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리지만 하늘이 보이는

사무실 창에 수증기가 서려있다. 바깥으로 보이는 하늘은 여린 잿빛이다. 그래도 하늘이라고 반갑다.



 내심 기대하고 있다가 2박을 하고 나왔다. 유치장은 지금까지 가본 곳 중에 가장 따뜻하고 가장 깨끗했다. 어제는 바깥에 황사가 심했다더니 유치장 안까지 모래 냄새가 뜬금없이 밀려들어 기침을 콜록콜록해댔다. 걸레를 달라고 해서 방을 닦고 났더니 조금 괜찮아졌다. 오늘은 구속영장이 청구됐다는 소문이 돌아 머리도 감고 스트레칭도 하면서 적응해보려고 노력했다.

 

하늘을 볼 수 있어서, 나와서 다행이라고 이야기하기가 쉽지 않다. 같은 경찰서에 있던 두 명의 동지들에게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던 것이다. 모두 6명이라고 한다. 지난번보다 심하다. 이번에는 연행부터 어처구니없었는데 구속이라니...

 

평택에 도착했을 때 이미 용역들이 마을 길목마다 들어올 준비를 하고 있었고 포크레인과 레미콘들이 새까맣게 둘러선 경찰들의 호위를 받으며 농수로를 파괴하려 들었다. 여러 곳에서 들어오니 평택에 모인 사람들은 나눠져 길목을 막을 수밖에 없었고 수십배가 넘는 경찰병력을 뚫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보였다. 그냥 그렇게 지나가는 포크레인을 쳐다보는 수밖에 없었다. 포크레인의 아가리가 땅을 향해 박힐 때마다 땅이 울었다. 그 소리가 황새울 논길을 따라 사방으로 흩어져갔다. 들썩이며 어깨를 들썩이며 따라 울기도 미안한 마음은 숨길 수밖에 없었다.

 

포크레인이 파놓은 땅에 시멘트를 부으려고 레미콘이 들어왔다. 누군가 달려가 차 아래로 들어가 누웠고 나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레미콘 위로 올라갔다. 막을 수 있을지, 괜히 연행자만 늘리는 것 아닌지, 올라가고 나니 솔직히 그런 고민이 들었다. 연행자와 구속자가 많아지면 안되는데, 안되는데. 그러는 사이 경찰들이 레미콘을 에워싸고 주위에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현장을 지휘하던 경찰관은 병력의 바깥에 서있는 사람들을 연행하기 시작했다. 그/녀들의 진심을 읽었던 것인가. 레미콘의 진행을 막고 싶었던 그/녀들의 진심을? 하지만 연행은 행위에 대한 판단에 따라야 하는 것이다. 위에서 보면 분명했다. 표적연행이라는 것이. 현장 지휘자는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말로 항의하는 사람들 중 몇 명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연행을 지시했다.

 

그렇게 '황당하게' 연행된 사람들을 두고 나오는 마음이 못내 미안하다. 다른 방법도 있었을 텐데 굳이 레미콘에 올라가서 주위 사람들을 힘들게 했나 싶다. 더욱 미안한 것은, 내가 그날도 그 전에도 그리 열심히 평택을 지키기 위해 싸우지 못했다는 것이다. 더 열심히 더 많은 일을 할 사람들을 가둘 빌미를 만들고 빠져나온 것 아닌가 하는, 엉뚱한 자괴감 혹은 오만함이 사무실을 선뜻 나서지 못하게 한다.

 

그러나 흐리지만 하늘이 보이는 이 곳에서 다시 돌아보는 평택의 그 하루는, 흐리지만 희망을 보게 한다. 농수로는 다시 복구되었고 주민분들은 다시 농사지을 준비로 분주하시다. 압도적인 경찰병력에도 주눅들지 않고 끈질기게 싸웠던 사람들이 있고 유리창 너머로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다고 담담하게 미소짓는 사람이 있다. 이제 햇님아, 마음놓고 비추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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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4/09 19:17 2006/04/09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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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미류님의 [흐리지만 하늘이 보이는] 그리고. 그래도. 할 말은 해야지.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로 시작하는 농담을 곧잘 했다. 농담일 때도 있고 교양용일 때도 있고 시비용일 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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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rmlist 2006/04/09 20:19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잘 읽었습니다.고마워 미류.

  2. 나루 2006/04/09 21:57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토요일날 전화를 안받길래...잡혔구나...생각했고
    오늘...큰맘 먹고 전화해놓고선 괜히 딴사람 안부나 묻고...
    그랬지요

  3. 2006/04/09 23:25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고생 많았어요, 미류. 미류를 보면서 저도 끈질기게 싸울 용기를 얻어요. 고마워요.

  4. 미류 2006/04/10 00:06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알엠 올린 사진 봤어요. 늘 함께...

    나루 토욜 못 만나서 너무 아쉬웠어요. 쇼킹패밀리도 놓쳤구 흑흑. 전화받고 걱정하는 마음이 다르지 않았을 꺼라고 느꼈어요.

    돕 그날 아침에 만났을 때 참 반가웠어요. 역시 늘 그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이 있구나, 그래서 드문드문 가보는 나도 함께 하는 느낌을 받곤 해요.

  5. 무위 2006/04/10 12:07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평택 사는 난 인터넷으로나 현장소식을 접하고 있는데 --;;
    고생하셨구요, 염치없지만 계속 고생 부탁드립니다.

  6. 2006/04/10 16:38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어이, 고생하네.... 근데, 내가 자네 블로그에 자주 안, 못, 들어오는 이유는 오로지 자네 주소가 너무 어렵기 때문이라네! eau, ieau, iau.....--;

    항상 건강하시고...^^

  7. 미류 2006/04/11 11:24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무위 | 평택에서 한번 뵈요~ ^^;

    날 | 전에도 네가 말했던 것 같군. 더 얘기 안해도 철자가 조금 괴팍한 건 알겠으니 그냥 외워라! ^^;; 건강하셤~ 다녀올 때 선물 들고 와야 만나준닷!

  8. 앙겔리마 2006/04/11 12:51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헐 놀러갔다온 사이에 미류가 연행되었다니~_~ 풀려난 거 감축드려요. 언제나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 나는 무서운데. 서울로 이제 출근하나요? 연락 주세요. 참 전화번호 모른댔지-_-;; 내가 연락할께요

  9. 미류 2006/04/11 13:57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네, 연락주셈~ ^^ 이번주는 여기저기 나다닐 것 같구 다음주쯤 괜찮으면 함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