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에게는 각자 정의가 미치는 범위, 즉 정의의 범위가 있다. 누구나 정의를 추구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정의가 미치는 영역은 한계선이 있다. 어떤 경계를 중심으로 정의의 영역 안에 있는 사람들은 존중받아 마땅하고 공정한 분배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영역 밖에 있는 사람들은 적으로 생각되거나 비인간화되고 잔인하게 대해도 된다고 느낀다. 이들은 정의가 관장하는 도덕적 세계 밖에 존재한다. - 김지혜, 선량한 차별주의자(창비, 2019), 147.
오래된 중재 요청의 기억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에는 전국단위 장애인자립생활센터들의 협의체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한자협)가 소속되어 있고, 한자협 소속 장애인자립생활센터 다수가 활동지원사업을 수탁하고 있다. 우리노조는 중앙단위인 전장연, 한자협과 공동사업을 한 기억을 살리며, 노사 갈등에 있어 중재자 역할을 해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2017년 11월 2일, 우리노조와 당시 돌봄지부[1]는 전장연과 한자협에 공문을 발송했다. 대구지역 전장연 소속단위 활동지원기관 여러 곳이 활동지원사들에게 부당한 임금꺾기를 하여 이에대한 중재를 요청하는 공문이었다. 당시 대구의 활동지원기관들은 노동자가 1시간을 일하면 10분씩을 휴게시간으로 부여했다고 주장하며 노동자들의 근무시간을 축소 산정하고 임금을 삭감했다. 당시 지역언론을 통해 공개된 급여명세서에 따르면, 센터가 복지부에 청구한 결제시간은 138시간이지만 노동자가 받은 임금은 115시간에 해당하는 임금이었다.[2] 자립생활센터는 정부에게는 138시간 서비스가 제공되었다고 보고하여 138시간에 해당하는 수가를 받고도 노동자들에게는 115시간에 해당하는 임금만을 지급했다. 휴게시간 명목으로 임금을 제했지만, 노동자들에게 실질적인 휴게시간도 보장되지 않았다.[3] 부당한 처사다. 그런데 당시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대구장차연)의 정책국장은 기사 말미에서 이렇게 말한다.
“활동보조 서비스가 도입될 때부터 시장화된 서비스로 만들어지면서 이미 예견된 상황이었다. 새 정부가 사회서비스 관련해서 핵심적인 방향을 잡아주면 좋겠다”며 “활동보조인 공공성이 확보될 수 있는 인프라를 만들고, 예산을 확대해 공공서비스 노동자들의 처우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
노조의 공문에 대한 전장연과 한자협의 태도는 어땠을까?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공공운수노조와 해당 사업장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해당 사안은 국회 및 정부에 전달되었으며 문제가 외화되고 나서야 결국 사업장들은 휴게시간 임금꺾기를 철회하였다.
3월 23일, 한자협의 기자회견
지난 이야기를 언급하는 이유는, 3월 23일에 있었던 한자협 주최 기자회견 때문이다. 한자협은 3월 23일 서울동부지방법원 앞에서 “「시급제 활동지원사 처우」는 보건복지부에 「관공서 공휴일 수당 지급」은 고용노동부에 책임을 물어라!”라는 제목으로 기자회견을 열었다. 3월 23일은 A장애인자립생활센터 관련 민사재판의 첫 공판일이었다. 우리노조는 A센터를 상대로 취업규칙 무효확인과 미지급한 수당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하였는데[4] 첫 공판이 3월 23일에 있었다.
공판 전인 당일 오전에 누군가를 규탄하기 위해 한자협은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 제목에는 “책임을 물”으라고 되어 있지만, 누구더러 물으라는 것인지 구체적 명시가 없다. 기자회견 보도자료[5]와 발언[6]을 잘 살피면, 해당 기자회견이 규탄 대상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은 실질적으로 나를 포함한 원고인 노동자들과 노동조합임을 알 수 있다. A센터에 법적 다툼을 걸지 말고, 노동부나 보건복지부로 가라는 규탄이다.
특별히 2017년의 사건이 떠오른 이유는, 발언 논지의 유사성도 유사성이지만 한자협은 회원사업장의 부정에 대해 방관한 역사가 있으면서도 노조가 대화하지 않고 있다고 노조를 규탄했기 때문이다. “함께 고민하고 연대”하는 것은 얼마나 좋은 말인가? 하지만 이 말도 사실을 왜곡하고 누군가를 억압할 때 쓰일 수 있다는 것을 그날의 기자회견은 보여준다. 2017년의 묵살 이후 우리는 개별 사업장의 분쟁에 대해 개별 사업장 단위로 대응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의 중재요청이 한자협을 곤란한 입장에 처하게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판단 때문이다. 개별 사업장 단위에서 노조가 대화의 노력을 않는 것도 아니다. 노조는 A센터에 노사협의회를 통해 의견을 제기하고 재직노동자 80명의 연서명을 받아 의견을 제출하였다. A센터 소장으로부터 돌아온 대답은 법대로 하라는 응답과 묵살이었다.
이제 내용을 보자. 이날의 기자회견에서도 2017년 대구장차연 정책국장이 한 발언과 비슷한 논지의 발언이 반복되었다. 정부가 설계한 활동지원제도는 갈등의 소지를 품고 있으며, 이에 대한 책임은 기관에는 없고 정부에만 있다는 식이다. 시장화정책에 대한 문제인식을 표하며 겉으로는 공공성을 추구하는 듯하지만, 실상은 민간위탁기관으로서의 자신들의 책임을 면피하고, 예산지급의 경로 문제를 언급하지 않음으로써 전달체계의 문제를 은폐한다. 결국 자신들에게 예산을 더 내려달라는 요구다.
보도자료를 보자 ▲정부가 노사갈등과 분쟁이 발생하도록 오랫동안 방치해 왔으며 ▲정부는 부처 간 핑퐁으로 구체적인 매뉴얼 또는 취업규칙을 만들어 배포한 적이 없다 ▲활동지원기관은 공익성 사업 활동지원사업을 하고 있고 수익사업을 하지 않으며 ▲노사협의체를 성실히 운영하는데도 악질적인 사업체로 몰아가서 유감이다 ▲A센터 취업규칙 개정은 적법하다는 내용이다. 보도자료의 최상단 박스칸에는 ‘표준 취업규칙 제공’, ‘급여지급 기준 마련’, ‘활동지원급여단가 책정’을 요구하고 있다.
이 모든 사태가 정부의 무한책임이라면, 활동지원기관 무책임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나도 정부의 무책임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다. 하지만 그렇다고 활동지원기관의 모든 행위에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A센터 대리를 맡은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장추련) 자문변호사의 비유[7]를 이어 말해보자면, 부모가 없는 사이에 아이들이 싸우면, 부모가 돌아와서 그 싸움이 왜 일어났는지에 대한 시시비비를 가리고 아이들을 훈계해야 한다. 그런데 나이가 많은 형이 동생에게 상해를 입히고도 그 책임은 부모가 방기한 탓이라고 말하면 그 말이 설득력이 있을까. 자신을 훈육하는 부모에게 그런 말을 한다면, 혹은 맞은 동생에게 그렇게 말한다면 그걸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활동지원기관들이 정부를 탓하는 자기정당화 발언은 오래되었다. 노동자의 노동권을 주장하는 모든 시도에 활동지원기관들은 정부를 탓했다. 2017년의 사례에서 노동자의 노동시간을 꺾고 중간에서 이득을 취하는 행위를 정부가 시킨 것은 아니다. 기관이 자신들의 운영이 어려운 사정에 대해 노동자들에게 고통을 전가한 행위일 뿐이다. 한자협 기관이 아닌 활동지원기관들의 사례도 나열해보자. 재정적 여유가 있음에도 활동지원사에게 임금채권포기각서를 강요한 사업장에서도, 정당한 임금을 요구한 노동자들을 해고한 사업장에서도, 성추행 피해 노동자에 대한 보호를 요구했던 사업장에서도, 결국은 정부의 책임이라고 말하며 노동자의 권리를 외면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말한다. “이 문제는 함께 해결해가야 할 문제”라고. 하지만 그 속에 자신들의 책임은 없다. 기자회견 사회를 본 한자협 국장의 말대로 아무런 책임이 없는 “하청 업체”일 뿐이라면, 활동지원기관의 존재의의는 어디에 있는가. 활동지원사 노동자의 권리는 어디까지 포기해야 하는가.
A센터는 법 적용시기인 2021년부터 2022년까지 관공서공휴일유급휴일수당을 전혀 지급하지 않았다. 법 적용시기 이전부터 수당을 지급해야 하는 것 아니냐 의견을 주었음에도 지급하지 않았다. 센터 운영이 어렵다는 이유였다. 이 부분은 법률 및 행정해석에 대한 입장 차가 있더라도 명백한 불법이다. 한자협에서 주장하는 해석을 적용한다고 하더라도, 전혀 지급하지 않았기에 임금체불이 있는 것이다. 그러고는 지급을 회피하기 위해 2021년 12월에 취업규칙을 개정했다. 이 모든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A센터가 하는 말은 다른 여러 활동지원기관이 말하듯이 정부가 예산을 충분히 주지 않아 센터 운영이 어려워 어쩔 수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A센터 홈페이지에 공개된 총회 자료를 살펴보면 재정 상황이 나쁘지 않았다. 2022년 총회자료에서 회계감사는 “활동보조인 중개사업의 수익금액 증가에 기인”하여 1억4천의 이익이 발생했다고 말하고, 2023년 총회 자료에서는 A센터가 이사와 인테리어에 3억5천을 지출한 내용이 나온다. 정부가 예산을 충분히 지급하지 않아 지불 능력이 없다는 핑계는 사업장마다의 개별 회계를 투명하게 공개하여서 확인하면 될 일이다. 법정수당을 지급받지 못함으로써 직접적인 피해를 보고 있는 노동자와 논의를 통해 합의하면 될 일이다. 하지만 A센터 소장은 가장 최근의 노사협의회에서까지, 센터 재정 상황 설명 및 자료를 요청하는 노동자위원에게 공개된 자료만을 ‘알아서’ 보라며 자료를 제공하지도 않았고, 당연히 구체적 상황에 대한 논의를 진행할 수조차 없었다. 이런 소장의 태도가 한자협이 말하는 “노사협의체를 성실히 운영하고 있는 기관”의 태도일까.
이 정도 됐으면 A센터 소장은 자신 사업장 소속 노동자들이 왜 이렇게 화를 내고 있는지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아야 할 것은 아닐까. 그런데 A센터 소장은 끝까지 비겁하다. 한자협을 내세워 기자회견을 하고, 원고를 호명하면서도 자신은 끝까지 익명의 존재로 남아있다. 관심과 지지를 부탁한다는 보도자료의 문구가 무색하게, 어느 사업장인지는 알 수가 없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의 혐오정치, 차별 발언
3월 23일 기자회견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 장추련 김성연 사무국장과 장추련 자문변호사 김정환 변호사는 활동지원사 노동자들과 노조에 대한 낙인찍기를 시도한다.
이 소송을 제기한 활동지원노조는 현재 다수 발생하고 있는 활동지원사로부터의 인권침해 사건에 대해서는 매우 무심하고 이것과 관련해서 전혀 자정능력을 가지고 고민하고 있지 않으면서 정작 근로조건에 대한 문제만을 계속 이야기해서 ...장애인을 이용해서 자신의 이익을 챙기고 있는 많은 활동지원사들의 문제로 계속 상담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저희가 오늘, 이 소송과 관련해서 분명하게 입장을 밝히는 가장 큰 이유중에 하나는 이 문제를 마치 노측과 사측의 문제로 가져가면서 장애인당사자인권에 대해서 얼마나 고민하고 있는지는 전혀 밝히고 있지 않습니다. ... -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김성연 사무국장 발언
근로조건의 개선을 요구하는 그 과정에서 활동지원사분들이 현재 있는 장애인과 관련된 많은 문제에 있어서 장애인과 관련된 어떤 인권침해의 문제라든지 어떤 노조 내부의 자정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그러한 부분에 대해서 활동지원 노조의 입장에서 먼저 선제적으로 앞서서 장애인을 위해서 그런 부분을 고려해 주시길 바랍니다. - 법무법인 도담 김정환 변호사 발언
이 발언들은 마치 소송의 원고들이 장애인 인권침해를 자행하면서 노동조건 개선만을 요구하는 사람처럼 묘사하고 있다. 노동조합은 인권침해를 자행하는 활동지원사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에 대한 자정능력이 없는 집단으로 묘사되고 있다.
무엇보다 문제인 것은 이들의 발언에서 드러나는 인식이 반인권적이라는 사실이다. 장애인에 대한 철저한 인권의식이 ‘노동인권’을 보장받기 위한 조건처럼 말해진다. 장추련에게 묻고 싶다. 자신들만큼 드높은 장애인 인권의식을 갖지 못하면 노동인권 따위는 보장되지 않아도 된다는 입장인걸까. 활동지원사업이 확대되고 있는 만큼이나 현장에서는 별의별 일들이 다 일어난다. 하지만 아무리 현장에서 여러 문제가 일어난다고 해도 개별 행위자를 일반화 범주화하여 낙인찍는 일은 인권에 반한다.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낙인과 차별에 반대한다는 사람들이, 왜 노동조합과 노동자에게는 극우 보수정치인들이나 행할 혐오정치를 하고 있는 걸까.
특별히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장애인을 이용해서 자신의 이익을 챙기고 있는 많은 활동지원사들”이라는 표현이다. 활동지원사는 노동자이고 노동자는 사전 그대로 자신의 노동력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받은 임금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말한다. 따지고 보면 모든 사회복지 노동자들은 수급자를 이용해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이다. 장애인을 이용하는 활동지원사와 이용하지 않는 활동지원사는 구분되지 않는다. 얼마나 강한 노동강도로 서비스를 제공하면 장애인을 이용하지 않는 것이 되는 걸까. 그것을 판단할 객관적 기준이 있기나 한 건가. 사실은 활동지원사가 하는 일 없이 돈 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활동지원사들은 현장에서 서비스를 제공할 때 주변의 이상한 노동혐오적 시선 때문에 이중구속에 빠진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기도 한다. 장애인이용자에게 사무적으로 대하면 돌봄이 소홀하다 비난받고, 장애인이용자에게 성심성의껏 서비스하면 장애인이용자를 이용하기 위해 ‘홀린다’는 소리를 듣는다. 혹자는 ‘빨대를 꽂는다’며 비하한다. 도대체 어쩌라는 말일까?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노동환경이다. 주변인들의 노동혐오적 시선은 활동지원사들이 활동지원 현장 이탈을 결심하게 하는 주효한 이유 중 하나다. 장추련은 활동지원사 없는 세상을 원하는가.
노동조건과 인권의식은 무관할까
그날 장추련 사무국장은 인권침해 행위에 대한 고민 없이 노동조건만을 말한다고 노조를 질타했다. 그런데 노동조건과 인권의식은 무관한가. 활동지원사에게 인권의식이 요구된다는 것은 모두들 동의한다. 그리고 그 인권의식 고취를 위해 활동지원제도는 보수교육을 시행한다. A센터는 보수교육 참여에 대한 임금마저 제대로 지급하지 않는 사업장이었다. A센터는 갈등이 불거지자 2022년 하반기에 뒤늦게 활동지원사들에게 5,760원을 입금하였다. 2021년 보수교육에 대한 임금 보전분이다. 2021년 최저임금은 8,720원이었지만, A센터는 보수교육 참가자시간에 대한 임금을 시간당 8,000원으로 책정하여 지급하였다. 미지급한 720원의 8시간분 임금이 5,760원인 것이다. 이 지급도 관할 지자체의 시정지시를 받고서야 이루어졌다. 그보다 이전의 일은 언급하지 않겠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조건을 주장하는 것은 인권의식 고취를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그런데 활동지원사의 처우개선에는 동의한다면서도, 노동조건과 인권의식을 대립시키는 이 같은 발언을 어찌 이해해야 하나. 저들의 사유에서는 이미 노동자들의 인권의식과 노동조건이 함께 가는 것이 아니다. 인권감수성은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니다. 인권감수성 이전에 인권교육이 있어야만 한다. 하지만 우리사회는 사람을 길러내는 과제에 대해 무관심하고, 사람을 싸고 쉽게 쓰고 버리려는 풍토가 만연해 있다. 그리고 A센터도 그 혐의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싸우는 노동자 설요한을 상상하며
나는 그날의 기자회견 이후 설요한을 다시금 떠올리며 생각하게 된다. 언론에 보도된 대로 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동료상담가로 일하던 뇌병변장애인 설요한은 실적압박에 못 이겨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자립생활센터가 실적을 못채우면 정부로부터 지원받은 금액을 환수당해야 했기 때문이다. 한자협은 이런 식의 제도를 만든 고용노동부가 설요한을 죽였다고 주장하며 제도의 개선을 이뤄냈다. 하지만 나는 요즘 그런 상상을 해본다. 설요한이 살아와 나에게 노동상담을 한다면 그 상황에서 나는 어떤 이야기를 해줄 수 있을까.
나는 먼저 장애인인권운동 동료상담가들이 그러하는 것처럼, 장애를 당신 개인의 탓으로 돌리지 않을 것이다. 당신에게 비장애인만큼의 생산성을 요구하려면 장애의 사회적 모델에 근거해서 그만큼의 지원이 더 있어야만 한다고 말해줄 것이다. 그리고 한 발짝 더 나아가 노동자 일반에게 해줄 수 있는 조언을 해줄 것이다. 사업장이 정부와 맺은 계약은 도급계약으로 보이고, 당신이 자립생활센터와 맺은 계약은 근로계약이라고. 사업장은 계약을 수행하지 못하면 대가를 받지 못하는 것이 맞지만, 근로계약은 어떤 업무의 완성이 임금의 조건이 아니라, 그저 근로를 제공하기만 하면 임금채권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그리고 당신의 임금은 당신의 실적과 무관한 당신의 생존권이고, 그 임금을 빼앗는 것은 불법 부당한 행위라고 말해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기 지급된 월급의 환수를 요구하는 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 맞서는 법정 투쟁을 지원할지도 모른다. 나는 설요한을 옥죈 논리가 활동지원사 노동자들을 억압하고 있다고 느낀다. 설요한이 죽은 그 자리가 사업주들로 구성된 한자협의 자리보다, 나의 자리에 가깝다고 느낀다.
인권을 주장하는 것을 자신의 삶으로 여기는 활동가도 충분히 반인권적인 차별주의자일 수 있다. 나는 저들의 정의로움을 의심하지 않는다. 다만, 저들이 주장하는 ‘인간’의 범주에는 진보적 장애인 인권운동의 자장 아래에 있는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이 노동자에는 비장애인뿐만 아니라 장애인 또한 포함되어 있어서, 그 예외성이 자신의 정체성을 좀먹을 정도다. 진보적 장애인 인권운동이라 해서 노동인권의 성역은 아니다. 나는 이들의 논리가 하루빨리 논파될 수 있도록, 장애인에 대한 최저임금 적용 제외가 하루빨리 철폐되길 바라며, 장애인일자리도 확대되길 바란다.
- ↑ 당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돌봄지부.
- ↑ 뉴스민, 장애인의 삶과 동행하는 우리가 당당했으면, <https://www.newsmin.co.kr/news/21569/>, 2017-06-21.
- ↑ 앞 기사 내용 중 장애인이용자 정경애 씨의 발언을 주목하라. “중개기관이 근무시간에서 휴게시간을 빼는데, 만약 휴게시간을 제가 주지 않는다면 이 뜻은 제가 활동보조인의 노동을 착취했다는 것으로밖에 볼 수 없는 거잖아요”. 이러한 갈등은 현재에도 이어지고 있다. 지역의 일부 활동지원기관들은 활동지원사에게 휴게시간을 ‘준수’하라고 강요하고 있는데, 현장에서는 정작 실질적인 휴게시간 권리를 보장받지 못해 고통스러워하는 노동자들이 많다. 근로기준법상 휴게시간은 사용자의 지배-개입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을 실질적인 휴게시간으로 보고 있는데, 실질적인 휴게시간이 아니면 노동시간으로 여겨지고 이에 대한 임금을 지급하지 않으면 임금체불이 된다. 그런데도 노동자들에게 휴게시간을 ‘준수’하라며 사용자들이 들볶고 있다. ‘권리’가 ‘준수’라는 명목으로 강요되는 것은 이상한 상황이다. 이 준수를 강요하는 주체가 누구고 대상이 누구인지를 주목해서 보아야 한다. 노동자에게 휴게시간을 부여해야 할 의무가 사업주에게 있고, 이를 부여하기 위해서 대체인력을 투입하거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는 사정은 사업주의 사정이다. 그런데 이런 사정에 대해서 장애인이용자에게 양해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에게 강요하고 있다. 활동지원현장에서의 권력 위계를 엿볼 수 있는 하나의 예이다.
- ↑ 전국활동지원사노동조합 보도자료, [기자회견] 취업규칙 무효 확인 소송, <https://cafe.daum.net/paspower/4Pq3/400>, 배포 일자 2022-08-10.
- ↑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보도자료, 「시급제 활동지원사 처우」는 보건복지부에 「관공서 공휴일 수당 지급」은 고용노동부에 책임을 물어라!, 배포 일자 2023-03-22.
- ↑ 그날의 발언은 장추련 유튜브 채널에서 다시 볼 수 있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시급제 활동지원사 처우」는 보건복지부에~「관공서 공휴일 수당 지급」은 고용노동부에 책임을 물어라!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기자회견, <https://www.youtube.com/live/qJC3W_5Oeg4>, 2023-03-23. 기자회견 보도자료와 발언내용은 <https://dqj.notion.site/dqj/2023-03-23-744ef95b8c4a4857b0ebdeb556019d97> 참고.
- ↑ 법무법인 도담 김정환 변호사는 그날의 연대발언에서 “마치 부모가 아이들을 방임해 놓았는데, 아이들끼리 싸우고 있는 것을 아이들 책임으로만 돌리는 그런 상황이 연출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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