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블로그를 단장하고 뒤적여보다 퍼뜩 생각났다.

전에 "내게서 떨어뜨릴래야 떨어뜨릴 수 없을 것 같은 몇 가지"를 꼽아 본 적이 있다. 3년 전 봄이었다.

 

벼락치기 근성

건망증

마음이 헤프다

자살 충동

요샌 좀 멀어졌지만 술?

 

당시에 "그냥 이게 내 삶의 조건인 거 같으니 짜증내고 탓하지 말고 인정하고 껴안고 살자"고 적었더라. 첫 영화를 준비하면서 온몸으로 시나리오를 쓰고 있던 때였는데, 그 일과 상관없이 무튼 어떤 마음으로 저런 이야기를 적었는지 기억한다.

 

옛날 글을 보면서 들기도 하는 부끄러움은 전혀 생기지 않는다. 스스로를 이렇게 안쓰러워하는 게 꼴사납지 않을까, 세상에 슬퍼해야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겨우 나를 위해 슬퍼한다니... 자동적인 자기 검열이 발동한다. 쓸데없이 불안했고 자주 괴로웠던 나는 도대체 어떻게 만들어졌던 걸까. 이런 건 누구나 겪는 감정일까 내 과장이 아닐까, 자동적인 질문들도 지긋지긋하다.

 

저 때는 나는 저기서 벗어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 절망도 지나와서 끄적였던 거다. 그런데 저 다섯 가지 중 지금 내게 있는 건 꼭 하나다. 벼락치기 근성만은 업무의 특성과도 결합돼 남아 있지만, 일을 못할 수준은 아니니 괜찮다. 그렇게 좋아했던 술도 데면데면, 극심했던 건망증은 평이한 정도다. 이젠 평생 자살같은 건 생각하지 않을 것 같고, 차라리 마음이 좀 헤퍼졌으면 좋겠다.

 

요새는 내 인생에서 한 시대가 지나간 것 같단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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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18 00:48 2013/03/18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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