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이고 나발이고, 나는 그저 백수 찌질이 빚꾸러기다.” 스무 살 엠건이 말했다. 전국에서 모인 300여 명의 활동가들이 잠시 할 말을 잊었다. 지난 10월 ‘2010 전국 시민·환경운동가 대회’에 참석한 청소년 인권운동가 엠건은 ‘안티 청춘’을 선언했다. 5분짜리 파워포인트(ppt) 파일로 된 발표문에는 ‘젊음, 도전, 패기’ 따위로 포장된 청춘이 허상이라고 적혀 있었다. 자리에 참석한 정소연 문화연대 활동가(26)도 20대가 가진 무력감을 경험했다. 일을 도모해도 사람들이 당최 모이지 않았다. 문화연대와 문화사회연구소가 주최한 ‘2010 청춘을 말하다’는 그날의 고민에서 시작해 기획되었다.
12월13일, 서울 공덕동 문화연대에서 청춘에 대한 첫 수다가 벌어졌다.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의 저자 엄기호씨가 자리했다. 2007년 <88만원 세대> 출간을 전후로 청춘과 20대에 대한 담론이 넘쳤다. ‘20대 개새끼론’이 대표적이다. 김용민 한양대 겸임교수는 “이미 너희는 뭘 해도 늦었다”라며 분노할 줄 모르고 남의 탓만 하는 20대를 조롱했다. 대신 촛불세대인 10대에 희망을 걸겠다고 말했다. 20대를 향한 비판의 초점은 ‘왜 짱돌을 들지 않는가’(우석훈 박사가 <88만원 세대>에서 한 말)로 좁혀졌다. 세상과 불화해야 하는 나이임에도 ‘닥치고’ 토익 공부나 하는 청춘에게 잉여·루저라는 딱지가 붙었다. 희망청·청년유니온 등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조금씩 나오기 시작했지만 지난 3월, 고려대생 김예슬씨의 자퇴에 열광한 건 486 세대였다. 정작 20대는 ‘그래서 어쩌라고?’ 하며 시큰둥했다.
그 와중에 <이것은 왜 청춘이…>로 등장한 엄기호씨는 ‘너희는 괜찮아’라고 얘기했다. 꾸짖거나 동정하는 대신, 오히려 잉여의 열정을 찬양했다. 그는 덕성여대와 연세대에서 강의하며 많은 대학생을 만났다. 3학점짜리 교양 과목에는 매주 과제가 딸렸다. 자신의 얘기를 직접 쓰고 공론화하는 훈련이다. 처음에는 두세 줄 끼적이던 학생들이 나중에는 온갖 억하심정을 몇 쪽에 걸쳐 늘어놓았다.
20대 질타하는 건 기성세대의 ‘착시현상’
12월13일 강단에 선 그는 20대를 앞에 두고 20대가 어쩌고 하는 것만큼 우스운 게 없다고 말했다. 대신 그들을 바라보는 기성세대에 대해 말을 시작했다. “그들은 착각하고 있다. 어느 나라도 세대 자체가 집합 행동의 주체가 됐다는 얘기는 못 들어봤다. 세대 차원보다 빈곤·노동 등의 운동 영역이 결합되어야 움직일 수 있다.” 그런데도 특히 20대가 질타받는 것은 한국의 압축적인 근대화 과정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다른 나라가 수백 년간 겪을 일을 50년에 압축해 겪다보니 민주화는 386, 경제 살리기는 58년 개띠, 이렇게 상징화됐다.” 한국의 역사가 그렇게 흘러왔을 뿐인데, 마치 세대가 역사의 주체인 듯한 착시 현상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착시 현상이라는 근거는 ‘386’이라는 용어에 있다. 엄씨가 보기에 386은 배제를 함축한 폭력적인 단어다. 당시에는 70%가 비대학생이었다. 그런데 386이라는 용어로 인해 엘리트를 제외한 나머지 청춘의 기억은 지워졌다. 그러면서 지금의 20대에게 고백과 자기반성을 강요한다. 그는 “청춘을 동시대의 파트너로 보지 않는 거다. 나는 생활인이고 너는 자유인인데 왜 싸우지 않느냐고 묻는다”라고 해석했다.
20대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대학생 김소이씨(24)는 이런 의문이 들었다. ‘어른들이 그렇게 비판하는 데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그 스스로도 답답함을 느낄 때가 많다. 대학에서 취업과 고시 이외의 이야기를 하면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교수들이 적극적이어도 학생이 심드렁하다. 김씨 자신도 마찬가지다. 정치에 관심이 있지만 정작 투표 날에는 자취방에서 쉬었다. 정치와 사회를 알기 전에 냉소부터 배웠다.
엄기호씨는 김씨에게 “지금 20대에 문제가 없다는 게 아니고 기성세대에게만 청춘을 이해하라는 것도 아니다”라고 답했다. 다만 이들이 이럴 수밖에 없는 조건을 기성세대라 불리는 사람들이 이해해야 한다는 걸 강조했다. “사회가 요구하는 궤도에서 벗어났을 때 맞부딪칠 상처와 실망에 대한 범퍼가 없으면서 무조건 짱돌을 들라고 하는 건 무책임하다.”
만화 <원피스>와 <코난>은 엄씨가 20대를 이해하는 방식을 설명할 때 자주 드는 예이다. 둘 다 성장에 대한 얘기다. <코난>은 불의에 맞서 새 공동체를 찾아나서는 주인공의 이야기로 목적이 뚜렷하고 서사적이다. ‘푸른 바다 저 멀리 새 희망이 넘실거리는’ 새 시대를 말한다. <원피스>는 젊은 층에게 인기 있는 해적들의 모험담이다. ‘중구난방 에피소드의 무한 반복’으로, 서사적 완결성은 중요하지 않다. 순간순간 에피소드의 즐거움을 추구한다. 만화에서는 공동체나 공동선의 가치가 아니라 우연히 합류한 해적 동료와의 교감과 공감이 주로 그려진다. <코난>은 기성세대에게, <원피스>는 20대에게 어필한다.
이날 엄기호씨는 즉석에서 청중에게 간단한 설문조사를 했다. 인디 밴드 브로콜리너마저의 ‘졸업’과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스끼다시 내 인생’, 장기하의 ‘싸구려 커피’ 중 좋아하는 노래를 물었다. 셋 다 ‘징글징글’한 잉여의 삶을 이야기하는 공통점이 있다. 20대는 주로 브로콜리너마저의 노래 가사에 가장 공감했다. 적당히 거리를 두되 ‘이 미친 세상에 어디에 있더라도 행복하라’며 너에게 내가 있다고 공명(공감)하기 때문이다. ‘싸구려 커피’는 담담하게 관조하고, 달빛요정의 노래는 지나치게 처절하다. 그가 이해하기로 지금의 청춘을 움직이는 건 과거 세대처럼 ‘앎’이나 당위성이 아니라 ‘공감’이다.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건가?” 책 출간 이후 만난 기자들마다 엄씨에게 대안을 물었다. 이날 자리한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얼마 전부터 ‘에너지 보존’과 ‘일상의 십일조’를 말하기 시작했다. 그냥 이대로 쭉 살면 된다는 다소 허무한 대안이다. 대신 인생의 10분의 1 정도를 남과 교제하며 정치적 시간을 갖고, 그 속에서 에너지를 보존하는 것. 그게 지금 ‘이 미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소규모 모임을 도모하는 것. 에너지가 목구멍까지 차서 행동으로 옮기지 않을 수 없는 순간이 올 때 적확한 언어로 이야기하기 위함이다.
두 시간 예정된 강연이 네 시간을 향해 치달았다. 질문과 자기 고민으로 쉴 틈이 없었다. 엄기호씨는 에너지 보존의 가장 좋은 방법은 ‘뒤풀이에서의 교류’라고 말했다. 뒤풀이는 새벽 1시까지 이어졌다. 그는 희망의 사례로 연금 개정에 들고일어난 프랑스 젊은이와 40년 만에 ‘본토 고속철도’를 두고 폭력 투쟁을 일으킨 홍콩의 바링허우(1980년대 이후 출생자) 세대를 들었다. 그들의 잠재력도 독서토론회 등 소규모 조직체에서 에너지를 보존한 결과라는 것이다.
12월13일, 서울 공덕동 문화연대에서 청춘에 대한 첫 수다가 벌어졌다.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의 저자 엄기호씨가 자리했다. 2007년 <88만원 세대> 출간을 전후로 청춘과 20대에 대한 담론이 넘쳤다. ‘20대 개새끼론’이 대표적이다. 김용민 한양대 겸임교수는 “이미 너희는 뭘 해도 늦었다”라며 분노할 줄 모르고 남의 탓만 하는 20대를 조롱했다. 대신 촛불세대인 10대에 희망을 걸겠다고 말했다. 20대를 향한 비판의 초점은 ‘왜 짱돌을 들지 않는가’(우석훈 박사가 <88만원 세대>에서 한 말)로 좁혀졌다. 세상과 불화해야 하는 나이임에도 ‘닥치고’ 토익 공부나 하는 청춘에게 잉여·루저라는 딱지가 붙었다. 희망청·청년유니온 등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조금씩 나오기 시작했지만 지난 3월, 고려대생 김예슬씨의 자퇴에 열광한 건 486 세대였다. 정작 20대는 ‘그래서 어쩌라고?’ 하며 시큰둥했다.
ⓒ<그들은 왜 파리에 갔을까> 문신기 제공
|
그 와중에 <이것은 왜 청춘이…>로 등장한 엄기호씨는 ‘너희는 괜찮아’라고 얘기했다. 꾸짖거나 동정하는 대신, 오히려 잉여의 열정을 찬양했다. 그는 덕성여대와 연세대에서 강의하며 많은 대학생을 만났다. 3학점짜리 교양 과목에는 매주 과제가 딸렸다. 자신의 얘기를 직접 쓰고 공론화하는 훈련이다. 처음에는 두세 줄 끼적이던 학생들이 나중에는 온갖 억하심정을 몇 쪽에 걸쳐 늘어놓았다.
20대 질타하는 건 기성세대의 ‘착시현상’
12월13일 강단에 선 그는 20대를 앞에 두고 20대가 어쩌고 하는 것만큼 우스운 게 없다고 말했다. 대신 그들을 바라보는 기성세대에 대해 말을 시작했다. “그들은 착각하고 있다. 어느 나라도 세대 자체가 집합 행동의 주체가 됐다는 얘기는 못 들어봤다. 세대 차원보다 빈곤·노동 등의 운동 영역이 결합되어야 움직일 수 있다.” 그런데도 특히 20대가 질타받는 것은 한국의 압축적인 근대화 과정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다른 나라가 수백 년간 겪을 일을 50년에 압축해 겪다보니 민주화는 386, 경제 살리기는 58년 개띠, 이렇게 상징화됐다.” 한국의 역사가 그렇게 흘러왔을 뿐인데, 마치 세대가 역사의 주체인 듯한 착시 현상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착시 현상이라는 근거는 ‘386’이라는 용어에 있다. 엄씨가 보기에 386은 배제를 함축한 폭력적인 단어다. 당시에는 70%가 비대학생이었다. 그런데 386이라는 용어로 인해 엘리트를 제외한 나머지 청춘의 기억은 지워졌다. 그러면서 지금의 20대에게 고백과 자기반성을 강요한다. 그는 “청춘을 동시대의 파트너로 보지 않는 거다. 나는 생활인이고 너는 자유인인데 왜 싸우지 않느냐고 묻는다”라고 해석했다.
20대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대학생 김소이씨(24)는 이런 의문이 들었다. ‘어른들이 그렇게 비판하는 데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그 스스로도 답답함을 느낄 때가 많다. 대학에서 취업과 고시 이외의 이야기를 하면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교수들이 적극적이어도 학생이 심드렁하다. 김씨 자신도 마찬가지다. 정치에 관심이 있지만 정작 투표 날에는 자취방에서 쉬었다. 정치와 사회를 알기 전에 냉소부터 배웠다.
엄기호씨는 김씨에게 “지금 20대에 문제가 없다는 게 아니고 기성세대에게만 청춘을 이해하라는 것도 아니다”라고 답했다. 다만 이들이 이럴 수밖에 없는 조건을 기성세대라 불리는 사람들이 이해해야 한다는 걸 강조했다. “사회가 요구하는 궤도에서 벗어났을 때 맞부딪칠 상처와 실망에 대한 범퍼가 없으면서 무조건 짱돌을 들라고 하는 건 무책임하다.”
만화 <원피스>와 <코난>은 엄씨가 20대를 이해하는 방식을 설명할 때 자주 드는 예이다. 둘 다 성장에 대한 얘기다. <코난>은 불의에 맞서 새 공동체를 찾아나서는 주인공의 이야기로 목적이 뚜렷하고 서사적이다. ‘푸른 바다 저 멀리 새 희망이 넘실거리는’ 새 시대를 말한다. <원피스>는 젊은 층에게 인기 있는 해적들의 모험담이다. ‘중구난방 에피소드의 무한 반복’으로, 서사적 완결성은 중요하지 않다. 순간순간 에피소드의 즐거움을 추구한다. 만화에서는 공동체나 공동선의 가치가 아니라 우연히 합류한 해적 동료와의 교감과 공감이 주로 그려진다. <코난>은 기성세대에게, <원피스>는 20대에게 어필한다.
ⓒ시사IN 안희태
엄기호씨(위)는 20대 청춘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방법으로 ‘일상의 십일조’와 ‘에너지 보존’을 들었다. |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건가?” 책 출간 이후 만난 기자들마다 엄씨에게 대안을 물었다. 이날 자리한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얼마 전부터 ‘에너지 보존’과 ‘일상의 십일조’를 말하기 시작했다. 그냥 이대로 쭉 살면 된다는 다소 허무한 대안이다. 대신 인생의 10분의 1 정도를 남과 교제하며 정치적 시간을 갖고, 그 속에서 에너지를 보존하는 것. 그게 지금 ‘이 미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소규모 모임을 도모하는 것. 에너지가 목구멍까지 차서 행동으로 옮기지 않을 수 없는 순간이 올 때 적확한 언어로 이야기하기 위함이다.
두 시간 예정된 강연이 네 시간을 향해 치달았다. 질문과 자기 고민으로 쉴 틈이 없었다. 엄기호씨는 에너지 보존의 가장 좋은 방법은 ‘뒤풀이에서의 교류’라고 말했다. 뒤풀이는 새벽 1시까지 이어졌다. 그는 희망의 사례로 연금 개정에 들고일어난 프랑스 젊은이와 40년 만에 ‘본토 고속철도’를 두고 폭력 투쟁을 일으킨 홍콩의 바링허우(1980년대 이후 출생자) 세대를 들었다. 그들의 잠재력도 독서토론회 등 소규모 조직체에서 에너지를 보존한 결과라는 것이다.
최근 댓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