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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넨! 자네의 인생을 살아야 돼!

선생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선생의 말투를 정확히 옮겼다.

문장도 너무 익숙하다.

내가 저 순간 저 교실에 있었나?

여러번을 읽은 탓에 생긴 환상일지도 모르겠다.

한동안 넋을 잃고 있었다.

 

 

  새글보기: 온갖 세상만사
 자넨 자네의 인생을 살아야 돼!!!
name : 신강   hits :36    / date : 2005.11.12 00:28:00

그는 마치 모노드라마에 등장한 배우 같았다. 긴 다리로 성큼 성큼 무대 위를 좌우로 오가며 마치 햄릿처럼 독백과 질문을 해댔다. 때로는 우리가 관객인 듯 했고, 때로는 우리가 그의 친구인 듯 했으며, 때로는 학생의 자리로 돌아오곤 했다. 실력 있는 강사나 교수는 아무리 어렵고 복잡한 내용도 쉬운 용어와 간단한 예를 들어 단순명쾌하게 설명을 하듯 그의 강의는 정말 단순 명쾌했다. 많은 질문이 오갔고 많은 대답들이 돌아왔다. 3시간에 이르는 강의는 10분만 더, 5분만 더, 질문을 받겠다고 하던 것이 4시간으로 이어지고 있었고......어느듯 [동구권의 몰락과 세계질서의 재편]이란 제목으로 교정에 나부끼던 강의가 끝날 때가 왔고 그의 마지막 인사가 남았다.  

 

"이봐 자네들. 혹시 읽어보았는지 모르겠지만, [녹슬은 해방구]란 책이 있지. 그 소설 속에는 빨치산으로 활동을 하다가 수십년동안 전향을 거부하고 감옥에 있는 장기수 정선생이 나와. 내가 만약 정선생을 만나 이런 질문을 던지면 그는 뭐라고 대답을 할까? 

 

정선생님, 당신이 그렇게 꿈꾸어 왔던 소련 공산주의는 무너졌고, 당신이 그토록 내려오길 기다리던 김일성 장군은 내려오지 않았으며, 동구권 현실 사회주의는 모두 몰락했습니다. 정선생님! 당신이 전향을 거부하며 수십년 동안 감옥에서 보낸 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선생님은 인생을 헛사셨어요! 이렇게 내가 물어보면 그는 뭐라고 대답할까? 

 

그래, 자네 말이 맞아. 내가 염원하던 소련 공산주의는 몰락했고, 우리를 구하려 오리라고 믿었던 김일성 장군은 내려오지 않았어. 난 인생을 헛살았어. 이렇게 대답을 할까? 

 

아니, 아마도 정선생은 이렇게 대답하지 않을까. 그래, 자네 말대로 소련 공산주의는 몰락했고, 김일성 장군은 내려오지 않았어. 그래서 내가 인생을 헛살았다고. 천만에. 내가 소련 공산주의를 위해서, 김일성 장군이 내려와 나를 구하는 것을 보기 위해서, 빨치산 활동을 하고, 감옥에서 그 고통을 이겨내며 살았다고 생각하나? 자넨 뭔가 착각하고 있군. 이봐, 난 내 인생을 살았던 거야. "

 

그리고 그는 천천히 둘째 손가락을 들어 강의실에 가득히 들어찬 수백명의 학생들을 가리켰다. 그러나 그 자리에 있던 모든 학생들은 그 손가락이 자신을 가리키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그리고 그가 둘째 손가락에 힘을 주며 단호하게 마지막 말을 했다. 

 

- 자넨!  자네의 인생을 살아야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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