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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시설 장애인의 금전 관리와 활동지원

탈시설 장애인의 금전 관리와 활동지원

2024-08-22


활동지원사가 도둑으로 몰리는 몇 사례

2024년 3월 활동지원사 김씨는 노조에 상담을 요청했다. 김씨는 N지원주택에서 장애인이용자 이씨에게 서비스를 제공 중인데, 자립생활 지원주택 팀장이 일방적으로 서비스 중단을 요구했고, 장애인이용자에게는 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언급조차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팀장은 활동지원사가 속한 활동지원 기관에도 서비스 중단을 통보했다. 활동지원사는 이 상황을 납득할 수 없어 직접 장애인이용자에게 물었다. 그런데 정작 장애인이용자는 계속 서비스를 해주길 바란다고 했다. 노동조합은 N지원주택 팀장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N지원주택 팀장은 이씨가 김씨로부터 활동지원을 받는 날이면 주문음식을 너무 많이 시켜 먹는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주택 팀장은 장애인이용자가 배달음식을 자주 시켜 먹는 일이 활동지원사의 잘못이라고 보았다. 활동지원사는 순전히 이용자가 원해서 배달음식을 시켜 준 것이라고 항변했다. 심지어 이용자가 자기 손으로 스마트폰을 작동해 주문음식을 시켜 먹었다는 것이다. 간혹 함께 음식을 먹는 경우가 있어 서로 돌아가면서 주문하기도 하고, 일부 금액은 활동지원사가 부담했다고 한다. 면담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은 해당 이용자가 발달장애나 지적장애가 있는 것도 아니고, 시설에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판단능력에 특별히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김씨의 잘못이 아니라는 점이 밝혀졌지만, 팀장이 이미 장애인 이씨에게 김씨를 그만두게 하자고 한 상태였고 김씨는 다시 일터로 돌아갈 수 없었다.

2019년 활동지원사 박씨는 도둑으로 몰려 일을 그만두게 된 사례였다. 장애인이용자 최씨는 탈시설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자립생활지원금 천만 원가량 최씨의 통장으로 입금되었다. 최씨는 글을 몰랐다. 하지만 판단 능력에 문제가 없었고 최씨는 스스로 통장에 있던 돈을 소비했다. 그런데 최씨의 지출은 다소 과했고 이에 주택 측은 박씨에게 최씨가 왜 그렇게 돈을 많이 썼냐고 물었다. 돈은 최씨가 썼으니, 돈에 대한 기록을 박씨가 가지고 있을 리도 없었다. 24시간을 함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주택 측의 계속된 추궁에 활동지원사 박씨는 일을 계속했다가 누명을 쓸 것 같아 그만뒀다. 최씨는 이후 다른 활동지원사에게 서비스를 받고 있다. 최씨는 박씨에게 수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수시로 연락한다. 박씨는 최씨에게 필요한 노동을 간혹 제공한다.

2017년 김씨를 처음 본 것은 다른 체험홈에서였다. 김씨의 이용자 정씨는 탈시설해 체험홈에 살았다. 언제부턴가 연애도 시작하면서 연애에 따른 소비도 많아졌다. 체험홈에서 제공하는 금전관리 교육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정씨는 체험홈으로부터 지출에 대한 지적을 받았다. 정씨가 자신의 체크카드로 돈을 쓰면 통장에 기록이 남아 체험홈에 지출 사실이 드러났고, 이는 계속된 지적으로 이어졌다. 처음 맛보는 돈 쓰는 맛을 포기할 수 없었던 정씨는 자신의 지출을 은폐하기 위해 활동지원사 김씨에게 돈을 빌려 달라고 했다. 당시 초보 활동지원사였던 김씨는 별 의심 없이 돈을 빌려줬다. 그리고 약속된 어느 날 정씨로부터 돈을 다시 돌려받았다. 그러자 난리가 났다. 김씨가 정씨의 돈을 빼갔다고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자신의 지출을 숨기고 싶었던 정씨는 모르겠다고만 했다. 김씨는 정씨로부터 빌려준 돈을 받은 것이라고 말했지만 체험홈 측은 김씨를 쉽게 믿어주지 않았다. 경찰에 신고하니 마니 하는 이야기를 듣고, 김씨는 일을 그만뒀다. 어찌 된 일인지 경찰서에서 연락이 오지는 않았다.

이어지는 고민들

활동지원사의 노동조건이 안정적이라면 사실 도둑으로 의심받는 일 정도는 큰일이 아닐 수도 있다. 감사나 조사를 받고 진상이 규명되면 될 일이다. 하지만 활동지원사는 노동자들이 괴로워하는 감사나 징계위 절차를 밟는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용자의 서비스 제공 거부만으로 소득이 끊기고, 활동지원기관들은 일거리를 제공할 의무를 부담하지 않는 것이 용인되는 현실에서 우리의 일상적 노동조건은 ’무기한 무급 정직’이 기본값이다. 우리는 소문만으로도 생존권을 위협받는다. 하지만 동시에 장애인이 처한 현실에 대해 동시에 고민하게 되기도 한다.

접촉하는 순간 돌봄권력이 생길 가능성 배제하지 말아야

장애인을 위한다는 각종 지원이, 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을 제약하는 권력이 되기도 한다. 때로는 원하지 않는 지원이 강요될 수도 있고, 너무 필수적인 지원이라 거절이 힘들 수도 있다. 서비스 제공자가 자신의 의사를 관철하거나 강요하기도 한다. 혹자는 이것을 ’돌봄권력’이라고 명명한다. 아마도 주택 측에서 활동지원사에게 휘둘려 재산을 탕진하는 장애인을 상상하는 일이 잦은 것 같다. 마찬가지로 활동지원사가 ’돌봄권력’을 장애인에게 행사한다는 편견을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돌봄권력’을 갖는 존재는 활동지원사로 한정되지 않는다. 사회복지사, 탈시설운동가, 동료상담가, 교육자, 중증장애인 일자리 사업가 등 다양한 존재일 수 있다. 장애인 입장에서는 주거지원 서비스에 대한 여러 선택지가 눈에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현재 거주하는 지원주택을 벗어나는 일도 쉽지 않을 터이다.

앞서 살펴본 사례는 자립생활지원주택이 장애인의 지출 욕구를 억압한 상태에서 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해 주는 활동지원사와 함께 있을 때 그 욕구가 분출된 사례로 볼 수 있다. 돈을 마음껏 쓰지 못하게 하는 주택 측이 이 돈을 누가 어떻게 어디서 썼냐고 물으면 장애인은 쉽게 답하지 못하는 건 당연하다.

당사자가 경험하는 진정한 실패 가능성

장애인의 지출을 통제하게 되는 주택의 입장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주택은 임시로 있는 곳이고 계속 거주할 수는 없다. 지원주택을 나가 진짜 자립생활을 시작하려면 거주자가 얼마간 자금이 있어야 한다. 장애인은 지출관리에서 실패하면 다시 시설로 돌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자신들이 관리하는 주택에서 장애인에 대한 갈취가 있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오명이다. 하지만 장애인이 주체적으로 탕진할 가능성을 배제해서는 안 된다. 시설에서는 차단됐을 각종 상품광고는 이 물건을 소비하라 꼬드긴다. 비장애인도 일상적으로 지출 충동과 싸운다. 지름신 밈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장애인에게 재정건전성을 강요하는 일 또한 차별적 인식이다.

나는 이 점에서 장애인의 진정한 실패가능성에 대해 논의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자기결정권을 방어하는 의미에서 장애인의 실패할 권리를 주장하기만 할 것이 아니라, 어떤 결정이 어떤 과정을 통해 장애인 당사자에게 실패가 될 수 있는지 물어야 한다. 누군가가 대신해 주고 누군가가 대신 실패하기만 한다면 장애인은 실패의 경험조차 차단당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장애인 당사자 자신이 지출을 결정했음에도 그 책임이 활동지원사에게 돌아간다면 장애인당사자는 자신이 내린 결정의 결과와 자신이 겪을 경험의 기회를 잃는다. 보호의 이름으로 장애인이 겪을 실패의 경험을 차단하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 봐야 한다.

재기 가능한 실패를 위해

여기서 또 중요한 지점은 장애인이 실패를 겪을 때 그것의 정도, 즉 재기 가능 여부일 것이다. 자립생활지원금을 온전히 탕진하고 시설로 돌아가는 것은 단순한 실패가 아니다. 장애인의 탕진 가능성을 상상하기엔 그 결과에 따르는 위험이 너무 큰 것이 문제일 수 있다. 주택 측 입장에서는 위험이 크니 위험 요소를 차단하기 위해 더욱 격렬히 반응한다. 장애인의 실패가 장애인 당사자에게 교훈이자 경험이 되기 위해서는 다시 시도할 기회도 주어져야 한다.

비장애인은 사회와 접촉하면서도 법적 보호를 받으며 성장하는 미성년의 시기를 거친다. 미성년 시기의 재산은 용돈으로 한정된다. 용돈의 운용에 실패가 있어도 의식주를 비롯한 생존에 제약은 없다. 용돈을 다 쓰면 용돈을 쓸 수 없다는 제약에 용돈을 아껴 쓰는 법을 배운다. 그런데 시설에서 금방 나온 장애인에게 이런 종류의 기회나 경험은 차단되어 왔으며, 시설만 나온다고 해서 다양한 경험의 기회가 새로이 제공되지 않는다. 장애인에게 지원되는 자립생활지원 금액은 실패를 되돌리기에는 너무 큰 금액이고 그 대가는 크다. 자기결정권 및 결정에 따른 책임능력을 둘러싼 논의에서 외부의 개입에 대한 방어뿐 아니라, 실패를 통한 자립능력을 어떻게 기를 것인지에 구체적 논의가 필요하다.

2024/08/22 22:33 2024/08/22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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