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영화들.

께름하고 묵직했던(일의 경중을 떠나 상황상, 혹은 일 자체와는 별개로) 일을 하나 털고, 그리고 일주일.

그리 바람직한 시간들을 보내지는 못했지만 뭐, 그렇지. 사람이 쉽게 바뀌나.

어쨌든 그래도 여유라면 여유, 객기라면 객기로 지난 주에는 영화도 보고 그랬다.

어? 어! 하면서 본 영화들이라 영화 선택이 일관성은 없으나, 그래도 잊기 전에 메모~

 

<첨밀밀 甛蜜蜜> (1996, 진가신)

그냥 그런 멜로 영화려니 하고 안 봤었던, 그런데 그렇지만은 안다고 해서 기억해 뒀다가 어~하고 본 영화.

영화적으로 엄청 매력적이거나, 너무 잘 봤다... 정도는 아니지만

등장인물과 그들의 상황이, 영화의 정서가 잔잔하게 공감되서 편안하게 즐긴 영화.

하하. 편안하게라니... 아주 젊었던, 아직은 젊은 그래서 새롭게 또 무언가 가능할 그들을 지켜보며

끄덕끄덕 공감하고, 조용하게 기뻐해 줄 수 있었던 그런 기분이랄까.

영화에서 가장 짠하게 마음에 남는 인물은 오히려 등려목이었던 것 같기도...

 

<망상대리인 妄想代理人> (2004, 콘 사토시/매드하우스)

재환이 그냥 가볍게 볼 애니메이션으로 택한 영화. 하지만 오프닝 보자마다 둘 다 '으어!~ 대박이다'를 외침.

예사롭지 않은 분위기(그냥 어둡다고, 무턱대고 잔인하다고 득해지는 게 아닌 진정 '바닥'의 느낌),

역시나 콘 사토시였다. TV시리즈로 만든 거라는데, 1화부터 13화까지 흔들림 없이 죽 간다.

애니 속 등장인물의 표현에 의하면 '이 정도로 흔들릴 이 썩은 세상', 위태로운 시스템 속에서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다들 자기의 욕망과 좌절, 허상과 불안 등을 품고

적당히 회피하며(혹은 치밀하게 은폐되어지며) 살아가지만, 어느 순간 몰린다 느끼고 흔들릴 때 '퍽!'

그 각각의 사람들과 상황들이 또 서로로 연결되고, 

그게 다시 시스템을 흔들기도 혹은 더 공고하게 만들기도 하고.

작은 균열들이 걷잡을 수 없이 이어져 순식간에 무너졌다 싶다가 또 언제 그랬냐듯이 꾸역꾸역 회복되고

하지만 그렇게 회복된 상황 역시 위태롭기는 마찬가지.

말로 풀면 참 뻔할 얘기일 수도 있지만, 콘 사토시가 누구랴. 

일상적인 풍경과 상황들을 그리고 그 안의 인물들을 꽉 쥐고,

그 반대편의 영역인(마주보고 있는 거울 같은) 환상과 악몽의 끝까지 밀어붙인다.

그림도, 음악도, 전반적인 리듬까지 참 잘 어우르면서 말이지. 하!


<홀리 모터스 Holy Motors> (2012, 레오 까락스)

개봉 당시 보고 싶었는데 놓친 영화(극장보다 집에서 영화보는 거 좋아라하면서 이런 표현이라니;)

보기 전에는 이런 걸 상상했다.

'내가 레오 까락스다!', '봐~ 역시 난 천재지!', '이해하든 말든 난 내 얘기를 하련다'

반 만 맞았다.

영화에 대한 영화고, 감독인 자신에 대한 영화고, 자신의 페르소나인 드니 라방이라는 배우에 대한 영화다.

하지만 결코 관객이 어떻게 보든 말든 상관없이, 혹은 자신의 특별함을 과시하기 위해 만든 영화는 아니라는.

딱 떨어지게 재단되는 상징이나 세부 설정은 아니지만,

그 모호함이 과시용이 아닌 영화에서 얘기하려고 하는 이야기를 더 풍성하고 매력적이게 만들었다.

그 누구보다 화려하게 주목받았던 한 영화인이, 영화로서는 짧지 않은 침묵의 시간을 가진 후

'난 누구지?', '여긴 어디지?', '내 질문은, 내가 하고 싶었던 얘기는 단지 이런 거에요'라고

자신이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언어로 차근차근, 독백처럼 말을 건넨다는 느낌이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앤딩 크레딧을 보면서 이런 느낌이었다.

'그러게요. 영화란 뭘까요?', '우리가 영화에서 기대하는 게 뭘까요?', '나는 그냥 구경꾼일 뿐일까요?'

'그런데...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은 모르더라도...그래도, 여전히 영화는 참 매혹적이라는 거에요'라고

조용히 대답하고 싶은 기분.

좋았다. 이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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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07 02:51 2013/10/07 0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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