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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오늘(9.12) 조선 공산당 재건

1945년 9월 12일 조선공산당이 박헌영을 중심으로 재건되었다. 해방이후 남한은 미군진주와 상해임정 세력, 이승만 중심세력, 사회주의 세력들이 할거하여 극심한 혼란상을 보였다. 그러나 일제 말기까지 지속적으로 투쟁했던 유일한 집단은 사회주의 그룹이었고 해방직후 건준조직에 대거 참여했기 때문에 중도 좌파, 좌파가 헤게모니를 지니고 있었다. 대중조직인 건준과 별개로 1945년 8월 16일에는 장안파 조선공산당이 결성됐고 20일에는 박헌영을 중심으로한 '조선공산당 재건 위원회'가 발족했다. 장안파 조선공산당은 곧 당 재건의 전권을 박헌영에게넘기고 해체됐다. 박헌영은 즉시 조선공산당 재건에 착수했고 결국 9월 12일 드디어 당을 재건해냈다. 1928년 당 해체 이후 17년 만의 일이다. 국내 사회주의의 기원은 1918년 이동휘가 하바로프스크에서 결성한 '한인사회당'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이후 이르쿠츠크파 고려공산당, 상하이파 고려 공산당이 국외에서 결성됐었고 국내에서는 화요회, 북풍회 등이 결성되어 활동했다. 지난한 조직 통합을 거쳐 1925년 4월 김재봉을 책임비서로 조선공산당이 건설됐다. 그러나 치안유지법(국가보안법의 모태)과 와 파벌 싸움이 겹쳐 1928년 해산된 것이다. 해산 이후에도 당 재건을 위한 투쟁은 뜨거웠다. 김삼룡, 이현상 등과 경성트로이카를 결성한 이재유가 그 대표적 인물이다. 1926년 고려공산청년회 일본총국에가입하며 공산주의 활동을 시작한 이재유는 1944년 옥사했다. 다양한 부문, 다양한 수준의 그룹들과 협력하며 당재건 투쟁을 이끌었던 이재유의 활약은 가히 전설적이라 할 만하다.그는 야경꾼,벽돌공장 노동자, 농촌 지도자로 계속 변신하며 지하 활동을 했었고 34년 1월 서대문 경찰서에서 탈출하기도 했다. 37년 다시 체포될 때 그가 은신처로 삼은 곳은 바로 경성제대 교수 미야케 시카노스케의 관사 였다. 당시 조선일보의 머릿기사를 살펴보자. "탈주 탈주 탈주 4년간,적색거두 이재유 피체(1937년5월1일 호외)" 그리고 동아일보는 "경성제대 연구실 관사 금번 공산운동의 총본영"이라 보도했다. 정말 아름다운 국제주의의 실천이 아닐수 없다^^ 이재유 체포 이후에도 이재유 그룹 활동가들은 39년 박헌영과 함께 경성콤그룹을 결성해 지속적으로 활동했다. 이들은 역시 해방후 재건 조선공산당의 핵심적 역할을 했다. 재건 조선공산당의 본부는 서울에 있었고 평양에는 북조선 분국이 설치되었다. 북조선 분국의 책임비서는 김일성인데 김일성이 북의 실권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러한 것이 겠지만 엄연히 총비서는 박헌영이고 김일성은 박으로 부터 임명장을 받았다. 25년 창당된 조공의 역사가 짧았듯이 재건 조선공산당의 역사 또한 길지 않았다. 그 짧은 역사를 짚어보자. 1945년 9월 19일 조선공산당 중앙위원회 기관지 해방일보가조선공산당 중앙위원회 기관지 해방일보가 창간됐다. 해방후 조선공산당은 근택빌딩을 임대해 사용하고 있었는데 그 지하에는 '조선정판사'라는 인쇄공장이 있었으며 해방일보 또한 정판사에서 인쇄됐다. 그런데 1946년 5월 15일 바로 그 유명한 조선정판사 위조 지폐 사건이 발표되었다. 조선공산당 재정부장 이관술과 해방일보 사장 권오직을 비롯한 14명이 연루되었다는 것이다. 결국 해방일보와 조선공산당은 미군정 당국에 의해 불법화 되었다.(사실 정판사 위폐 사건은 조작이라는 증언이 아주 많다.) 결국 당이 불법화 된 이후 박헌영은 강경투쟁으로 돌아선다. 그해9월에는 전평의 철도 총파업, 10월에는그 유명한 대구인민항쟁... 결국 소련의 조정에 의해 공산당 본부는 북으로 이동되고 김일성은 위원장, 박헌영은 부위원장으로 배치된다. 이 때부터는 조선공산당의 시대가 아닌 남조선 노동당, 북조선 노동당의 시대가 전개된다. 해방이후 조선공산당의 활동이 좌경화의 오류를 범한 것이지 강고한 투쟁에 앞장 선 것인지 판단할 능력이 내게는 없다. 그러나 짧은 조공기간중 남한의 역량은 점차 줄어들고 북한의 역량은 고스란히 보존된데다가 남한의 역량까지 넘어가 날이 갈수록 강화됐다는건 분명한 것 같다. ▲ 1948년 9월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성립 후 정부 각료들의 사진. 앞줄 오른쪽에서 네번째가 김일성(수상), 다음이 박헌영(부수상겸 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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