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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6/23
    함께 살면 뭐 어때?(8)
    아침과 화랑이

함께 살면 뭐 어때?

*이글은 카노스 수기집에 실린글입니다.

 


함께 살면 뭐 어때? 

                                                    아 침

나는 동성애자인권연대라는 단체에서 10년 정도 활동하고 있는 활동가다. 그러다보니 단체 활동을

하면서 HIV에 감염된 회원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고, 또 그들을 통해 감염인들의 삶에 대해 조금이나마

고민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처음엔 이런 경험들이 나에게 어떤 도움이 될지 전혀 알지

 못했다. 단지“에이즈는 특별하지 않다”라는 이성으로만 자리 잡고 있었다. 지금 한명의 동성애자 감염인과 살아가고 있는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것은 매우 소중한 경험이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에이즈에 대한 공포가 덜하더라도 이성만으로 극복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동성애자 단체 활동을 한다고 해서 반드시 에이즈로부터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동성애자인권연대 내부적으로도 다양한 에이즈 세미나를 하고 에이즈와 관련한 이슈에 개입해 오면서 “이 정도는 됐지”라는 생각을 해 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회원으로 소속되어 있는 감염인들은 자신의 감염사실을 쉽게 드러내지 못했다. 왜 일까. 난 한번도 이 문제에 대해 깊게 고민해보지 못했다. 그리고 어떤 노력이 단체 안에서 필요한 지 잘 몰랐다. 2년 가까이 감염인 공동체와 회원들을 만나고 있는 지금에서야  조금씩 알아가는 것 같다.

한번은 함께 사는 친구와 크게 싸운 적이 있다. 동성애자인권연대에서 회원들을 대상으로 한 에이즈 세미나를 기획하고 있었는데 함께 사는 친구가 ‘HIV 감염인 인권’에 대한 주제발표 교육자로 적합하다는 생각에 사무실에 나와 달라고 설득했다. 물론 동의를 구하는 과정이 있었지만 매우 미흡했다. 솔직히 그가 두려워했던 것을 잘 알지 못했다. 그는 1시간 정도의 교육 시간이었지만 매우 힘든 결정이었다고 했다.

지금도 그는 사무실에 가기를 껄끄러워한다.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자기의 존재가 회자되는 것에 대한 부담이 크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어떤 태도로 대화를 시작해야 되는지 잘 모르겠다. 난 감염인 공동체에 부담없이 갈 수 있는데(오히려 초대해주길 바란다.) 그는 왜 힘든 걸까.  

만남.

2005년 늦가을 무렵 질병관리본부 앞에서 개최된 기자회견 현장에서 우린 처음 만났다. 그날 사회로 보기로 했던 나는 길을 잘 못 들어 10분 정도 늦게 도착했다. 마스크를 쓴 10명 남짓한 사람들이 어색하게 팔을 흔들며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이 날 기자회견은 법정전염병 병력자들의 개인신상정보 공개를 반대하는 내용이었다) 이미 사회는 다른 활동가에게 넘어갔고 난 미안한 마음에 기자회견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어색한 인사를 나누며 뒤에 섰다. 기자회견이 마무리되었다. 점심식사를 하러 가기 전 기자회견에 참석한 사람들은 미라처럼 꽁꽁 감싼 얼굴을 보이기 시작했다. 모자를 벗고, 마스크를 벗었다. 기자회견에 참가한 사람들이 둥그렇게 모여 인사를 나누는 시간. 단체와 이름, 그리고 기자회견 소감을 말하는데 솔직히 그때 참가했던 사람들이 뭐라고 자신을 소개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키 작고 귀엽게 생긴 친구 한 명이 아주 재잘스럽게 떠들고 있었다는 것과 점심식사로 김치찌개를 먹었다는 사실만 기억날 뿐이다.

그 이후 우린 국가인권위원회 앞 기자회견장에서 또 만났다. 다행히 그 날 사회는 늦지 않았다. 부산한 사람들 틈 속에서 또 만날 수 있었다는 것에 매우 반가웠다. 그 이후 난 한달 정도 이미 그를 알고 있던 활동가들을 통해 그에 대한 정보를 들을 수 있었다. 오히려 캐냈다고 하는 것이 더 맞겠다. 2006년 1월, 난 그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솔직히 그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는 사실에 대해 불편해하는 회원들이 있을까봐 평소 소개팅 할 때처럼 자신있게 말하진 못했다. 나의 마음을 알아챘는지 그가 나에게 처음 말했던 것은 “난 감염인인데 만날 수 있겠느냐, 부담주기 싫다”였다. 지나친 음주로 인해 그날 정확한 상황이 기억나진 않는다. 하지만 혀 그날 그의 걱정은 음주가무와 나의 웃음소리에 뭍혔던 것 같다. 지금은 농담처럼 자기 스타일도 아니고 외모도 별로라고 하며 핀잔을 준다. 그만큼 편해졌다는 뜻이겠지. 우린 어색했지만 이렇게 시작했다.    

갈등이 없으면 그것이 더 문제아냐

우리가 지금 함께 살고 있는 곳은 서울 성북동 작은 한옥집이다. 이사 온지 2개월 정도 되었다. 전에 살던 집이 지하철에서 내려 마을버스를 타고 산꼭대기까지 올라갔었던 것에 비하면 지금은 궁궐 같은 집이다. 무엇보다 대문을 열고 들어오면 독립적인 공간이 보장되고 방문을 열면 하늘이 보인다는 사실이 매우 꿈만 같다. 가끔 비오는 날 의자에 앉아 담배를 피고 있으면 기분까지 묘해진다.

우리 집은 여느 집과 마찬가지로 아침 7시부터 시작된다. 난 시계소리가 울리면 일어나 직장을 나갈 채비를 한다. 아침식사는 거의 하지 않으니 씻고 옷만 갈아입으면 금방 나갈 수 있다. 회사까지는 버스로 20분 거리. 멀지 않아 좋다. 회사 일과는 나와 관계된 모든 것을 감추는 것부터 시작된다. 대부분의 시간을 회사에서 보내지만 누구와 살고 있는지, 어떤 관심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지 가까운 동료조차 모르게 철저히 감추고 일한다. 비밀이 밝혀질 위태위태한 순간들이 있었지만 지금까지 잘 버텨온 걸 보면 가끔 내가 대견하다는 생각도 든다. 퇴근을 하고 돌아오면 대개 밀린 일을 한다. 활동이 대개 저녁에 몰려있고 글을 쓰는 일이 많다보니 컴퓨터 앞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것 같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같이 저녁을 먹거나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이야길 나눈다. 주말에는 더 심하다. 우린 서로 활동하는 단체가 다르다보니 주말에 데이트하는 건 거의 꿈도 꾸지 못한다. 시간을 맞춰 영화를 보는 정도가 전부이지 않을까.  

함께 산 시간보다 각자 살아온 시간이 더 길다보니 사소한 문제로 부딪히는 경우도 정말 많다. 가사 일을 분담하는 데 있어 특히 심하다. 밥, 반찬을 만들거나 빨래, 청소하는 모든 일을 파트너가 담당한다. 난 평일에 조금 일찍 들어오는 날이나 주말에 시간 날 때 정도 도와주는 것 같다. 또 나는 이 방 저 방 돌아다니며 많이 어지럽히고 정리를 잘 못한다. 함께 사는 시간이 늘어갈 수록 역할분담이 잘 안되고 오히려 내가 당연하게 여기는 듯 하다. 파트너는 뒤를 쫓아다니며 잔소리를 하지만 난 그냥 “알았어. 잘할께”라고 말하고 또 변함이 없다. 조금씩 나의 역할을 늘려야겠다.

나의 파트너는 현재 일을 하고 있지는 않다. 물론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는 일이 아닐 뿐이지 오히려 나보다 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상담하고, 뛰어다닌다. 파트너가 아직 약을 먹고 있지는 않지만 잔병에도 몸이 많이 아플 때가 있어 천천히 생각하고 몸에 맞는 일을 택하라고 한다. 하지만 2년차 사원이 번 월급으로 독립된 공간에서 둘이 사는 건 힘든 일이다. 그러다보니 요즘 일을 다시 시작하려고 준비하는 것 같다. 난 그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함께 살자고 제안했을 때 “널 힘들게 하지 않을께”라며 멋지게 프로포즈를 했다. 설득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었지만 삶은 우리 생각과 바램대로 그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감염인과 비감염인이 함께 산다고 특별한 것은 없다. 물론 실수도 있고 작은 일에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난감해 할때가 많다. 그것이 에이즈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누구나 다 겪는 경험이기 때문이다. 다만 특별한 것이 있다면 따로 사용하는 물건으로 면도기가 있고 우리 둘이 사랑을 나눌 때 몸에 난 상처가 있으면 알려주는 정도. 파트너에게 상처가 될 것 같아 말하지는 못했지만 처음엔 많이 두려웠다. 에이즈는 특별하지 않다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어보아도 단 둘이 있을 땐 ‘혹시’라는 생각을 떨쳐버리지 못했다. 처음보다 덜하긴 하지만 물론 지금도 그렇다. 다만 처음과 달라진 점은 서로에게 솔직해졌다는 것. 내가 무엇을 두려워하는 지 알려주면 파트너는 상처를 받기 보다는 두려할 이유가 없음을 설명해준다.

요즘 우리 둘의 관심은 운동이다. 서로 함께 의지하며 살아서인지 살이 부쩍 쪘다. 내가 보더라도 1년 전 사진과 비교해보면 몰라보게 달라졌다. 파트너가 먼저 헬스클럽에 등록했고 내 런닝화까지 구입했다. 이젠 어쩔 수 없이 ‘달려야’ 할 판이다. 휴~. 그래도 참아야지. 그게 삶이니까.  

우리 둘이 바라는 희망 : 대문 밖 평화

 



우리 집엔 작은 강아리 한 마리가 있다. 사람이라면 ‘무조건’ 따르는 유기견이다. 이름은 ‘단지’ (대개 애물단지로 통한다.) 함께 산지 1년이 넘었는데도 아직 똥오줌을 가리지 못한다. 아침에 한번. 저녁에 한번 화장실에 넣어줘야 비로소 내가 똥을 싸야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고민하는 것 같다. 단지는 나처럼 사람을 무지 좋아한다. 한번은 이사를 하는데 대문이 열려있는 틈을 타 단지가 밖으로 뛰어나갔다. 처음에 달리기가 너무 빨라 쉽게 잡지 못했지만 골목을 지나 처음 만난 사람 다리 밑에서 꼬리를 흔들고 있어 쉽게 데려올 수 있었다. 누가 집에 놀러오기라도 하면 짖고 울타리 밖을 나오려 안달이다. 사람을 가리는 법도 없다. 나이가 많던 적던 남자든 여자든 감염되었든 아니든 구분을 두지 않는다. 가끔 단지를 보면 편하고 부럽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둘이 있는 집에는 친구들이 편히 온다. 단 조건이 있다면 감염인이나 동성애자여야 한다는 거. 그리고 단지를 애교를 받아줄 수 있는 사람. 물론 에이즈 운동을 함께하는 이성애자 친구들도 올 수 있다. 친구들은 지나가는 길에 들러 밥을 먹고 가기도 하고 차 한 잔 하러 오기도 한다. 당연히 활동과 멀리 있는 회사동료나 친구들, 부모님은 오지 못한다. 집에 걸려 있는 액자나 사진, 책, 악세사리들을 보면 아마 기절할 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에 대해 그리고 나의 파트너에 대해 솔직하지 못하다는 것에 화가 날 때도 있고 억울할 때도 있다. 직장동료와 퇴근을 같이 할 때 부모님이 계신 집 근처까지 갔다가 되돌아오는 경우 더욱 그렇다.
경제적인 어려움과 주변 인간관계 속에서 겪는 갈등은 순간순간 우리를 힘들게 한다. 하루 종일 갖는 긴장은 대문을 열고 집에 들어서야 비로소 안정이 된다.

우리는 대문 밖 평화를 원한다. 그리고 작은 강아지 한 마리만이 반겨주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길 원한다. 대문 밖 평화는 에이즈에 감염된 파트너가 당당하게 치료받을 수 있고 회사동료나 가족들에게 우리의 존재와 삶에 대해 거짓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 사회다. 시장에서 필요한 물건을 살 때처럼 비용이 지불하면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은 더더욱 아니다. 많은 노력과 시간, 힘이 필요하다.

지금 밖에는 비가 온다. 비가 오면 물이 잘 빠질 수 있게 하수구를 열어두어야 한다. 이제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일상이 되어버린 일이지만 우리 삶은 아직 자연스럽지도 않고 사람들의 지루한 일상처럼 여겨지지도 않는다. 하지만 대문 앞에 레인보우(동성애자 운동의 상징물)와 레드리본 깃발을 자연스럽게 걸 수 있는 사회는 충분히 가능하다. 오늘도 아자! 아자! 파이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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