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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종로3가 지하철수사대 부패경감박성동이 날 모함한 사람들 3

7. 종로3가 지하철수사대 부패경감박성동이 날 모함한 사람들 3

 

 

2002년  연희 89-25
 
파출소옆이었지만 연희동에선 짭새들이 꼼짝못해서 안심하고 이사했다.
경찰이 무서워서 전두환대통령집과 가까워서 이사했던것.
 
집근처 연화 apt옆, 교통신호제어기 앞에서  가끔 대통령이 출타할때 전경이  기기를 조작하는것을 몇번 봤는데, 매일 아침, 저녁 내가 지날때마다  젊은 전경이 아닌 늙은 짭새가 늘 서있었다, 기기 조작도 안하고, 연희동 이외 지역에서 내가 가는 데마다 순찰차, 순찰 오토바이, 짭새들 미리 세워두듯이, 이 신호기 앞에만 꼭 서있었다. 가만히 서있다가도 내가 그 앞만 지나면 보란듯이 그 자리를 떠나 파출소로 간다.
 
새벽 2, 3시에도 그 신호기 앞에는 비가오나 눈이오나 꼭 서있어. 새벽 3시에도 대통령이 출타하는지. 내가 거기만 지나면 꼭 자리를 떴다.  집과 파출소가 같은 방향이라 내뒤를 따라왔다.
따라오던 늙은 짭새에게 말했다. " 짭새들은 약자한테 강하고 강자한테는 약하다" , 그말에 박성동일당이 꼭지가 돌았다.
 
연희동 파출소장까지 한통속으로 만들고, 꼼짝 못하던 연희동에서 스토킹이 심해졌다. 연희동 삼거리 우리, 국민은 직원, 모래내시장 가게주인들,  집주인 식구들한테도 모함.
 
이사후 6개월까지 그집식구얼굴 한번 본적없었는데, 연희동에서 스토킹 시작되자 그집식구들, 내가 출입할때마다 대문앞에 딱 지키고 서있다.
 
연희동 89-25 집식구들은 평소 선하게 살던 사람들인데, 수많은 경찰과 연희파출소장까지  모함을 하니, 힘없는 나의 편을 들까? 경찰들 편을 들까?  박성동일당이 시키는 데로 말도 잘들었다. 온갖 공권력을 이용하여 나를 무기력하게 해꼬지에 동참했다 .
 
처음 며칠간 주인아저씨가 아침저녁으로 출입할때마다 거실유리창으로 지켜보게시킨것은, 연희1동 103호 남자를 떠올리고 이를 이용했던것.
 
2001년 연희동 이사후 한번 나타난적없던 경찰과 파출소장도 매일 아침마다 순찰차로 스토킹했다.
 
할머니가 매일 아침 저녁으로, 비가오나 눈이오나 방 밖에서 늘 지키게 했음. 그래도 참고 기분나빠 하지 않고 더 밝게 인사하자,  방문 바로 앞에 유모차를  세우고 내가 현관밖에 나오자마자 내눈과 마주치게끔 할머니를 세워둬. 내눈과 마주치자 할머니도 쑥쓰러워 쳐다도 못보고.
 
박성동이 스토킹하며 순찰차, 사람들에 모함, 해꼬지한다고 하니, 주인부인이 자세히 물었고. 저녁에 주인아저씨가 자세히 알려달라고했고, 내말을 듣고 수긍하며 걱정말라 안심하라했음.
 
그러나  박성동한테 설득당하더니 다시 매일 할머니가 아침 저녁으로 딱지키고 서있음. 2004년 이사가기전, 전세금 4500만원을 다드릴테니 제발 도와달라고 주인아저씨한테 빌어도 모른척했음.
 
얼마나 공권력의 힘이 센지. 이분이 무슨 힘이 있나싶음. 도와 줄지. 이집식구는 내가 고통받는걸 오히려 즐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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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부패경감박성동이 날 모함한 사람들 4

8. 부패경감박성동이 날 모함한 사람들 4

 

 

1.  연희2동 89-25 집주인, 식구들
2.  연희 3거리 우리, 국민은행 경비,직원
3.  모래내시장 상인들.
 
 
연희2동 89-25 파출소옆으로 이사간갔다.
 
매일 집옆 연화아파트를 지나갔다.
 
연화apt 앞에 교통신호제어기가 있었는데, 가끔  전경들이 대통령출타시 기기를 조작하느라,
 
기기옆에 있는것을 본적이 있다.
 
연희동에서 꼼짝못하던 짭새가 이 기기 앞에는 내가 지나갈때마다 아무것도 안하고 꼭 서있는다.
내가 지나면, 새벽 2시, 3시에도 대통령이 출타하는지, 그시간에도 꼭 거기 서있다. 순찰차로는 겁주지 못하니까.
 
그리고 내가 그 기기 옆을 지나면 내뒤를 따라온다.(파출소와 같은 방향이므로)
 
하루는 내뒤따라오던 짭새에게 들으라고 떠들었다.
 
"짭새들은 약자에 강하고, 강자에 약하다."고..
 
그말에 박성동일당 꼭지가 돌았다.
 
파출소 소장까지 포섭했다.
 
그전에는 연희동에서는 순찰차를 전혀 볼수없었다. 연희동 바로옆 창천동이나 홍제동, 연남동만 가면 5분도 안되,
 
순찰차가 경광등번쩍거리며, 사이렌소리울리 하루 종일 나타났지만,  연희동에서만 순찰차해코지를 못했다.
 
그런데  그일이 있은후 연희동 파출소 소장까지 박성동 일당은 한통속으로 만들고 하루 종일 쫒아다녔다.
 
89-25 집주인 식구들도 이사 6개월까지는 얼굴 본적도 없었는데, 이사후 매일 내가 외출전,후, 집앞에서 늘 지키고 서있었다.
 
부패경찰 박성동 일당도 나쁘지만, 부패경찰이 시키는 말을 어쩌면 그리도 잘따르는지...
 
내가 허위사실유포죄로 박성동에게 고소된후, 증인으로 이사람들을 전부 법정에 세워서 거짓말하면 위증죄로 처벌받을 상황에서도  부패경찰 박성동 일당에 계속 충실할지 궁금하다.
지금 나는 허위사실유포죄로 고소당하고 싶고, 최고의 변호사를 써서 모든 증인을 거짓말 탐지기 통과시켜 법정에 세우고 싶다.
 
내가 접촉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박성동일당은 모함했다.
 
연희3거리 우리은행, 국민은행 직원과 경비,, 내가 접촉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온갖 모함.
 
모래내역 건너 지금 lg텔레콤 옆골목, 고양이 기르는 만두가계주인,
모래내시장,  도시마트주인과 식구들, 지금은 없어진 옆 백호오토바이 아줌마, 모래내 야채,과일상인들(화장품가계앞, 2007년 최근에도 모함했음).  개기르는 닭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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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신촌현대백화점 여자화장실감시카메라, 박성동경감이 모함한 내용 5

9. 신촌현대백화점 여자화장실감시카메라, 박성동경감이 모함한 내용 5

 

1. 신촌현대백화점경비, 직원. 신촌뿐만 아니라 압구정, 삼성 현대백화점, 롯데, 이마트 .. 모든 쇼핑점.
 
2. 2000년 모래내시장 상인, 동네수퍼, 지금 문닫은 모래내역건너 국민은 지하수퍼, 2002~3 홍제동 수퍼들...  내가 가는 모든 가계.
 
 
1995,96년  창천동 57-39에 살때, 백화점 경비로 부터 도둑취급받았다
사과는 커녕, 오히려  그랜드마트 경비한테까지 도둑취급시켰다.  괘씸해서 백화점 화장실변기에 쓰레기 버렸다.
 
그레이스백화점 화장실 감시카메라사건. 날 잡으려고 설치했는데, 잘못한거 전혀 없다. 여자화장실에 감시카메라를 설치하는 비상식적인 행태..   오히려 백화점경비들에게 폭행 당했다.
 
그후 현대백화점쓰레기통에 버렸는데  24시간  감시하던 짭새들이 그것을 보고, 현대백화점경비뿐아니라 서울시내 전체백화점, 이마트등 경비에게까지 모함, 날 모르는 쇼핑점 경비는 없게 만들었다 .백화점만 가면 경비들이 따라다니며 무전기소리내며 감시시켰다.
 
박성동스토킹 전에는 시장에 가본적 없었는데 그후 백화점에 가본적없다. 롯데백화점, 일산이마트, 현대백화점본점,무역센터, 이마트등, 모르는 경비가 없다. 99년부터 02년 영등포 롯데,신세계,경방필,현대 본점,삼성점,신촌점,그랜드마트,일산 이마트,반포 킴스, 04년 동대문 홈플러스. 경비들에 온갖 모함.
 
현대백화점경비,  점원들은 다 나를 알고, 99년부터 2000, 2007년 주요 몇명 경비와 접촉해보면 경찰들이 얼마나 괴롭혔는지 알것.
그들의 수법은 내가 접촉하는 모든 사람이 날 미워하게, 이상하고 나쁜사람으로 만들어서 왕따시키는것.
 
2002년 연희1동 413-96, 원룸임대하려고 인터넷에 냈는데 대낮에 신촌현대백화점 경비가 무전기까지들고 방구경한다고 왔었음. 박성동일당이 보낸것.
 
박성동 해코지로 백화점에 못가다 2007년 4월부터 간다.
 
내가 가면 경비가 쫒아다나게 했다.
그러나 그전처럼 무서워 도망가지 않고, 네이버 검색창에 "부패경찰 박성동"을 쳐보라고 떠들었다.
그랬더니 그후 백화점가도 경비를 볼수 없었다.
 
그러나 화장실에서 휴지를 몰래 돌돌 말아오거나, 아무도 없는데서 (머리는 감아야하는데,샴푸를 사면 박성동일당이 독극물을 타서) 물비누를 몰래 덜어오면 경비가 화장실 밖에 꼭 서있다.
 
정말 불가사이한 일이다. 내가 볼일만 보고 나오면 경비가 안보이고, 휴지나 물비누를 아무도 없는데서, 몰래 훔쳐나오면 경비가 꼭서있고....
 
지금은 경비만 보면  "부패경찰 박성동"을 떠들어서, 박성동일당이 경비들에게 쫒아다니게 안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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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종로3가 지하철수사대 부패경감박성동이 날 모함한 사람들 6

10. 종로3가 지하철수사대 부패경감박성동이 날 모함한 사람들 6

 

 

97년  청담리더스빌 경비,
        청담리더스빌  208호 여자,
        청담리더스빌  412호 여자와 여동생
 
내가 리더스빌로 가면 경비는 옆건물 복덕방아줌마를 불렀다.
복덕방 아줌마에게 미리 돈받고, 그 오피스텔 주인들이 오면 복덕방에 연락했던것.
집주인들은 세줄때외에는 그건물에 안가므로 복덕방에서는  빈방있는줄알고 경비에게 미리 돈주고 부탁했던것.
 
사실 그방에 이사오려던 사람이 있었는데, 경비가 복덕방아줌마를 불러들여 이미 약속했던 사람대신, 복덕방 아줌마가 데려온 다른 이와 계약할수밖에 없어서, 나는 무척 화가 났었다.
 
그일로 경비에게 다시는 복덕방아줌마 부르지 말라고 화를 냈었는데, 경비가 아무말도 못하고 꼼짝을 못했다.
 
박성동 일당이 경비에게까지 가서 모함한줄은 몰랐다.
 
몇일후 다시가니, 집주인들한테 고분고분했던 경비의 태도가 아주 오만해져서  나한테 호통을 쳤다.
게다가 208호로 기억(엘리버이터 건너줄 끝 집) , 이집 아가씨와 방얘기 한적있는데, 다시 만나기로해서 갔더니, 이아가씨 태도도 완전 돌변해있었다.
 
우리집 412호에 1달 살다 2층으로 이사간 30중반 여자와 그 여동생에게도,,  내가 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부패경찰 박성동은 쫒아다니며 모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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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종로3가 지하철수사대 부패경감박성동이 날 모함한 사람들 7

11. 종로3가 지하철수사대 부패경감박성동이 날 모함한 사람들 7

 

 

1.  캐나다 백인남자(40후반또는 50대).
 
2001년 겨울 연희동 413-96살때, 성산회관옆 (편의점앞) 버스정류장, 여러명이 있었다. 누군가가 내옆을 아주 살짝 스치고 지났는데 영어로 땡깡 부리기시작했다.
 
살짝 스치는 사람 하루 수백명이다. 그러나 박성동 해코지 이전에는 시비를 받아본적없다.
 
박성동 스토킹이후, 한국사람도 안닌 외국인이 땡깡부리려고 날 일부로 스쳤다.
 
한국에 사는 미국,캐나다인과 대화를 많이 해봤기때문에 잘안다. 이들은 한국사람과 말할때 절대 빠른 속도로 말하지않는다. 단어, 문법도 아주 초급으로만 쓴다.
 
그런데 이캐나다남자는 아주 빠른 속도로 자기들끼리 하는 이상의 속도로 영어로 떠들었다.
그래도 난 다 알아 들을수있고, 받아쓸수도 있음.
 
캐나다인으로 부인은 한국인이라했음
 
당시 코리아헤럴드게시판 이용, 외국인에게 휴대폰을 팔았는데 부패경찰박s동과 그일당이 24시간 스토킹하느라 그걸 알아내고 한달여 한국말로 게시판을 도배했었다.
 
무식한 짭새들이라 영어가 안되서 한국말로 도배했던것.  그전, 그후 한국어로 게시판도배하는것 못봤음.
 
박성동일당이 보낸자임. 이유없이  땡깡부리는 것과, 영어로 말하는것이 한국인에게하는 속도가 아님.
 
그리고 나와 스칠때 난 연대방향으로 갔고, 이캐나다인은 성산회관 방향으로 갔는데, 내게 땡깡부리고 나서는 연대방향, 반대로 갔다.
 
연희동에는 외국인이 많이 살고, 그전이나 그후 어떤 외국인에 봉변당해 본적이없다.
 
한국에 사는 미국,캐나다인들은 한국인과 트러블을 일으키려않는다. 어울려 살려고 하지 이유없이 땡깡 부리나??
 
부패경찰박s동과 그일당이 보낸게 아니라면 아무 이유없이 땡깡부리지 않음.
코리아헤럴드 게시판지기로 추정.
 
2. 02년 연세대수위 ..내가 개와 매일 연대 서문에서 정문으로 갈때 ,,, 연희동 파출소장포섭후부터 감시시킴.  이대정문수위, 남가좌 현대apt수위, . . 지금은 없어졌지만 서대문도서관 건너 슬리퍼,구두공장아저씨등, 내가 지나갈때마다  세워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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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부패경감박성동일당 친인척으로 날 해코지한 사람들

12. 부패경감박성동일당 친인척으로 날 해코지한 사람들

 

 

1. 홍제동 서울맨션앞, 계란장수 2 늙은이
2. 캐나다 백인남자(40후반또는 50대).
3. 연남동철길 늙은이.
4. 서교 아트빌고시원 고시원형제
 
1. 홍제동 서울맨션앞, 계란장수 2 늙은이
서울맨션에 80년초반부터 90년대중반까지 살았다.
조용히 살아서, 아는 사람은 경비원뿐(당시 경비들 아직도 근무중).
 
박성동 스토킹이후, 길에서 갑자기 땡깡부리는 자들이 늘었는데, 계란가계가 옛날부터 있다는것은 알고있었을뿐, 전혀 본적도 없다.
 
그런데 박성동 스토킹이후, 계란장수 늙은이 둘이, 내가 지나가면 추운 겨울에 미리 밖에 나와서 날 기다리다  아무 이유없이 땡깡부리기 시작했다. 남자 늙은이는 멀리서 오토바이타고 방금 도착해서, 날보고 시비, 땡깡부렸다. 매일 난리침.  그후 그길로 다닐수가 없었다
 
박성동과 관련된자가 아니면,  내가 지나가는 시간 딱맞춰  땡깡부리려 기다리지 않는다.
 
2. 서교 아트빌고시원 고시원형제
서교초등학교옆 아트빌고시원앞도 10년 넘게 지나다녔는데, 박성동 연남파출소짭새들과 연관이 있는지, 고시원형제가 행패부린다.
 
30대 쌍둥이처럼 닮은 형제가 내가 지나가면 비가오나 눈이오나 고시원앞에 나와 서서 나를 기다렸다 지킨후, 내가 지나가나가면 안으로 들어가고..
 
30대 안경낀 남자가 지켜서있다 마티즈 연두색타고  골목길 한바퀴돌자마자  다시 와서 고시원으로 들어간적도 있다.
 
또 아줌마, 초딩아들, 할아버지가 지키고 있던적도 있었다.
 
3. 연남동철길 늙은이.
 
연남동 철길 (지금은 없어졌지만),  옆에 깻잎을 땄다. 그러는 사람 많음.
 
깻잎따면  여자늙은이가 땡깡을 부렸다. 그동네 몇년살고 늘 다녀봤지만 철길에서 미리 지키고 땡깡부리는 늙은이또한 부패경찰 박성동스토킹이후에 생긴 것.
 
여자 늙은이는 내게 땡깡부리려고  깻잎있는데서 기다렸음. 땡깡에 시달려 그후 안갔음.
 
4. 김양곤, 미래에셋신촌점 2000~02년경 사이버룸 다녔는데 옆자리.
날 사람들에게 모함하고 다녔음. 이자는 여자의 말투로 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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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까지 쫒아와 모함한 사람들

13.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까지 쫒아와 모함한 사람들

 

 

박성동일당해꼬지를 피해 2005년부터 호주,뉴질랜드, 캐나다로 떠돌고 있으나 외국까지 쫓아와 해꼬지하고 있다.
 
1. 호주 auburn에 살때 룸메이트로 현대차에서 일했고 workingvisa 온 2006년, 4학년 복학한 울산공대 재웅, 김철규에게 모함을 했다. 그래도 그땐 설마했다.
 
뉴질랜드에 아는사람 전혀 없는데, 알바했던  밀포드쇼핑센타 울월스옆 커피숍 아이리스(springvally;중국여주인), 그 안 한국인 카페, 쇼핑센타건너 가마솥, Albany 남산, 만식당주인들에게 한국에서 했듯이 온갖모함을 했다.
 
외국까지 쫓아온 것 알게된 것은 한국떠난지 1년이 다될쯤 , 1년 리턴항공표가 다됬을때
 
(박성동 해코지 특징 1. 자신들이 해코지한 것을 나한테 알려줌, 2. 맨 마지막에 알려줌..예로 항공표 만기가 됬을때 알려줌)
 
2. 2006년 2월, 뉴질랜드17 trevone pl sunnynook에 몇년간 세입자가 안들어와, 방들이 비어 7개월 혼자 살았는데, 30대 후반 이상기 친척 경상도남자가 갑자기 이사오고  행패부리고 나서. 
 
매일 욕실 변기와 바닥에 소변을 갈기고, 그소변을 딱으라는 행패등, 이해할수없는 무식한 행동들을 했는데, 박성동은 '외국까지 스토킹하러왔다'는걸  알려주고 싶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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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부패경찰박성동 금융거래스토킹 고발합니다

14. 부패경찰박성동 금융거래스토킹 고발합니다

 

 

세금을 안내려고 현대, lg, 동양증권에 온라인 거래를 매일 했다. 가방에 공인인증서 디스켓을 두면 도난당했다. 디스켓 없어지면 며칠후 금융거래를 못했다.
 
박성동 해꼬지로 자주 이사다녀서 컴퓨터를 살수없고, 인터넷 계약도 2,3년이라  연희동사무소의 컴퓨터 매일 이용했다.
 
2004년 7,8월에도 공인인증서를 훔쳐, 현대,LG증권에 전산팀에 누설시켜서 바꿔놨다.
2003년 현대증권 전산팀 정철, 2004년 LG 전산팀 오광배과장등, 동양증권 콘텐츠 팀,교보, 다 나를 알고있다.
 
예를 들어, 한증권사 10개의 지점에서 계좌를 만들면 계좌가 10개됨. 1계좌당 3,000만원 입금한다. 100만원 출금시 세금이 10원이라면 두번에 나눠 출금하면 세금이 없다.
3천만원을 출금하면 한계좌당 출금은 많아야 수십번, 몇년간 매일 이런식으로 거래해도 증권사도 전혀 모르고, 30분정도면 10억 정도 출금할수 있음.  엔터키만 누르면 계속 같은 금액이 출금되므로,
그런식으로 수억원을 매일 수백번 거래를 했다. 오늘 입금했다 내일 수백번에 나눠서 출금하는식,
그런식으로 거래하는걸 이들이 어떻게 알았는지. 비밀번호는 어떻게 알고,
 
증권사 HTS ; 수익증권(MMF) 입출금 창을 열면 . . .(편의상 1,2,3,4로 표기)" 1=출금 계좌번호, 2 =비밀번호, 3 =출금액, 4 =입금 계좌번호 " 가 나오는 창에서,  1,2,3,4 에 한번 숫자를 입력해서 엔터키만 누르면 수십,수백번의 거래(매도, 매수)가 저절로 이뤄지는데, 이걸 못하게 막아뒀다.
 
한번 거래하면  1,2,3,4 가 다 지워지고 입력을 다시하게끔. 그러면 어느 세월에 1,2,3,4를 다 손으로  많은 숫자를 키보드로 입력하나?
 
현대증권 출금해서 LG로,동양으로,동양에서 교보증권..  박성동일당은 증권사마다 스토킹하며  금융거래를 불법적으로 조사하고 누설했음.
이들의 범법행위인 금융실명제위반은 힘있는 기관에서 철저히 조사한다면 꼭 밝혀진다.
(나의 금융거래조사가 아니라 이자들의 불법으로 금융거래조사하고 누설한것을 밝히는것)박성동이 제일 두려워하는부분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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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부패경감 박성동을 다시 만나적 있나?

15. 부패경감 박성동을 다시 만나적 있나?

 

 

1. 97년 서울경찰청, 마포청문감사실 고발한후, 조사받고 나온날.
 
연남동내 길에 다니면 하루종일 순찰차가, 사이렌, 경광등울리며 연남동에서 해코지해서 철길로 다녔는데 , 집근처 철길위에서 박성동이 모래내역 방향에서 내앞으로 왔다가 다시 모래내역 방향으로 갔다.
 
감히 "경찰을 고소해?""너두고 보자" 라는 오만한 태도였다.
 
2. 2000년 연희동으로 이사후.
연희동 이사전에는 하루종일 박성동일당이 순찰차로 쫒아다니면 괴롭혔는데, 연희동 이사후  다 없어졌다.
 
신기했다. 하루종일 수십,수백대 순찰차가 다 사라졌다.
 
나중에 안건데, 연희,동교,상도동 같은 대통령이 사는 동네는 일반 경찰관할이 아니라서 , 순찰차를 동원해서 해코지를 짭새들이 맘대로 못하는 곳이었다.
 
2~3달 순찰차를 하루종일 못봐서 박성동 일당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생각했다.
 
개데리고 홍제천 산책갔는데 ,  매일 산책가는것을 알고 미리 박성동이 지키고 서있었다.(낙원교회 근처) 그후 여기서 몇차례 이자를 봤다고 감찰실에 증언했는데, 감찰관은 무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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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박성동을 언제 처음 만났나?

16. 박성동을 언제 처음 만났나?

 

1997년 마포구 연남동254-74에 살때, 자전거를 집앞 건물에 늘 세웠는데, 그집 거주자가  매일 자전거를 세우는 걸 알면서, 그날따라  시비걸더니 주거 침입으로 고발했다. 앞집에 살고, 신문, 우유배달부등 하루종일 사람이 드나드는데  무슨 죄를 졌냐. 그냥 풀려났다.
 
오래 감시했었는지 아무 의심점을 발견하지 못하자, 어느날 연남동 파출소장이 기분좋게 인사를 했다.
너무 불쾌했다. 재수없이 순찰차에 범죄자처럼 파출소까지 불려갔던 불쾌한 기억때문에 박성동에게 욕했다.
 
그후  박성동은 앙심을 품고 해꼬지했다. 연남 파출소경찰들을 총동원, 방 앞길을 싸이렌 울리며 경관등 번쩍이며 하루종일 지나고, 새벽에도 사이렌 소리에 잠 잘수가 없었다.

길에서도 순찰차가 계속 경관등 번쩍이며 사이렌 울리며 내옆을 지나고 ,,, 순찰차 두대가 동시에 한대는 내앞에서 뒤로, 한대는 뒤에서 앞으로, 연남동에서 연남동 파출소경찰들이  전력투구로 스토킹했다.
 
너무 괴로워서 경찰비리를 마포서 청문감사실에 고발했는데 나혼자만 있을때만 스토킹했기때문에 증거가 없어서 무혐의로 끝났다. 고발했다고 스토킹이 더심해졌다.
 
연남동에서만 스토킹했기때문에, 1999년 마포구 신수동 205로 이사갔다. 이사후 오랫만에 잠도 잘자고 평화롭게 보냈다. 그런데 이사 일주일쯤, 외출후 돌아오니 발코니문이 뜯어져있었다.
 
무서웠지만, 연남동 경찰들한테 심하게 스토킹당해서 경찰이 더 무서운데, 경찰에 신고하나? 무서워도 무서운채 그냥 살아야지. 연남 파출소경찰들이 신수동까지  쫓아올줄 상상도 못했다.. 죄를 진적이 있나. 그땐 순찰차 해꼬지도 없었고,
 
1년후 이사짐 챙기며 열쇠가 하나씩 없어진걸 발견했는데, 발코니 침입후 열쇠를 훔쳐서 매일 집에 들어와서 짐을 뒤졌던 거였다 .
 
신수동 이사후 몇달간 조용했던건 감시하느라, 부모한테 많은 돈 받았는데,  범죄를 저질렀을까 뒤를 캐고, 안심시켜서 범죄를 저지르기를 기다리느라, 그리고 매일 집에 침입해서 짐을 뒤지느라, 조용했던거였다.

방열쇠를 훔쳐 매일 침입,, 짐을 뒤져 더이상 털게 없게 되자 몇달후 다시 해꼬지가 시작.
연남동 살땐 연남동에서만 순찰차로 겁줬는데 , ,신수동 이사후 2달 정도 지나니까 다시 해꼬지가  더 심해졌다. 명동가면 명동순찰차, 종로가면 종로순찰차, 일산가면 일산 순찰차 , , 가는데 마다 순찰차 , 매일 다니는 길목에 미리 순찰차나 짭새 세워두고 겁주기, 버스를 타도 차창가에는 못앉아, 차창가에 앉으면 순찰차가 버스 바로 옆에 경관등 번쩍이며 끝까지 따라오고, 길을 다녀도 바로 옆에 순찰차가 계속 따라오고 대로건 동네 골목이건, 두대가 동시에 한대는 내 앞에서 뒤로,  한대는 뒤에서 앞으로, 경관등 번쩍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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