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두 사람을 만났다. 자살한 이들을 기리는 분향소를 치워버린 사람과 자살을 시도했던 적이 있는 사람.
나이에 비해 말간 피부와 껄껄대는 웃음소리, 머리부터 발끝까지 깔끔한 차림새를 보니 뺨을 한대 치거나 침을 뱉어주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뺨을 치고 싶다는 느낌이 들만큼 눈앞에 있는 사람에게 화가 난 적은 처음이다. 보통 나는 슬퍼지는 편이지 분노는 익숙치 않았는데... 내놓는 해명도 나름 합리적이고, 오로지 그만의 잘못은 아니다, 다독여 봐도 역겨움이 가시질 않았다. 그 사람의 악수를 받고 명함을 내미는 짓을 도저히 하고 싶지 않아서, 내 차례가 오기 전에 자리를 뜨는 게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매일 대한문 앞을 지나면서도 소보루 빵이 쌓인 제단같은 건 보고 싶지 않았다. 죽은 사람들 생각도 싫었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려고 고개를 돌리고 지나다가도, 차가워 보이는 행인이 혹 상처가 될까 싶어 부드러운 표정을 지으려 노력하는 정도... 이제 알았는데, 똑바로 보기가 부끄러워 힘들었던 거고 그조차 스스로 모를 만큼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랬던 주제여서 남을 미워하게 된 거다.
오후에는 죽을 마음을 먹었던 사람을 만났다. 자살, 한국 사회에서 흔한 말이라 친근할 지경인데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는 사람을 만나본 건 처음이다. 자살을 시도하기 바로 그 직전에는 기분이 어땠던 건가요, 미리 준비를 했던 거네요, 그럼 실제 염산도 사보셨어요, 그 이후론 더 시도한 적은 없었나요, 아드님이 돌아가셨을 때는 죽고 싶은 기분까지는 아니었나 보네요, 그럼 멀리 가서 죽을 생각을 하신다고요, 희망은 없나요,
없어요...
무자비하고 무례한 질문 같지만 질문도 답도 담담했다. 대화할 사람이 드문 노인은 뭐든 자세히 말할 줄 아는 좋은 인터뷰이였다. 가장 긴 시간 진행한 인터뷰였다.
매일 밤 장례식장에서 낯선 사람의 빈소를 드나들면서 친지가 막 죽은, 혹은 자살한 유가족에게 이유가 뭐냐고 캐묻던 시간 동안 이전보다 또렷이 확인한 것들이 있다. 사람들은 대부분 토로를 원한다, 그러나 질문자가 주저하면 말하는 사람도 마음을 조금 닫는다. 또 친지의 죽음이란 펑펑 울다가도 씬이 넘어가면 잊혀지는 드라마가 아니라 여생의 하루하루에 서서히 물드는 것이다. 그러니 잠깐 끼어들어 질문을 던지는 입장에서, 어떻게 그런 걸 묻느냐, 못하겠다, 호들갑 떠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괴롭고 저어되는 마음은 이기심의 발로이니 내가 감당해야 한다는 것.. 물론 내 질문에 괴로워지는 상대들도 있었다, 그것도 내가 감당할 일이다.
영구임대아파트에 사는 그는 이곳 사람들은 다 정신이 모자라거나 병신들이라 어울릴 수 없다고 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이웃들에 진저리가 나서 경로당에 무료급식 먹으러 가기도 싫고, 여기 사람들은 힘들면 술 먹고 소리지르고 욕하면 되는데, 이 사람들이 힘들 게 뭐가 있겠느냐고 했다. 누가 입에 안 맞는 반찬 갖다 주는 것도 싫고, 노인돌보미랑 둘이 있는 것도 내키지 않아 돌보미가 청소하는 동안은 산책을 나간다고 했다.
그의 낙은 아파트 근처에 일흔살 여주인이 하는 대포집이다. 거기 가서 오빠 소리 들으면, 3만원을 내고 술을 사주고 기분좋게 농을 나누고 돌아와 다음날 아침에는 3만원, 3만원... 마음이 무너져 다시는 안 가야지 하다가도, 한달에 한번은 꼭 갔다가 꼭 후회하고 온다. 22살에 결혼한 부인이 바람나 가출한 뒤 평생 여자를 믿지 못했다는 그는 그 대포집 여주인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수 년째 병석에 몸져 누운 남편 뒷바라지에 수천만원을 써가는 그녀에게 "내가 같은 종씨만 아니면 너하고 결혼했을 거다 이년아, 같은 종씨여도 본이 다르면 결혼할 수 있다? 대체 니 남편은 무슨 복이길래 거동을 못해도 마누라가 돈이며 밥이며 다 갖다 바치느냐..."고 농담을 한다며 여러번 웃으며 말했다.
몇년 전부터 강아지 한마리를 얻어 키우고 있는 그에게 복지관 심부름으로 반찬을 날라다 주는 중학생 아이가 새끼 낳으면 한마리 주세요, 지나가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알겠다 답한 그는 어린 것과 약속을 했으니 지켜야지 마음먹었다고 했다. 빠듯한 기초수급비와 노령연금을 수 달간 모아 15만원을 마련해 강아지를 시집 보냈다. 새끼 4마리를 얻었다. 그 아이에게 "얘야, 개는 그냥 공으로 주는 게 아니라고 했어. 1000원을 주고 가져가야 한다"고, 1000원 받고 새끼를 한 마리 줬다.
그는 당뇨 합병증으로 한쪽 눈 시력을 잃었고, 다른 눈으로는 물체가 서너개로 흩어져 보인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더러 선생님은 참 예쁘다고 했다. 최수종같은 얘들은 딱 보면 예뻐도 곧 질리지만, 나는 오래 봐야 예쁜 사람인 거라고 했다. 젊은 사람이 좋은 직업을 갖고 일하는 걸 보면 마음이 참 뿌듯하다고, 자기를 담당하는 사회복지공무원도 보면 참 흐뭇하다고 했다. 주위에 나처럼 이렇게 얘기를 나눌 만한 사람만 있다면 지낼만 할 거라고도 했다.
혹시 무슨 일이 있으면 제게 전화를 주세요... 목끝까지 올라오는 말을 눌렀다. 1년 전이라면 말해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말을 했더라도 그는 절대 전화하지 않을 부류의 사람이다. 합병증으로 허리가 아파 걷기도 힘들다고 했는데, 내가 오기 전 온 집안을 깨끗이 치웠다며 냄새가 나지 않냐고 자꾸 물었다. 난방비가 무섭다던 그는 손님을 위해 바닥을 뜨겁도록 데워 뒀다. 인사차 사 온 딸기 두 팩을 다시 가져가라고 손사레를 쳤다. 사업이 잘 안되던 시절 채권자가 너 사기꾼이지, 한마디 한 데 쇼크를 받아 가진 걸 다 내주고 빈털터리가 됐다고 했다. 지하철 옆자리에 탔던 젊은 여자가 자리를 뜨길래 왜일까, 고민하다가 담배 냄새 때문일까 싶어 쇼크를 받았다고 했다. 1주일간 담배를 끊었지만, 마음이 신산할 때는 이것 뿐이라 결국 다시 피웠다고 했다.
의사는 하루에 한번이라도 산책을 하셔야 해요, 말하지만 아무도 없는 내가 뭐하러 더 산다고 아픈 허리 끌고 나가서 힘들게 산책을 해야 하나, 그 생각이 먼저 머리를 친다. 병세가 더 악화되면, 이곳에 폐를 끼치기는 싫으니 어디 멀리 가서 죽을 계획을 짜고 있다. 아들은 사업 실패하고 나이 마흔에 먼저 갔다. 아들 빈소는 조문객도 드물었는데, 며칠 뒤 최진실이 죽자 모든 방송국과 신문이 최진실의 죽음으로 떠들썩했다. 평생 남한테 해끼친 건 없는데, 어릴 적 부모님한테 앙다구니 부리고 대들어서, 아버지 죽었을 때 무섭다고 도망가서, 어머니는 임종도 못 지키고 사망신고도 못해드린 못난 아들이어서, 그래서 내가 지금 죗값을 받는 거라고 생각한다.
빨리 털어버리고 싶다. 이날부터 며칠이 지났는데도 쉽게 잊혀지지가 않는다. 하필이면 이럴 때 부장은 나름 생각해 일을 줄여준다고, 일부러 곧바로 발제를 하지 않겠다 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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