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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7/09/18
    3장 리카아도, 헤겔 그리고 포이에르바하(2)
    어쩌라구
  2. 2007/09/18
    아오~(1)
    어쩌라구
  3. 2007/09/18
    2장 마르크스 이전의 사회주의(1)
    어쩌라구

3장 리카아도, 헤겔 그리고 포이에르바하

3장 리카아도, 헤겔 그리고 포이에르바하

 

프랑스 사회주의자들은 여전히 계몽주의에 갇혀 있었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계몽주의를 뛰어넘을 수 있는 새로운 과학적 방법과, 자본주의에 대한 더 깊은 이해가 필요했다. 독일 고전 철학과 영국 정치경제학은 마르크스주의에 이러한 요소를 제공하는 실마리가 되었다.

 

- 시민사회 해부
계몽주의 사상가들은 국가와 시민시회를 구분했고, 이 시대의 정통 경제학은 번영은 국가 개입에 의존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고전정치경제학자인 아담스미드는 국가의 경제 개입은 해로운 것이라고 주장했다. 스미드는 자본주의를 가장 자연적인 것으로 해석했다.
여기서 리카아도는 좀더 과학적인 접근을 했고, 그의 주장과 한계는 다음과 같다.
 * 리카아도 경제학
  ** 상품의 가치, 혹은 교환되는 상품의 양은 그것을 생산하는데 필요한 상대적 노동력에 의존한다고 주장.(이는 마르크스가 자신의 자본주의 분석의 기초로 삼았던 노동가치론이다.)
  ** 노동, 자본, 토지소유자의 이해관계는 적대적이다.(이는 사회적 생산물 분배에 대한 계급투쟁을 자본주의 사회의 중심에 놓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 리카아도의 개념은 전체적으로 산업 부르주아지의 이익이 다만 생산의 이익 혹은 인간 노동의 생산적 발전과 일치 하기 때문에 그리고 그런 한에서만 산업 부르주아지의 이익을 옹호 했다.
  **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으로 사회가 나뉘는 것을 자연적으로 보았다.
  ** 마르크스와 마찬가지로 이윤율이 하락한다고 생각했으나 그 설명을 사회의 밖에서 구했다.

고전경제 학자들은 자본주의가 인간 역사의 마지막 단계라고 보았고, 더이상의 변동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 헤겔과 변증법
계몽주의는 기계적 유물론적인 사상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는데, 사회를 그 차체로서 점점 발전하고 변동하는 유기체로 보는 시각이 필요했다. 이러한 사회관을 체계화 시킨 사람은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이었다.
헤겔의 변증법은 두 가지 가정에 기초하고 있다. 첫째로, "모든 사물은 그 자체로 모순적이다." 둘째로, "모순은 모든 운동과 삶의 뿌리에 있으며 사물이 운동하고 추진력과 활동을 가지는 것은 오직 그것이 모순을 포함하는 한에서이다."
헤겔은 사실상 역사를 "인간 정신의 진보"로 보는 계몽주의 역사관에 여전히 매여있었지만 세계를 보는 새로운 변증법적 방법에서 많은 의미가 있다.

 

- 포이에르바하가 헤겔을 거꾸로 세우다
포이에르바하는 헤겔이 단지 인간 존재의 속성중 하나인 생각하는 능력을 존재를 지배하는 원칙으로 변질시켰다고 주장했지만, 여전히 인간 본성을 불변의 어떤 것으로 생각하고, 필요한 것은 사람들이 그들의 진정한 본성을 깨닫게 하는 것이라 주장했다는데 한계가 있다.
마르크스는 포이에르바하도 여전히 역사를 유물론입장에서 다루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유물론, 즉 사고는 세계의 반영이며 그것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는 믿음은 마르크스 역사관의 기초를 이루었다. "인간의 존재를 결정하는 것은 그들의 의식이 아니라, 반대로 그들의 사회적 존재가 그들의 의식을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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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오~

음악을 듣고 있으면 온갖감정이 교차 한다.

듣고 있으면 너무 좋고

너무 좋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고작 듣는것 밖에 없고

나도 하고 싶지만 안되고

쫓아가고는 있지만 까마득 하고

나이는 먹어가고

 

무식 탈출해보려고

올바른 나의 정신을 가지고 똑바로 살아보려고 공부한답시고 하고 있지만

거참.. 그것도 멀고..

 

에잉. 또 다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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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마르크스 이전의 사회주의

2장 마르크스 이전의 사회주의

 

봉건제 사회에서 부르주아 사회로 변화되는 중에 정치적 측면과 경제적 측면 사이(자유, 평등, 우애의 약속과 산업 자본주의의 현실적  불평등과 착취 사이)에 모순적인 문제들이 발생한다. 이러한 모순들로 부터 여러 사회주의 운동이 전개되었다.

 

- 계몽주의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물은 각자의 목적을 가지고 존재 한다고 생각했고, 이 사상은 기존 봉건제 사회에서는 사회를 유지하는데 적합했다. ("귀족, 성직자, 농노등의 계급은 각자의 목적을 가지고 존재 한다.", "모든 사물의 목적은 신이 내린다." 등등..)
17세기의 유물론적인 과학 혁명이 일어났고, 이는 신을 개입시키지 않고 세계를 보는 시각을 제공했다. 계몽주의 사상가들은 자연연구에서의 기본적인 원리를 찾아내듯 사회연구에서도 기본적인 원리를 찾아내려 했는데 그것은 인간의 본성이였다. 사회를 사람들의 욕구나 기호를 충족시키는 정도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는 이러한 사상은, 모든 사람들이 미리 정해진 지위를 받아들이는 봉건 질서를 흔들어놓을만 한 것이였다.
그러나 계몽주의는 인간의 본성(이성)을 자기이익에 따라 행동하고, 변하지 않는 것으로 판단했고, 관념적이였다. 그리고 이성의 중요성을 절대적인 것으로 보았기 때문에 고도로 교육받은 계몽주의자들은 엘리트주의가 깔려있었다.
이러한 계몽주의 철학자들은 혁명가와는 거리가 멀수 밖에 없었다.

 

- 공상적 사회주의

계몽주의가 인간의 본성을 자기이익에 따라 행동하는 것만으로 보았지만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은 보다 범위를 확장시켰다.(인간은 물질적 만족과 동시에 사랑과 우정을 갈망하고, 다른 사람의 경쟁에서 성공하려는 동시에 상이하고 다른 목표를 추구 하기를 소망한다.) 이 때문에 계몽주의자들이 자본주의를 인간사회의 가장 자연스러운 형태라고 생각했지만 자본주의는 다른 본성들을 모두 부인하기 때문에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에게는 부자연 스러운것이라고 생각했다.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은 사상(이성)을 역사 발전의 원동력으로 보았고, 계몽을 통하여 세계를 변혁시킬 것이고, 자본가에게 이러한 호소를 했다.

 

- 혁명적 사회주의

마르크스 이전의 혁명적 사회주의는 평화주의적인 공상적 사회주의와는 다르지만 여전히 엘리트주의를 낳았다는 문제가 있다. 노동계급은 혁명적 공산주의자들에게도 평화주의적인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에게도 변혁의 주체가 아니라 변혁의 대상이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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