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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레터 1

이주노동자 방송국에 쓴 첫번째 칼럼.

블로그 업데이트가 넘 안되서 올려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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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누아르 동지가 잡혀갔어요.

전화기 저편에서 들려오는 꼬빌 동지의 목소리는 의외로 침착했다.

이른 아침 혹은 밤 늦은 시간의 전화는 늘 무언가 불길한 예감에 잠을 번쩍 깨게 한다. 소식을 전해들은 난, 냉정해진다. 늘 그랬다.


2002년 9월 새벽, 마석에서 비두와 꼬빌이

2004년 2월 백주대낮, 서울 한복판에서 사말이

2005년 5월 새벽, 뚝섬에서 아누아르가

일방적으로 납치되었고, 동지들이 잡혀가 휑한 그 자리에 서서 우리는 냉정해져야 했다.

연행된 사람들은 다친 몸을 돌보지 못했고, 바깥의 사람들은 삐죽삐죽 올라오는 눈물을 슬쩍 닦아내며 삼켜야 했다. 그리고 싸웠다.


2002년에 비두와 꼬빌을 잡아들일 때, 아마도 한국정부는 출입국이라면 오금을 저리며 도망도 못가는 겁쟁이 이주노동자들이 다시는 투쟁을 못할거라 생각했을 거다. 그런데 2003년에 이주노동자들은 큰 집회를 만들었고, 한겨울의 추위를 온몸으로 저항하며 농성투쟁을 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농성단 대표 사말을 납치했다. 농성단이 한풀 꺽일거라 생각했던 예상은 또다시 빗나갔다. 여기저기 우리도 사말이 되자는 외침이 솟구쳤다. 그리고 2005년 4월에는 이주노동자 독자 노동조합이 건설되었다. 역사적인 이 순간에 당황한 한국정부, 언제나 그랬듯 똑같이 대응했다. 위원장 아누아르를 연행하면 노동조합이 망하고, 이주노동자들의 저항이 멈춘다고 생각했을까?


난 이주 동지들과 함께 하면서 절망의 끝에서도 끈질기게 움켜쥐고 앞으로 나가려는 모습을 여러번 보았다. 징징거리며 절망하는 내 앞에 우뚝 버티고 있는 그/그녀 들을 보았을 때 나는 그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 궁금했다.

그런데 어느날 우연히 사말의 인터뷰를 보았다.

“불법이라서, 인간으로 해야 할 일들을 못할 때 가장 힘들었다”

사말의 트레이드 마크, 그 부드러운 미소 뒤편에 있는 그가 보였다. 마석 성생공단 한켠에서 울부짓던 비두 생각이 났다. 차가운 공장 바닥에서 뒹굴었다던 아누아르 생각도 났다.

이주 동지들 한사람 한사람의 삶에 아로새겨진 이주의 자국들은 참 험하다. 그런데 절망의 자국들은 저항을 만들고, 희망을 만든다. 그래서 아무리 잡아 가두고, 탄압해도 이주운동은 앞으로 갈 수 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인간에게 인간이길 포기하게 만드는 절망의 기억, 그 기억의 파편들이 모두의 가슴에 남아있고, 여전히나 현실은 그러하기 때문에 멈출 수 없다.


이제 아누아르 위원장 석방 투쟁, 이주노조에 대한 탄압에 맞서는 투쟁이 시작되었다. 언제나처럼 정부는 이주노동자를 탄압하고, 이주노동자들은 저항한다. 멈추지 않는 이 저항의 물결을 만들었고, 만들어 가고 있는 수 많은 이주 동지들. 갈길은 참으로 멀고, 길은 엄청나게 험하다. 그럼에도 그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 그 길에서 내가 만난 그 혹은 그녀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

 

                                                                                               2005년 5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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