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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가난한 자

가라타니 고진, [윤리21]

신란(일본의 승려이자 불교철학자)

성경의 저자(들)

예수

지음

맑스

 


가라타니 고진의 재미에 푹 빠져있다. 한 때 좀 읽다가, 그래서 뭐하자는 건가가 참 갈수록 애매해진다 싶어 그만뒀었다. 그런데 우연히 그의 인터뷰 기사를 보게 되었고, 그가 아주 구체적인 운동을 제안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그 배경을 알기 위해 다시 읽기 시작했다. 읽다보니 이것 저것 재밌는게 많은데, 다음은 그 중에 한 가지.

 

예컨대 어떤 사람이 평생 사람이나 동물을 죽이지 않아도 된다면 그것은 돈이 있어서 그러한 입장에 놓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자신의 손을 더럽히지 않고도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권력자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자신의 의지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아무도 죽이지 않았으니까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믿는다. 신란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정확히 읽지 않으면 거꾸로 읽을 가능성이 많다. 정확히 읽자.

 

선인임에도 왕생을 얻는다. 하물며 악인이랴.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항상 말하기를, 악인도 왕생한다, 하물며 선임임에랴. ...

- [단니쇼] 제 3조

 

... 그가 이렇게 말한 시점에서 '악인'이란 종래의 계율에서 볼 때 악으로 간주되는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의미했다는 사실이다. 그러한 악을 면한 부자나 지배계급이 구원된다면 악을 강요당하는 사람들이 구제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구원은 악인으로부터 시작된다? 악인의 운명애. 초인이 된 악인. 예수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 예수께서 이말을 들으시고, "성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치 않으나 병자에게는 필요하다. 너희는 가서, '내가 바라는 것은 동물을 잡아 나에게 바치는 제사가 아니라 이웃에게 베푸는 자선이다'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가를 배워라. 나는 선한 사람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하고 말씀하셨다.

- [마태오의 복음서] 9장 10절-13절

 

니체도 여러번 얘기하곤 했지만, 예수는 멋진 인간이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부자는 하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렵다. 거듭 말하지만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쉬울 것이다."

- [마태오의 복음서], 19장 23절-24절

 

크리스트교에서는 "가난한 자는 행복하다"라는 예수의 말을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라고 바꿔 말한다. 정말 절묘하지 않은가? 이를 이렇게 명료하게 표현할 수 있는 고진도 대단하지만. 그러면 부자라도 마음이 가난하면 되는 것이다. 교회를 살찌우는 것은 부자일 것이라는 것은 명확하다. 이러한 논리의 전도가 필요했던 이유? 다시 말해 현실의 사회적 관계는 그대로 두고 개인의 내면만 착하면 된다는 말이다. 뭐 굳이 종교를 비판할 생각은 없다. 맑스도 얘기했지만, 종교에 대한 비판은 이미 끝났다.

 

종교상의 불행은, 첫째로 현실 불행의 표현이고 둘째로는 현실의 불행에 대한 항의다. 종교는 번민하는 자의 한숨이며 인정없는 세계의 심정인 동시에 정신없는 상태의 정신이다. ...... 민중의 환상적 행복인 종교를 폐기하는 것은 민중의 현실적 행복을 요구하는 일이다. 민중에게 자신의 상태에 대해 그리는 환상을 버리라고 요구하는 것은 그 환상을 필요로 하는 상태를 버리라고 요구하는 일이다. 따라서 종교에 대한 비판은 종교를 후광으로 하는 저 고통스런 세계에 대한 비판을 내포하고 있다.

-[헤겔 법철학 비판]

 

이것도 고진의 다른 책에서 다시 인용한 것인데, 중간의 말줄임표는 너무도 유명한 '그 말'을 내가 일부로 생략한 것이다. 고진 역시 '그 말'이 자주 인용되는데, 거의 확실히 오해되고 있다. 그러한 오해를 하는 것 만으로도 그 사람이 맑스를 읽은 적이 없다는 사실이 들통나기 때문에 앞으로 주의해야 할 것이다라고 쓰고 있다.

 

하튼, 부자가 구원받기 위해서는 마음이 가난해서 될 게 아니고, 현실에서 가난해져야 하는가 보다. 이웃에게 베푸는 자선을 좀 더 빡시게 할 필요가 있다. 자기가 가난해질 정도로. 그리고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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