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윤 20주기 전

이전 2006/10/02 04:31

 지원이와 함께 과천에 오윤 20주기 전을 보러 갔다 왔다. 무식한 탓이라 해야겠지만 내가 장욱진과 함께 한국 회화에서 유일하게 관심있어 하는 작가가 오윤이다. 그나마 몇 가지 책이 나온 장욱진과는 달리 오윤은 오래전에 절판된 화집 하나 말고는 작품을 접할 경로가 별로 없었다. 나 역시 관심만 있지 작품을 제대로 본 적은 없었다.

 

 나이 마흔이라는 것이 사람의 일생에서 절 반 정도에 불과한, 짧다면 짧은 시간일 것이다. 오윤은 이 나이 마흔에서 인생을 중도하차했다. 하지만 초기 레제나 피카소를 모방한 듯한 작품에서 시작해 특유의 선 굵고 간결한 판화 작품으로 나아간 작품들을 보면 인생이 아닌 예술에서 오윤이 어떤 과정 위에서 중도하차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오윤은 조세희 선생이 '이 땅으로부터의 불행한 실종'이라 부른 것을 이겨낸, 차돌같이 단단한 역사인식을 뿌리 깊은 민중예술에서 캐온 독자적인 양식으로 표현한 작가다. 물론 장욱진도 민화에서 가져온 독특한 세계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장욱진의 그것은 민중의 한과 힘, 그리고 역사성이 거세된 소시민적인 세계다. 그에 비해 오윤은 모든 것을 포괄한 훨씬 넓고 깊은 작가이다. 오윤은 이걸 완성하고 떠났다. 그래서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가 아니라 예술가로서 오윤은 더도 덜도 할 것 없는 온전한 삶을 살았다고 해야 옳은 말인 것 같다. 사실은 지하철 안에서 본 스티커 한 장 때문에 이런 생각이 드는 걸지도 모르겠다. KTX 여승무원을 탄압하는 철도공사 이철 사장을 고발하는 스티커였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젊음이 가고 난 뒤의 인생이란 게 자신의 가장 가치있던 시절을 모욕하는 과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러니 장수만이 능사는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나와 지원이 둘 다 똑같이 감탄한 작품이 '지옥도'라는 작품이다. 당신이 용기만 낸 다면 컬러 TV를 가질 수 있다, 12세면 숙녀니 화장픔을 발라라, 당신을 가꾸려며 이 옷을 입어라...이런 식의 상품 마케팅을 패러디한 작품이다. 변혁보다는 자본주의의 환상에 안주하게 하는 미시적인 기제들에 대한 탐구, 왜 사람들은 억압을 욕망하는가 하는 문제의식이 학문영역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된 것은 90년대를 지나면서인 걸로 안다. 10년을 앞서 이런 주제를 그릴 수 있는 작가의 감수성, 시대를 감지하는 이 더듬이가 결국은 훌륭한 예술가를 징표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딴 애기지만 며칠전에 집 근처 미술관에 다녀온 적이 있다. 들리는 말로는 노조를 결성하려는 자에게 납치, 감금도 불사한다는 그 자본가,  某 대학 명예철학박사 학위 소지자인 그 자본가의 후원을 받아 미술관을 지었다고 한다. 그 자본가가 개인 소장품을 전시한다는 某-UM이라는 미술관과 형제 정도 된다고. 미술관을 들어서는 감정이 좋지 않으니 모든 게 마음에 들리 없지만 특히 코웃음을 치게 만드는 문구가 있었다. 우리 미술의 후진성을 극복하기 위해 외국의 사조를 적극 수용해야 한다는 말,  미안하게도 나한테는 '이 땅에서의 불행한 실종'을 증명하는 이 말이 더 후진적으로 들린다. 과연 그 사람들을 역사의 방관자라고만 할 수 있을지, 사람들의 정신에 대해서만큼은 가해자의 역할을 해왔다고 해야하지 않을지, 더 생각해볼 일이다. 척박한 토양에서 강운구나 오윤 같은 작가가 나왔다는 것에 감사할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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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02 04:31 2006/10/02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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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스머프... 2006/10/03 17: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오윤전 갔다 왔어요. 바로 며칠전에. 그런데, 이렇게 깊은 뜻이 담긴줄은 차마 모르고 있었네요. 좋은 설명과 함께 오윤이 남긴 발자취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어 고맙다는 말을 꼭 전하고 갑니다..^^

  2. 고등룸펜 2006/10/04 03: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실은 저도 관심만 있지 잘 모른답니다.^^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3. 2006/10/06 12: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실 몬삼씨 글 먼저 봐버리면 내가 후기를 못쓰게 될 것 같아서 안볼려그랬는데... 궁금해서 봐버렸어 :)
    오윤의 지옥도는 그 시대 한국을 대표하는 걸작이라 생각해
    시간이 좀더 지나면 미술 교과서에 등장할 날이 반드시 올것이야-
    좋은 전시 델꼬 가줘서 고맙워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