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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너네가 책임감 있는 윤리의식이 이거냐?
"돈 없는 고객은 고객이 아니라는 말??"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약이라도 안보이고, 없으면 차라리 기대라도 안하지!
눈앞에 약이 있는데 먹지 못하는 것이
환자에게는 더욱 큰 고문인걸....
이것이 정말 생명을 살린다는 제약사가 할 짓인가?
돈독이 올라도 적잖이 올라야지.
이것이 치료제를 팔아먹는 회사의 도리인가.
돈 있는 고객과 돈없는 고객을 구분하고,
이윤의 논리 앞에서 환자의 생명이 가차없는 당신들은
쓰레기라고 밖에 말할 수 밖에 없다.
한국로슈 지사장과의 면담 보고서
우리는 정말로 알고 싶었다. 기존약제에 내성이 생긴 환자에게 꼭 필요한 에이즈 치료제 푸제온의 독점권을 가진 다국적 제약기업 로슈가 햇수로 5년 동안이나 2만 5천원이라는 정부고시가를 거부하고 이 약을 한국에 공급하지 않으면서 환자들의 피를 말렸던 그 이유를 정말로 듣고 싶었다. 4년에 걸친 푸제온 공급을 촉구하는 지속적인 활동들, 기자회견, 질의서, 그리고 항의방문 끝에 로슈가 선심쓰듯 일방적으로 장소와 시간을 통보한 면담자리에 그래도 나갈 수밖에 없었던 것은 바로 그 이유를 들어보려 한 것이었다.
상식적인 우리의 기대는 적어도 원가산정서 비슷한 것이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1인당 국민소득에 합당한 계산이었다는 근거, 혹은 약의 생산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등과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한국로슈의 지사장 울스 플루어키거가 들고온 자료는 세계은행이 발행한 세계개발보고서 상의 한국경제규모순위(11위)와 국민건강보험공단 재정자료였다.
세계은행의 경제규모순위라는 것이 1인당 GNI가 아니라는 것은 차치하고(1인당 GNI로는 세계 49위에 불과), 적자에 허덕이다 결국 국민건강증진기금의 지원을 받아 간신히 유지되고 있는 것이 건강보험공단자료라는 사실을 차치하고라도, “이것들 만이” 의약품 가격의 근거가 된다는 것은 충격이었다.
“너희 나라는 우리가 판단할 때 3만원을 낼 수 있는 국가다. 따라서 3만원을 주지 않으면 푸제온은 공급할 수 없다. 우리에게 돈을 주도록 정부를 설득하라”
그들에게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약가기준 같은 것은 없었다. 제약기업에게 원가란 아무의미가 없는 것이고, 엄청난 연구개발비라는 것은 사실은 실체가 없는 것이며, 인간 생명에 대한 존중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었다. 그들의 유일한 기준은 '국가의 공적 재정과 개인의 재산이 끝장날 때까지'였던 것이다.
거대한 제약기업 로슈, 생명산업이라는 미명하에 엄청난 자금지원과 세제혜택을 받고 있는 제약산업에 생명이 끼어들 자리는 없었다.
더 이상 설명할 것이 없다는 울스 플루어키거는 자리를 떴다. 앞으로 환자단체와 대화할 일은 없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돈 없는 환자”와 대화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생명과 인도주의를 팔아서 막대한 세제혜택과 공적자금을 지원받는 제약기업으로서 감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로지 시장의 NEED”라며 인간의 존엄성을 능멸한 글로벌 제약기업 로슈를 강력히 규탄한다. 시장의 NEED는 전 세계 에이즈 환자 중 90% 이상이 개발도상국에서 살고 있는 현재 상황에서, 환자의 NEED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로슈 탐욕의 크기를 의미할 뿐이다.
우리는 멈추지 않고 제약기업이 어떻게 우리의 생명과 재산을 유린하고 조롱하는지 알려갈 것이다. 의약품을 생명이라고 믿는, 돈이 많건 적건 필수적인 의약품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 더 많은 사람들과 이 잔인한 폭력에 저항할 것이다.
2008년 7월 4일
한국HIV/AIDS감염인연대‘KANOS', HIV/AIDS인권연대 나누리+(공공의약센터,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동성애자인권연대,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인권운동사랑방)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건강세상네트워크, 건강권실현을위한보건의료단체연합(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건강사회를위한치과의사회, 노동건강연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참의료실현청년한의사회), 공공의약센터, 사회진보연대, 인권운동사랑방, 정보공유연대IPLeft, 진보네트워크센터, 진보신당연대회의, 한국백혈병환우회
촛불집회 집중인데도 불구하고 많은 분들이 카노스 후원의 밤에 오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생각보다 너무 많은 분들이 함께해 주셔서 정말 감사할 뿐이다.
카노스 활동을 하면서 이렇게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시고,
또한 카노스에 대한 기대들을 표현해 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앞으로 카노스 좋은 활동으로 보답하지 않으면 안될 거 같은 압박감이 몰려와~
뭐~ 우리 활동가들이 잘하지 않을까? ㅎㅎㅎ
*이글은 동인련 웹진 "랑"에 기고한 글입니다.
함께살아가기 : People living with HIV/AIDS! HIV/AIDS 감염인과 더불어 함께 살기
화랑이
우리의 삶은 질병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최근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질병은 일상대화에서도, 수많은 매체보도에서도 다뤄진다. 아프지 않고 건강한 삶을 살고자 하는 것이 모든 사람들의 바램이 듯 매체를 통해 건강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은 매우 쉬어졌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는 수천, 아니 수만 가지의 질병들이 있고 그 질병들을 앓는 사람들 또한 매우 많다. 우리는 이런 질병들을 앓고 있는 사람을 환자라고 말한다. 환자들은 말 그대로 아픈 사람이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질병 그대로의 아픔보다 더 큰 고통이 있다. 그것은 바로 사회의 차가운 시선과 질병에 대한 편견이다.
수전 손택의 “은유로서의 질병”이란 책은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질병의 은유와 많은 상상들이 그 질병을 가진 사람에게는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들게 다가오는지 잘 설명하고 있다. 또한 질병에 덧 씌워지는 은유를 통해 사람들이 질병을 질병 그 자체로 보는 것이 아니라 ‘다른 무엇’으로 바라보게 하는 과정을 묘사하고 있다. 쉬운 말로 풀어서 이야기 해 보자면, 질병은 하나의 치료를 받고, 원인을 찾아내야 하는 단순한 것인데 이러한 질병에 우리의 편견과 공포, 무지가 개입되어 가면서 은유의 기능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말을 자주 쓰고 접한다. ‘꿀 먹은 벙어리’나 ‘암적 존재’, ‘편집증적 사회’ 등 여러 가지 분야에 다양한 질병의 이입을 통하여 자신의 주장을 명확하게 보여주고자 한다. 이러한 말들은 해당 내용을 질병에 비유함을 통해 명확하게 문제점을 부각시켜 준다는 장점이 있다. 특히 최근에 가장 이슈가 되고 있는 광우병의 문제에서 알 수 있듯이, ‘에이즈보다 무서운 광우병이 몰려오고 있다.’라는 식의 문구를 통하여 광우병이 얼마나 공포스러운 질병인지 부각시키고 있다. 하지만 이런 표현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에이즈라는 질병에 대해 갖고 있던 선입견이 쉽게 개입되게 만든다. 오랜 세월동안 개개인의 삶 속에 녹아져 있었고 사회의 암묵적인 동의를 통해 존재했던 질병에 대한 편견이 다른 질병과 비교됨에 따라 편견과 은유의 벽은 더욱 공고해진다. 또한 이러한 내용은 우리의 생각을 통해서 언제든지 뿜어져 나올 수 있다.
은유로서의 질병, 에이즈
에이즈 이야기를 해보자면, 에이즈는 더 이상 치명적이고 무서운 질병이아니다. 27년 전만해도 에이즈는 공포의 질병이었다. 에이즈에 대한 치료법도 알려지지 않았고, 원인을 알기도 어려워 ‘제 2의 흑사병’이라고 불려지며,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1986년 미국에서 최초의 에이즈 치료제인 지도부딘(zidobudone)의 개발로 인하여 에이즈 치료의 희망을 주었다. 이후에 여러 가지의 치료제가 개발이 되었고, 일명 칵테일 요법이라고 부르는 3제 병용요법을 통하여 에이즈는 치료 가능한 질병이 되었다. 아직까지 완치제는 개발이 되지 않았지만, 에이즈를 당뇨와 고혈압처럼 적절한 치료를 통하여 관리가 가능하게 된 것이다. 현재에도 다국적 제약회사들은 더 좋은 치료제와 완치제를 개발하기 위해서 돈을 쏟아 붓고 있다. 물론 새로운 치료제가 개발되어도 모든 환자들이 접근조차 못하고 있지만.
에이즈의 치료제 개발과 의료기술의 발달로 환자들은 ”에이즈로 인한 죽음”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고, “치료를 통하여 일상생활”이 가능해졌다. 하지만 에이즈 환자들의 현실로 돌아오면 모두 꿈같은 이야기다. 일상생활이 가능해졌다고 하지만 감염인들은 자신의 질병이 알려질까 두려워 꼭꼭 숨긴 채 살아가고 있다. 이것은 사회가 만들어 놓은 에이즈에 대한 은유와 공포 때문이다. 정부가 앞장서 에이즈에 덧 씌어 진 은유를 벗어내기 위해 노력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 HIV/AIDS 감염인들을 끊임없이 관리하려 든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에이즈 관련 기사를 통해 “공포, 환자판명, 접대부, 매춘, 성관계, 격리수용, 색출, 동성애, 관리대상자”와 같은 단어들을 접한다는 것은 결코 어렵지 않다. 매 분기마다 몇 명의 감염인들이 발생했는지, 감염인 증가 속도에만 관심을 기울이지 편견을 해소하거나 감염인들의 인권을 개선시키려는 노력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 자신의 질병을 떳떳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이것이 바로 감염인들이 해답 없이 더 숨어들게 만드는 이유다.
질병에 대한 은유는 한 사람을 죽음으로까지 내몰 수 있다. 질병을 질병 그 자체로 보지 못하고, 그에 대한 은유와 상상을 덧씌울 때 그 질병은 더 이상 의학적으로 판단할 수 없게 된다. 치료제로 생명을 연장하고 일상생활을 가능하게 했다고 하더라도 질병을 은유로 말하기 시작할 때 연장된 삶에 대해 한탄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질병을 그 자체로만 이해되어야 한다. 에이즈가 예방 가능한 전염병이고, 치료제를 복용하면 일상생활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을. 은유보다 질병을 명확히 보는 눈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이글은 카노스 수기집에 실린글입니다. 하면서 HIV에 감염된 회원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고, 또 그들을 통해 감염인들의 삶에 대해 조금이나마 고민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처음엔 이런 경험들이 나에게 어떤 도움이 될지 전혀 알지 못했다. 단지“에이즈는 특별하지 않다”라는 이성으로만 자리 잡고 있었다. 지금 한명의 동성애자 감염인과 살아가고 있는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것은 매우 소중한 경험이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에이즈에 대한 공포가 덜하더라도 이성만으로 극복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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