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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모택동과 노신

 그리고'인민대표론'에 대한 비판도 있습니다. "힘써 인민의 귀와 눈을 막고, 그들의 시각과 청각을 혼란에 빠뜨려, 자신을 인민의 대표자로 꾸며낸 통치자는 사기꾼이자 강도이다."[1]이는 매우 예리한 관찰입니다. 모택동이 문혁을 개시하면서 내세운 기치가 바로'인민을 대표하는 이익'이었고, 이로부터 합법성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모택동의 논리에서 당과 자신은'인민의 대표'를 맡았고, 국가의 실제적이고 진정한 주인의 지도적 지위를 점거하여, 거꾸로 당과 자신의 이익에 인민이 절대적으로 복종할 것과 무조건적으로 이를 위해 희생할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이는 사실상 일종의 '신 몽매주의'였습니다. 노숙녕이 외치려던 신 계몽운동은 바로 모택동의'대표 독재'의 논리를 타파하여, 문혁 중에 무한히 강화된 모택동의 신 몽매주의의 속박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었습니다.

 노숙녕은 동시에"인민의 역량을 믿을 뿐 아니라, 힘써 인민이 자신의 역량과 결함을 인식하고, 인민으로 하여금 자신에 대해 자각적인 주인된 자가 되고, 또 인민의 진정한 대표가 되도록 한다" 고 말합니다. 노숙녕이 보기에, 노신은 바로 이러한 '진정한 계몽자'였으며, 게다가 '유일한 한 명'이었습니다. 그래서 '노신의 계몽'에 대한 독특한 해석이 나왔습니다. 그(노신)는 "처음으로 자신이 깊고 진지하며 뜨겁게 사랑하며 동정하는 사람들이 우롱당하고 왜곡되며 억압 받아 기형화된 정신 심리를 인상 깊게 드러냈다." 그 목적은 인민으로 하여금 자신의 결함과 역량을 포함하여 자신을 인식하여, 자각적으로 자신의 운명을 장악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2]나는 한편의 글에서 이것이 "불행함에 대해서는 애처롭게 생각하고, 투쟁하지 않는데 대해 분노한다(哀其不幸,怒其不爭)"는 노신의 자술(自述)에 대한 인상 깊은 해석이며, 작자와 그 세대의 문혁경험, 특히 상산하향 및 사회기층에서의 체험을 뚜렷하게 포함한 역사적 총결이라고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3]사실 이 역시 그들이 외쳤던 '프롤레타리아 계급 계몽운동'을 위해 하나의 목표를 확정한 것이었습니다. '반드시 인민이 자신을 인식하고, 자각적으로 자신의 운명을 장악하는 것을 주지(主旨)로 삼아야 한다.' 노숙녕은 뚜렷하게 자신과 같은 세대를 '노신 정신의 진정한 계승자'라고 보았고, '나에게 노신을 돌려달라'는 구호를 제기하였습니다. 이는 바로 80년대 '노신이 있는 그곳으로 돌아가자'는 외침의 전주곡이었습니다.[4]

 '민주', '법제', '계몽' 등 3대 임무의 제기는 사실상 새로운 개혁의 시대를 부르는 것이었고, 훗날 80년대의 세 가지 시대적 키워드가 되었습니다.



[1]盧叔寧:〈致志栓〉(1972年11月11日),《劫灰殘編》,頁277。

[2]盧叔寧:〈致志栓〉(1972年11月11日),《劫灰殘編》,頁275-277。

[3]參看錢理群:〈二十九年前的一封信〉,《生命的沉湖》,頁262-270。

[4]盧叔寧:〈致志栓〉(1972年11月11日),《劫灰殘編》,頁275-276。

 

모택동과 노신이 대비되는 대목이 있어 옮겨 본다. 문혁 후기 노신이 어떻게 다시 불려 나와 정치사상적 자원이 되는지 짐작해볼 수 있는 부분이다. 아울러 이러한 사상적 움직임이 어떻게 80년대를 정향하였는지도 보여준다.  공교롭게도 오늘은 모택동이 죽은 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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