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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31

어느덧 한 해가 저무는 달의 마지막 하루도 저물어간다. 차분히 정리하면서 새해를 맞이하지는 못하지만 시끌벌적 소란스럽게 보내기 보다는 차라리 이렇게 집에서 조용히 한가롭게 보내는 게 좋은 것 같기도 하다.

 

번역 초고가 이번 달 중순에 출판사로 넘어가면서 얼추 올해의 기본적인 일은 끝난 셈이었다. 생각 보다 주변의 지인들이 번역예정인 책에 관심을 가져주어서 책임감을 더욱 느끼게 되지만 내 능력에 갑자기 변화가 오지는 않을테니 그 한계는 그대로 가져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도 앞으로 교정과정에서 적어도 명백한 오역이 없는 충실한 번역이 되도록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한다.

 

한국에 들어와서 지인들과 번역, 나 자신의 연구 고민 또는 초보적인 입장들을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덕분에 혼자 생각할 때 결합에 있어 틈을 가졌던 몇 가지 테마들을 하나로 각자의 일정한 무게를 가지며 결합할 수 있는 구도가 구상되고 있다. 사실 박사논문 주제를 서너번 교체하고 보류해두는 과정 속에서 지도교수 선정의 문제가 많이 혼란스러워졌다. 가장 안전하고 편리한 방법은 여러 가지를 고려하여 한 지도교수를 선정하고 지도교수의 이론적 프레임이나 스타일에 맞게 논문 주제와 방법 등을 정해 나가는 것이다. 아마 그동안 고민했던 논문 주제들이 요절한 것은 본래 내가 가진 타협할 수 없는 고유성을 지속해나가는 것과 현실적 불안함에 의해 선택된 안전과 편리 사이의 부조응으로 인한 것이라고 보인다. 결국 전자를 견지하는 선에서 후자를 포섭해야 할 것인데, 전자를 견지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아직 취약했기 때문에 후자를 포섭하지 못했고, 이것도 저것도 아닌 모호한 결합 속에서 폐기가 예정되었던 것이었다고 보인다. 그런데 지금은 그것이 가능해진 것 같다. 고민은 일정한 시간의 무게, 즉 뜸을 들이고 숙성을 거쳐야 정리되는 듯 하다.

 

논문을 풀어가기 위한 핵심적 소재를 2000년대 이후의 중국 사회/문화/정치적 현상에서 찾아내었다. 1949년 이후의 당대 중국 역사의 복잡성과 인식론적 맹목을 드러냄과 동시에 이를 한국적 맥락과 접목시킬 수 있는 방법론적 시좌도 구상해 놓았다. 이번 번역의 의미도 비슷하게 해석할 수 있지만,  더 나아가 궁극적으로 모든 지역연구는 한국학 연구로 귀결될 수 밖에 없다. 물론 한국학의 본질주의화를 경계해야겠지만, 마치 '민족적인 것'이 변혁적 역사과정 속에서 이념과 운동의 결합의 전제라는 의미에서 궁극적으로 모든 지역 연구는 변혁을 위한 개방적인 주체성에 대한 연구이다.

 

2012년에는 작은 목소리라도 내 목소리를 담아 논문을 시작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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