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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냉면의 길

 

새벽녘이면 날씨가 꽤 쌀쌀하기 까지 하고 일교차가 높아 감기 걸린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낮에는 여전히 더운데다가 태풍 불어온다고 습도까지 많은지라 아직도 냉면 생각이 난다.왔다갔다 하다 보면 냉면집에 아직도 사람들이 꽤 많더라. 


일전에 선배에게 식사 대접을 할 일이 있었다.(내가 멀쩡히 돈 잘버는 선배한테 식사대접을 한다는 말은 내가 시간을 내주고 메뉴도 골라주고 계산은 그 선배가 한다는 뜻이다 ^^V 근데 어떤 후배가 나한테 이런 식으로 대접하겠다면 정중히 사양하겠다--;;) 그 선배랑 무슨 일로 이틀간 시간을 같이 보내긴 했지만 좀 느끼한 식사들의 연속이었는지라 저녁은 깔끔한 것으로 먹기로 합의를 봤었다. 정통적 요리를 좋아하지만 에쓰닉한 요리나 각종 퓨전요리도 즐기는 나는 베트남 퍼 를 제안했으나 그 선배는 개운하게 김치찌게를 먹자고 했고 김치찌게를 받아안기엔 속이 그닥 좋지 않다는 반론이  이어진 끝에 냉면을 먹으러 가기로 합의를 봤다. 을밀대를 갈까 하다가 좌회전을 놓치고 을지면옥을 갈까 하다가 저녁시간에 을지로로 차 몰고 들어갔다가 나오는건 죽음이 아닐까 싶어서 신촌으로 왔었다.


기실 신촌에도 그나마 전통을 자랑하는 냉면집들이 몇 군데 있긴 하다. 예컨데 명물거리에 있는 고박사 냉면(이 곳은 정말 명실이 상부하지 못한 곳이다. 사리는 한 젓가락 집으면 끝이고...육수도 글쎄...)도 있고 우정스포츠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면 냉면집들이 몇 군데 있고 또 현대백화점 에스컬레이트 입구 맞은편의 함흥냉면집도 최상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퀄러티를 보장하는 곳이다. 그런 곳들을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선배를 끌고 간 곳은 율촌냉면(구월산 족발집에서 아래로 오십미터 정도, 현대백화점 일층 옆문 바로 맞은편에 위치하고 있다)이었다. 왜냐면? 내가 저녁타임에 그 앞을 지날 때마다 손님들이 줄을 서 있었기 때문이다. 지성의 명철함보다 대중운동의 우위를 믿는 나로서는 꿩 잡는 게 매라는 고래의 격언을 믿을 수 밖에 없고 사람 몰리는 곳이 맛집이라는 진리의 역관계에서 벗어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바뜨, 그러나 냉면을 먹은 후 선배는 나에게 온갖 욕설을 퍼부었고 나는 담담히 그 욕설을 배불리 먹었다. 자, 그렇다면 율촌 칡 냉면이 맛이 없었던가? 따지자면 꼭 그런건 아니다. 가게에 들어 갔을때 테이블이 딱 하나 남아있었던 것을 보고 '음 잘왔군' 하는 회심의 미소가 지어졌었으나 너무 시끌벅적하고 어린 친구들이 많았던걸 보곤 좀 의심의 여지가 생기기 시작했다. 하여튼 그러다가 칡냉면 대짜 두 그릇이 서브되어왔다.


이건 뭐...그래 맛있다면 맛있을 수도 있다만 그 맛이라는게...학교 앞 분식점 냉면맛이라는게 문제였다. 나도 매운 음식 좋아하고 매워서 맛있는 음식도 있고 매워야만 하는 음식도 있다. 그리고 단 음식도 마찬가지다.(단 음식 일반을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그치만 냉면이 그래선 안된다.


근데 이 냉면은 매콤달콤의 극치였다. 고삐리때 학교 앞 분식점에서 그 당시 가격으로 천이백원 주고 먹던 냉면, 지금도 어느 중고등학교 앞 분식점에 가면 이천오백원 정도를 주고 먹을 수 있는 그 냉면...바로 그 맛이었던게다--;;사골육수와 동치미 국물이 조화된 시원하면서 구수한 육수는 간 곳이 없고 사이다에 고춧가루 탄 맛의 육수가 그 자리를 차지했으며 씹히는 맛이 중요한 편육과 채썬 배도 없고 냉면 그릇에 담긴 거라곤 시커먼 칡사리와 오이, 무채, 시뻘건 고춧가루 그리고 마치 물에 빠져죽은 개미떼 같은 통깨들...


물론 나도 이런 음식들 먹고 또 어떨땐 좋아하기 까지 한다. 근데 이건 말이지 라면 집 혹은 수제비 집에서 곁다리 메뉴로 끼워 판다던가 아니면 떡볶이를 서브메뉴로 하는 냉면 전문 분식집의 맛인거지 냉면과 설렁탕을 메인으로 내세우는 식당의 맛이 아닌게다.


언어가 그렇듯이 음식 또한 언중 아니 식중(衆)에 맞춰 갈 수 밖에 없고 또 맞춰가야만 한다만 이런 분식점 냉면을 5500원씩이나 받아먹고 또 그런 식당에 줄을 서서 기다리는건 뭔가 좀 찝찝하다. 나 또한 언젠가  붐비지는 않되 주인과 손님 서로가 만족해 하는 일품요릿집을 했으면 하는 꿈(--;;)이 있어 그런지 모르겠지만 뜬금없이 메이냐드 케인즈의 발언이 생각난다. 뭐랬더라? 자본주의하의 경제가 돌아가는게 미인대회랑 마찬가지긴 한데 개별 주체들이 좋아하는 미인을 고르는게 아니라 나머지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미인을 고르는거라 했던가? 어쩌면 이 글 읽고, ‘그래 내가 원하던 냉면은 바로 이거야’ 하면서 찾아갈 사람이 있을런지도 모르겠네.

 

 

첨언: 이 글은 싸이월드 미니홈피의 내 글을 수정보완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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