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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다 죽은 것

구로사와 기요시의 인터뷰를 보고 느낀 건데,(이번 FILM 2.0)

 

도대체 왜 나는(아니면 다른 사람들도) 갓 죽은 시체보다 썩어 문들어진 미라들이 더 '안'무서운 거지? 만약 화장실 문을 열었는데 어떤 남자가 다 토한 채로 죽어 있거나 배에 칼이 찔린 채로 쓰러져 있다면 정말 무서울 것 같다. 길가에서 교통사고에 차에 치여 헬멧 안에 터져버린 두개골을 본다면 진짜로 끔찍할 것 같다. 그런데 미학적으로 바라본다면 미라 역시 그렇게 상태가 양호하진 않다. 그렇게 문디같이 썩어 문드러진 것 자체가 역겨우며 으레 그러듯이 눈이 있던 자리에서는 구데기가 기어 나올 것만 같다. 수분이 다 빠져서 쩍쩍 갈라진 머리카락과 피부는 그냥 기분 나쁜 '덩어리들'이다.

 

이런 생각도 해봤다. 일반적으로 갓죽은 시체를 보는 건 그닥 예견되지 않은 갑작스런 경험이다. 화장실 안에 뻗어있는 시체나 교통사고를 목격하는 건 그렇게 흔한 경험이 아니며 그만큼 급작스럽다. 반면 미라 같은 것들은 주로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기 때문에 일종의 마음의 준비를 하고 가는 편이 많다. 그렇다면 박물관에, 갓 죽은 시체들을 전시해 논다면? 아니면 완벽한 방부 처리를 해서 박물관에 갖다 놓는다면 덜 무서울까? 아니겠지. 사실 그게 더 무서울 것 같다. 또, 어떤 사람이 예지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사람이 죽는 것을 알 수 있다면 저기 걸어가고 있는 평범한 남자가 3분 후에 덤프트럭에 깔려 죽는 것을 알고 있었고 3분 후에 그의 시체를 보면 과연 무섭지 않을까?

 

물론, (굉장히 실증적으로) '시체의 상태'와 '관람자의 준비여부'에 따라 공포량이 달라질 수 있다는 식으로 쉽게 생각할 수도 있다.  실례로 중학교 때 할아버지를 염 하는 걸 보면서 말장하게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여러 어른들에 둘러싸인 채 마음의 준비를 하고 봤을 때 할아버지 시체가 '전혀' 무섭지 않았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 내가 할아버지를 보고 공포를 느끼지 않았던 이유는 나는 할아버지를 알고 있었고 할아버지가 살아온 궤적, 돌아가실 때까지의 과정들을 기억하기 때문인 것 같다. 만약 할아버지가 차 사고로 처참한  상태로 돌아가셨더라도 할아버지의 시체가 공포의 대상이 되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렇다면 갓 죽은 시체에서 느껴지는 공포는 두 요인과 더해 그것에 대한 '무지' 의 영향이 크다. 나는 그 시체가  생전에 어떤 일들을 했는지, 어떠한 생각을 품고 있었는지를 알지 못한다. 그가 죽기 5분 전까지 애인과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알 수 없다. 그는 죽은 시체 그대로 덜컥 나의 곁으로 다가와 버린 것이다. 살아있는 존재로서 죽은 것을 보는 것은 큰 짐이다. 게다가 그것의 사연을 알 수 없다니 그것 자체가 공포로 다가올 수 밖에. 공포 영화에서, 공포를 느끼는 순간은 어떠한 존재의 갑작스런 출현일 때다. 그 존재가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와 맥락들이 풀어지는 순간 공포는 연민으로 변한다.

 

따라서 미라가 덜 무서운 건, 일반적으로 미라는 갑작스럽게 보기 힘들고 그것이 엄청난 세월을 지나왔기 때문에 미라를 보면서 '사람'이었다는 감정이 덜 강하게 느껴지면서 그가 사람으로서 겪은 여정들에 대한 의문, 걱정들이 잘 생겨나기 힘들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미라는 깔끔하게 죽은 채로 썪은 것들이기 때문에 시체의 외향이 그닥 혐오스럽진 않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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