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루, 치질 수술로 보름 정도 집에만 있었다.

2시간에 한 번씩 좌욕하고 거즈 갈 때 외에는 주로 누워 지냈다.

 

수술 끝나고 마취가 덜 깬 상태에서 중요한 전화를 이상하게 받아 버려 긴가민가 하면서 다시 확인하기도 하고,

배변 조절이 잘 안 돼 낭패를 겪기도 몇 차례,

거참 말로 표현하기 뭐한 통증 등등 하여간 나름 역동적인(?!) 수술 후 회복 기간을 거치고 이제는 나름 안정기(!?)다.

초등학교 시절 이후 처음으로 밤 10~11시면 자고 아침 7~8시면 깨고,

냉장고 검사하면서 국이며 찌개며 죽, 과일, 채소 챙겨 배달해 주는 공룡들 덕에

잠도 끼니도 그 어느 때보다 잘 챙기고 있다.

 

엎어진 김에 쉬어 간다고, 이참에 보고 싶었던 영화들 실컷 보자 싶어 챙겨 본 게 40여 편.

일단 떠오르는 건 우디 앨런 근작들(2000년대 후반). 우디 앨런 영화는 나에게 늘 그렇듯이 영화 자체의 좋고 나쁨을 떠나 새록새록 반가움과 깨알 같은 즐거움을 주셨고, 홍상수 영화(<북촌방향>, <다른 나라에서>)의 능글맞은 귀여움도 참으로 혼자 보기 아까웠으며(혼자 베개를 부여안고 얼마나 키득거렸는지). <아무르>와 <심플 라이프>, <시스터>, <당신을 오랫동안 사랑했어요>, <걸어도 걸어도>, <가족의 나라>, <늑대아이>는 '가족'이라는 소재를 다루면서 각각 그 결이 참 다른, 그러면서도 가족의 존재와 부재, 그 사이에서의 사건과 의미들이 영화를 보고 나서 남는 여운에 몸까지 찡하게 하며 참 남달랐던 영화들이었다. 크로넨버그의 <항생제>는 그 쨍한 화면을 한 순간이라도 놓칠 새라 시종일관 숨을 죽이고 감탄하며 봤는데 보고 나서 '그래, 나 이런 영화 참 좋아했더랬지' 이런 기분이랄까. <존은 끝에 가서 죽는다>는 쉬엄쉬엄 쉬어가는 영화로 선택했는데 영악스러울 정도로 재치 있는 호흡이 맘에 들었다. 음... 일단 생각나는 영화들은 여기까지.

 

우자지간 보름 정도를 이렇게 보냈는데,

이쯤 되니 지난 주부터는 밀린 일들에 대한 걱정이 스물스물 올라오고 그래서인지 오늘은 아예 잠이 안 온다.

정신건강을 위해서도 다음 주에는 반나절 정도씩이라도 공룡에 나가봐야지 싶다.

아아~~~ 그러니 이제 좀 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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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4/15 07:03 2013/04/15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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