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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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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내 방 꼬라지와 나의 지금 상태와 나의 지난 일주일을 돌아보면 참으로 부끄럽기 짝이 없다. 나는 지금 점점 밀려들어오는 자괴감에 시달릴수록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어지고 그래서 더 큰 자괴감에 시달리게 되는 악순환에 빠져있다. 이제는 익숙하기까지 한 이 상황을 벗어나는 방법은 생각보다 쉽고 단순하지만 지금의 나는 별로 그러고 싶은 마음조차도 들지 않는다. 더 이상 흔들리지 않겠노라 다짐하고 또 다짐했지만 누군가 앞에서 펑펑 울며 하소연하고도 싶지만 그깟 알량한 내 자존심과 좀처럼 나를 놓아주지 않는 자의식은 다시 좀 더 높은 벽을 쌓으려 하고, 나는 여전히 홀로 비틀거리고 있다. 도망치고 싶다. 아니 언제나 도망치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지난 여름 나는 여전히 혼자였고, 그래서 외로웠고, 힘들었다. 거리에선 비틀거렸고, 누군가를 만나서 어떤 이야기들을 나누었지만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고 아무도 만날 수 없었다.
나는 정말이지 이해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다. 내가 맡은 나의 삶에 있어서 정말이지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이렇게 나는 무너져 내리는구나 생각하니 가슴속에서 뭔가 뜨거운 것이 터져 나올 듯 했지만 결국 터져나오지는 않았다.

-여름을 보내며 썼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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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는 학교로 돌아간 꿈을 꿨다. 꿈속에서, 나는 옥상에 담배를 피우러 가다가 걸려서 도망을 치고 있었는데 학교복도에서 불쌍한 나의 친구들은 서로에게 매질을 하고 있었고, 까맣게 잊은 줄 알고 있었던 선생들이 등장해서 나를 쫓아다니고 있었다. 나는 그들을 피해 어디론가 숨어들었고 나의 엄마는 따뜻한 밥을 해줄 뿐 아무런 말이 없었다. 나는 결국 학교를 벗어나지 못하고 잠에서 깨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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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를 받았다. 꼭 나에게만 필요한 말은 아닐 것 같아서 쓴 사람 허락 없이 발췌해서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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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가 일전에 이런 말을 하더라. 자기의 20대는 방황으로 가득 차 있었다고. 난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한 번 제대로 방황해보지 못한 내 청춘이 서글퍼졌어. 방황은 청춘의 아름다운 전유물이자나. 일종의 통과의례일지도. 근데 나의 청춘은 항상 나의 결의라는 이유로, 언제나 명확한 길이 있었지. 그래서 20대가 저물어가는 지금에서야 꼭 겪어야 했던 의식을 못 치룬 것처럼 무언가 허전함을 느낄 수 있게 되었어. 아픔 없는 아름다움이 없는 것처럼 방황은 무언가를 찾아가는 과정일테니. 방황이 청춘의 전유물이라면, 현실과의 타협은 성찰하는 사람의 특권이 아닐까. 인간이 완전한 존재일수 없다면, 모든 면에서 ‘정치적으로 올바른’ 사람은 없자나. 불가능하지. 성찰하지 않는 사람들이 때로 순도 100%의 올바름을 입으로만 떠들다가 갑자기 0%로 가버리지. 성찰하는 사람은 스스로가 완전하지 않은 존재임을 알기 때문에 100%에 가까워지려고 노력할 뿐, 치열하게 사는 사람들도 결국은 자기 안에서 조금 더 낳아지려는 노력을 하는 사람들이겠지.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지 말고 너 자신의 모습들과 비교하며 노력하렴. 불가능한 100%에 강박당하지 말고 다만 노력을 꾸준히 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그리고 현실에 맞춰서 사는거 그거 어렵다. 남들처럼 사는거. 그것이 지금 세상의 보편적인 삶의 방식이라 해서 쉬운게 아니야. 박민규 이야기처럼 죽을 노력을 해야 겨우 평균인 삶이지. 사실 결코 안정적일 수없는 삶이지. 어쩌면 네가 바라는건 ‘안정’이라는 단어로 표현되는 ‘여유’아닐까? 금전적이든. 정서적이든. 그 ‘여유’를 찾는 방법은 아무도 몰라. 다 같이 찾아볼 수밖에.
 
너의 방황을. 그리고 욕망을 사랑하렴. 지금 나의 모습을 나의 운동을 네가 어떻게 볼지 모르겠지만, 내가 가지지 못했던 내 20대의 한 조각. 어쩌면 그런 면에선 난 네가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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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리가 좀 아프고 복잡해서 집에 돌아오자마자 잠이 들었는데 일어나서 시계를 보니 새벽 1시였다. 달콤했던 잠 덕분인지 나는 지금 기분이 너무 좋다. 영화 <린다 린다 린다>의 OST를 다운 받아 헤드폰을 쓰고 미친 듯이 춤을 췄다. 냉장고에 남아있던 버드와이저맥주 한 병을 마시고 담배를 피웠다. 포트에 물을 올리고 커피를 끓였다.

 

전에 “너는 너 자신을 좀 더 사랑할 필요가 있어”라는 말을 몇 번 들었었는데, 나는 ‘자기애’가 어쩌니 말을 하면서도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전혀 이해를 못하고 있었다. 이제야 그 말의 의미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을 것 같다.

 

이제서야 나는 지금 이 삶을 긍정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의 외로움을 방황을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나는 나에게 큰 상처를 안겨준 그 모든 사람들을 세상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가닿지 못한 그녀 또한 절대로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괜찮다. 그 모든 것들을 잃어버리지 않고, 유쾌한 마음으로 기억 해낼 수 있을 것 같다. 앞으로 나에게 다가올 짐들도 기꺼이 받아들이겠다. 여전히 무섭지만 두렵지는 않다. 

 

이제 나에겐 오직 전진, 전진만이 있을 뿐이다. 힘이 들겠지만. 때로는 지치고 쓰러지고 헤매이겠지만. 때로는 지금 서 있는 이곳이, 혹은 내가 가고 있는 이 길이 그다지 맘에 들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나는 나의 이 걸음을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나는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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