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내 또래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꿈 꿔 보았을 맥가이버 되기. 나이가 들어서도 공구를 만질때면 늘 맥가이버가 생각난다. 게다가 그는 대게의 미국 드라마 주인공처럼 폭력을 사용할 줄도 모르고 삶의 위기가 닥칠때면 늘 할아버지를 떠올리는 유교적 마인드의 소유자이기에 더욱 마음이 간다.
올해 본격적으로 농사를 지으며 맥가이버가 더욱 자주 그리워진다. 집 안팎의 모든 것들. 집안의 싱크대, 샤워기부터 보일러, 경운기, 하우스, 상하수도등등의 것들을 만들고 수리하다 보면 치밀어오는 화와 함께 맥가이버가 생각난다.
뭔가 잘 안 풀릴때 맥가이버는 할아버지 이야기를 떠올리곤 했는데, 대 이주 이후에 태어난 나에게는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설날 세뱃돈 받은 것 빼곤 거의 없으니 맥가이버처럼 할아버지를 떠올릴수도 없지 않은가. 그러니 일이 잘 안될때는 맥가이버도 생각나지만 맥가이버한테 전해들었던 맥가이버네 할아버지가 우리 할아버지보다 더 자주 생각난다.
그러나 늘 일이 잘 안되는 건 아니다. 처음 만져보는 것들 중 8할은 (사전에 네이버 박사나 구글 박사님께 아무리 상세하게 배웠어도) 두세번은 직접 만져보아야 일이 진행되지만, 우리에겐 나머지 2할이 있지 않은가.
가령 경운기 트레일러를 때내고 혼자 힘으로 로터리를 달았을 때 그 환희는 나르시스의 자아도취쯤이야 아무것도 아니다.
시간이 흐르니 점점 혼자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진다. 철물점에 가서 굽신거리지 않고 당당하게 커피를 타 마시며 주인 아저씨와 공구들의 장단점에 대해 이야기도 한다. 닭 운동장을 만들고 운동장으로 오가는 문을 만들때면 마치 에디슨의 화신이 몸에 달라붙은양 백만가지 아이디어들이 쏟아져 나온다. 재미있다.
요새 나는 맥가이버 되기 놀이에 빠져있다.
그런데 딱 하나 맥가이버를 따라 할 수 없는게 있다. 맥가이버는 총과 칼을 뎁따 싫어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곧 붕괴될 도시에서 난민들이 때로 몰려와 이성을 잃고 덤벼들 것을 대비해서 집에 목검 한 자루 정도는 비치해 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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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처음 경운기 샀을때 그랬지. 혼자 하니 엄청 힘들더구만.^^
어디 꼴창에 빠지기도 하고..후후.. 지금은 없지만 좋은 경험이었어.
단이는 딱 맥가이버 스따일이얌
난.. 잘 기억나진 않지만 대머리 아저씨 정도..후후.. 단이를 부려먹어야지 ^^
"삶의 위기가 닥칠때면 늘 할아버지를 떠올리는 유교적 마인드의 소유자"에서 하하하...
저도 경운기는 간신히 몰 줄 알지만, 트랙터는 아직도 무섭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