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연우는 내가 아닌데.

 

밑에 썼듯이 연우가 밤에 배아프다고 일어나서 배를 쓸어주었다.

연우가 등을 내쪽에 대야 잘 쓸어 줄수 있는데 옆에서 안기는 자세니까

손이 어정쩡해서 잘 못쓸어주었는지 어땠는지 '할머니한테 갈꺼야'

그러고 일어나 버렸다.  할머니가 쓸어주고 나중에는 똥도 누고 그 방에서 잠이 들었다.

할머니랑 잘거니? 물어봐서 그러겠다 하니까 할수 없이 나만 안방으로 들어와서 누었는데

잠이 안 온다. 따뜻한 말랑이가 곁에 없으니까 허전하고 무엇보다 상황이, 엄마가 부족한걸

할머니한테 찾고 잠까지 거기서 잔다니까 마음이 가라앉지가 않았다.

왜 그럴까? 낮에 연우를 다른 사람들이 돌보아준건 하루 이틀이 아니고 이제는 어린이 집까지 다니게 됐는데, 그리고 내가 뭐 할일 있을때 아빠나 할머니까 데리고 놀아준다면 얼씨구나, 하면서

컴퓨터 방으로 쏙 들어가는 것도 익숙한 풍경인데. 그니까 나 자신도 연우를 키우면서 다른 사람들 도움을 달게 받고 있고 일이며 공부시간을 확보하는게 거리낌이 없는데 말이다.

더 생각해봐야겠지만 어제 가까스로 잠을 청하면서 떠오른게

내가 엄마에게 느끼는 거리감을 연우가 나한테 느낄까봐 두려워 하는 것 같다.

 

예를 들면  이번에 광주 가서 같이 다산 초당을 가면서 엄마랑 차 뒷좌석에 앉았는데

좁아서 다리가 부딪히곤 했고 그때 마다 신경이 쓰여서 난 연우 카시트 쪽에 바짝 앉아서 그걸 붙들고 갔다.  더 과거로 돌아가 보면, 재수해서 학력고사를 보고 같이 서울서 광주로 고속버스를 타고 가는데

시험은 잘 본거 같고 그동안 힘들기도 했으니  엄마한테 기대서 가면 그림이 되는 상황이었다.  엄마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아무튼 내가 기대서 가게 됐는데 가는 동안 오던 잠도 달아날 정도로 신경이 쓰이는 것이다. 신체적 접촉이 그렇게 어색할수가 없다.

집 떠나서 일년에 몇차례씩 내려가서 만나는 관계로 산  세월이 몇년만 있으면 집에서 같이 산 세월만큼 될텐데  십대까지 형성된  서운함, 어색함은 현재의 무난한 관계 밑에 그대로 멈춰 있는것이다.

 

많이들 그렇다지만 나역시 엄마에게 솔직한 감정을 얘기해 본들 돌아오는건  '감정축소' 다 싶은 경험을 차곡 차곡하였다.  어떤 고민도 함께 나누지 못하는 사람으로 일찌감치 제쳐놓고 늘상 마음은 밖으로 떠 돌았던 것 같고. 지금 이 글도 마치 내 속에 자라지 않은 십대가 한명 쓰고 있는것 같다.

그러나 또 돌이켜 보면 엄마는 할만큼, 아니 그보다 훨씬 더 많이  했다.  직장에 다니면서 세 아이들을 키웠고 한참때는 도시락도 다섯개씩 쌌지, 또 나는 어릴때 자주 아픈 아이여서 금쪽같은 수면시간도 많이 빼앗았을거고 등등.  연우를 대하면서 감정을 받아주는것이며 아이 존중 육아며 이런것들에 민감해지는것은 한편으론 내 자신이 그런 관계를 맺어본적이 (어른들하고) 없어서 늘 마음을 쓰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까먹어버릴까봐. 글고 사실 기능이 아니라 본질의 문제랄까 나 자신이 바꿔져야 가능한 육아이기도 하다.  엄마커뮤니티의 많은 엄마들도 비슷한 고민을 하지 않을까.

아무튼 내가 두려워하는것은,  이렇게 내가 비틀 비틀 나아가서 할만큼 하는데도 (우리 엄마가 스스로 생각하듯이) 연우가 내가 엄마를 대하듯이 거리감을 느끼거나 나때문에 외로워하는 것이다. 또 내가 겪어봐서 그런 마음이 어떤것인지 아니까 연우가 나한테 그런 마음을 가지는것이 두렵다.   (평소에 엄마한테 냉정하게 생각하는것 만큼 되돌아오는것이냐.)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나는 엄마와 같지 않고 연우도 나와 같지 않다.

내가 엄마에게 갖는 느낌은 구체적인 상황들이 쌓여서 그렇게 된것이지

처음부터 그렇게 될수 밖에 없었던 건 아니었다.

내 말과 행동에서 연우가 어떻게 느끼는지 공감할수 있도록 계속 노력할거고 (까먹을때도 있겠지만)

또 연우가 커 나가는건 그 아이가 나뿐 아니라 세상 전부를 대하는 과정이니까.

무엇보다 연우와 같이 살면서 나도 커가지 않나.

 

라고 생각하며 잠을 청하려 애썼고 결국 잠이 들었다가

아침에 할머니 방에서 '엄마! 엄마하고 잘꺼야...배 아파!' 우는 소리에 깨었다.

무슨 생각을 했든지 내 품을 찾으니까 좋더만.

우리도 연우가 독립적인 사람이 되길 바라고 본래의 씩씩한 성격이 더해져

정말 생각보다 빨리 우리 곁을 떠날지도 모른다.

그 땐 지금처럼 체온을 느끼면서 평온히 잠드는 날들을 아닐텐데.

아이가 독립하면서 우리도 독립하는건가 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