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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어제는 논문에 쓸

마지막 인터뷰를 했다.

94년 경실련 농성에 참여했던 그녀는

한국에서 산재보상을 받은 첫번째 이주노동자였고

그 후 활동가로 10년 넘게 네팔노총에서 일을했다.

그리고 지금은 한국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

 

내 논문 주제에 가장 적절한 대상이고

내 논문에 들어갈 가장 적절한 인터뷰 멘트를 준

그녀와의 대화는

논문을 쓰기에 참으로 만족 스러웠다.

 

하지만 나는,

그녀와의 전화 인터뷰는 물론이고,

네팔에서 녹음한 인터뷰도 녹취를 못하고 있다.

왜 이렇게 하기 싫은 걸까?

그들의 삶을 쓰겠다는 의도는

말짱 헛일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그럴꺼면 언젠가 조의 이야기처럼

소설을 써야 마땅하다.

하지만 소설이라고 또 뭐가 다를까?

나라는 필터링을 통해 나온 글에 대한 성찰은

논문에 들어갈 현장연구의 몇몇 방법론으로

해결이 되는 것인가

 

인터뷰는

서로간의 상호 소통의 과정이며

자연과학의 실험에 특정 조건이 전제되듯

나의 논문은 특정 조건과 특정 대상이 만들어 낸

혹은 그 과정에 있는 글일 뿐인데

또 뭐가 그리 결벽증적인 포즈로

게으름을 정당화 하고 있는 건지.

 

솜털 보송보송했을 열여섯 그녀가

눈물로 보낸 수 많은 날들

죽을수도 없는 막막함

그 이야기들을 거침없고 맑은 톤으로 전하는

그녀를 앞에두고

난 참 많이 부끄러웠다.

열정과 에너지로 가득한 그녀와의

한시간 반 동안의 통화는

나에게 무언가 충만함을 전해 주었다.

그리고 당장이라도 달려가

그녀와 맛있는 밥을 먹고

손을 잡고 어디든 놀러가

실컷 울고 웃고 떠들고 싶었다.

그럼 왠지 힘이 날 것 같았다.

 

내일 만날 지도교수에게

이런 얘길 어떻게 하냔 말이다.

논문에 대해 할말이 별로 없는 난

오늘 무언가를 억지로라도 만들어 내야 하는데

그것이 참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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