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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문과 콜로키움에 갔다가 진중권씨에게 내 뒷자리에 앉은 한 철학과 여학생이 계몽이 어쩌구 저쩌구 하면서 질문을 -니체가 어쩌고 권력이 저쩌고 하는 유치찬란한 말을 빌어 장황하게- 했는데 갑자기 내 얼굴이 빨게 지면서 부끄러워져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그녀는 내가 몇 달 전에 했던 이야기를 고스란히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순간 나는 뒤돌아서 그녀를 볼 필요도 없이, 그녀가 누군가를 만날 때의 양태들과 현재적 시점의 고민들이 눈앞에 빤히 펼쳐져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어리석었던 나의 지난날들이 참으로 부끄러워졌다. (내가 말을 할 때도 누군가는 공감 혹은 이해하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비웃기도 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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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는 힘든 시기를 겪고 있다. 대안은 고사하고 한치 앞조차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너무나 많은 것들이 있지만 사실은 아무것도 없는, 너무나 많은 언어들이 난무하고 있지만 실상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다소 도식적일 수 있는 설명이지만) 그 속에서 누구는 운동을 하기도 하고 누구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지난한 저항을 지속하려 하고, 또 누군가는 회의와 냉소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기도 하며, 더욱 많은 사람들은 주어진 삶에 충실해서 살아가고, 아니 어쩌면 이 과정들을 넘나들며 반복하기도 하는, 그 사이에서 자신의 위치를 고수하며 우리 모두는, 어쨌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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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증금100에 월세 10짜리 단칸방을 처음으로 자신만의 공간으로 장만한 30대 활동가의 집에 앉아서 술을 마시며 “어차피 이 모든 것은, 우리 모두는 쓰레기이다. 그러므로 쓰레기가 되지 않기 위해서 발버둥 치는 수밖에...”라고 토해내는 M의 모습을 보면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한때는 운동권적 모럴리즘으로 많은 것들을 재단하고는 했던 순간의 선택들.
때로는 치열함으로, 때로는 그 치열함으로 가장했던 무식함으로, 때로는 찌질함으로, 때로는 쿨한척하는 냉소로, 맞닥뜨려야만했던 그 많은 세상들, 도피하기도 했던, 여전히 두려운 상황들.
인간에게 있어서 결국 궁극적인 문제는 자의식과잉이 아닐까. 좀 더 나이브하게 갈 필요가 있지 않을까, 지금에 있어서 진정성의 매커니즘은 어떤것일까, 과연 자본주의는 실체일까 그것에 저항한다는건 가능할까, 하는 생각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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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사실 얼마 살아보지는 않았지만 그 얼마 안 되는 기간 속에서 나름대로 치열하게 고민하고 방황하고 찌질 대기도 하면서 지금 결국 남은 것은 딱 한가지이다. 결국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죽을 때까지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가야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얼치기 자유주의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실로 그렇다. 왜냐하면 자본과 권력은 우리가 행복해지도록 절대로 가만히 놔두지 않을 것이며, 끊임없이 우리를 억압하고 세뇌하고 조작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거기에 반하는 모든 투쟁을 삶을 지지하고 싶다. 사람들이 이 실천을 끊임없이 해나가며 끝까지 살아남아서 행복하게 살 수 있으면 좋겠다.
나의 이런 생각이 나 자신의 편협함으로 인해 인류애까지는 가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삶의 문제에서 힘겨워하고 있는 내 주위의 친구들만은 이해하고 사랑하고 싶다. 아직 답장을 하지 못한 편지를 보낸, 감옥에 있는 --도 다가올 겨울을 잘 견뎌냈으면 좋겠다. 가끔 만날 때마다 힘들다고 칭얼대지만 나보다 훨씬 강한 그래서 더 잘해나가고 있는 --도 잘됐으면 좋겠다.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때 그때마다 그녀를 다잡아주었던 무언가가 있었지만 지금은 사라졌다고 말하는 --도 더 늙어서 다시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같이 일하고 있는, 치열하고도 치열한 그래서 위태롭기까지한 활동가들도 계속 밀고나갔으면 좋겠다. 내가 지금 만나고 있는, 나보다 훨씬 더 힘든 과정을 겪어갈 아이들도 내가 나이가 들어 다시 만나 술 한잔 기울이며 지금을 돌아보며 함께 웃을 수 있으면 좋겠다. 사치스런 자의식과 또다시 그것을 인식하는 자의식으로 인해 갈등하는 --도. 하루하루 고된 노동으로 생계를 연장해야만 하는 --도. 지금도 방구석에 틀어박혀 있을 --도. 나랑은 너무 안 맞지만 그래도 지지하는 --도. 내가 만났던 혹은 스쳐지나갔던 모두들. 그리고...
이들 모두에게 힘을 주는 말 한마디를 해주고 싶다. 그러기에 앞서 나부터가 먼저 힘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 한없이 가벼워지고 싶다. 그리하여 이 모든 것들을 시대를 세상을 담론을 가로지르고 뛰어넘어 탈주하고 싶다. 하지만 그러기엔 여전히 나는 너무나 작고 어리고 어리석다. 그래서 오늘 이렇게 짦은 메모를 남기고 다시금 나를 격려해본다. 힘을 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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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듯 걸어가자. 끝나지 않는 노래를 부르자. 빌어먹을 세계를 위해. 모든 쓰레기들을 위해서!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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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책상정리를 하다가 3년전에 쓰던 수첩을 찾았어요. 그무렵 한참 그 수첩을 들고 다니다가 어느날 거기에 적혀있는 글들이 고민들이, 너무나 보잘것 없고 쪽팔려서 더 이상 그 수첩을 쓰지 않았었는데, 이제와서 다시 하나하나 읽어보니 새삼 힘이 되더군요^^. 몇년간 잠적했다가 짠!하고 나타날수 없는 이상에야 어차피 쪽팔리고 부끄러울거라면 그냥 최선을 다하자!라는 생각으로 살고 있습니다.하하.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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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럽기 때문에 반성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노력하고 반성하기 때문에 부끄러운 것일수도 있지요.(그게 그건가^^;;) 결국 '반성'과 '성찰'이 중요하다는 말이에요.ㅋ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