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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7/27
    류석근 위원장(?)을 위한 변명
    물처럼-1

류석근 위원장(?)을 위한 변명

 

류석근 위원장(?)을 위한 변명

- 공무원노조 분열의 책임은 자본과 국가권력에 있다.


평소 우리 동네에 수줍음 많으며 너털웃음에 질박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공무원 아저씨가 있었다. 동네 아저씨들끼리 공원 잔디밭에 막걸리 몇 병을 놓고 둘러앉아 세상사는 얘기며, 아이들 키우는 얘기를 두런두런 나누다 보면, 이내 꾸벅꾸벅 졸고 앉아있지만 결코 자리를 뜨는 법이 없는 사람들 좋아하는 아저씨가 있었다. 지역 주민들이 모여 뭔 일을 좀 해볼라치면 온갖 것 다 동원해 관(官)과는 거리 멀게 살아왔던 사람들이 어느덧 관(官)의 혜택을 듬뿍 누리는 사람들이 되어 있게끔 묵묵히 거들던 인심 좋은 공무원 아저씨가 있었다.


2002년 어느 날 이 땅에도 공무원노조가 출범하게 되었고, 이 공무원 아저씨는 지부의 사무국장을 맡아 열심히 투쟁하였고 작년부터는 지부장을 맡아 헌신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런데 며칠 전 어느 인터넷매체를 통해 전국공무원노조의 위원장(?)으로 설립신고를 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열심히 투쟁하더니 영전이라도 한 것일까? 늦도록 술 한 잔 걸치면서 서둘러 설립신고를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과정을 들었고, 현 상황과 이후 자신의 거취문제에 대한 고뇌를 들으며 서로의 생각을 나누었다. 거나하게 취해 헤어지고 나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뒤척이다가 그 자리에서 나누었던 얘기며, 미처 나누지 못했던 생각을 지면을 통해 전하고자 몇 자 적어 본다.


누가 노동3권 보장을 가로막고 있는가?


현재 표면적으로는 공무원노조의 문제가 마치 특별법 수용 여부를 둘러싼 소위 ‘법내파’와 ‘법외파’의 대립과 이로 인한 공무원노조의 분열인 것처럼 비쳐진다.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보편적인 노동자의 권리인 노동3권조차 보장하지 않으려는 자본 및 국가권력과 이러한 탄압에 맞서는 노동자계급간의 전선이라는 점을 명백히 해야 한다. 따라서 주목해야 할 점은 우리의 투쟁대상이 내부적으로 이견을 가지고 있는 분파가 아니라 자본과 국가권력이라는 것이다. 자본과 국가권력은 언제나 자신들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다양한 방식으로 유포하고 민중들의 내부적인 갈등과 분열을 조장함으로써 지배질서를 유지해 나간다. 조직 내의 ‘법내파’의 주장 또한 이러한 본질적인 자본의 통재시스템에의 포획현상임을 적시하고, 조합원동지들은 물론 일반 대중들에게도 이 점을 분명하게 알리고 설득하여 자본과의 비타협적인 투쟁을 전개해 나가야 한다.


공무원노조의 정통성은 어디에 있는가?


서둘러 설립신고를 해야 했던 이유 중 하나가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이라는 명칭과 로고를 지켜냄으로써 공무원노조의 정통성을 보존하고자 한 것에 있다고 한다. 그리고 ‘법내’를 주장하는 한편에서는 ‘전국민주공무원노동조합’이란 명칭으로 설립신고를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명칭과 로고가 조직의 이미지 측면에서 전혀 의미 없는 요소는 아니겠으나 그리 중요해 보이지는 않는다. 진정 중요한 것은 자본의 전횡에 맞서 노동자가 주체가 되어 자주적으로 단결하여 노동자의 권익을 옹호하고 사회적 지위를 향상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직이 노동조합이라고 한다면, 이에 걸 맞는 역사적 소임을 다해 왔는가, 아닌가가 정통성의 기준이 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신자유주의시대 더욱 고도화되고 있는 자본의 노동통제전략에 맞서 굳건히 투쟁하는 것이야말로 노동조합의 정통성을 이어가는 일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5년간 노동3권 쟁취를 위해 비타협적으로 투쟁해 온 공무원노조야말로 노동조합운동의 적자임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투쟁의 의미와 형식 민주주의


류석근 동지를 비롯한 12명의 동지들이 조직의 공식적인 결정사항에 반하여 독단적으로 설립신고를 한 것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이 문제를 ‘왜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는가?’에 대한 본질적인 성찰 없이 형식적인 민주주의의 관점에서만 판단하는 것에 대해서는 경계한다. 따라서 이러한 행위의 의미 측면과 진행과정상의 방법적 측면은 명확히 구분되어 평가되어야 한다. 자본과 국가권력이 나서서 공무원노조의 정당성을 이데올로기 공세를 통해 무력화 시키려고 하고, 내부적으로는 최소한의 노동기본권조차 양보하고 자본의 품으로 귀화하고자 하는 세력에 맞서 노동조합을 지켜나가기 위한 투쟁의 일환이었음을, 그리고 이 투쟁은 정당한 투쟁이었음을 조합원들과 일반 대중에게 알리고 설득해야 한다. 그리고 민주적인 조직의 운영이라는 측면에서 중앙지도부와 현장 조합원들과의 사전 동의 없는 돌발적인 행위를 한 점에 대해서는 정중한 사과와 응당 책임을 져야 할 일이다. 하지만 투쟁의 의미는 실종된 채 과정상의 비민주성만을 들추어 책임 운운하는 것은 상황의 급박함과도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자본의 편을 드는 꼴이 될 수 있기에 심사숙고할 일이다. 그래야만 우리는 하나의 투쟁을 통해 그 내용의 정당한 의미를 공유하고 그 과정상의 민주주의는 어떻게 구현되어야 하는지를 학습하면서 좀 더 진전된 소양들을 쌓아 갈 수 있을 것이다.


더 많은 류석근 동지를 위하여


지난 역사를 돌이켜보면 투쟁의 과정에서 대량의 해고자가 발생했고, 최소한의 활동터전에서 쫓겨나 길거리로 나와 지속적인 투쟁을 전개하고 있으나 동력은 점점 떨어지고 있는데다가 내부적인 정체성과 진로 문제를 둘러싼 갈등마저 겹쳐 내홍을 겪고 있다. 각 현장을 보면 초창기에 비해 적극적인 참여조합원 수가 줄고 내부적인 이견으로 인한 갈등은 조합원들을 더욱 혼란스럽고 힘들게 하고 있는 현실이다. 여기에 현장의 조합원들과 일상적으로 부대끼며 고군분투하고 있는 ‘더 많은 류석근 동지들’이 있다. 이 글을 빌어 이 동지들께 한없는 존경과 동지적 애정을 듬뿍 전하고자 한다. 그리고 위기는 결코 어느 일방의 위기일 수 없음 을 명심하자. 씨름판에서 지쳐 그냥 샅바를 붙들고 서 있는 씨름선수들을 상상해 보라! 여기서는 덩치가 크거나 기술이 더 좋은 자가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지쳐있는 상대에게 사력을 다해 마지막 호미걸이 기술을 거는 자가 승리하는 것이다.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키는 투쟁! 이것을 조직하자!


노동기본권 쟁취, 해고자원직복직 쟁취, 연금개악 저지, 강제퇴출 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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