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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처음 만난 건 1999년 봄이었지. 그러고 보니 벌써 10년이네. 스물 네뎃의 우리, 참 많은 일들을 함께 했었지. 굽이굽이 미로 같은 동네를 휩쓸고 다니면서 웃고 울고 술쳐먹고 싸우고 춤추고 투쟁했던 날들. 참 아득하다. 주저함 많은 내 인생에 유독 거침없이 달렸던 날들이었다. 세상 물정 모르고 다 덤벼, 소리치며 푸드덕푸드덕 날개짓을 했고, 먼지 풀풀 날리는 공단 한가운데 주저앉아 서럽게 울기도 했고, 분하고 억울해 입술 깨물고 깊은 다짐을 하기도 했지. 그 때, 함께 했던 친구들. 이젠 남아있는 사람이 거의 없네.
마석을 떠난후, 그곳에서 일이 터질 때 마다 난 깊은 잠을 자 버린다. 이번에도 그랬다. 울려대는 전화기는 이불 밑에 쳐박아 꽁꽁 동여매 버렸다. 전화를 건 사람이 읊어댈 아는 이름을 듣는 것이 두려웠다. 공단에서 벌어진 난장판과 같은 상황이 머릿속에 구체적으로 연출되는 그 순간이 싫었다. 그날도 난 감기약을 먹고 이불을 머리까지 뒤집어 쓰고 땀을 뻘뻘 흘리며 잠이 들었다.
얼핏 문자를 확인하고야 말았다. T가 화성 외국인보호소로 이송 중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날 또 이튿날 화성보호소로 추정되는 몇 통의 전화가 왔다. 받지 않았다. 마석에서 함께 일했던 친구에게서 면회를 가자는 연락을 수도 없이 받았다. 가기로했다. 하지만 결국 그날 새벽녘까지 술을 퍼 마시고 난 뻗어 버렸다.
그냥 몰랐던 일처럼 살짝 피하고 싶었다. 그가 외국인 보호소에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도, '보호 외국인' 이라고 등짝에 커다랗게 박힌 초록색 츄리닝을 입은 그를 만나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지난 해 여름, 인사동 생선구이집에서 왁자지껄 농담하고 밥먹던 그 기억에서, 멈춘다면.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 가끔 연락을 해서 안부를 묻고 지나간 시간만큼 달라진 모습으로 아님 시간가도 변하지 않는 모습으로 만난다면. 그곳이 한국이면 어떻고 방글라데시면 어떠냔 말이다.
이젠 나라에 갔을 지도 몰라, 엄청 욕해도 할 수 없다, 다음에 만나서 잘 이야기 함 되지 머. 하고 있을 즈음. 참세상 기사에서 모자이크 처리된 T의 모습을 보았다.누군가 인터뷰를 한 마석에서 단속된 한명의 미등록이주노동자다. 낯설고도 낯설다. 하늘 높은 자존심에 시니컬한 유머, 센스쟁이 T, 십년을 알아온 친구는 알고보니 미등록이주노동자 였다네. 모자이크 사진 속 그의 모습이 날 너무나 불편하게 한다. 내가 아는 T는 온대간대 없고, 고양이에게 쫓기는 쥐와 같이 단속되었다는 그의 인터뷰만 뿌연 모자이크 속에서 윙윙.
20대의 한 시절에 만나, 오래 알고 지낸 친구들은 이렇게 다들 갔고 또 가고 있다.
난 현실을 마주하기를 피하고 피했지만, 결국 내일은 그를 만나러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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