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순간 2009/02/19 22:57

두렵다 가난

가난하다는 것

 

                          - 안도현

가난은
가난한 사람을 울리지 않는다

가난하다는 것은
가난하지 않은 사람보다
오직 한 움큼만 덜 가졌다는 뜻이므로
늘 가슴 한쪽이 비어 있어
거기에
사랑을 채울 자리를 마련해 두었으므로

사랑하는 이들은
가난을 두려워 하지 않는다

 

 

 

.....................................................................................................................................................................................

 

예상했던 2월말이 다되가는데 아직 직장을 구하지 못했다. 날마다 구인난을 열심히 들여다보지만 애초에 생각했던 시간제 근무는 아예 보이지 않는다. '아르바이트'라면서 정규직과 근무시간이 같은 얌체같은 경우나 야간당직만 간간히 눈에 띌 뿐이니 요며칠간은 책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스스로 자포자기 상태에 빠져있다. 오늘은 시외이지만 근무시간이 그나마 좀 맞는 곳으로 이력서를 보내봤다. 몇 번 전화통화 후 나중에 연락 주겠다고 한다. 하긴 된다고 해도 당장 걱정인 걸. 종일 근무하게 되면 도무지 뭘 할 수가 없다. 아이와 함께 하기에도, 공부를 하기에도, 뭔가 다른 활동을 하려 해도 늘 시간이 부족하고 체력이 달린다. 직종을 바꿔볼까. 그러기엔 공부했던 것도 아깝고 경력도 더 쌓고 싶으니 텅빈 머리만 굴려볼 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아 이런- 계획대로 안되니 시간이 지날수록 불안감만 깊어진다.

 

일하지 않으면 먹고 살 수 없다. 두달이나 쉬는 것은 애초부터 경제적으로 큰 무리였지만 아이와의 관계회복을 위해 꼭 필요한 선택이었다. 그리고 이제 아이는 주변사람들이 느낄만큼 안정을 되찾았고 나또한 그렇다. 그것만으로 만족하자. 조금 더 가난해지면 어떤가. 그동안 내뜻대로 살아왔지만 이제는 차츰 달라져야 한다. 조금 더 천천히 걷고 조금 더 넓은 시선으로 아이와 함께 가야 한다. 함께 산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러니 좀 더 힘들어져도 울지는 말자. 아직 2월은 끝나지 않았고, 아직 돈도 조금 남아있고, 아직 지구는 멸망하지 않았다. 정말 안도현시인의 따뜻한 싯구절처럼 가난이 사람을 울리지 않기를. 가난을 두려워하지 않기를 마음속으로 되뇌어본다. 세상에 삿대질하는 대신, 집착을 조금 버려야 하는건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9/02/19 22:57 2009/02/19 22:57

트랙백

댓글

지금이순간 2009/01/07 01:14

서투른 배우

서투른 배우

                                             -  최영미

술 마시고
내게 등을 보인 남자.
취기를 토해내는 연민에서 끝내야 했는데,
봄날이 길어지며 희망이 피어오르고

연인이었던 우리는
궤도를 이탈한 떠돌이별.
엉키고 풀어졌다,
예고된 폭풍이 지나가고

전화기를 내려놓으며
너와 나를 잇는 줄이 끊겼다
얼어붙은 원룸에서 햄버거와 입 맞추며
나는 무너졌다 아스라이 멀어지며
나는 너의 별자리에서 사라졌지
우리 영혼의 지도 위에 그려진 슬픈 궤적.

무모한 비행으로 스스로를 탕진하고
해발 2만 미터의 상공에서 눈을 가린 채
나는 폭발했다
흔들리는 가면 뒤에서만
우는 삐에로.

추억의 줄기에서 잘려나간 가지들이 부활해
야구경기를 보며, 글자판을 두드린다.
너는 이미 나의 별자리에서 사라졌지만
지금 너의 밤은 다른 별이 밝히겠지만…

<출처> 최영미, 『문학사상』, 2009년 1월호(통권 435호)

 -----------------------------------------------------------------------------------------------------------------------------

 

당신을 지우고 싶다

유치한 농담처럼 가볍게

가끔은 그렇게

당신 이름조차 지우고 싶었다

알 수 없을 만큼

내 속 깊이 박혀 있는 당신,

당신을 도려내기 위해

쉴새없이 자신을 파헤치며

희망따위 잊어버렸다

그토록 피흘리며

한해, 두해, 세번째 해가 지난 후,

여전히 살아 있는 당신의 기억

그러나 나도 살아 남았다

남은 건 피곤함과 뻔뻔함,

젠장 그냥 이렇게 살지 뭐

혹 하나 달고 사는 셈

모른 척 시치미 떼버리지

그렇게 살자

자유로운 척,

두려움 없이 맞이하는

내 2009년

힘내자!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9/01/07 01:14 2009/01/07 01:14

트랙백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