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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 + 순천

 

이번 연휴에 하린의 아버지가 살고 계시는 거창에 가기로

진작 얘기를 해놨었다.

사실 언제 내려가거든 데리고 가달라고 비니한테 윽박을 질러놨던거지만.

살기는 거창읍에 사시지만 우리를 데려가 달라고 한 곳은

거창 지나 가조라는 곳으로 들어가 한참 산길로 올라간 곳에 있는 작은 농가이다.

경상남도의 산청, 함양, 거창 쪽 산세가 아름답다는데

친구들은 죄다 서울에

친척들도 서울 아니면 전라도에만 살고 있으니 갈 일이 없었다.

토요일에 10시에 출발해서 목적지에 도착해 짐을 푸니 한시가 약간 넘었고

다음날 한시 반쯤 그 댁에서 나왔으니 꼬박 24시간을 머물렀다.

평생 쐰 공기보다 맑은 공기를 마시며  네끼를 잘 얻어먹었다. 

해가 지는 저녁 산과 당황스러울 정도로 별이 많은 하늘 

(한참을 보고 있으면 지구도 우주의 일부라는 지식이

차차 마음에 살아나는 그런 하늘)

 동틀 무렵의 뿌연 하늘을 보고

오전에는 해인사 가는 산길을 절반정도 걸어서 짚어보고 왔으니

뿌듯 뿌듯하다.

가서 발견한건...

정말 주말 농장 어디라도 신청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연우 보기가 어찌나 쉬운지!

우리가 잔디 사이에 난 잡초를 뽑고 있을 때

작은 호미 하나 들려 주니까

연우 일하고 놀아! 그런다.

혼자 땅 파고, 흙으로 반찬 만들고 (안 가르쳐도 다 하는 놀이가 있나봐...),

소금은 조금만 뿌려야지,

개미들아 어디가니?

연우가 바위를 때렸어!

중얼 중얼 하며 잘도 놀더라.

작은 연못과 그 옆에 만들어 놓은 미나리꽝에 있는

오글 오글한 올챙이를 뜰채로 떠서 이쪽 저쪽으로 옮기는

놀이도 좋아했고.

 잔디밭에 난 쇠뜨기뜯기가 이렇게 재밌는 일인지 처음 알았다.

잔디 사이 사이에 촘촘하게 나있는 다른 풀들을,

잔디를 상하지 않으면서 뿌리까지 제거하는일에

나중엔 요령이 생겨서  정말 재미가 있었다.

하린과 비니는 왜 이렇게 무리를 해요, 웃었지만.

그러나 하루 머무르는 거라 가능했던거다.

재래식 화장실이 냄새보다도 안에 물이 넘실 넘실 거려

이용을 못하고 큰건 꾹 참고,

씻는것도 얼굴하고 양치질만

그리고 일도 해가 어디 있나, 따져보고 오전일 오후일, 할만큼 하는 것이 아니라

재미가 있으니 밥 먹고 나면 가서 마냥 앉아있고 했던 것인데

이건 지속가능하지 않은 것이지.

토요일엔 부모님은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시고

연우는 호미가지고 혼자 놀고 있으니

멍해지는거다.

자꾸 후배한테 논문일로 보냈어야 할 이메일이 떠오르고

금요일에 세미나 했던 논문이라도 가져올걸, 채점할 시험지 뭉치라도 들고 올걸

하면서 시간을 주체를 못하겠는 거다.

물론 이럴때 일을 미리 미리 해두면 주중에 좀 부드럽게 넘어가는건 사실이다.

다른 리듬이 있는건데, 이런게 아니라

도시에선 자기한테 맞는 리듬을 타는 생활이

가능하지 않은 것 같단 느낌이 들었다.

나만 그런지도.

 

다음날 순천 외삼촌 집에 간 연우는 또

순전히 자기 예뻐라하는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이모, 외숙모, 외삼촌 있지,

거기에 사촌 오빠들까지 우당탕탕, 꺄악 꺄악 놀아주니 얼마나 좋았겠는가.

맹렬히 웃고 뛰고 놀던 끝이라 그런지 올라오는 차속에서도 별 투정없이 편하게 왔다.

한가지 발견한건

연우의 표정이 거창 산집에서와 순천에서가 다르다는건데

뭐랄까? 둘다 즐거워했지만 거창에서는 엄마, 아빠도 손님이었으니까

자기도 손님같은 표정이었다. 순천에서는 그 표정이 사라지고

온전히 개구장이에 어리광장이 표정이었고.

아이들이 꽤 예민하구나 다시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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