 때문에 세워둘 외발도 붙어있지 않고, 무슨 거치대를 장만해서 집 안에 모셔두어야 하는 것이 더 성가시고 짜증이 납니다. 가뜩이나 발뻗을 자리도 없는 집안에 자전거 한 대가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마땅찮고 불편합니다. 저는 그 자전거를 보면서, 문득 니가 지금 예술의 자리를 닮았구나 라는 생각을 합니다.

 

 

더 말 안 해도 잘 아실 것이라 믿습니다. 지식정보사회에서, 혹은 지식기반경제에서, 나아가 창의성의 경제에서, 예술이 제 자신의 반현실적 전통을 뒤집어 현실을 엄호하는 일급의 지식이 된 것. 편의를 위한 기능적인 작은 물건이 집을 점령하고 위세를 부리듯이, 세상을 등지고 그 세상을 다음의 세상으로 가게 하는 억센 박차였던 예술이 지금의 세상을 위해 가장 달콤한 알랑방귀를 뀌는 쓰레기가 되었다는 것. 그렇습니다, 뭐. 예술이 간 마당에 세상에 무슨 희망이 있겠는가 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사실 저는 그래서 예술이 언제나 정치에 딸려있다고 봅니다. 예술은 그 스스로 정치적이지만 또한 동시에 정치의 충격이 없는 한 제 스스로 정치적일 수 없습니다. 예술은 결단코 자율적으로 정치적이지만, 그 자율성을 가지기 위해 언제나 정치의 충격을 필요로 합니다. 정치가 예술을 결정한 적은 한 번도 없지만(그렇다면 예술은 정치적 프로파간다이고 국정홍보처이며 왕년의 KBS입니다) 예술은 한 번도 정치에서 벗어난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에서 벗어나는 순간 예술은 자신이길 단념하고 현존하는 질서를 포장하는 감각적 기교로 전락합니다. 감성의 능란한 능력을 숱한 철학자들이 불신한 이유도 그 때문이겠지요. 이 대목에서 저는 플라톤주의자이고, 아울러 헤겔주의자입니다, 혹은 반하이데거주의자입니다.

 

 

제가 이렇게 횡설수설한 것은 술취한 탓입니다. 실은 깡술을 한병 부었습니다. 무언 글을 하나 쓰려는데 마음이 후둘거려 잘 안나갑니다. 그래서 마감은 일주일 전에 지났는데 여전히 한줄도 안나가고 줄창 술만 마시고 있습니다. 글도 말도 짧아져, 아주 불안합니다. 참 한심하지요. 제가 사랑하는 이데올로기를 비판하는 이데올로그 파스칼의 아름다운 말. 항상 오해받았던 그의 무시무시한 말,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 그 말이 진화생물학자의 "인간은 생각하는 원숭이다"보다 더 낫잖나요? 전 원숭이보다 갈대같단 생각을 더 자주 합니다. 제 자신을 단백질로 환원하고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에 급급한 삶을 제 단백질의 명령 탓이라고, 제 본능의 명령 탓이라고 핑계대는 잡넘들, 잡년들보다야 끝까지 제 생물학적 본성에 저항하는 광기를 저는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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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감옥으로부터의 사색>중에서2

그러나 과거를 다시 참회하고 그 뜻을 파헤치다가도 이를 도리어 그르치는 예를 허다히 봅니다. 우리는 참회록이라는 지극히 겸손한 명칭에도 불구하고 정신의 오만으로 가득 찬 저서들을 자주 만나게 됩니다. 이러한 오만은 자신의 실패나 치부를 파헤치긴 하되 그것은 어디까지나 나중의 성취를 돋보이게 하기위한 조명적 장치로서의 성격을 떨쳐버리지 못함에서 오는 것으로, 이것은 결국불행이나 실패에 대한 이해의 일회적이고 천박함에서 오는 오만-인생자체에 대한 오만이라 해야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과거 쪽에 마음을 너무 많이 할애함으로써 현재의 갈등과 쟁투가 그 전진적 몸부림을 멈추고 거꾸로 과거에로 도피해버리는 예를 많이 봅니다. 과거에로의 도피는 한마디로 패배이며, 패배가 주는 약간의 안식에 귀의하여 과거에의 예종, 숙명론적 굴레를 스스로 만드는 행위입니다.

 

나는 이 숱한 문제들과 정면대결하는 겨울밤을 좋아합니다. 꽁꽁 얼어붙은 하늘을 치달리는 잡념을 다듬고 간추려서 어린시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점검하는 하나하나의 일들과 만나고 헤어진 모든 사람들의 의미를 세세히 점검하는 겨울밤을 좋아합니다. 까맣게 잊어버렸던 일들을 건져내기도 하고, 사소한 일에 담겨있는 의외로 큰 의미에 놀라기도 하고, 극히 개인적인 사건으로 알았던 일에서 넘치는 사회적의미를 발견하기도하고, 심지어는 만나고 헤어진다는 일이 정반대의 의미로 남아있는 경우도 없지않아 새삼 놀람을 금치 못할 때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것에서 만나는 것은 매양 나 자신의 이러저러한 모습입니다.

 

바로 이점에서 이러한 겨울밤의 사색은 손 시린 겨울빨래처럼 마음 내키지 않는 때도 있지만 이는 자기와의 대면의 시간이며, 자기해방의 시간이기 때문에 소중히 다스리지 않을 수없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과거를 파헤치지 않고 어찌 그 완고한 정지를 일으켜 세울 수 있으며, 과거를 일으켜 세워 걸리지 않고 어찌 그 중압에서 자유로울 수 있으며, 과거로부터 자유롭지 않고서 어찌 새로운 것으로 나아갈 수 있으랴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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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감옥으로부터의 사색>중에서

P51
섬사람에게 해는 바다에서 떠서 바다로 지며, 산골사람에게 해는 산봉우리에서 떠서 산봉우리로 지며, 서울사람에게 있어서 해는 빌딩에서 떠서 빌딩에서 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섬사람이 산골사람을, 서울사람이 섬사람을 설득할 수 없는 확고한 ‘사실’이 됩니다. 지구의 자전을 아는 사람은 이 우김질을 어리석다 깔 볼 수도 있겠읍니다만 그렇다면 바다나 산이나 그런 구체적인 경험의 현장이 아닌 다른 곳에서 뜨는 해를 볼 수 있는가? 물론 없읍니다. 있다면 그곳은 머릿속일 뿐입니다. ‘우주는 참여하는 우주’이며 순수한 의미에서의 관찰, 즉 대상으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가치중립적인 관찰이 존재할 수 없는 법입니다.
경험이 비록 일면적이고 주관적이라는 한계를 갖는 것이긴 하나 아직도 가치중립적이라는 ‘인텔리의 안경’을 채 벗어버리지 못하고 있는 나는, 경험을 인식의 기초로 삼고 있는 사람들의 공고한 신념이 부러우며, 경험이라는 대지에 튼튼히 발 딛고 있는 그 생각의 ‘확실함’을 배우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추론적 지식과 직관적 예지가 사물의 진상을 드러내는데 유용한 것이라면, 경험고집은 주체적 실천의 가장 믿음직한 원동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몸소 겪었다는 사실이 안겨주는 확실함과 애착은 어떠한 경우에도 쉬이 포기할 수 없는 저마다의 ‘진실이 되기 때문입니다.

 

P83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생각은 그가 몸소 겪은 자기인생의 결론으로서의 의미를 갖는 것입니다. 특히 자신의 사상을 책에다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삶에서 이끌어내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아무리 조잡하고 단편적이라 할지라도 그 사람의 사상은 그 사람의 삶에 상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의 삶의 조건에 대하여는 무지하면서 그 사람의 사상에 관여하려는 것은 무용하고 무리하고 무모한 것입니다. 더욱이 그 사람의 삶의 조건은 그대로 둔 채 그 사람의 생각만을 다른 것으로 대치하려고 하는 시도도 그것은 본질적으로 폭력입니다. 그러한 모든 시도는 삶과 사상의 일체성을 끊어버림으로써 그의 정신세계를 이질화 하고 결국 그 사람 자체를 파괴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 우리가 훌륭한 사상을 갖기가 어렵다고 하는 까닭은 그 사상자체가 무슨 난해한 내용이나 복잡한 체계를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사상이란 그것의 내용이 우리의 생활 속에서 실천됨으로써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라는 사실 때문입니다. 생활 속에서 실현된 사상만이 자기 것이며, 그 나머지는 아무리 강론하고 공감하더라도 결코 자기 것이 아닙니다. 자기 것이 아닌 것을 자기 것으로 하는 경우 이를 도둑이라 부르고 있거니와, 훌륭한 사상을 말하되 그에 못 미치는 생활을 하고 있는 경우 우리는 이를 무어라 이름해야 하는지...

 

P168
그러나 독서는 실천이 아니며 독서는 다리가 되어주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역시 한발걸음 이었습니다. 더구나 독서가 우리를 피곤하게 하는 까닭은 그것이 한발걸음이라 더디다는 것에 있다기보다는 ‘인식->인식->인식...’의 과정을 되풀이하는 동안 앞으로 나아가기는커녕 현실의 튼튼한 땅을 잃고 공중으로 공중으로 지극히 관념화 해간다는 사실입니다.

 

P179
그러나 이러한 과학적 사고보다 더 중요하고 결정적인 것은 바로 대상과 필자의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대상과 필자가 어떠한 관계로 연결되는가에 따라서 얼마만큼의 깊이 있는 인식이, 어떠한 측면이 파악되는가가 결정됩니다. 이를테면 대상을 바라보기만 하는 관계, 즉 구경하는 관계 그것은 한마디로 ‘관계없음’입니다. 구경이란 말 대신 ‘관조’라는 좀 더 운치 있는 어휘로 대치하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에는 관조만으로 시작되고 관조만으로써 완결되는 인식이란 없기 때문입니다.
(...)
이처럼 대상과 인식주체가 구별, 격리되어 있는 경우에는 시종 양자의 차이점만이 발견되고 부각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대상을 관찰하면 할수록 자기와는 점점 더 다른 무엇으로 나타나고, 가까이 접근하면 할수록 더욱더 멀어질 뿐입니다. 그리하여 종내에는 대상을 잃어버림과 동시에 자기 자신마저 상실하고 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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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미래

앞은 언제나 불투명한 유리가 가로막고 있는 듯 했다. 조금만 몸을 앞으로 내밀기만하면, 와장창하고 깨지는 유리의 날카로운 파편에 온몸을 베일 것만 같았다. 조심스레 손을 뻗어 그 벽을 더듬어보려 했지만, 두손은 희뿌연 허공을 휘휘 저을 뿐이었다. 그럴때마다 나는 멈춰서서 내가 걸어온 흔적들을 되짚어보려했다. 그러면 발자국이 가리키는 방향대로 계속 걸음을 이어나갈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고개를 돌렸을때 보이는거라곤 온통 질척거리는 진창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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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병

머리가 조금씩 지끈거리기 시작하기에 아직 새로운 환경에 익숙치 않아서 그런 거겠지 가볍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온몸이 쑤시기 시작했고 괜찮겠지 하며 조금 무리를 하는 바람에 결국에는 몸져 누워버리게 되었다. 처음엔 하루정도 푹 쉬고 나면 괜찮아지겠지 했었는데, 좀 괜찮아지는가 싶다가도, 어느 순간 갑자기 몸이 으슬으슬해지기 시작해서 열이 너무 높이 올라가는 바람에 몇 겹의 이불로 몸을 옥죄듯이 감싸야만 했다.
갑작스레 나를 덥친 이 열병은 밤새 나를 그렇게 괴롭히고도, 겨우겨우 잠이 들어 다음날 일어나보면 어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말짱한듯 싶다가 또 어느 순간 열이 올라 또다시 몸을 꼭 웅크린 채 가쁜 숨을 몰아쉬게 만들었다.

 

그동안 몸 불편한것 말고는, 주사도 남들보다 쉽게 맞고 큰 통증도 없이 병원생활을 지내온터라, 그  꼴이 괘씸하게 보였던 탓인지, 몇일정도는 병원생활 제대로 하게 해주려나 보다, 생각하며 견디려 마음먹었는데, 이건 정말 처음 사고나던 때보다 더 하구나 싶다.

 

사고 때야 워낙 정신도 없었고, 어차피 인간의 인식이란 간사하기 마련인지라 현재의 고통이 지나간 기억속의 아련한 아픔보다 작을 수는 없겠지만. 이 다른 종류의 아픔의 형식은 지금의 것이 더욱더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물론 응급실침대위에 누워서 덜그덕 거리는 다리를 붙잡고 의사가 뼈를 맞춘다고 무지막지하게 당겨대는 그 순간에는 뼈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몸을 통해 들려와서, 손바닥을 꽉 물고도 새어나오는 비명을 어쩔 수 없어서, 당기는 힘이 좀 느슨해지고서야 그제야 헥헥 거리며 가쁜 숨을 몰아쉬어야 할 정도로 아팠지만. 최소한 그때에는 어떻게든 이 순간을 견뎌 내야겠구나하는 오기라도 솟아올라 앙다문입에 더 힘을 주었지. 지금처럼 이렇게 나를 야금야금 갉아먹는 듯한 아픔에는 아슬하게 떨어지는 링거방울을 멍하게 바라보며 시름시름 앓는 콧소리를 내는 것 외에는 온 몸의 힘이 쭉빠져 이불 끝자락을 겨우 붙들고 있는 손아귀의 힘을 놓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저께는 새벽에 너무 열이 심해져서 도저히 혼자 버틸 수 없게 되어, 숙직서는 간호사선생님까지 불러 주사를 맞아야 했고, 다음날엔 오전부터 열이 오르는 바람에 계속 헛구역질을 해댔는데 몇 일동안 제대로 먹지도 못해 애꿎은 위액만 토해내다가 결국은 거기에 섞여나오는 붉은 선혈을 보아야했다.

 

겨우겨우 몸을 일으켜 진찰을 받고, 혈관이 몸안으로 꼭꼭 숨어버린 탓에 몇번씩 연거푸 찌른 끝에 겨우 링거를 맞고. 여러 번 굵은 바늘로 남의 팔을 쑤셔야했던 미안함이 숨길 수없이 드러나는 얼굴로, 혹시 오실 수 있는 보호자나 친구, 여자친구 없냐고 연거푸 묻는 간호사 선생님의 질문에, 없어요... 라고 몇번씩 말끝을 흐리며 대답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헛 웃음이 새어 나왔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동생은 지금쯤 아르바이트 갔을 거고, 핸드폰에 저장된 몇몇 친구들의 이름이 스쳐지나갔지만, 침대에 가만히 누워있기만 하면 별일 없을거란 생각으로 스스로를 다잡았다. 그 순간.  아직도 나는,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지도, 주지도, 또 내 몸뚱아리 하나 조차 제대로 아껴주지 못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떠올라 애꿎은 전화기만 만지작거렸다.

 

그래도 간호사선생님은 휠체어에 나를 태워 병실까지 바래다주고, 열을 내려야 하니 꼭 차고 있으라며 너무 차가울까봐서 베갯잇으로 감싼 얼음주머니까지 이불속에 넣어주시고. 근처 약국에서 직접 약까지 타와서는 얼마냐고 묻는 나의 말에, 약값은 나중에 몸나으면 천천히 주셔도 되요, 하고 말하며 소리가 크게 나지 않도록 조심스레 문을 닫고 나간다.

 

식당아주머니는 목이 부어 밥을 먹기 힘든 나를 위해 하얀 죽을 정성스레 끓여주셨다. 나와 병실을 함께 쓰는 강성순 아저씨는 불편한 다리에도 직접 자신의 수건을 적셔 내 이마위에 얹어주고 내가 잠들기 전까지 몇 번이나 다시 수건을 갈아주신다.

 

이 따뜻한 죽 한 그릇과, 이마를 덥고 있는 수건의 보드라운 감촉과, 타인의 아픈 곳을 미리 헤아려 어루만지는 이 손길 같은, 나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음악은

sparkle horse - saint mary

(sparkle horse의 리더격인 마크링커스는 약물과다복용으로 어느 호텔방에서 다리가 접질러 넘어지면서 다리가 그대로 꺽여버리는 바람에 병원에서 12주이상의 치료를 받아야했다. 이곡은 마크링커스가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때 그를 헌신적으로 간호해준 한 간호사에게 바치는 곡이라고 한다. 결국 이 사고로 마크링커스는 평생을 휠체어에 의지해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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