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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전가된 돌봄과 엄벌주의


공격성향의 돌봄 대상 - 교육도 지원도 없이

나는 A를 B와 함께 만났다. A는 대화가 통하지 않았다. B는 A의 보호자다. B는 A에게 필요한 일을 나에게 지시했다. 내가 밥과 물을 차려주면 A는 알아서 먹었다. 때로는 A를 데리고 산책을 다녀왔다. A는 보조기기 없이도 잘 다녔고, 집 바깥 화장실을 좋아했다. 우리는 종종 집 인근 공원의 화장실에 오갔다. A는 대소변을 본 후 뒤처리를 해 줄 필요가 없어 큰 어려움이 없었다. 다만 그가 다른 사람을 깨물기도 해 문제였다. A에게는 손발톱 깎기, 목욕이 필요했고, A는 그 과정에서 나에게 공격성을 보이기도 했다. 처음 서비스를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B는 A를 목욕시키라고 했다. A는 목욕을 싫어하는 듯했고, 목욕을 거부하며 나를 깨물려 했다. 자칫했다간 내가 물릴 판이었다. 결국, 나는 A의 머리를 밀치고 목덜미를 잡은 채 몇 대 쥐어박았다. A는 공포에 떨며 몸 씻김을 당했다. 깔끔해진 A를 보며 B는 만족했다. B는 다소 폭력이 있었음을 알았지만, 같이 살려면 어쩔 수 없다며 묵인했다.

장애인 활동지원에 관한 이야기다. 하지만 장애인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다. A는 장애인 B씨가 키우는 반려견이다. 나는 개를 키워본 적이 없고, 개를 대하는 방법에 대해 교육받아본 적이 없다. 반려동물이 대중화된 만큼이나 반려동물을 키우는 장애인도 많고, 반려동물을 돌보는 일도 현실적 업무로 활동지원사에게 떠넘겨진다. 하지만 이에 대한 지침은 물론이고 교육은 전무하다. 돌이켜보면, 반려견이 조금은 더 편안해할 목욕이 불가능한 것은 아닐 것이다. 먼저 반려견과 내가 친해지고 서로에게 익숙해지는 시간이 충분히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리고 나에게 누군가가 반려견의 행동을 살피고 헤아리는 방법, 반려견의 공격행동을 대처하는 방법, 이러한 행동을 교정할 수 있는 방법을 미리 알려주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반려견의 개별적 특성도 알려줬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아니면 아예 개 전문가를 붙여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그런 시스템이 없다. 그저 활동지원사는 장애인 이용자에게 갈 뿐이고, 장애인 이용자가 요구하면 요구하는 대로 서비스를 제공한다.

신체장애인과 구분되는 발달장애인 지원 방법

이는 반려동물에게만 적용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활동지원사들은 종종 발달장애인의 지원에 관해 어려움을 토로한다. 활동지원사들은 실질적인 매뉴얼이 없다고 호소한다. 신체장애인은 그들의 지시대로 업무를 수행하면 되지만 발달장애인은 같지 않다. 발달장애인을 지원하는 방법은 애초부터 장애인의 의사에 따르지 않는다. 활동지원사는 발달장애인을 부모 혹은 그에 준하는 주변 사람과 함께 만난다. 활동지원사의 서비스 내용은 장애인 당사자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보호자에 의해 결정된다. 활동지원사는 첫 만남에서 발달장애인 개인의 특성을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보호자의 이야기를 듣는다. 실질적인 업무지시는 이들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해당 활동지원사에게 서비스를 받을지 중단할지에 대한 결정도 보호자를 통해 이루어진다. 보호자가 요청하는 서비스 내용에는 당사자에게 통제를 가하는 내용이 포함된다. 보호자가 발달장애인 당사자에게 소위 인권적이라 할 만한 서비스를 요구하는지도 불확실하다. 사실 발달장애인의 의사를 존중하고, 발달장애인의 모든 행위에 대해 보호자가 책임을 져 준다면, 활동지원사는 발달장애인을 통제할 이유가 없다.

발달장애인과 활동지원사는 관계를 미리 형성할 시간도 주어지지 않고, 발달장애인을 대하는 특별한 교육이나 지침도 없고, 개별 발달장애인의 특성에 대한 적절한 정보가 주어지지 않는다. 안타깝게도 보호자들은 개별 발달장애인의 특성을 잘 정리하여 활동지원사에게 전달할 여력이 없는 경우도 있고, 활동지원인력이 서비스 제공을 꺼릴 사유를 알리고 싶어 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발달장애인에게 공격당한 활동지원사가 산재보험을 신청하려 해도 혹여나 자신의 자녀가 어려운 이용자로 소문날까 두려워한 부모의 만류로 신청하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자기결정권이라는 환상

국가는 장애를 통제하기 위해 일률적으로 장애라 규정하고 줄 세우지만, 장애 내부의 차이는 비장애와 장애의 차이보다 크다. 나는 솔직히 발달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을 이야기할 때, 비장애인과 신체장애인 중심으로 형성된 자기결정권 패러다임을 발달장애인에게 일괄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정당한지 의문이 들 때가 많다. 겉으로는 발달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는 척하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그렇지가 않다. 우리 사회는 발달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지도 않고, 활동지원사에게 그렇게 가르치지도 않고, 그렇게 지시하지도 않는다.

중증의 발달장애인에게는 신체장애인을 지원할 때에는 강조되지 않는 보호, 그리고 그 보호와 구분되지 않는 통제가 요청되기도 한다. 언어장애인과의 소통에는 언어장애를 고려하여 천천히 반복적으로 신중하게 인내심을 갖고 듣는 것이 강조되지만, 발달장애인과의 소통에는 장애인이 말을 잘 듣도록 위한 스킬이 강조된다.

활동지원사 양성교육 교재를 보자. 활동지원사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해당 교재로 교육을 받는다. 발달장애인을 설명하는 장에서는 “자기결정권 부여”하라면서도, “지적장애인에 대한 무조건적인 수용이나 인정은 바람직하지 않다”[1]고 말한다. 존중받을 사안과 존중받지 않아야 할 사안을 타인이 판단하는 것 자체가 이미 존중받지 못함을 의미한다. 한편 사회적으로 이슈화되고 문제가 제기되는 발달장애인의 도전행동에 대해서는 신체적 개입, 공간적 분리 조치가 가능한 것으로 언급한다.

③ 위기단계

이 단계에서는 이용자의 감정 상태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증가하고, 결과적으로 도전적 행동이 발생한다. 활동지원사는 이용자의 도전적 행동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이해하고, 도전적 행동의 발생 상황에 지원하는 과정에서 이용자와 활동지원사 모두를 보호할 수 있어야 한다. 이때 이용자나 타인의 안전을 위하여 신체적 개입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손목잡기 등의 직접적 신체 접촉을 통한 개입이나 격리·문 잠그기 등의 활동에 제한을 가하는 공간적 개입과 같은 유형이 있다. 다만 신체적 개입에 대해 이용자의 인권을 보호 및 존중하기 위하여 다른 방법이 없을 경우 최후의 수단으로 최소한 시간이 소요되도록 진행되어야 한다.

- 보건복지부 한국장애인개발원 발간, 활동지원사 양성 교육교재, 2021년 12월 발행판, 139쪽. 강조 필자.

이러한 조치 이전에 제시하고 있는 절차는 관련된 사람들과의 논의가 전부다.

발생 전과 후에 이르기까지 활동지원사의 역할을 확인하고, 특히 신체적 개입 등에 관해서도 논의할 필요가 있다. 이와 같은 당사자, 활동지원사, 보호자와 가족, 활동지원 제공기관의 소통 과정은 사전에 이루어져야 할 것이며, 지원 과정에서도 지속될 필요가 있다. 이때 비판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으면서 정보를 공유해야 한다.

- 보건복지부 한국장애인개발원 발간, 활동지원사 양성 교육교재, 2021년 12월 발행판, 137쪽. 강조 필자.

보호자로부터 허락받은 신체 구속과 감금은 정당할까

활동지원사 양성교육 교재에서는 “당사자, 활동지원사, 보호자와 가족, 활동지원 제공기관”이 소통하여 사전에 정하고 소통이 지속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현장에서 이에 대한 논의는 거의 전적으로 보호자에게 의존되어 있다. 당사자는 동의·부동의 여부를 표할 수 없는 경우도 있고, 보호자가 활동지원기관을 선택하므로 활동지원기관의 영향력이란 크지 않다. 활동지원기관은 기관대로 사례별로 촘촘히 지원하기에는 인력이 부족하다. 결국, 앞서 말한 대로 서비스 내용은 보호자에 의해 결정되고, 앞서 언급된 “신체 접촉을 통한 개입”과 “공간적 개입”은 보호자의 의사에 따라 이루어질 수 있다. 아니면 보호자마저 방임하여 활동지원사가 전적으로 결정하게 될 수도 있다.

보호자도 장애인을 학대하지 않는다고 단언할 수 없다. 2019년 7월 보건복지부가 발간한 양성교육 교재에서는 도전행동에 대한 명시 자체가 없었다. 2019년 12월 대전에서는 친모와 활동지원사가 지적장애인을 수시로 화장실에 가두고 때려 숨지게 하는 사건이 있었다.[2] 장애인 구속을 위해 개 목걸이가 사용되기도 했다. 그런데 그 사건이 있은 얼마 후 발달장애인의 도전행동에 대한 신체적·공간적 개입을 새로이 명시하는 양성교육 교재가 2021년 12월에 발행되었다. 정부는 개별 사건을 일탈적 사건으로 인식하는 데에 급급하다.

피할 수 없는 구체적 돌봄, 국가의 역할

신체장애인에게 신체 구속과 감금이 이루어졌다면, 장애인 학대로 판단될 것이다. 비장애인에게 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형법상 범죄로 판단될 것이다. 발달장애인에게 신체장애인 또는 비장애인과 같은 수준의 자기결정권이 존중된다면, 마찬가지로 판단되어야만 하는 것은 아닐까?

장애인에 대한 지원은 공적 지원체계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그래서 발달장애인의 도전행동 돌발행동에 대한 통제도 공적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나는 발달장애인에 대한 신체 통제가 사인의 판단에 의해, 사인의 물리력 행사에 의해 가능하다는 생각 자체가 발달장애인을 둘러싼 학대 등 여러 사건의 싹은 아닐까 생각한다. 차별적 교육을 받은 종사자가 학대를 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기적은 아닐까. 교재에서 말하는 ‘최후의 수단’, ‘최소한의 시간’은 정말 최후이고 최소한일까. 그 판단에 대한 보증은 누가 하는가? 이러한 판단을 사인에게만, 그것도 대부분의 경우 한 사람의 활동지원사에게 맡겨두는 것은 옳은가. 우리사회는 장애인을 대함에 있어 국가 공권의 사용마저 아까워하는 사회는 아닐까.

발달장애인에 대한 신체 통제가 정말로 ‘최후의 수단’, ‘최소한의 시간’ 만큼 필요하다면 비장애인에게 그러한 것처럼 사법절차와 공권력에 의해서만 예외적으로 신중하게 행사되도록 하는 것이 맞다. 국가가 행할 판단을 어정쩡하게 돌봄노동자에게 전가하고, 학대라며 비난하는 일은 없어져야 한다. 제대로 된 매뉴얼과 지원방안이 조속히 마련되어야 한다.


  1. 보건복지부 한국장애인개발원 발간, 〈활동지원사 양성 교육교재〉, 2021년 12월 발행판, 132쪽.
  2. 연합뉴스, 지적장애인 빨랫방망이로 때려 숨지게 한 활동지원사 징역 17년, <https://www.yna.co.kr/view/AKR20200618115100063>, 2020-06-18
2023/08/25 01:52 2023/08/25 0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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