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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11/10
    여성배제적 놀이문화
    판다
  2. 2007/11/10
    프롤레타리아의 미학(?)
    판다

여성배제적 놀이문화

고등학교 때 크라잉 넛이 공연하던 '드럭'에서 슬램하는 걸 좋아했던 나는, 그러나 실제로는 슬램을 할 수가 없었다.

 

(드럭: 언더 펑크 밴드들이 공연했던 홍대 클럽, 현 DGBD)

(슬램: moshing이라고 하는 건데... 펑크 롹 같은 공연 중에 관중들이 서로 부딪히고 밀치면서 추는, 다소 공격적인 막춤?)

 

왜냐면 한번 'mosh pit'  (애들이 막 슬램하는 구역)에 말렸다가는 사방에서 랜덤으로 밀치고 부딪혀오는 남자애들을 내가 같은 힘으로 밀쳐내기는 역부족이고 거의 맞다시피하고 슬램하는 애들을 피해서 나오기까지 한참 헤매기 일쑤였던 것이다. 모쉬 핏의 경계에서 살살 슬램하다가 한겹 두겹 말려서 모쉬 핏 중앙까지 말려들어가서 된통 당했던 기억들이 난다. 휴~

 

그때만 해도 나는 그게 '남자애들이 힘이 세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지 그것이 여성배제적인 놀이문화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은 못했던 것 같다. '여성배제적 문화'라..... 나는 지금 여성을 '배려'해서 살살 슬램하자는 얘기를 하는 게 아니다. 뭐, 여성들만의 모쉬 핏을 만들자는 얘기는 더더욱 아니다. (뭐, 만들자고 할 수도 있긴 하다만)

 

우선 그러한 문화들이 만들어지는 과정 자체가 여성배제적이라는 점, 여성은 그 문화를 공유하는 주체 속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점,

마치 노동자운동이 여성을 배제해왔던 것처럼

미국의 블루칼라들이 헤비메탈의 문화를 만들어낸 과정에서도 여성은 배제되어 있었던 것이다.

 

관중들이 진흙탕 속에서 완전 aggressive하게 슬램을 하던 나인 인치 네일스의 유명한 공연 실황을 보면서 동경심에 사로잡혔던 때가 있었다. 그때만 해도 그 진흙탕 속에 여성은 거의 없었다는 점은 보지 못했던 것 같다. 내가 하고 싶었던 '놀이'를 실제로 할 수 있는 공간이 없다는 점을 나는 몰랐던 것이다.

 

학교 캠퍼스에서 남자 아이들은 방과 후에 농구 한 게임으로 땀을 빼고 각 과 실습이 끝나고 뒤풀이를 하면서 교육치프와 밤샘 당구게임을 하러 간다. 그래서? 여자들도 끼워달라는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놀이문화, 놀이공간 자체가 여성배제적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특히 학교/회사 같은 '공적인 공간'에선 더더욱 그렇다.

 

놀이는 놀이 자체만의 문제는 아니다. 놀이를 통해서 사람들은 유대관계를 형성하고 더 돈독해지게 마련이다.

여자는 낄 수 없는 남자들만의 '2차'를 가서 남성들만의 끈끈한 '유대관계'를 형성하고 그 관계를 공적영역까지 가져간다는 것, 그리고 그 속에서 여성은 배제된다는 문제로 이어진다.

 

공적 영역에 여성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놀이문화가 이런 식으로 형성된 것도 있고 역으로, 놀이문화가 여성배제적으로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여성의 공적영역으로의 진입이 제한받는다는 측면도 있다. 

 

그러고보면 여성배제적인 놀이문화가 극단적으로 바로 매춘이라는 것이다. 남자들끼리 소위 말하는 '2차'가는 거, 그게 극단적으로 여성배제적이면서 여성착취적인 '놀이'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최근 매춘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는데..... 그러고보니 참 여러가지 문제들이 연결돼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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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레타리아의 미학(?)

나는 최근에 운동이란 걸 하면서 너무 안 꾸미고 다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는데 근데 의외로 내가 느끼기에 화장하고 꾸민 모습보다 맨 얼굴에 완전 두꺼운 안경을 끼고 집회에 나가 있거나 애들이랑 세미나하고 있는 모습이 훨씬 '아름다워'보이더라는 거다. 남이 뭐라든.... 너무 자아도취적인가 ㅋㅋㅋ   - O -

문득 90년대에 잠깐 나왔다 사라진 문예비평 관련 잡지에 실렸던

'아름다움의 기준'에 대한 글에서 부르주아의 미학과 프롤레타리아의 미학은 다르다는... 다소 도식적인 글이 떠오른다.

독하게 악을 쓰는 이랜드 노동자들이 너무 아름다워 보이는 걸 보면 미학의 기준이라는 것도 참 정치적이지 않나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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