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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오늘(9.8) 레니 리펜슈탈 영면.

미안하다. 오늘이 아니라 어제다--;; 이해해달라. 그래도 새벽 한시가 넘어서 퇴근하고 이걸 쓰고 있다. 어여삐 봐주기 바란다. ㅠ.ㅠ

 

2003년 9월 8일 다큐멘터리 감독, 극영화 감독, 사진 작가 그리고 스킨스쿠버 다이버인 레니 리펜슈탈이 101세(!)를 일기로 영면했다.

 

레니 리펜슈탈은 20세기 여성 예술가 중에 가장 논쟁적인 인물이다. 그녀의 작품들은 미학적, 선동적 측면에서 볼때 이미 20세기 전반에 가장 완성된 형태의 결과물이었다. 무용가, 영화배우로 그녀의 예술 커리어가 시작됐지만 그녀 스스로가 표현대상으로 그치기엔 그녀의 예술적 능력이 너무 뛰어났다.

 

스스로 프로덕션을 차려 제작, 시나리오, 연출, 주연에 이르기까지 혼자서 북치고 장구쳐서 만든 작품 '푸른 빛'은 베를린 영화제 은곰상을 수상했고 그녀는 곧 나치에 픽업된다. 그리하여 만들어진 전설적인 작품이 바로 '의지의 승리 Triumph des Willens 1934 감독 레니 리펜슈탈 출연 아돌프 히틀러, 루돌프 헤스, 파울 요제프 괴벨스' (출연진만 봐도 으스스 해지지 않나?)이다. 나치의 뉘른베르크 전당대회를 다큐멘터리로 담아낸 이 작품은 21세기 오늘날에도 보는 사람들의 숨을 턱턱 막히게 만든다.

 

120명의 스탭, 36대의 카메라, 8개월 간의 편집을 통해 이 세상에 태어난 이 작품은 그야말로 프로파간다의 극치다. 도입부에선 히틀러가 등장한다. 그 장면은 마치 메시아의 강림을 떠오르게 하며 또 다른 장면에선 히틀러가 20만명의 군인 사이를 헤치고 등장하는 샷이 나온다.  이 샷을 잡기 위해 리펜슈탈은 정면의 첨탑에 카메라를 설치하기 까기 했다. 그 외에 부감샷의 사용을 통한 장엄한 장면과 백그라운드 뮤직으로 쓰인  ‘호르스트 베셀의 노래 Horst Wessel Marsch’까지...정말 이것이 예술이로구나 하는 탄성이 절로 나오게 만드는 작품이다. 미학적 완성도라는 측면에서 이 작품을 뛰어넘은 창작물이 있을까?

'의지의 승리'를 패러디 한 작품들의 면면도 화려하다. 앨런 파커 감독의 '핑크프로이드 더 월' 조지 루카스의  '스타워즈'  찰리 채플린의 '위대한 독재자'에 이르기까지...그리고 우리가 2차 대전 자료화면들에서 흔히 보이는 히틀러의 카리스마틱한 묘사들은 거의 전부가 이 작품에서 따온 것이다. 심지어 나치 패망 이후 이 작품은 나치의 향수를 불러일으킨다는 이유로 오랬동안 전세계적으로 방영금지작으로 묶여있기도 했다.

 

그녀의 천재성은 이에 그치지 않았다. 전세계를 경악케 한 작품이 바로 이듬해 나왔으니 그 작품은 바로 그 이름도 유명한 '올림피아' 인 것이다. 이후 수많은 스포츠 중계와 상업적 영화들에 영감을 준 이 작품은 인간 육체의 아름다움과 생동감 넘치는 경기 장면들을 극적으로 표현했다. 그 뒤로 매 올림픽 마다 만들어지는 기록영화들은 사실 전부가 이 작품의 패러디에 불과하다.

 

'올림피아'에는 흥미로운 대목이 하나 있다. 레니 리펜슈탈은 동양에서 온 과묵한 한 청년의 모습에 혼을 팔려버렸으니 그가 바로 '손기정'이다. 올림피아의 꼭지들 중에 가장 긴 시간이 할애된 부분이 바로 손기정의 마라톤 역주 장면인게다. 물론 올림피아 또한 나치스와 아리안 족의 우월성이란 주제의식이 과도하긴 하다. 이 지점에서 내가 미디어 참세상에 올린 기사를 하나 참조하라.- "축구를 시작하지 않았으면 저항세력 되어 싸웠을 것" http://media.jinbo.net/news/view.php?board=news&id=30887&page=2&category1=3

 

어쩌면 당연한것인지 모르겠지만 2차대전 이후 리펜슈탈은 전범 재판까지 받았고(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실형은 안 살았다.) 그녀의 예술은 어떤 자본과 정치세력의 뒷받침도 못 받았다. 결국 리펜슈탈은 돈도 안들고 혼자서 할 수 있는 장르를 찾았으니 그것이 바로 사진이었다.

 

그녀는 이후 아프리카의 풍경과 인간들을 사진으로 담아냈고 그 작업들 또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뿐인가? 71세에 스킨 스쿠버 자격증을 땄고 그 떄부터는 해저 카메라맨으로서 그녀의 예술을 이어나갔다. 100세 생일을 맞이하여 공개된 작품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해저의 인상'. 그녀는 이 작품으로 다큐멘터리스트로서의 컴백을 전세계적 찬사 속에서 화려하게 해냈다.

 

2003년 레니 리펜슈탈은 ‘내 인생의 가장 큰 잘못은 히틀러를 만난 것“이라는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예찬자와 비판자 모두에게 경악과 감탄을 남겨준 20세기 최고의 예술가중 하나로 손색이 없을 것이다.



‘의지의 승리’ 중 두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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