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영국왕을 섬겼다 Obsluhoval Jsem Anglického Krále

감독/ 이리 멘첼, 120분, 드라마, 체코, 2006


 

지난 주 씨네오딧세이 토요정기상영회 때 본 <나는 영국왕을 섬겼다>.

2차 세계대전 전후의 체코를 배경으로 한 코미디 영화다.

시골 출신의 왜소한 체격의 주인공(디떼-꼬마라는 뜻), 그의 꿈은 백만장자다.

기차역 노점상으로 출발, 웨이터에서 고급 호텔 주인까지 오로지 백만장자가 되기 위해 살아온 디떼.

히틀러의 시대를 전후로 귀족들이, 기업가들이, 독일군들이, 공산주의자들이 그의 호텔을 거쳐간다.

기기묘묘한 수완으로 결국 백만장자가 된 디떼. 꿈에 그리던 '그' 호텔의 주인이 된다.

하지만 그의 부를 인정해 줄 그 누구도 없는 텅 빈 호텔,  디떼는  벽에 지폐를 붙이고 있을 뿐이다.

그곳에 체코 해방군이 찾아오고 호텔 운영을 제안하는 공산주의자들.

디떼는 그들에게(라도) 백만장자로 인정 받기 위해 스스로 감옥행을 택한다.

그리고 15년이 지나 노인이 되어 출소한 디떼는 버려진 오두막집(열쇠조차 필요 없는)을

술집으로 가꿔가며 자신의 삶을 되짚는다. 

이 과정에서 교차편집으로 펼쳐지는 그의 인생은 

웃으면서도 웃을 수만은 없고, 웃기지만 웃을 수 없는 상황들의 연속.

기묘한 해학과 풍자가 일품인 영화다.

 

경계 혹은 부유... 모호하고 모순된 욕망 

디떼는 부자들을 조롱하면서 부자가 되고 싶어하고,

여자들을 유혹하고 함께 하지만 그녀들을 대상화하거나 그녀(아내)에게 대상화된다.

(섹스를 파는 여자에게는 꽃으로, 호텔의 직원에게는 지폐로, 부르조아들의 만찬의 눈요기거리였던 여자에게는 음식으로 그녀의 몸을 장식하고 그녀들에게 거울에 비춰주는 디떼. 그가 사랑한 그녀, 순수독일 혈통의 아이를 낳아야 된다는 신념의 파시스트 아내는 히틀러의 초상을 보며 그와 잠자리를 하고 디떼는 히틀러의 초상과 눈을 맞추며 섹스하는 아내를 그리고 자신을 거울을 통해 본다)

인물들의 관계 뿐만 아니라 영화의 주 공간들 역시 마찬가지다.

그가 일한 프라하 최고의 호텔의 이름은 '파리', 그곳에서 그에게 가장 큰 가르침을 준 메니저는

'영국왕'을 섬긴 걸 자랑스러워 하는 명예 하나로 똘똘 뭉친 인물이다.

디떼가 가장 자랑스러워한 상징은 유럽(정치)인들이 희화화된 만찬의 주인공인 에티오피아 왕이 준 훈장.

호텔은 정치적 상황에 따라 귀족에서 기업가로,  정치가에서 점령군과 부상병들로, 

마지막에는 농민과 같이 순박한 인상의 총을 든 사회주의 혁명가들이 거쳐간다.

국적도 신념도 정체성도 모호한 경계에 걸쳐 있는 호텔은, 그 공간의 역사는  

백만장자라는 모호하면서도 맹목적인 욕망의 디떼와 다르지 않은 아니 또 다른 그의 반영인 공간이다.

그리고 백만장자임을 증명받기 위해(사회주의자들에게;;;) 단호하게 스스로 선택한 감옥이라는 공간.

그 공간 속에서도 디떼는 백만장자들과 같은 테이블을 쓸 수 없는 주변인이다.

결국 디떼가 자신의 삶을 성찰하며 스스로를 인식하게 되는 공간은 체코의 국경지대.

독일이 점령했을 때는 체코인들이 쫓겨나고, 체코가 해방된 후에는 독일인들이 쫓겨난

그래서 폐허의 빈 집들만이 남아 있는 그 곳이다. 

그곳에 길을 닦고, 예전에 살았던 사람들의 흔적을 정리하고, 먼지를 닦아내며

(음악나무를 찾는 남자와 춤을 추고 싶어하는 여자를 이웃으로 하며)

비로소 디떼는 천천히 자신을 대면하고, 자신과의 대화를 시작한다.

 

 

거울과 유리잔 ... 반영 혹은 투영의 상징들

여자들을 유혹하기 위해 들었던 거울.

노년의 디떼는 변방의 버려진 오두막집에 그 누군가가 사용했었던

하지만 이제는 주인 없는 거울들을 하나 둘 주워온다.  

그리고 텅 빈 오두막 안에 거울을 늘여 놓고, 파편화된 자신의 모습,

다른 거울만큼이나 다른 프레임 안의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며 이야기한다.

비난하는 나, 변명하는 나... 서로 다른 내가 대화를 한다라고.

젊은 시절 디떼는 호텔 바에서 빈 유리잔을 통해 세상을, 부자들을 바라보곤 했다.

누군가를 접대하기 위해 준비되었던 빈 잔으로 바라보던 세상.

영화의 마지만 시퀀스,

노년의 디떼는 맥주를 채우고, 천천히 잔을 들어 테이블로 간 후 자리에 앉아 자신의 잔을 마신다.

편안한 표정의 디떼. 그런 그의 모습으로 화면은 집중되면서 영화는 끝난다.

이 영화에서 인상 깊었던 또 다른 이미지. 허공에 흩뿌려지는 그것들. 동전, 지폐, 깃털 그리고 우표.

그렇게 부자가 되고 싶어하면서 부자들을 조롱하기 위해 뿌리던 동전. 카펫과 벽을 덮던 지폐.

드디어 백만장자와 같은 취급을 받는다고 좋아라하며 감방으로 들어가지만

깃털을 다듬는 부역하는 백만장자들의 테이블에 끼지 못하는

그래서 당황하는 디떼를 조롱하듯 흩날리던 깃털들.

마지막에는 아내의 목숨과 맞바꾼 결국 그에게 부를 가져다 주었던 우표를 바람에 날리던 디떼.

자신의 잔을 채우고 마시던 디떼의 표정과 우표를 날리던 디떼의 표정은 어찌나 같은 느낌이던지.

 

코미디라는 장르로 웃음을 성찰을 보여주는 영화. 좋은 영화를 만나서 좋았던 주말...

그런데,

나는 어떤 거울을 들고 나를 주변을 세상을 비춰보고 있을까?

나는 나의 잔을 채우고 있는가?   

허공에 흩날리는 내 것이 아닌 그런데 내 것으로 쥐고 싶어하는

그런 것을 나는 욕망하고 있지는 않은가?

질문을 남겨주는 영화. 

<나는 영국왕을 섬겼다>는 마냥 좋다고 웃을 수만은 없었던 그런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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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03 08:55 2009/02/03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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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기 싫은 pig  | 2009/02/03 10:21
하하 저는 선생님처럼 정리할 능력은 없고
막연하게 좋다. 라는 생각밖에 안드네요.ㅋ
긴 호흡  | 2009/02/03 15:46
그날 영화 보고 얘기 같이 못 나누고 가서 넘 아쉬웠어 ㅋㅋ 근데 이렇게라도 ㅋㅋㅋ 다시 상기하니까 좋다! 헤헤^^ 우자지간~ 나도 영화 본 느낌들 착착 정리되진 않는데;;; 정리될 때까지 손 놓고 있다가는 게으른 요즘, 영화 본 느낌 휘리릭~ 잊어버릴 거 같아서 걍 남겼다는 ㅋ 그러다 보니 엄청 어수선한 리뷰가 되어 버렸다는 ㅋ
[은하철도]  | 2009/02/04 08:46
아무생각없이 보았는데. 대단하심 ^^
긴 호흡  | 2009/02/12 06:15
에궁;;;; 민망하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