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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0/20
    김종철 선생 강연 - 나는 꿈꾼다 고르게 가난한 사회를(10월 22일 목 7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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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9/09/03
    이 시대에서 잘사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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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09/08/12
    정 투사를 어떻게 스카우트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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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레의 지혜가 담긴 치료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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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09/07/28
    천사불여일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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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철 선생 강연 - 나는 꿈꾼다 고르게 가난한 사회를(10월 22일 목 7시)

 

“어느 정도 물자와 서비스가 결핍된 상황이라야 사람들이 서로 돕게 되는 거예요. 아프리카, 아시아, 라틴 아메리카의 전통 공동체의 상부상조 관계라는 것은 그들이 가난하기 때문에 가능한 거예요. 가난이라는 게 절대로 배척해야 할 악은 아니란 말이죠.”
 
김종철 선생은 공생공락의 가난한 삶을 꿈꿉니다. 선생이 바라는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요. 어떤 삶이 ‘좋은 삶’일까요. 2009년 10월 22일 목요일 7시 작은책 강연에서 해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1947년 경남 출생으로 서울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영남대학교 영문과 교수로 재직하였다. 격월간 〈녹색평론〉발행·편집인. 주요 저서로는 《간디의 물레》, 《땅의 옹호》,《비판적 상상력을 위하여》가 있고 역서로는《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
,《正義의 길로 비틀거리며 가다》가 있다.
 

작은책 홈페이지 www.sbook.co.kr
전화 02-323-5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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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에서 잘사는 방법!

이 시대에서 잘사는 방법!
 
진중권 교수가 중앙대에서 잘렸다. 한겨레는 ‘진중권 교수, 중앙대 재임용 탈락’이라고 보도했고 경향신문은 ‘중앙대, 진중권 재임용 거부’라고 보도했다. 느낌은 조금 다른데 어쨌든 잘렸다는 거다.
 
진중권 교수는 중앙대 겸임교수였다. 중앙대 관계자 말로는 "겸임교수란, 본직을 갖고 교수직을 겸임한다는 의미"라고 하는데 나 같은 사람은 뭔 소리인 줄 잘 모르겠다. 다만 겸임교수는 방학 때도 기본 강의료가 나오는 걸로 안다. 반면에 시간강사라고 하는 비정규직 교수들은 말 그대로 강의할 때 받는 강사료 말고는 ‘얄짤’ 없다. 그 강사료가 얼마인지 들으면 정말 어이가 없다.
사실 이런 거 안 지 얼마 안 된다. 얼마 전에 이후출판사에서 나온 《비정규직 교수, 벼랑 끝 32년》이라는 책을 읽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여태껏 대학에서 강의를 하면 모두 교수인 줄 알았다. 교수! 아, 물론 교수는 맞는데 교수 대우를 전혀 받지 못하는 교수들이 그렇게 많다는 걸 정말 몰랐다. 대학에서 강의하는 시간 강사의 강의료가 3, 4만 원이라니 이게 무슨 교수라는 말인가. 고등학교 중퇴인 나도 가끔 글쓰기 강연을 하는데 적어도 시간 당 10만 원이다. 지방으로 가면 차비 10만 원을 더 준다. 그런데 대학까지 20년, 외국 갔다 와서 석사, 박사 학위까지 길면 10년, 이렇게 오랫동안 공부하고, 또 연구를 해서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그 교수들이 시간당 3, 4만 원이라니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더 어이없는 건, 그런 시간 강사들이 우리나라 대학 전체 7만 2,419명이나 된단다. 이게 얼마나 많은 건지 감이 안 오실 거다. 우리나라 대학에서 정규직이라고 하는 전임교원이 5만 8,819명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려 드리면 놀라실라나? 그래도 별로 안 놀라신다고? 인재 경영이니 학문 연구니 하는 대학에서 ‘보따리장수’라고 일컫는 비정규직 강사가 정규직 격인 전임교원보다 많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분명 한나라당, 이명박 지지자다.(이렇게 말하면 놀라는 척이라도 하겠지.)
 
이 글을 읽는 독자님은, 국회 앞, 천막에서 시간 강사 교원 지위를 회복해 달라고 700일 넘게 농성하고 있는 김영곤 교수와 부인 김동애 교수를 혹시 아시는지? 그 분들이 쓴 이야기도 그 책에 실려 있다. 책을 낸 그 당시는 500일 정도였는데 벌써 700일이 훌쩍 넘어버렸다.
 
이 책은 32명이 프레시안에 연재한 글을 모은 책이다. 비정규 교수 뿐만 아니라 현직 교수, 학생, 문학 평론가, 변호사, 일반 네티즌까지 서로 다른 눈으로 시간강사를 이야기한 글이다. 모두들 비정규직 강사의 문제점을 정확하게 짚고 있다. 1부 <대한민국 비정규 교수의 오늘>, 2부 <우리는 소망한다, 비정규 교수의 교원 지위 회복을!>, 3부 <비정규 교수 문제의 해법은?>, 4부 <벼랑 끝 32년, 희망을 다시 쓰자> 이렇게 차례를 나누었다.
 
우리나라 노동자들이 독재정권과 열악한 노동 탄압에 맞서 목숨을 끊은 열사가 많다. 하지만 이 비정규직 강사가 자살하는 사건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지금까지 시간강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이 몇이나 될까? 여덟 명이다. 지난해 한경선 박사도 미국 오스틴에서 삶을 마감했다. 한경선 선생은 2004년, 텍사스 주립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귀국해 시간강사와 강의 전담교수로 4년 동안 지냈지만 “처음 1년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제정신을 갖고는 결코 살아갈 수 없었던 시간이었다”고 했다. 도대체 비정규직 강사를 학교에서 어떻게 대하기에…….
 
이런 강사 제도가 시작된 건 언제부터일까? <‘교수’와 ‘강사’, 그 차별의 시작과 숨겨진 음모>라는 글을 보면 나온다. 1977년 박정희 정권 때 교수와 강사의 차별이 시작됐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박정희 독재정권이 최후의 발악을 하던 시기였는데 도대체 교수와 강사의 차별을 두어서 무엇을 얻으려고 했을까? 다른 나라의 강사 제도는 어떨까? 책 속에는 ‘일본 비정규 교수의 현실’도 들어 있고 ‘호주의 비정규 교수에 지급되는 추가 임금 제도’에 관한 내용도 있다.
 
우리네 부모님들 그저 자기 자식 하나 잘 되기만 바라고 좋은 대학을 보내고 싶어 한다. 학생? 누구나 자기가 가는 대학이 좋은 대학이면 좋겠지. 대학들은 “최고의 교수진, 최고의 시설로 창의적인 인재로 키우겠다”고 하면서 학생들을 끌어 들인다. 다 뻥이다. 잘라 말하건대 우리나라에 이런 대학은 한 군데도 없다. 지들이 스스로 고백(?)하기를, 시간 강사에게 교원 지위를 주는 것에 대해 ‘절대 불가’라고 하면서 그 이유가 ‘시간 강사는 검증되지 않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웃기지 않는가? 최고의 교수진이라매? 아니 그 학교의 반이 넘는 교수들이 다 시간강사인데 최고의 교수진이란다. 아, 시간강사 빼고 전임교수만 최고의 교수진이야? 놀고 있다. 자기들이 이 말을 하면서 좀 낯 뜨겁지 않을까?
 
내가 알고 있는 훌륭한 분들이 있다. 하종강, 박준성, 정태인, 우석훈, 진중권 같은 분들이다. 이분들 다 교수라는 직함이 있다. 그런데, 전임교수가 아니다. 연구교수, 외래교수, 겸임교수, 객원교수, 강의 전담교수, 뭐 이런 요상한 이름들이 붙어 있다. 이런 이름들이 모두 열여덟 가지라는데 한마디로 다 비정규직 교수다. 그런데 이런 분들은 내가 본 어떤 교수들보다 훌륭하고 실력 있고, 실천하는 지식인들이다. 하지만 정식 교수가 되지 못하고 있다. 왜? 불의를 보고 참지 못하고 입바른 소리를 하시는 분들이다. 그저 권력에 고분고분해야 하는데 그게 안 되는 분들이다. 아, 그렇다고 지금 교수로 계신 분들 다 권력에 아부했다는 소리는 아니다. 강수돌, 한홍구 선생 같은 분들은 현직 교수이면서 얼마나 줏대가 있는 분들이던가. 하지만 사실 이분들도 이명박 시대에 대학을 졸업하고 박사학위를 땄더라면 교수 되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비정규직 교수, 벼랑 끝 32년》. 이 책은 비정규직 교수를 둘러싼 학교 문제뿐만 아니라 이 사회를 속속들이 들여다 볼 수 있는 아주 훌륭한 교과서다. 박사 학위를 따서 교수가 되려는 사람들만 보는 책이 아니다. 오히려 그 분들은 읽지 않는 게 정신 건강에 좋다. 왜? 힘 빠지니까. 재수 없으니까. 자식 잘 되라고 대학 보내는 학부모, 대학을 가려고 애쓰는 학생들은 꼭 읽으셔야 한다. 그리고 세상을 알고 싶은 분들은 꼭 읽어야 한다. 골치 아픈 이야기는 보고 싶지 않다고? 이런 이야기들을 외면하고 이 시대에서 잘사는 방법은 없다!
 
글쓴이 <작은책> 발행인 안건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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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투사를 어떻게 스카우트 했어?

 

정 투사를 어떻게 스카우트 했어?
 
이 책을 내가 소개하기는 좀 거시기하다. 왜냐면 내가 발행인으로 있는 작은책에서 강연한 내용을 엮은 책인데 이 책이 좋다고 이야기하면 아무래도 쑥스럽지 않은가.
 
그래도 뻔뻔스럽게 내가 다른 책보다 이 책을 먼저 소개하고 싶은 까닭이 두 가지 있다. 첫째는 내가 강연을 기획했지만 책은 다른 사람이 만들었다. 둘째는, 내가 다 들었던 강연이었지만 책으로 나와 다시 읽어 보니, 다시 한번 꼭 읽어봐야 할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람의 기억이 얼마나 짧은지. 게다가 강연과 책이, 다시 말해 ‘말’과 ‘글’이 이렇게 느낌이 다르고 이해가 깊이 있게 다가오는지 다시 한번 깨달았다.
 
《후퇴하는 민주주의》 이 책은 여섯 분이 강연한 내용을 묶고, 하종강, 서경식 선생이 나눈 이야기를 풀어 쓴 책이다. 책을 낸 곳은 ‘철수와영희’. 처음엔 무슨 출판사 이름이 이래? 했는데 지금은 이름 외우기가 너무 좋아 “괜∼찮다” 하고 칭찬이 자자한 곳이다. 철수와영희에서 나온 책을 보면 출판사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왜 80이 20에게 지배당하는가?》,《1%의 대한민국》, 이런 책들을 냈다. ‘한 달 안에 1억 버는 법’ 뭐 이런 식으로 부자 되라고 꼬시는 책이 아니라서 대박이 날 만한 조짐은 티끌도 없다. 그나마 《왜 80이 20에게 지배당하는가?》라는 책이 국방부에서 불온도서로 ‘추천’해 주는 바람에 판매 부수가 만 부가 훌쩍 넘었다.
 
《후퇴하는 민주주의》에서 강연한 분들은 손석춘, 김규항, 박노자, 손낙구, 김상봉, 김송이 선생이다. 그 뒤에 하종강, 서경식 선생은 말할 필요도 없이 사회에 웬만한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이분들을 모르는 독자들이 없을 게다. 그 가운데 김송이 선생이 조금 낯설겠지만 혹시 보리출판사에서 나온 《낫짱이 간다》를 보신 분들은 앗! 이분이 그분이야? 하고 놀라실 게다. 유명한 만화책 《맨발의 겐》도 번역했다. 총련에 속한 재일동포로 조선 학교에서 28년 동안 교사 생활을 했다. 현재는 일본 학교에서 조선어 강사를 하면서 씩씩하게 살아간다. 그이가 강연에서 한 이야기는 어떤 이야기였을까.
 
여섯 분이 한 강연 이야기를 여기서 다 풀 수는 없지만 독자들이 어떤 책인지 알 수 있게 하려면 몇 가지는 소개해 드려야겠다. 손석춘 선생이 한 강연 ‘혁명은 다가오는가’에서 나온 질문들. 혹시 이명박이 표를 많이 얻어서 대통령에 당선된 걸로 아시는 분이 계시는가? 천만에, 전체 유권자 가운데 30퍼센트밖에 되지 않았다. 과반수도 안 된 표로 한 나라의 대통령을 하고 있다? 초등학교 선거도 그렇게는 안 한다. ‘마르크스에게 미래 사회의 유일한 희망은 ∼였다.’ 여기서 ‘∼’ 들어갈 답은 노동계급일까? 손석춘 선생은 ‘아니다’라고 우리에게 다시 일깨워 준다. 그 답을 정확히 알고 시민사회를 조직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 답은 무엇일까.
 
김규항 선생은 ‘진보란 무엇인가’ 하는 제목으로 강연했다. 선생은, 진보란 사회가 더 행복해지는 것이라고 말문을 연다. 하지만 ‘국익’이라고 포장한 지배 계급과 대다수의 정직하게 일하는 사람들이 똑같이 행복해지는 방법은 없다고 말한다. 김규항 선생은, 우리가 행복하려면 ‘우리 안의 이명박’부터 없애야 한다고 말한다. 도대체 ‘우리 안의 이명박’이 뭘까. 이명박이 0교시, 학교 자율화, 학교 서열화 하니까 ‘이명박이 아이들 다 죽인다’ 하고 비판했는데 김규항 선생은, 진즉 초등학교 때부터 부모들이 다 죽이고 있었다고 밝힌다. 군사 파시즘보다 자본의 내면화가 더 무섭다는 것이다. ‘내 아이가 공부를 안 해서 그렇지, 하면 잘해. 서울대도 문제없어’ 하는 착각이 우리 안의 이명박일까?
 
책을 읽으면서 궁금하다 싶으면 강연 때 질문한 분들이 대신 물어 준다. ‘전 대학생이고요, 초등학교 다니는 막냇동생하고 나이 차이가 많이 나서 엄마 같은 마음이 있어요. 그 동생이 날마다 학원을 세 군데나 다니는데 엄마를 어떻게 설득해야 하나요?’ 강연장은 웃음바다가 되고 김규항 선생은 진지하고 명쾌한 답을 내 놓는다.
 
박노자 선생은 한국이 좋다면서 왜 노르웨이에서 살까? 정규직 취직이 어렵기 때문이란다. 선생 같은 분이 대학에서 교수로 취직이 안 되는 이유? 그건 요즘 이후에서 나온 책 《비정규 교수의 벼랑 끝 32년》이라는 책을 봐야 알 수 있다. 박노자 선생은 비정규직의 문제점을 한국에서 너무 가볍게 다뤄지는 건 아닌가 걱정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 사회에서 별의별 운동이 많은데 단 두 가지는 없었다고 한다. ‘서울대 안 가기 운동’과 ‘동문회 같은 연고 집단 불가입 운동’. 선생은 왜 이런 운동을 권유하는 걸까. 그렇잖아도 요즘 내 메일에 들어온 제목 한 가지를 보면 “○○동창 모임의 발전을 위하여”이다. 선생이 한 말을 듣고 이 모임에도 탈퇴를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손낙구 선생은 ‘집이 많은 놈, 집은 있는 놈, 집도 없는 놈’이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했다. 제목을 영화 ‘놈, 놈, 놈’에서 패러디해 내가 지었는데 가장 섹시하게 지었다고 손낙구 선생이 칭찬했다. 선생은 국민들을 모두 6계급으로 나누었는데 책을 보면서 독자 분들은 어느 부류에 속하시는지 판단해 보시기 바란다. 혹시 술 취하면 찾아가는 제 3계급이 아니신지? 3계급은 ‘유주택 전월세’라고 한다. 어디에 자기 집을 사 놨는데 도저히 은행 이자가 감당 안 돼서 그 집 세 놓고 작은 셋방으로 이사 가서 사는 사람들이란다. 제1계급인, ‘집도 많은 놈’은 집값이 오르면 무조건 좋지만, 이분들은 집값이 오르거나 내리면 어떨까? 아주 헛갈리지만 답은 있다고 한다. 그나저나 한국에는 전 국민이 집을 한 채씩 갖고도 103만 채가 남아돈다고 한다. 설마? 정확한 통계다. 손낙구 선생은 심상정 의원 보좌관으로 4년 동안 일하면서 부동산 문제에 전문가가 다 됐다. 그럼 집 많은 놈은 도대체 집을 몇 채 가지고 있을까? 가장 비싼 집은? 가장 싼 집은? 한국에서 가장 건물 부자는 누굴까? 하나만 대답하겠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집 많은 놈은 1,083채라고 한다. 천팔십삼 채! 집 장사하는 놈이 아니고 그냥 개인이란다. “씁쓸한 인생.” 손낙구 선생은 이런 것들을 그저 밝히는 데만 머물지 않았다. 대안이 아주 명확하다. 한국의 빈부 격차를 70∼80퍼센트를 해결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여섯 분이 모두 분야가 다르다. 그런데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은 모두 비슷한 지점에서 만난다. 김상봉 선생의 이야기도 김규항 선생과 박노자 선생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학벌 철폐를 이야기하면서 김상봉 선생은 히딩크와 박지성을 보기로 들었다. 히딩크가 한국에 와서 성공한 것은 학벌 무시, 위계질서 무시하고 박지성을 뽑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공교육은 이제 물 건너갔다고 비판했는데 엘빈 토플러가 《제3의 물결》에서 말한 ‘공교육은 착실하게 준비된 공장 노동자를 대량 배출하기 위한 것’이라는 맥락과 비슷했다. 김상봉 선생은 이 체제 내에서 낙오를 하자고 선동(?)했다. 오늘 하루를 살더라도 신나게 사는 것이 훨씬 더 행복한 삶이라고 말했다. 그 강연을 들은 우리 작은책 독자 김○○ 학생. 그때 고3이었는데 그 말 듣고 바로 ‘낙오’를 결심했다. 그리고 지난해 촛불집회 현장에서 사는 모습을 봤다. “남미야, 요즘 뭐하니? 작은책에 와서 일하자!” 헉, 내가 이름을 불렀나?
 
하종강과 서경식 선생 이 두 분의 대화 자리는 철수와영희 출판사에서 마련했다. 두 분은, 우리 둘레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이야기를 나눈다. 서경식 선생은 한국에서 늘상 일어나는 이야기조차 충격이다. 용산 철거민들을 벌건 대낮에 불에 태워 학살하는 짓거리들,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을 완전무장한 경찰과 깡패들이 쇠몽둥이로, 테이저 건으로 헬기로, 최루액으로 진압하는 걸 이해할 수 있을까?
 
서경식 선생은 한국에서 1970년대에 가장 야만적인 군사 정권과 타협하지 않고 싸우는 시민들이 있었다는 것이 자신들에게 큰 격려가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80년대 말의 파업이나 투쟁 때마다 존경의 눈으로 바라봤다고 했다. 그러면 뭐 하나. 80년대 같은 시대가 돌아왔으니……. 《후퇴하는 민주주의》.이명박 시대에 우리는 더욱 투사가 돼야 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작은책〉도 준비를 했다. 학생 운동권에서 이름 날렸던(?) 꼴통 최규화에 이어서 정인열 씨를 스카우트했다. 독자사업부에서 일하는 정인열 씨, 피부 곱고 예쁜 옷 입고, 얌전하고 아주 평범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얼마 전까지도 코스콤 노동조합 부위원장으로서 20일이 넘게 단식 투쟁도 하고, 3층 높이 철제구조물과 한강 관제탑에 올라가 고공농성을 하던 투사였다. 한겨레 기획위원인 홍세화 선생은 “아니, 정 투사 같은 인물을 어떻게 작은책에서 스카우트 했어?” 하고 우스개소리를 했다. “홍샘! 작은책을 무시하는 건 아니죠?”
 
《후퇴하는 민주주의》. 부제 ‘서른 살, 사회 과학을 만나다’. 책 제목이 나왔을 때 시큰둥했다. 그런데 책을 다 읽고 나니 이보다 더 좋은 제목이 없겠다 싶다. 실천하는 지식인 여섯 분이 쓴 글을 몇 번이나 보면서, 내가 이 사회를 더욱 깊이 있게 깨달아 가는 듯해 기분이 뿌듯하다.
 
2009년 8월 11일
월간 작은책 발행인_ 안건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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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레의 지혜가 담긴 치료법

 

겨레의 지혜가 담긴 치료법
 
한평생 살아가면서 병들지 않고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한 번도 앓지 않는 사람들은 없다. 그런데 그 병이 암 같은 큰 병은 아니고 아주 소소한 병이라면 참 귀찮다. 어깨가 결린다든가, 귀가 웅웅 울리는 귀울림(이명증)이라든가, 소화불량이라든가 불면증이라든가 무좀 같은, 병 같지도 않은 병이 있으면 병원 가기도 뭣 하고 그냥 놔두기도 뭣 하고 아주 짜증이 난다. 더구나 무좀 같은 건 먹는 약으로 고치려면 위가 상할 수도 있다. 이럴 때 좋은 방법을 알려 주는 책 두 권이 나왔다. 《약 안 쓰고 병 고치기》, 《손 주물러 병 고치기》(보리출판사)라는 책이다.
 
이 책을 낸 곳은 우리 겨레의 건강한 삶을 목적으로 2007년에 보건복지부 인가를 얻어 출범한 비영리 단체인 ‘민족의학연구원’이다. 돈이 없거나 첨단 의료 혜택을 받기 힘든 사람들이 가장 적은 투자(책값 각 12,000원)로 스스로 건강을 관리할 수 있도록 했다. 《약 안 쓰고 병 고치기》는 북녘에서 나온 《토법의 림상응용》(과학백과사전종합출판사,1990), 《손 주물러 병 고치기》는 중국에서 나온 《수료》,《안마수족보건법》을 중심으로 중국과 북녘, 그리고 한국의 자료들을 모아, 남녘 실정에 맞게 고쳐 쓴 책이다.
 
흔히들 민간요법 하면 유치하고 비과학적이라고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 조상들은 질병을 운명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병을 막고 다스리는 방법을 갖고 있었다. 자연물 가운데 하나인 제 몸을 자극하여 피와 기운을 잘 돌게 하고 굳은 힘살(근육)을 풀어 병을 다스리고 건강을 지켰다. 옛 치료법에는 ‘수천 수백 년을 이어 온 겨레의 지혜가 담겨 있다.’
 
단순히 손을 주무르는 것만으로 병을 고칠 수 있을까? 이 책에서는 “그렇다”고 자신한다. “서양에서도 오래 전부터 ‘마사지’라는 이름으로 이 치료법이 나왔으며, 중국에서는 의학의 대표적인 고전이라 일컬어지는 《황제내경》에 이미 주무름의 효능이 적혀 있을 정도”라고 한다.
 
손쉽게 치료할 수 있는 치료법 몇 가지만 보자. 어깨가 결릴 때는 “견정혈과 견우혈, 그리고 근육이 굳어져 팽팽해 진 곳을 찾아 손가락으로 세게 누르거나 비벼 준다.” 물론 견정혈과 견우혈이 어디인지 자세히 그림으로 나와 있다. 귀울림은 “넷째 손가락과 새끼손가락 언저리를 두루 주물러 주는 것”만으로도 효과가 크다. 책을 보면 손가락 어느 부위를 누르고 따 줘야 하는지 더 자세히 나와 있다. 잠을 잘 못 잘 때도 좋은 치료 방법이 《손 주물러 병 고치기》에 나와 있다. 무좀은 《약 안 쓰고 병 고치기》에 나와 있다. 식초로 하는 방법, 버들가지나 미나리로 하는 방법 따위 무려 열 가지나 있다. 그 가운데 자기가 편한 방법을 쓰면 고칠 수 있다. 시간이 들고 정성을 들여야 하지만 약 먹고 위장 버리는 것보다 백 배 낫다.
 
이 책을 읽은 어떤 분과 같이 저녁을 먹으려고 식당을 들어갔다. 그 분은 손바닥을 식탁에 올려놓고 넷째 손가락을 잡아 당겨 곧추 세웠다 놨다 하고 계셨다. 뭐 하시는 거냐고 물으니 그 분이 천연덕스럽게 말씀하셨다.
 
“이렇게 하면 정력에 좋아진대”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책을 보니 발기부전에도 간단하게 치료하는 법이 네 가지나 나와 있다.
 
어릴 때 배가 아프면 어머니가 “엄마 손이 약손이다” 하면서 배를 쓰다듬어 주었던 기억이 난다. 놀다가 팔꿈치가 빠지면 어머니가 맞춰 주셨다. 글자도 모르고 살았던 평생을 사신 어머니지만 그런 어머니의 손길로 나는 건강하게 살아왔다. ‘신자유주의와 세계화라는 대홍수가 지구를 휩쓰는 이 어려운 때’에 “어머니 품처럼 따스한 손길 하나 보태려고” 민족의학연구원을 세우고 처음 내놓은 책이 이 ‘약손문고’다. 아픈 배를 어루만져 주던 엄마 손길과 같은 이 책은 독자들의 건강과 더불어 ‘겨레와 인류의 건강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믿는다.
 
나는 배낭에 언제나 책을 갖고 다닌다. 앞으로 늘 갖고 다닐 이 책 무게 때문에 배낭이 좀 더 무겁겠지만, 건강한 내 몸만 유지된다면 그런 것쯤 대수랴.
 
2009년 7월 28일 작은책 발행인 안건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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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불여일행

천사불여일행
 
작은책 편집위원이면서 노동자 <노동자교육센터> 부대표와 <역사학 연구소> 연구원으로 계신 박준성 선생이 책을 냈다. 《박준성의 노동자 역사 이야기》(이후 출판사). 그동안 다른 이들과 같이《1862년 농민항쟁》, 《왜 80이 20에게 지배당하는가》라는 책을 낸 적은 있지만 이렇게 혼자서 낸 적은 이 책이 처음이다.
 
박준성 선생 소개를 간단하게 해 본다. 자본가들이 본다면 박준성 선생은 백수다. 돈 버는 직업이 없기 때문이다. 왜곡하기를 좋아하는 수구 신문들이 본다면 ‘순진한 사람들 앞에서 매번 통박만 굴리고 이빨만 까는’ 사람이다. 아무 직업도 없이 허름한 옷차림으로 커다란 등산 가방에 뭔가 잔뜩 담아 가지고 다니면서 노동자들을 모아 놓고 역사랍시고 ‘썰’을 푼다. 그 역사 강의를 들은 사람들은 여지없이 이 나라 역사를 잘못 배웠다는 것을 깨닫는다. 깨달을 뿐만 아니라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실제로 한 발 내딛게 된다. 이 나라를 지배하는 자들이 보면 ‘순진한 백성을 의식화’시킨다.
 
박 선생 강연은 여느 강연과 다르다. 요즘처럼 기술이 발달한 시대에 파워포인트도 아닌 슬라이드로 강연을 한다. 찰칵! 찰칵! 한 장 한 장 필름이 넘어가는 소리는 우리를 역사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만든다. 강연 도중 가끔 노래를 한다. 우렁찬 목소리와 가늘게 떨리는 바이브레이션이 섞여 있는 목소리다.
 
즐거웠던 그날이 올 수 있다면
아련히 떠오르는 과거로 돌아가서
지금의 내 심정을 전해 보련만
아무리 뉘우쳐도 과거는 흘러갔다.
 
노래를 부른 뒤 손뼉 치는 소리가 나오지 않으면 아무 소리 하지 않고 잠깐 동안 기다린다. “와! 짝짝짝짝!” 무슨 뜻인지 알고 손뼉을 치면 강연이 이어진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하고 후회를 하고 뉘우쳐도 과거는 다시 돌이킬 수도, 없앨 수도, 바꿀 수도, 물릴 수도 없습니다.” 지나간 일을 후회하지 않기 위하여 과거의 기억인 역사가 필요하다고 썰을 풀기 시작하면 누구든 선생의 강연에 빨려 들어가지 않을 수 없다. 우렁찬 노래 소리에 졸다가 깜짝 놀라는 수가 있다.
 
박준성 선생의 강연을 들으면, 왜 역사를 배워야 하는가 깨닫게 된다. 역사는 기억이다. 한 사람이 여태껏 살았던 것을 모두 잊어버리는 기억상실증에 걸리면 자기가 누군지도 모르고 어떻게 살아왔는지도 모르고, 그렇게 되면 당연히 자기가 무엇을 하면서 살아가야 하는지도 모른다. 역사도 마찬가지다. 자본주의 사회가 어떻게 생겨났는지도 모르고, 지금 우리나라가 어떻게 태어났는지도 모르고, 왜 90퍼센트나 되는 서민들이 10퍼센트밖에 되지 않는 부자들에게 지배를 당하고 있는지 모른다면 자신이 어떤 생각을 갖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모르는 것은 당연하다.
 
자본가들은 우리 노동자들에게 역사를 잘못 이해하도록 끊임없이 세뇌시켜 왔고 노동자들의 생각을 지배해 왔다. 박준성 선생은, 수많은 역사책이 “왕이나, 지도자나, 위인이나, 장군이나, 많이 가진 자들이 마치 똑똑하고 힘이 있어 역사를 움직여 온 것처럼” 나와 있지만, 그 뒷면을 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노동의 역사》(동녘)라는 책에서 나온 이야기를 빌려 “김대성이 불국사와 석굴암을 혼자 다 만들었을까”,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만든 이유가 백성을 어여삐 여기는 ‘마음’ 때문이었을까?”, “이순신 장군 혼자 나무를 베어 거북선을 만들고 혼자만 나라 걱정하며 싸우다 죽었을까?” 하는 질문을 노동자들에게 던진다.
 
박준성 선생은 길거리에서도 자본주의가 알게 모르게 서민들을 세뇌시킨다는 것을 예리한 눈으로 관찰했다. 1990년 전반 서울 지하철 2호선 을지로입구역 옆 건물에 그려져 있었던 김홍도의 <타작도>에도 그런 불순한 의도가 있다고 역설한다. <타작도>에는 농부 여섯 명이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 장면이 들어 있는데 그림 오른쪽 위에서 자리 깔고 누워 혼자 술잔 기울이다 깜빡 졸기도 하는 지주를 빼 버렸다. 왜 뺐을까? 박 선생은 책에서 그 까닭을 자세히 설명했다. 자본가들은 이렇게 길거리에 널려 있는 사소한 그림이나 광고 하나도 서민들을 세뇌시키는 도구로 이용한다. 박준성 선생은 그런 이야기들을 들려주면서 역사가 단순한 과거의 박제가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라는 것을 책에서 자세하게 밝힌다.
 
이 책 끝 부분에는 ‘박준성의 항암 투병 일기와 아내 김명희의 간병 일기’가 실려 있다. 박 선생은 2003년 간암 판정을 받고 수술을 받았다. 의사가 하는 말 “6개월 뒤에 봅시다” 하는 반가운 말을 들은 지 몇 년째. 이제 박 선생은 다시 건강을 찾았다. 그 과정에서 부인인 김명희 선생의 노력은 실로 눈물겨웠다. 암일지도 모른다는 진단을 받은 2003년 11월부터 전국에 수소문해 5년 동안 몸에 좋다는 나물과 채소를 구해 다듬고 밤새도록 중탕해서 챙겨 주었다. 김명희 선생은 남편 건강이 회복되는 것을 보고 “그저 살아 주는 것만도 이렇게 고맙다”고 했다.
 
박준성 선생은 2006년 5월부터 다시 ‘노동자 교육’에 복귀했다. 복귀한 첫 강연에서 박 선생은, “부르고 싶어도 못 불렀던 노래”를 불렀다.
 
“그날이 올 때까지 그날이 올 때까지
우리의 깃발을 내릴 수 없다
이름 없이 쓰러져 간 동지들이여
외로워 마 서러워 마 우리가 있다
그대 향한 깃발 들고 나 여기 서 있다“
 
박 선생은 눈물이 나와 노래를 마치지 못했다. 노동자들 앞에 서서 다시 강의할 수 있다는 기쁨도 있었겠지만 “‘노동 해방’을 꿈꾸며, 자본이 지배하는 신자유주의 맞서, 반자본 대안 세상을 만들어 가는 길에 아직도 내가 물 주고 씨 뿌릴 일이 있다고, 기억이 살아나 손짓을” 하는 것이 더 기뻤기 때문이리라.
 
박 선생이 늘 가슴에 품고 다니는 말이 있다. 천사불여일행千思不如一行이라는 말이다. 덕숭산에 있는 만공 스님의 ‘만공탑’에 써 있는 말인데 천 번 생각하는 것보다 한 번 행동하는 것이 낫다는 뜻이다. 박준성 선생은 그 말을 실천하느라 여전히 때와 장소 가리지 않고 ‘슬라이드로 보는 노동운동사’를 강의하고 다닌다.
 
박준성 선생이 바라는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천사불여일행’과 함께 가슴에 품고 다니는 말에서 우리는 그 세상을 짐작할 수 있다.
 
“과거의 기억을 장악하는 자(세력)가 역사를 지배하고, 역사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고 했다. 노동자가 노동자의 역사를 기억하는 일은 바로 노동 해방의 미래를 여는 출발점이다”
 
2009년 7월 28일 작은책 대표 안건모
월간 작은책 02-323-5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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