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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숄, Migrants' Arirang 어땠어요?

 

6월의 잔디는 짙은 초록빛으로 넓게 펼쳐져 있었다. 한켠에서는 쏴-아 소리를 내면서 분수가 솓아올랐다 이내 사라진다. 물장난 치는 아이들은 깔깔거리고, 펄럭이는 여러나라 깃발위에 투명한 햇살이 부서진다. 전통의상 차림의 네팔, 몽골, 방글라데시, 미얀마, 필리핀 등지의 사람들이 한층 축제 분위기를 띄우고, 낯설고도 신기한 각국 물품과 먹거리는 한가한 휴일 오후의 산책을 즐겁게 한다. 파릇파릇한 잔디밭에는 피부색도 다르고 생김새도 다른 여러 나라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조근조근 이야기를 나누며 쉬고 있다.

 

 

2005년 6월 5일, 시청역 지하철 출구를 나와 [멀리서 바라 본] 시청 광장의 풍경이다. 문화관광부 주최의 외국인노동자 문화 축제-“Migrants' Arirang"이었다. 문화 관광부를 비롯한 관련 주최측은 “그동안 우리와 함께 살면서도 잘 어울리지는 못했던 외국인 노동자들이 축제를 준비하고 참여하는 과정을 통해 스스로 우리 사회의 일원이고 문화적 주체임을 느낄 수 있도록 기획된 것”이라고 했다. 큰 길 건너에서 보니, 기획은 성공한 것 같았다.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있었고, 음식과 문화를 소개했고, 이날, 시청광장 그 자리에서 만큼은 단속의 공포 없이 앉아서, 누워서 이야기도 하고 햇볕도 마음 껏 쬘 수 있었다. “대~한민국! 따다다단따”의 집단적 광기와 국가주의가 숨통을 조여왔던 그 곳에서 이렇게 여러 나라의 이주노동자들이 모인 축제를 정부에서 주최한다니, 참으로 대단한 발전이 아닐 수 없는 풍경이었다. 



발디딜틈 없이 복잡한 지하철 출구를 지나 행사장으로 들어갔다.

곳곳에서 낯익은 얼굴들이 보였다. 5년 전 마석에서 알고 지내던 필리핀, 방글라데시 친구들도 있었고, 오랜만에 만나는 농성단 동지들도 있었다. 반갑게 인사를 하지만 ‘잘 지내요?’라고 묻기가 참 난망하다. ‘단속은 잘 피하고 있나요?’와 같은 그 이야기. 예쁜 전통 의상을 입고 하루종일 네팔 부스를 지켰던 이숄의 웃음이 씁쓸하다. 이 날 이숄이 사는 동네, 의정부에서는 네 곳에서 단속이 있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무대에서는 이주노동자 밴드 스탑그랙다운이 ‘We love Korea’를 부른다. 사회자는 한국을 위해 수고가 많으신 ‘외국인 노동자 여러분’을 외치고 있다. 테레비에서 봤던 화려한 가수가 ‘외국인 근로자’를 위해 이별의 노래를 한다. 이 사회의 주체임을 스스로 주장하는 ‘이주노동자 노동조합’은 주최측으로부터 서명 캠페인을 허락받지 못했고, 이 곳에서도 출입국직원의 감시와 미행을 당해야 했다.


2005년 6월 5일 [가까이 들여다 본] 외국인 노동자 문화축제 -Migrants' Arirang의 풍경이다. 수십만명의 이주노동자들이 하루하루 단속과 강제추방에 숨죽이고 쫓겨다니는 현실을 이곳에서 말하는 것은 금기였다. 공인된 약속이었다. 우리 모두 잘 살고 있어요. 시민 여러분, 우리는 한국을 사랑합니다. 외국인 근로자 여러분, 수고 하셨습니다. 한국도 알고보면 좋은 나라지요? 우리 함께 잘 살고 있어요. 그렇죠?

나는 화창한 유월, 일요일 오후의 이 화려한 축제가 무서웠다. 이주노동자들의 고통에 대해 누구나, 이주노동자 스스로도 침묵으로 일관해야 하는 '축제', 문화라는 코드를 통해 좀 더 세련된 방식으로 이주노동자에 대한 착취와 억압을 눈가림하는 ‘축제’, 이제 곧 강제로 추방시켜야 할 사람들을 위한 위로 잔치. 그리고는 우리 사회의 일원이라 얘기하는 축제. 더더욱 걱정스러운 사실은 한국 사람들이 모여 “대~한민국, 따다다단따!”를 외쳤던 그 광기의 자리에서 이주노동자를 이야기하며 ‘팍스 코리아나’의 꿈이 내비춰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난 이숄에게 물어보고 싶다.

문화관광부와 주최측에 의해 “스스로 우리 사회의 일원이고 문화적 주체임을 느끼길” 기대 되었던, Migrants' Arirang에서 하루 종일 네팔 부스를 지켰던 이숄에게 말이다.

 

이숄, 이 행사 어땠어요?

 

                                                         <이주노동자 방송국 두번째 칼럼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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