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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5/04/24
    나는 왜 조그만 일에만 분개하는가?
    김지씨
  2. 2005/04/07
    <늑대인간>을 읽다가
    김지씨

나는 왜 조그만 일에만 분개하는가?

요즈음은 새로운 보직을 시작해서 여러모로 심신이 피곤하다. 300명이 가까운 후보생들에게 40여 품목의 보급품을 나누어주는 일은 내 성격과 정확히 반대되는 일이다. 나야 항상 '사는데 뭘 그렇게 다 갖추어놓고 사나, 그냥 뭐 한 두개 없는 채로 살지 뭐...'라는 식의 적당주의로 일관해왔다. 하지만 이번 일은 치약하나 잘 못 세어도 결국 내 책임으로 돌아오는 일이라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분명히 정확하게 셌는데, 나누어주고 보면 왜 이렇게 항상 부족한지 알 수가 없다. 내일도 또 부족한 게 뭔지 어디에 숨었는지, 결국 그건 누구 탓인지를 밝히기 위해 동분서주해야한다. 이런 빌어먹을...

 

문제가 발생했다. 결국 몇 가지 보급품이 빵꾸가 났다. 제길... 보급품을 나누어주던 조교하나가 나에게 전화를 걸어 숫자가 안 맞다면서 나에게 그 책임을 다 덮어씌우려 했다. 물론 결국은 내 책임이 되겠지만, 그런 조교의 말투가 기분을 확 상하게 했다. 욱하는 마음에 뭐라고 한마디했다. 기분 더 잡쳤다.

 

군대에 들어와서 이런 빌어먹을 놈의 책임소재를 가리는 일에 진절머리가 난다. 누구의 책임인지를 서로서로 떠넘기려는 분위기. 나 또한 그런 일에 매우 익숙해져 있다. 내 책임은 절대 아니라는 식의 태도들. 그 과정에서 난 사소한 일에만 분개하다가 어리버리하게 책임을 다 뒤집어 쓰기 일쑤다. 이런 일이 반복되니 난 이곳의 일이 맞지 않음을 매번 느낀다.

 

물론 여기만 그렇겠는가. 어디 직장을 취직해도 이런 일은 마찬가지일거다. 그런 생각을 하면 마음이 항상 답답하다. 삼팔선은 삼팔선에만 있는게 아니라고 했던가. 군대는 군대에만 있는게 아닌가 보다.

 

답답한 마음에 시집을 펴들었다. 김수영의 시 중에 뭐 '나는 왜 조그만 일에만 분개하는가?' 운운하는 시가 있다는게 떠올라 찾아 읽었다.

 

 

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  

- 김수영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50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30원을 받으러 세번씩 세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옹졸한 나의 전통은 유구하고 이제 내 앞에 정서로

가로놓여있다

이를테면 이런 일이 있었다

부산에 포로수용소의 제 14야전병원에 있을 때

정보원이 너스들과 스펀지를 만들고 거즈를

개키고 있는 나를 보고 포로경찰이 되지 않는다고

남자가 뭐 이런 일을 하고 있느냐고 놀릴 일이 있었다

너스들 옆에서

 

지금도 내가 반항하고 있는 것은 이 스펀지 만들기와

거즈 접고 있는 일과 조금도 다름없다

개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 비명에 지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놈의 투정에 진다

떨어지는 은행나무 잎도 내가 밟고 가는 가시밭

 

아무래도 나는 비켜서있다 절정 위에는 서있지

않고 암만 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있다

그리고 조금쯤 옆에 서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장이에게

땅 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장이에게

구청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들에게 20원 때문에 10원 때문에 1원 때문에

우습지 않으냐 1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

 

 

그러니까 나 또한 이렇게 옹졸하게, 별 다른 의미도 없이 반항한다. 결국 나 자신의 피곤함과 귀찮음과 몇 푼의 돈때문에 조그만 일에만 분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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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인간>을 읽다가

지젝의 책을 읽다가 지젝을 읽기위해서는 라깡을 기본적으로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라깡의 책을 뒤적거리다가 라깡을 읽기 위해서는 프로이트를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또 프로이트를 읽기위해선... 아차!!! 이게 바로 기표가 끝없이 미끄러지는 것인가?

 

어쨌거나 기표의 끝없는 미끄러짐에 몸을 맡겼다간 죽도밥도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에 프로이트의 책에서 멈추기로 했다. 옛날에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을 샀었다는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휴가기간 동안 시골 집에 간 김에 집 안 창고에 고이 처박아 두었던 책들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뒤지기를 30분 여, 난 나에게 정신분석학에 관련된 서적이 이렇게 많았는지 처음 알았다. 무턱대고 사다가 쌓아놓기만 한 책이 10여 권 되었다.    

 

십 여권의 책을 꺼내놓고 어느 것을 먼저 읽을 지 고민했다. 끝없이 미끄러지는 기표연쇄 속에서 한 군데 누빔점에 기표를 정박시키듯이 난 프로이트의 <늑대인간>을 꺼내 들었다. 대학 다닐 적에 빠지지 않고 강의를 꼬박꼬박 챙겨들었던 김선생님의 추천서적이기에 선뜻 손이 갔다. 결국 난 학교라는 제도에 의해 누벼지고 만 것일까...

 

아무튼 집어든 책이니 그래도 읽어보자는 생각으로 <늑대인간>에 펼쳐진 사례들을 읽기 시작했다. 시골 집의 유난히 어두운 밤을 배경으로 흐릿한 불빛 아래, 보일러도 들어오지 않는 싸늘한 방의 냉기를 느끼며 혼자 <늑대인간>을 읽자니 소름이 돋아 견딜 수가 없었다. <늑대인간>을 읽고 있으면 꼭 X-file이나 믿거나 말거나의 한 장면이 연상되었다. 세상에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발생하고 그 이해할 수 없는 일을 차근차근 설명하다보면 상상치도 못했던 이유들을 찾아내는데, 그 이유들 또한 만만치가 않았다. 그래서 난 밝은 날 다 시 꺼내 보기로 마음 먹고 책을 덮었다. 성격 상 무서운 영화도 잘 못보는데, 그런 상황을 견뎌낼 만할 배짱이 있을 리가 없었다...^^

 

밝은 날 다시 꺼내 읽어보니 상당히 인상깊은 구절들이 있었다. 세상 일이 다 그렇겠지만 겁만 먹지 않는다면 항상 의미있는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인간들은 그들의 성애(性愛)의 생활에서 그토록 멋지고 중요한 순간들을 어떻게 알아차리지 못하고 지나갈 수 있는지 놀랍다. 그리고 어떤 때는 사실 그런 순간이 있다는 것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혹은 그런 순간을 알아차린다 하더라도 자신을 완전히 기만하여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지나갈 수가 있는지 놀랍다...

 

 

우리가 심한 우울증에 걸린 소녀나 여자에게 우울증에 빠지게 된 원인이 될 만한 일이 있었나 물어보면 어떤 사람에게 감정을 조금 느꼈었지만 포기해야 되었기 때문에 곧 잊어버렸던 일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고 대답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쉽게 견디어 낸 것처럼 보였지만, 그렇게 포기한 것이 심각한 정신장애를 일으킨 원인이 되었던 것이다.

 

 

순간순간 우리에게 벌어지는 일들을 우리는 다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것들은 어느 틈엔가 우리의 몸과 마음 어느 곳에든 새겨진다. 내 몸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난 이성이라는 도구를 가지고 충분히 통제하고 있다고 판단하지만 그것은 오만에 불과하다. 항상 난 무엇인가 잊어버리고, 잊어버린 그 무엇인가로 인해 매번 놀라움에 빠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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