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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의 진로

 

 

 

 

다시 이명박 정부가 반격에 나서고 있다 . 이명박은 “"국가정체성 도전 시위 엄정 대처"하라고 지시하고 한나라당 대표 강재섭은 촛불을 “국민건강 핑계로 나라를 거덜”내는 것으로 낙인찍고 경찰은 강경기조로 선회했다. 조중동은 “촛불은 꺼지고 있다”고 대대적인 여론조작에 나서고 있다. 아주 사활을 걸고 있다. 그러나 소고기 추가협상 발표 이후에도 촛불은 지칠 줄 모르고 타고 있다. “시민토성”을 쌓아 명박산성을 오르고 있다.

 

 

그러나 촛불은 시민의 이름으로 걸어갈 수 있는 곳까지 걸어갔다. 아직 명박산성을 넘어가지 못했다. 명박산성 위에서 즉 자본가 국가권력 앞에서 자신의 진로를 고민하고 있다. 자본가들의 국가권력, 자본가들만을 위한 민주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으로 촛불은 오늘도 타오르고 있다.

 

촛불은 반정부 투쟁이다 - 2MB OUT

 

 

5월초 중고등학교 여학생들로부터 켜진 촛불은 미친소 재협상에서 미친 교육 반대, 미친 민영화 반대, 미친 대운하 반대, 2MB OUT까지 빠르게 확대되었다. 소고기는 하나의 계기였을 뿐이다. 2MB OUT은 지난 10년간 김대중 노무현 정부, 즉 부르주아 민주주의 하에서 자행된 노동자 죽이기 정책, 비정규직을 늘리고 노동자를 탄압하고 죽이는 자본가 정부에 대한 분노를 표현하고 있다. 또한 촛불의 요구는 결코 소고기 재협상에 머물 수 없는 노동자계급의 생활권과 생존권적 요구를 포괄하고 있다.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발전하면 발전할수록 노동과 자본의 화해할 수 없는 투쟁, 계급투쟁은 더욱 첨예화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촛불은 확인시켜주고 있다. 촛불은 너희가 우리의 생존권을 보장할 수 없다면 너희가 가진 모든 것을 내놓으라고, 우리가 주권이라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촛불의 요구를 소고기 재협상으로 제한하고 가두는 것이야말로 이명박 정부의 의도에 끌려가는 것이고 노동자계급의 고통과 분노를 통제하는 것, 즉 가진자들의 질서를 회복하기 위한 것일 수밖에 없다. 이것을 분명히 하자. 촛불은 결코 소고기 재협상만을 위한 시민운동이 아니다. 촛불은 노동자계급의 생존권적 요구로부터 출발하는, 노동자 죽이기에 맞선 노동자계급의 반정부 투쟁이고 반정부 투쟁이어야 한다.

 

촛불의 직접행동, 직접민주주의

- 내가 직접 손을 들어 말하고 모두가 진지하게 듣고 함께 논의하고 결정하고 행동한다

 

 

촛불 집회는 몇 시간의 자유발언을 통해서 지속되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모두가 직접 손을 들어 말하고 모두가 진지하게 듣고 박수 치고 함께 논의하고 결정하고 행동하기 때문이다. 거리 전체가 거대한 토론장이다. 촛불은 즉석에서 토론하고 결정하고 행동한다. 촛불의 직접행동은 87년 노동자 대중파업 때 등장했던 노동자 직접 민주주의를 쏙 빼닮았다. 현대중공업의 2만여 노동자들은 민주광장에 모여 자신이 직접 손을 들어 요구안을 제안하고 투쟁 전술을 결정하고 자신의 투쟁하는 대표자를 선출했다. 조합원들에 의해 아래로부터 지도부는 통제되었고 모두가 투쟁의 주체였다.

 

 

촛불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즉 자본가 국가권력을 파괴하고 대체할 수 있는 가연성 재료들이 결합되어 타오르고 있다. 그것은 촛불의 직접행동, 직접 민주주의이다. 청와대 앞에서 거리를 장악한 촛불은 외치고 있다. “우리의 동의 없이는 결코 미친 소고기도, 미친 교육도, 미친 민영화도 안된다. 우리가 주권이고 권력이다” 그러나 촛불의 요구는 민주공화국,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넘어섰을 때 비로소 쟁취될 수 있다. 지금 촛불의 고민은 정확히 이 지점에 와 있다. “명박산성을 넘을 것인가, 말 것인가, 넘어간다면 어떻게 넘어갈 것인가?”

 

명박산성을 오르는 촛불의 직접 행동처럼, 거리를 장악한 촛불의 외침처럼 노동자와 일하는 인민이 스스로 무장을 통해 자신을 방어할 수 있고 일하는 현장에서 자신이 직접 선출한 대표자들이, 언제든지 소환가능하고 평균노동자의 임금을 받는 노동자와 인민의 대표자들이 부르주아 의회제를 폐지하고 평의회를 구성하여 사회를 운영함으로써 촛불의 요구는 쟁취될 수 있다. 노동자 평의회가 조중동 쓰레기들을, 삼성제국을 비롯한 모든 기업과 공장과 토지를 몰수하여 노동자들이 통제하고 직접 운영함으로써 촛불의 요구는 쟁취될 수 있다.

 

 

지금 명박산성 위에서 휘날리는 깃발은 “촛불의 직접 행동에 기초한 노동자 평의회 공화국의 전망”을 제기하고 있지 않은가? 지금 촛불 앞에 모든 정치세력들은 촛불의 진로를 제출함으로써 자신의 정치적 색채를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고 촛불의 직접 행동은 이러한 정치적 행위에 대한 대중적 경험과 평가를 진행하고 있다.

 

촛불의 불복종 직접행동을 현장으로!

 

 

현장노동자들은 촛불 집회에 참여함으로써 직접 민주주의의 에너지를 다시 회복해가고 있다. “지루한 연설, 지겨운 행진, 뻔한 마무리”, 노동조합 관료주의에 질식당하고 지친 현장 노동자들이 촛불 집회에서 직접 손을 들어 말하고 있다. 소고기 반대뿐만 아니라 자신의 현장으로 치고 들어오는 이명박 정부의 공격을 비판하고 2MB OUT을 외치고 있다. 직접 민주주의의 활력들을 배우고 있는 것이다. “한 번 붙어볼만 하다”는 자신감이 회복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관료적 통제선”을 넘어설 수 있는 정치적 힘을 키우는 것이다.  지금 민주노총과 금속노조의 총파업 선언은 "혁명이라는 괴물의 그림자조차 찾아볼 수 없는 무기력한 파업"이며 오히려 노동조합 관료들의 힘을 두배로 성장시키고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통제된 파업의 성격을 갖기 때문이다.  소고기 대책회의가 촛불을 어떻게서든 "평화시위와 재협상"에 가두기 위해 사활을 거는 것과 똑같은 모습이다.

 

 

금 현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문제들에 대해서 질문하고 항의하고 저항하기 위해, 촛불의 “불복종 직접행동”을 현장으로 도입해야 한다. 촛불집회에 조직적으로 참가하고 발언하고 직접 행동 속에서 공유했던 정치적 활력들을 현장으로 끌어오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한다. 시간통제에 맞서, 노동강도 강화에 맞서, 산재은폐에 맞서, 노동운동 탄압에 맞서 현장에서의 불복종 직접행동이야말로 관료적 통제선을 넘어 “혁명이라는 괴물”을 불러내는 방법이자 아래로부터 밀어가는 공장점거파업의 불씨가 될 것이다.

 

촛불과 노동자 정치파업의 결합 - 이 나라를 거덜내자!!

 

 

6월10일 전국에서 백만의 촛불이 타올랐다. 그러나 청와대 앞의 건테이너, 일명 “명박산성”을 넘지 못했다. 명박산성 앞에서 촛불은 컨테이너를 넘어갈 것인가 말 것인가를 두고 무려 7시간의 대중적인 논쟁을 조직했다. 결국 명박산성 위에서 깃발을 흔드는 것으로 타협을 봤지만 100만 촛불의 한계를 잘 보여주었다. 촛불은 시민의 이름으로 걸어갈 수 있는 곳까지 걸어갔다. 노무현의 말처럼 촛불은 “기분 나쁘지만 두렵지는 않은 것”이다.

 

 

촛불이 꺼지면 이명박의 군화발은 곧바로 현장을 향하게 될 것이고 결국 우리의 밥상을 걷어차버리게 될 것이다. 따라서 진실로 명박 산성을 넘어서는 것, 진실로 지금 촛불에게 필요한 힘은 노동자들의 대중파업이다. 이명박 정부의 노동자 죽이기에 맞서는 현장에서의 불복종 직접 행동에 의한 공장점거파업의 전국적 조직화, 노동자 대중파업이야말로 한나라당 대표 강재섭이의 말처럼 이 “나라를 거덜내는 방법”이다.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보장하지 않고 오히려 공격하는 자본가 정부는 거덜나야 하고 노동자 평의회 공화국으로 대체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은가? 이것이 지금 촛불의 진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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