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물꽃

아레나 아시아 공감 영어 강좌.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그르바비차

 

그르바비차 (Grbavica: The Land Of My Dreams, Grbavica, 2005)

 

그래도 생(生)은 계속된다.

우리 앞에 놓여진 겹겹의 아픔 속에서도

흐른듯 흐르지않아

작은 손짓하나에도 눈물을 와락 쏟고 마는 그런 삶 속에서도

 

그렇게 생은 계속된다.

 

불안정하고 불완전한 자신의 삶을 받아들이지 못하지만

나와 가장 가까운 이에게,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주고,

또 그 상처를 준 자신에게 다시 상처받고, 아파하고...

 

아직은 아물지 않은 상처들로

서로를 더 아프게 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생은 계속된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층층히 나를 둘러싼 억압 속에서도

 

내 몸을 조여오는 그 힘 앞에서

너무나 무기력한 나이지만

 

그래도 우리의 삶은 계속된다.

 

그것이 나로 인한 것이든,

아니면 그저 흐르는 것이든 상관없이...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여행 좋아하세요?- 공정여행을 찾아 떠나는 하루 동안의 짧은 여행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거짓말 = 덕담의 시대

거짓말 = 덕담의 시대

-거짓말도 잘하면 덕담이 된다? 

 

도대체 요새는 한국말이 아리송하다. 모두가 알던 거짓말이 드디어 방송을 통해 드러나는 순간, 마지막 거짓말은 덕담이 되어 버린다. 거짓말을 잘하면 덕담이 된다는 것일까? 아니면 시간이 지나면 거짓말이 감쪽같이 덕담으로 변한다는 뜻일까? 문득 가상의 수능 문제 하나를 생각해보았다. 


예제) 2007년 6월 7일 기자회견 이00씨의 발언 BBK와 나는 직접이든, 간접이든 전혀 관계가 없다.

   2007년 11월 5일         이00씨의 발언 내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BBK와 관련된 문제가 있다면 대통령 직을 걸고 책임지겠다. 

그러나 최근 아래의 발언이 담긴 한 동영상이 발견되었다.

    

2000년 10월 17일 이00 씨 내가 BBK를 직접 설립했다

 

질문: 따라서, 그 동안의 이00씨의 발언은 (     ) 임에 틀림없다. (   ) 안에 들어갈 말은? (1) 거짓말, (2) 덕담  


한나라당의 주장에 따르면 답은 영락없이 2번, 덕담이다. 그들은 2000년도 이씨의 발언은 그저 동업자를 위한 덕담이라고 주장한다. 과연 그러한 가? 우리는 과연 아이들에게 떳떳하게 정답이 2번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거짓말이 덕담으로 둔갑해버리는 시대에 살고 있다고, 그런 말이 뻔뻔스럽게 나올 수 있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고 그렇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 뿐 아니다. 요새 한국사회에는 아리송한 일 투성이다. 만나는 사람마다 경제가 어렵다, 장사가 안 된다 하고, 분명 비정규직 노동자 850만에, 88만원 세대라 불리는 청년층 실업자 30만 명이라는 통계 수치가 우리를 압박하고 있는 상황인데, 한편에서는 올해 해외유학 연수비로 한국을 빠져나간 돈이 5조원에 이르고, 해외여행 급증으로 해외소비지출액이 최대치를 기록하고, 수출은 호조를 보인다는 뉴스가 우리를 혼란스럽게 한다.  


더 아리송한 일은 비정규직 노동자와 청년 실업자, 그들의 가족만 합쳐도 얼추 전체 유권자의 반이 나오는데, (겉으로는 서민 경제를 외치지만) 사실상 2%를 위한, 서민 없는 경제 성장책을 주장하는 이명박 후보의 지지율이 40%이상이라는 것이다. 왜 모두가, 자발적으로 2%를 위한 희생양 98%가 되고자 그리 안간힘을 쓰는 것일까?  


제발 정신 좀 차리자. 최소한 아이들에게 계속 거짓말하면 덕담이 될 수 있다고 가르칠 수는 없지 않은가? 계속 거짓말하니까 대통령도 될 수 있고, 성공하는 인생 살 수 있다고 그렇게 이야기할 수는 없지 않은가? 


자식들 교육비 벌겠다고, 밤낮으로 대형 마트 계산대 앞에 서서 일하다 비정규직법 통과 후 해고당한 이랜드 노동자들에게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 기업을 위한, 친기업적인 경제를 만들겠다는 그런 후보가 도대체 어떤 경제를, 누구를 위한 경제를 살리겠다는 것인가? 


설령 서민없는 경제를 살린다해도, 성장이라는 말 한 마디에, 위장 취업, 위장 전입, 여성 비하 발언, 맛사지 걸 파문, 장애아 낙태 발언 등, 끊임없이 계속해 터져나오는 수많은 부패 부정을 저지를 그런 후보를 그냥 받아들일 수다는 것인가?  

 

 수십 만의 죄없는 민간인이 죽어나갈 이라크에 한국군인을 보내면서도 한국 경제가 성장한다면 합리화될 수 있다고 믿기에, 그래서 여전히 베트남 참전을 자랑스러워하는 사람들이 많기에, 국익이라는 말이 그 모든 가치를 능가해버리는 그런 사회에  우리가 살고 있기에, 사회 정의라는 가치는 돈 앞에서 처참히 무너지고 있을 뿐이다.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미국의 진보 세력은 왜 패배하는가?”라는 책에서 저자는 이렇게 주장한다. 미국의 진보 세력이 지난 두 번의 선거에세 패배한 이유는, 자신의 이익보다는 가치 지향에 따라 투표하는 미국 유권자들을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사람들이 ‘사실’을 알고 이해하기만 하면 모든 것이 잘될 것이라는 진보세혁의 환상을 버려야 한다고 말이다. 그 어떤 국가보다도 불평등한 사회구조를 고착화시키고 있는 미국이기에, 비교하는 것이 망설여지지지만, 그래도 최소한 내 이익보다, 지향하는 가치에 투표하려는 의식, (비록 그것이 극도로 보수화되어 있더라도), 그 미국의 시민 의식 만큼은, 경제라는 단어 한 마디에 무너지는 한국의 현실을 목도하는 나로서는, 너무나 부러울 따름이다.  


 2002년 유권자와의 약속을 허무하게 저버린, 노무현 정권, 비판하는 것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노무현 정권에 대한 비판이 그 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을 이명박 후보 지지로 이어지는 것은 마지막 남은 희망조차도 엎어버리는 것이다.  


이제 정말 딱 하루 남았다. 거짓말=덕담인 시대가 아님을 우리 스스로 증명하는 것, 그것만이 지금 우리에게 남은 최소한의 의무가 아닐까?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한잘라를 만나다- 9월 20일 목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영화 보며, 평화 이야기하기 I

 

평화를 생각하는 작은 모임, 그 첫 번째 이야기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행복의 적들> 말라라이 조야

 

 

우리는 늘 경계지으며 산다. 나이로, 젠더로, 인종으로, 국가로..  

그렇게 경계를 지으며, 동시대를 살아가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영화 속의 한 장면으로 여기면서 살아간다. 그러다 우연히 그 영화 속의 사람이 걸어나와 우리에게 말을 걸면, 그제서야 현실인 것처럼 그렇게 받아들인다.

 

평화운동의 언저리에 있으면서도,

이주 결혼 활동가 네트워크를 조직하는 단체의 활동가로 일하면서도

나 역시 지금 이 순간 다른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수많은 폭력에 무뎌지고 있는 것을 느낀다.

오늘 말라라이 조야, 그녀가 화면 속에서 걸어나와 그녀가 딛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의 삶에 대해 이야기할 때까지, 아프간에서 살아가고 있는 그녀들의 삶을  신문에서 내뱉는 수치로 재단하고 숫자로 그녀들의 폭력의 아픔을 받아들였었다.  

 

특히나 Intenational Solidarity(연대) 라는 말이 최근 들어 조금은 나른하게 느껴지면서  그 말이 가지고 있는 낭만적인 환상에 조금은 실망했었다.

 

하지만, 수차례의 살해 위협을 받으면서도, 여성의 권리를 위해 결코 타협하지 않겠다는 그녀의 의지에 마음 한 구석에서 전율을 일으키는 의지의 줄기가 올라오고, '지지'가 필요하다는 그녀의 말에, 그 순간만큼은 무언가 해보겠다는 내 안의 또다른 내가 움직이는 걸 보면서 난 연대라는 환상을 다시 꿈꾼다,

 

영화가 끝나고 관객들과의 대화 시간에 누군가 우스꽝스러운 질문을 했다. 민주주의를 너무 빠르게 도입해서 여성들이 그렇게 억압받는 것이 아니냐고, 천천히 민주주의를 받아들였으면 그렇지 않을 수 있지 않았겠느냐는... 그런 바보같은 질문에 (옆에 있는 친구의 말처럼) 그녀는 "우문현답"을 했다. "아프간에는 아직 민주주의가 오지 않았다고, 민주주의의 적(敵)이 말하는 민주주의가 어떻게 민주주의일 수 있느냐고, 4살짜리 어린 아이가 경찰이 보는 눈 앞에서 성폭력을 당하고, 성폭력을 당한 11살짜리 여자애가 개와 맞바꾸어지는 곳에 어떻게 민주주의가 왔다고 이야기 할 수 있냐고..

 

민주주의라는 게 뭘까, 민주주의의 적이 말하는 민주주의는 어떤 것이고, 그녀가 말하는 민주주의는 무엇일까,, 스스로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해왔다고 주장하는 여당/여당의 국회의원들이 말하는 민주주의는 뭐고, 내가 성취하겠다는 민주주의는 뭘까. 끊임없이 1등 시민과 2등 시민을 구분하고, 누군가를 타자화하는 방식으로 시민을 정의하는 근본적 매커니즘이 변하지 않는 한, 민주주의가 가능한 것일까, 그 민주주의가 그런 매커니즘을 전제로 형성된 것이라면, 그 때 나는 어디로 가야하는 것일까.

 

너무나 많은 단어들이 교차한다. "연대", "민주주의","여성의 권리" 등등... 짧은 영화 한 편으로 담아내기 어려운...

 

늘 잊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딛고 있는 내 자리를.. 페미니스트로, 아시아 인으로, 활동가로, 대학교육을 받은 사람으로, 이성애자로(현재까지는), 중간 계급으로.. 벗어나려 해도 그 안에서 나는 벗어나기 어렵다는 것을,, 그렇기에 내 잣대로 자리에 서 있는 누군가를 함부로 판단하지도, 함부로 "우리"로 묶지도 말아야 한다고..

 

하지만 오늘 "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내 목숨을 앗아갈 수는 있지만, 제 목소리를 빼앗지는 못할 것입니다." 라는 그녀의 말에, 오늘 하루만큼은 그냥 무조건적으로 그녀를 지지하고, 작은 힘을 보태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무한한 지지를 그녀에게 전하며...

 

 

* 말라라이 조야 홈페이지

www.malalaijoya.com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검은 리본의 피스몹: 추모의 신호등

 
검은 리본의 피스몹: 추모의 신호등
 
32일 오후 12시 30분, 광화문 교보문고 앞에서
우리의 피스몹은 계속될 것 입니다.
 
 
 
228일 오후 1시 미 대사관 앞에서, 지난 27일 아프가니스탄에서 자살폭탄테러에 의해 희생된 고 윤장호 병장을 추모하고 한국군의 즉각 철군을 요구하는 <죽음의 저글링, 파병을 멈춰라> 피스몹을 진행했습니다.
 
27살의 짧은 생을 마감한 고 윤장호 병장을 추모하며 약 27분 간 진행된 피스몹은흰 색 가면을 쓴 저글러와,검은 색 옷을 입은 7명의 참여자들이 파병을 멈춰라”, “고 윤장호 병장을 추모합니다.”, “당신들은 내 삶을 결정할 수 없다,”등의 문구가 쓰여진 검은 천을 몸 전체에 길게 두르고 침묵하는 것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고 윤장호 병장의 시신이 들어오는 이번 주 금요일(32)오후 1230,광화문에서 검은 리본의 피스몹,신호등 평화 행동이라는 이름으로 피스몹은 계속되며 원하는 분들은 누구든지 참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죽음의 저글링, 파병을 멈춰라>, <검은 리본의 피스몹: 신호등 평화 행동>을 통해 고 윤장호 병장을 추모하고, 미국의 점령 정책과 그에 동조한 한국 정부에 의해 희생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의 민간인을 기억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할 것입니다.
 
 
참여를 원하시는 분들은 물꽃(010 2489 1213)에게 연락주세요.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