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반장
- “축적(蓄積)”과 “소외(alienation)"의 논리에 대한 우발적 반항
정확한 제목은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이다.(매우 길다.) 제목대로 주인공은 홍반장(김주혁)이고, 그의 직업은 반장이다. “통, 반” 할 때의 그 반장. 그러나 그의 직업이 거기에 한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 영화의 첫 번째 모티프가 된다.(두 번째 모티프는 상업영화로서 마땅히 갖추어야 할 덕목, 곧, 세속적 남녀관계이다.) 영화 속 그의 또 다른 직업, 혹은 그가 종사하는 또 다른 업종들은 다음과 같다.
부동산업
인테리어업
편의점 아르바이트
택배업
중국집 배달
김밥집(구체적인 업무는 알 수 없음.)
주점 주방장
live 카페 가수
사설탐정 혹은 경찰 보조원(이에 따라 “훌륭한 시민상 몇 개”를 탔다.)
정육점
비디오 가게
시골역 안전요원
(이상, 등장하는 시간 순)
홍반장은 이렇게 다양한 직종에 종사하지만 또한 어떠한 직종에도 종사하지 않는다. 혜진(엄정화)의 말대로, “제대로 할 줄 아는 건 아무 것도 없”다. 그 모든 일들은 일당(5만원)으로 계산되지 연봉으로 계산되지 않는다. 이 임금에는 “노동자가 노동력 한 단위를 재생산하는데 필요한 (교환)가치” 따위의 개념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이 비용은 “돈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부담을 안 갖고, 다음에도 또 시킬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계약관계가 불명확하고, 또 위약(違約)시의 법률관계가 모호한 비용이다. 한 마디로 말해, “인간적 비용”이다. 이처럼 인간적인 계약 관계 속에서 일을 하는(살아 가는) 홍반장은, 그러나 현대 사회의 상식으로는 “세상에서 제일 할 일 없는 사람”이다. 홍반장의 인생은 사회의 통념에서 볼 때, “왜 그러고 사는지” “좀 한심해 보이기도 하고, 불쌍해 보이기도 한” 인생이다.
왜인가? 직업에 관한 현대사회의 상식이 처한 상황은? 곧, 소외(alienation)라는 것.
첫째, 사회적 관계 속에서의 소외. 이른바 “실제의 노동”(labor as reality)이라는 것이 사회 속에서는 의미가 없어진다. 노동에 관한 표상(껍데기)이 그것을 대체한다. 구체적인 작업과정이라든가, 그것의 의미보다는 외형, 곧 사회관계 속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더 중요해지는 것이다. 따라서 홍반장은 누구보다 훌륭한 인테리어 디자이너이지만, 동시에 그는 이 사회에서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인정받지 못한다. 자격증이 없으니까. 이에 대해 홍반장은 이렇게 말한다. 곧,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
둘째, 노동과정으로부터의 소외. 실제의 노동 그리고 노동자는 노동과정으로부터 자아를 실현할 수 없다. 한마디로 일이 싫어진다.(월요일이 싫어진다.) 일 보다는 일의 결과물이 목적이 된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노동과정이 자기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미 사회적이지만, 여전히 고립된(이른바 “고립된 생산의 산물만이 상품이 된다”고 하는 M씨의 말대로) 사적 소유물로서의 “공장” 속에서 그것이 강요된 작업을 하는 것만이 이 세상에서 살아남는 길이다. 다른 것을 꿈꾸는 사람, 혹은 다른, 자기만의 작업과정을 꿈꾸는 사람은 “한심해 보일” 뿐.
셋째, 노동의 결과(곧, 생산물)로부터의 소외. 필연적 귀결로서, 상품이라는 것은, 그것을 만든 사람의 것이 아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만들어낸, 자신의 노동의 결과물이 변한 것이기도 한 바의, 화폐라는 상품과 대면하여 물신주의에 빠진다. 이른 바 현대사회의 상품 물신성(commodity fetishism)이라고 하는 것. 결국 화폐상품이라는 것(한마디로 돈)의 축적이 삶의 목표가 되는데, 화폐라고 하는 것은 사실 자신이, 노동의 소외 속에서, 작업한 결과물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 축적이라는 것은 이 사회를 움직이는 힘이 되었다. 이른 바 “자본”(capital)이라고 하는 것은 축적된 상품이다. 소외되지 않은 노동과정 속에서 인간적 능력이 전개되는 것이 아닌, 소외된 노동의 결과물이 축적되는 것으로부터 세상이 움직인다. 이것이 자본주의다. 왜 일, 활동, 인간적 행위가 아니라, 그것의 소외된 결과물(화폐)을 추구하는가 왜 그것이 행복이라고 불리는가. 왜 홍반장이 한심한 사람으로 불리는가.
이 영화를 ‘여성 판타지’라는 시각으로 분석한 것에 대해.
(이 글을 쓸 무렵 S씨로부터 이러한 분석이 나왔다. 인식의 지평을 확장시켜 준 S씨께 감사한다.)
그런데 위의 분석을 전제할 때, 홍반장이 갖춘 ‘야메’의 능력에 대한 판타지(여성판타지)는 영화속에서만, 현실을 거울처럼 거꾸로 반영하는 영화속에서만, 성립하는 현상이다. 여성들은 영화관에서 홍반장에게서 판타지를 발견하고, 극장을 나서자 마자 “현실적인 남성”을 찾는다.(물론, 정확히는 영화속 판타지+현실적 능력) 그러니까 이 영화는 진정한 ‘영화’인 것이다. 진정한 판타지인 것이다.
감독 : 강석범 / 출연 : 김주혁, 엄정화, 김가연, 기주봉 등 / 2004-3-12 / 108분 / 12세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