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장애인이 하는 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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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일요일 아침이다. 출근하니 장애인 이용자가 친구의 집들이를 간다고 했다. 각자가 요리를 조금씩 준비하는 포틀럭 파티(Potluck party)를 하기로 했다며, 오늘은 자신이 궁중떡볶이를 해주겠다고 큰소리를 친다. 이용자는 양손을 쓸 수 없는 뇌병변장애인이다. 나는 대뜸 이렇게 물었다. “궁중 떡볶이를 해주겠다는 거예요. 궁중 떡볶이를 하게 시키겠다는 거예요?”
그러자 특유의 유쾌한 웃음을 보이며 자신이 다닌 야학에서는 활동지원사가 한 것도 자기가 한 거라고 배웠다고 한다. 아니 활동지원사가 한 게 어떻게 자기가 한 게 되는가? 이제 이용자가 나를 냉장고로 이끈다. 냉장고에는 양념 된 고기와 썰어진 야채들이 준비되어 있다. “오~ 많이 준비해 뒀네요?”라고, 감탄하니, “내가 준비했다.”고 말한다. 우리는 서로를 보며 또 한 번 웃는다. 그럴 리가.
이제 재료를 조리 판 위에 놓는다. 재료 투입에도 순서가 있다. 이용자는 이것저것 지시한다. 불을 강하게 하랬다가 약하게 하랬다가, 식재료를 저기로 치워 두랬다가 이제는 넣으라 했다가. 나는 그냥 시키는 대로 한다. 다년간의 활동지원 경력으로 나의 판단은 의미가 없다는 것을 배웠다. 이 요리는 내가 한 것이 아니고, 내 책임도 아니다. 요리 과정에 의견을 내는 것이 장애인 이용자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행위가 될 수도 있다. 망친 요리는 더러운 맛으로 이용자의 혀에 타격을 가할 것이다. 장애인은 실패할 권리가 있고, 실패 또한 자립생활의 한 부분이다.
미리 식재료를 준비해 둔 탓일까? 장보기와 밑손질 시간이 들지 않으니 비교적 빠르게 떡볶이가 완성되었다. 집들이에 참석할 다수의 인원을 생각해 양이 아주 푸짐하다. 요리를 마치자 때마침 핸드폰에서 메시지가 왔음을 알리는 소리가 난다. 비보다. 집들이 참석 인원 중 한 명이 아파 다른 날로 집들이 일정을 수정하겠다는 소식이다.
이용자는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이 많은 음식을 어떡할지 고민이다. 잠시간 고민을 하더니 어머니에게 가자고 한다. 어차피 떡볶이 양이 많아 버리게 될 것이 뻔하니 어머니에게 가져다주자고 한다. 장콜을 부르고, 기다리고, 차가 오고, 짐을 싣고, 어머니 집으로 간다.
어머니 집에 가니 이용자의 동생도 있다. 이 궁중 떡볶이는 누가 했냐고 묻는다. 이용자가 옆에서 “내가 했다.”고 말한다. 동생이 비릿한 웃음을 짓는다. 몇 개 집어 먹더니 맛이 없다고 말한다.
이용자와 나는 다시 이용자의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남아있는 궁중떡볶이를 같이 먹는다. 양념이 조금 밍밍한 편이나 썩 나쁘지는 않다. 떡볶이를 먹으며 하루를 돌아본다. 장애인이용자는 요리를 자신이 했다고 주장하기 위해 요리의 절차를 고민하고 숙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온전히 자신이 했다고 주장하기 위해서인지 노동의 배분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전체 과정을 여럿의 활동지원사에게 분배했다. 과정이 세분화 될 수록 활동지원사는 전체 과정에서 자신의 기여분을 주장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아이폰 뒷면의 문구를 변용하자면 궁중떡볶이 뒷면에는 이렇게 쓰일 수도 있지 않을까. Designed by 장애인 김모씨 in Korea, Processed by 김모씨의 활동지원사들. 동생이 맛이 없다 하던 그 말도 떠오른다. 나는 이 평가로부터 자유로운가. 자유로우면 좋은 것인가. 그 자유는 자유인가 소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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