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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적들> 말라라이 조야

 

 

우리는 늘 경계지으며 산다. 나이로, 젠더로, 인종으로, 국가로..  

그렇게 경계를 지으며, 동시대를 살아가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영화 속의 한 장면으로 여기면서 살아간다. 그러다 우연히 그 영화 속의 사람이 걸어나와 우리에게 말을 걸면, 그제서야 현실인 것처럼 그렇게 받아들인다.

 

평화운동의 언저리에 있으면서도,

이주 결혼 활동가 네트워크를 조직하는 단체의 활동가로 일하면서도

나 역시 지금 이 순간 다른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수많은 폭력에 무뎌지고 있는 것을 느낀다.

오늘 말라라이 조야, 그녀가 화면 속에서 걸어나와 그녀가 딛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의 삶에 대해 이야기할 때까지, 아프간에서 살아가고 있는 그녀들의 삶을  신문에서 내뱉는 수치로 재단하고 숫자로 그녀들의 폭력의 아픔을 받아들였었다.  

 

특히나 Intenational Solidarity(연대) 라는 말이 최근 들어 조금은 나른하게 느껴지면서  그 말이 가지고 있는 낭만적인 환상에 조금은 실망했었다.

 

하지만, 수차례의 살해 위협을 받으면서도, 여성의 권리를 위해 결코 타협하지 않겠다는 그녀의 의지에 마음 한 구석에서 전율을 일으키는 의지의 줄기가 올라오고, '지지'가 필요하다는 그녀의 말에, 그 순간만큼은 무언가 해보겠다는 내 안의 또다른 내가 움직이는 걸 보면서 난 연대라는 환상을 다시 꿈꾼다,

 

영화가 끝나고 관객들과의 대화 시간에 누군가 우스꽝스러운 질문을 했다. 민주주의를 너무 빠르게 도입해서 여성들이 그렇게 억압받는 것이 아니냐고, 천천히 민주주의를 받아들였으면 그렇지 않을 수 있지 않았겠느냐는... 그런 바보같은 질문에 (옆에 있는 친구의 말처럼) 그녀는 "우문현답"을 했다. "아프간에는 아직 민주주의가 오지 않았다고, 민주주의의 적(敵)이 말하는 민주주의가 어떻게 민주주의일 수 있느냐고, 4살짜리 어린 아이가 경찰이 보는 눈 앞에서 성폭력을 당하고, 성폭력을 당한 11살짜리 여자애가 개와 맞바꾸어지는 곳에 어떻게 민주주의가 왔다고 이야기 할 수 있냐고..

 

민주주의라는 게 뭘까, 민주주의의 적이 말하는 민주주의는 어떤 것이고, 그녀가 말하는 민주주의는 무엇일까,, 스스로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해왔다고 주장하는 여당/여당의 국회의원들이 말하는 민주주의는 뭐고, 내가 성취하겠다는 민주주의는 뭘까. 끊임없이 1등 시민과 2등 시민을 구분하고, 누군가를 타자화하는 방식으로 시민을 정의하는 근본적 매커니즘이 변하지 않는 한, 민주주의가 가능한 것일까, 그 민주주의가 그런 매커니즘을 전제로 형성된 것이라면, 그 때 나는 어디로 가야하는 것일까.

 

너무나 많은 단어들이 교차한다. "연대", "민주주의","여성의 권리" 등등... 짧은 영화 한 편으로 담아내기 어려운...

 

늘 잊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딛고 있는 내 자리를.. 페미니스트로, 아시아 인으로, 활동가로, 대학교육을 받은 사람으로, 이성애자로(현재까지는), 중간 계급으로.. 벗어나려 해도 그 안에서 나는 벗어나기 어렵다는 것을,, 그렇기에 내 잣대로 자리에 서 있는 누군가를 함부로 판단하지도, 함부로 "우리"로 묶지도 말아야 한다고..

 

하지만 오늘 "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내 목숨을 앗아갈 수는 있지만, 제 목소리를 빼앗지는 못할 것입니다." 라는 그녀의 말에, 오늘 하루만큼은 그냥 무조건적으로 그녀를 지지하고, 작은 힘을 보태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무한한 지지를 그녀에게 전하며...

 

 

* 말라라이 조야 홈페이지

www.malalaijoy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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